78화. 최적지
< 78화. 최적지 >
광마 길드의 소탕을 위해 동원된 빌런 수사국의 대원들은 총 80명. 그중 부상자를 제외한 60여 명의 빌런 대응팀 대원들이 부러운 눈빛으로 가고일과 어쩌다 길드의 헌터들을 바라봤다.
“와! 씨. 장비 좀 봐.”
“진짜 때깔부터 다르네. 아까 선두에 섰던 헌터 방패 봤어?”
“뭔지 모르겠는데 앞에서 소용돌이치는 거 보면 차원문이 붙어있는 거 아니야?”
“나도 봤어. 대단한 게 공격을 죄다 잡아먹어 버리더라.”
“그런 방패 하나만 있으면 우리도 이런 고생은 안 할 텐데 말이야···.”
“아. 부럽다. 부러워.”
그때 어쩌다 길드의 힐러 하나가 웃는 얼굴로 다가왔다. 그녀가 푸근한 인상으로 쉬고 있는 대원들에게 인사했다.
“고생하셨습니다. 어디 몸이 불편하신 분은 없으신가요?”
“없습니다!”
“이 팀은 부상자가 없어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저··· 최선희 힐러님이시죠? 여기···”
“음?”
“여기 싸인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어머나?”
대원이 내민 것은 힐러빵에 넣는 힐러 최선희의 수영복 사진.
웃으며 가만히 대원의 눈을 보자 얼굴이 벌써 홍당무다.
“오늘 아침에 뽑았는데 마침 힐러님이 나오더라고요.”
“고마워요. 이렇게 카드에 사인하는 건 또 처음이네요.”
“아. 감사합니다.”
“자. 여기 잠깐 봐봐요.”
“네?”
그녀가 청년의 두 볼을 붙잡고 바로 힐.
눈이 번쩍 떠지며 그간 몰려왔던 피로가 한순간 날아갔다.
“어어억!”
“사랑니 발치해야겠어요. 조만간 아프겠네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녀가 사라지자 대원들이 우르르 그에게 몰려왔다.
“야! 이 새끼야! 너 언제 힐러빵 모았냐?”
“얌마! 카드 좀 내놔봐!”
“왜 이러십니까? 이건 제 생명입니다.”
“어어억? 이 새끼 갑자기 피부 좋아진 거 봐!”
“아악! 나도 빵 모을걸.”
그렇게 어쩌다 길드의 헌터들과 수사국의 대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는 가운데, 제단 위에서 던전 내부를 바라보고 있는 태훈의 눈은 황금빛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마나의 흐름.
던전 내부에 쌓여 있는 제단은 총 여덟 개.
아직 완성하지 못하고 건설 중인 제단도 두 개가 더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도 더 많은 마나의 와류가 던전 내에 흐르고 있었다.
‘이건 무슨···’
마치 명량대첩을 승리로 이끈 울돌목의 해류를 보는 것처럼, 거친 마나의 물살이 여러 와류를 만들며 엉키고 있었다.
‘그래서 광마 길드 놈들이 여기로 도망쳐 온 거였군.’
두 번째로 고민인 것은 고블린 군락. 죽여서 악령 소환의식의 제물로 사용한 고블린들을 제외하고도 아직 많은 고블린이 숨어 이쪽을 보고 있는 느낌. 대부분은 미성숙한 개체이거나 아기 고블린이었다.
“흠.”
그때 수사과장 최지욱이 다가왔다.
“고생하셨습니다.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네요. 덕분에 쉽게 광마 길드의 빌런을 토벌할 수 있었습니다.”
“저들은 어떻게 되나요?”
“우선 병원으로 후송해서 잘린 팔다리를 붙이는 접합 수술을 해야겠죠. 몸부터 치료하고 그 후에는 수감해서 재판을 받게 될 겁니다. 아마도 불법 마약류 유통과 폭조법, 다양한 특수상해가 얽혀있습니다. 공권력에 대해 대응한 부분도 포함해서 중형이 떨어질 겁니다. 중국 쪽과의 연계도 살펴봐야죠.”
“음···. 그럼 광마 길드가 소유한 던전들은···?”
“아마도 국세청에서 먼저 살펴본 후에 청산 절차에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청산 절차라··· 그럼 경매겠네요?”
“맞습니다. 빠르면 공고엔 두 달 정도 걸리지 싶네요.”
“알겠습니다. 아직 고블린 군락은 토벌이 덜 끝난 듯 보이는데···.”
“여긴 오후에 공병대가 들어와 전체를 폭파할 겁니다. 아직 대마 재배했던 곳도 있고, 고블린 둥지도 동굴로 남아있어서요.”
“그럼 폭파 전에 잠시만 제가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혹··· 무슨 문제라도?”
“아닙니다. 문제라기보다는 제가 고블린을 훈련해보려고 시도 중이거든요. 폭력성만 제거하면 꽤 영민한 종족이기도 하고, 나름대로 활용도가 있을 듯싶어서요.”
“아. 호텔 [타임 슬립]에서 훈련받은 고블린들을 활용하고 있다는 이야기는 들었습니다만, 그 개체들이 일반인들에게 위험하지 않은지 수사국에서도 아직 의견이 분분합니다. 언제 한번은 검증을 받으셔야 할 거로 봅니다만.”
“저희 쪽 아이들은 아주 얌전하죠. 오히려 폭력에 대해서는 경끼를 일으킬 정도로 무서워하도록 교육했습니다.”
“제가 판단할 수는 없고, 아마도 헌터 관리국에서 검증을 위해 조만간 연구원들을 파견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대원들 빠지면 두 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그때 한번 돌아보시죠. 그 후엔 여기 뒤처리를 맡은 공병대에 지휘권이 넘어가니까 이후엔 저도 어떻게 할 수가 없습니다.”
“네. 그래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빌런들의 호송이 마무리되자 수사팀의 대원들과 어쩌다 길드의 헌터들도 철수를 준비했다. 그리고 대부분이 던전을 빠져나갔을 때 감규석과 태훈만 던전에 남았다.
“어찌할 생각인가?”
“아기 고블린만 좀 챙기려고요.”
“곧 헌터들 철수하면 여기 감시하러 군인들이 들어올 거야.”
“잠깐만 입구 막아주세요. 10분 정도면 될 겁니다.”
“알겠네.”
감규석이 던전 밖으로 사라지자 태훈은 귀환석으로 차원문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차원문을 통해 할아버지의 던전으로 달려갔다.
“냐뇨?”
“모두 모여! 급하다.”
“냐뇨냐?”
“고블린 구출 작전이다. 다 불러!”
“구챠티냐?”
“그래. 어서!!”
하지만, 따라 들어오려는 고블린들은 모두 막는다. 고블린의 대장 ‘고비’를 불러 절대로 차원문에 고블린은 넘어오지 못하도록 당부했다.
“알았지? 너희는 절대로 넘어오면 안 돼!”
“고블!”
“냐냐냔?”
“너희 미니언들은 어서 빨리 넘어가고!!”
차원문을 넘어온 미니언들이 코를 찡그리며 주변을 살폈다.
“죽냐냐!”
“불쌍냐!”
미니언들이 다 넘어올 때쯤 차원문은 해제됐다.
하지만, 그사이 원본의 차원의 링 한쪽을 ‘고비’에게 넘겼으니 아기 고블린과 미니언이라면 문제없이 할아버지의 던전으로 넘어갈 수 있었다.
“자. 모두 설명 잘 들어. 여기 군락의 고블린 마을에서 아기 고블린들을 구할 거야. 흉포한 고블린들이 남아있을지 모르니 조심하고! 규찰팀!!”
“냐냡!”
“너희들은 고블린 만나면 제압해! 다른 아이들 다치지 않게 잘 살펴야 해? 알았지?”
“냐뇨냡!!”
검은 투구를 쓴 콧수염 미니언들이 먼저 움직였다.
군락의 움집들을 빠르게 살피며 살아있는 고블린이 있는지 파악했다.
그리고 저 깊은 곳에서 한둘 뼈 칼을 들고 튀어나오는 고블린들과 격투도 벌어졌다.
“냐뇨냐!”
“장냐하냐!”
“때끼냐!”
퍽툭팍칙퍼버벅!!
‘어허헙!’
어젯밤에도 이놈들 견조단의 영화를 그렇게 돌려보더니···
무슨 무협지를 씹어 먹었는지 몸들이 날래다.
한순간 뼈 칼을 들고 나타난 고블린의 몸에서 장단 맞추듯 타격음이 들리더니 고블린은 그대로 기절했다.
“아기 고블린들만 챙겨. 곧 여기 다 무너질 거야.”
“아라따냐!!”
미니언들이 빠르게 움직이며 강보에 싸인 아기 고블린들을 찾아냈다. 찾아내는 족족 차원의 링을 통해 할아버지 던전으로 보냈다. 그러다 그곳에서 이상한 고블린 하나를 동굴에서 꺼냈다.
“요거봐냐!”
“어엄?”
몸집은 고블린의 두 배 정도.
하지만 그 모습은 마치···
퀸?
비만으로 움직이지 못하는 폭식증 환자 같은 모습으로 미니언들은 그 고블린을 굴리듯 동굴에서 꺼내 나왔다.
“봐냐냐?”
“뭐냐냐?”
“엄뉴냐?”
“자자자··· 잠깐만!!”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뚱뚱한 모습.
딱 봐도 고블린 둥지의 여왕이었다.
태훈은 고민했다.
‘이걸 데려가? 말어?’
눈이 지진이 난 듯 흔들렸다. 고블린의 성선설, 성악설을 따질 상황이 아니다. 만약 이 여왕 고블린이 놈들의 인성을 ‘악’하게 만든다면 아무리 새끼를 낳는다고 해도 데려갈 수는 없었다.
‘거참. 답을 알 수가 없으니···.’
태훈의 시선에 여왕 고블린을 바라보고 있는 미니언들에게 걸렸다.
그래서 물었다.
“애들아. 이 고블린 데려가도 되겠냐?”
“냐뇨?”
“데려가도 고블린 인성에 문제가 없겠냐고.”
“상과뉴냐!”
“업뜨냐~!”
커허허험.
뭐 그렇다면야.
“데려가자.”
태훈이 다시금 신중하게 차원의 문을 열었다.
그곳으로 미니언들이 여왕 고블린을 굴리듯 데리고 갔다. 그 뒤를 따라 강보에 싸인 아기 고블린도 한참을 날라야 했다.
***
토벌을 정리하고 돌아온 할아버지의 던전.
태훈은 조심스럽게 고블린과 미니언을 관찰했다.
두 종족은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르다.
미니언은 사람처럼 암수가 구분되어 암컷들이 아기를 업어 키운다.
금방금방 자라긴 하지만, 어릴 적부터 엄마와 아빠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는 느낌. 하지만, 남극의 펭귄처럼 어느 정도 자라면 집단으로 모아 육아를 진행하는 모습. 조금만 크면 또래끼리 뭉쳐서 하나의 그룹을 형성했다.
고블린은 전혀 다르다.
암컷인지 수컷인지 알 수 없는 종족이다.
마치 일개미처럼 여왕 고블린만 아이를 낳고 다른 고블린들이 그 아기 고블린들을 돌본다. 짝짓기를 언제 했는지 모르지만 혼자서도 아기를 잘도 낳았다.
‘그래서 던전의 고블린은 개체수가 그렇게 늘어나는구나.’
고블린은 언론에선 언제나 바퀴벌레와 비교했다.
한 마리를 찾아내면 그 던전 안 어딘가에는 고블린의 둥지가 있다는 식이다.
그리고 항상 지하에 만들어진 동굴을 토벌하고 그곳에 폭탄을 던져 고블린을 소탕했다.
‘정말 새끼만 낳네.’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영양만 충분히 공급한다면 거의 하루에 열에서 스물까지도 고블린의 아기를 낳아버린다. 그리고 그렇게 태어난 아기들은 나뭇잎 강보에 싸여 거의 보름에서 한 달까지 잠만 자면서 커간다.
‘가만히 두면 수가 기하급수로 늘어버리겠는데?’
그래도 아직은 그 수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상황.
노량진 던전부터 제주 던전까지.
단순 노동력이 필요한 곳은 말할 수 없이 많았다.
‘정 문제가 생기면 그때 영양공급을 조절하면 되겠지.’
여왕 고블린은 고블린의 지하 둥지에 넣지는 않았다.
아기 고블린과 섞이지 않게 따로 관리할 공간을 마련했다.
대신 고블린의 아기를 낳으면 바로 받아 미니언에게 넘기고, 여왕의 식사를 관리하는 시녀 급 고블린만 20마리 정도 배정했다.
이렇게 분리해두면 여왕 고블린이 아무리 어떤 통솔력을 발휘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하려 해도 소용없는 일이다.
“그래. 아직은 떨어져서 생활해야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통나무집의 뒤쪽 폭포 옆에 꾸며진 작은 여왕의 둥지.
어떻게 보면 감옥 같은 시설이다. 동굴보다는 탑처럼 생긴 건물을 만들고 그 안에 여왕과 20마리의 시녀 고블린만 살도록 안배했다. 그곳에선 하루 1~2마리의 고블린 새끼만 나오도록 먹이도 조정했다.
그리고 고블린의 숫자가 적당히 많아졌다고 생각했을 때.
본격적으로 미니언과 고블린을 묶어 만든 ‘공병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본격적인 노량진 던전의 대규모 토목 공사를 시작했다.
기둥과 골조는 숲의 건설자 빌디가 맡고 내벽과 장식 등은 미니언과 고블린이 맡는 형태.
제주도 던전과 임시로 연결했던 3m짜리 차원의 링도 뜯어와 할아버지 던전과 연결했다. 거대한 원목이 베어져 차원의 링을 통해 하나씩 운반되었다. 노량진의 던전에서도 벽돌을 굽는 가마가 만들어졌다. 게이트로는 인부들이 시멘트와 철근을 날라 들어왔다. 시간차 던전이기에 건설 속도도 세 배가 빨랐다.
미니언 한 마리에 고블린은 20마리씩.
건설반으로 조직된 공병 부대가 작업을 시작했다.
그렇게 노량진 던전은 빠르게 건물들이 올라가고 있었다.
건물의 완공에 맞춰 어쩌다 길드의 홈페이지에도 공고가 하나 올라왔다.
그 공고를 읽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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