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화. 탐사정
< 125화. 탐사정 >
뚱한 표정의 구하린이 계산기를 두드려본다.
지구가 반지름 6,400km이니 쉽게 계산하면 지구 둘레가 42,000km다.
“344,560km면 지구 82바퀴가 넘네요.”
“그렇게 멀어요?”
“네···. 이거 너무 먼 거 아니에요?”
지구에서 달까지 거리가 384,400km니까 달보다는 살짝 가깝지만, 거의 같은 거리라고 봐야 하겠다.
우주라면 몰라도 아공간으로 344,560km라면 엄청나게 먼 거리다.
우주라면 진공을 달리니 속도의 제약이 없지만, 여긴 공기가 꽉 들어찬 1기압이다.
그러니 멀 수밖에···
“아공간이니까 대표님이 바로 목적지까지 차원문 만들면 안되요?”
“그게 제가 지표로 삼을 수 있는 물건이 없어서요.”
“그럼 불가능하겠네요···.”
차원문을 여는 방법은 그 위치를 정확하게 기억하는 것.
그러니 가보지 않은 곳에 차원문을 열 방법은 없다.
그리고 그 기억을 위해서 자신에게 익숙한 물건을 이용하는 것이 태훈의 경우였다.
만약 물건이 있다고 하더라도 위치가 너무 생소하면 그것도 불가능.
그 카메라가 있는 위치까지 아공간에서 게이트를 열어 접근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지표가 없으니 직접 갈 수밖에 없다.
태훈은 다들 걱정하는 얼굴에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쩔 수 없죠.”
“그럼 정말로 직접 가볼 수밖에 없겠네요.”
유일한 방법은 무조건 날아서 가는 것뿐이다.
가고일 블랙과 함께 날아가 볼까 싶어도 그 어마어마한 거리라면 블랙이 먼저 알고 도망칠 터.
“그래서 탐험선을 만들려고요.”
구하린의 걱정 가득한 표정과는 다르게 모여있던 연구원의 표정은 남달랐다.
개구쟁이들이 보물 상자를 만난 듯 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연구원들이 기쁜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해보겠습니다.”
“맡겨주십시오.”
“설계라면 자신있습니다.”
연구비 걱정 없는 실험은 그들에게는 장난감 공장 같을 터.
신이 난 연구원들은 밤을 새워가며 탐험선 설계에 들어갔다.
태훈도 그곳에 끼어 졸린 눈을 비비며 여러 가지 조건에 대해 이야기하며 나름의 즐거운 시간을 만끽했다.
그리고 느낀 한 가지.
‘역시 돈이 좋네.’
급하게 항공기와 드론 관련 제작자들을 부르고 제작자들에게 원하는 제원과 상황을 설명한다.
“무중력인데 공기 저항이라···.”
“양력을 올리는 모터를 전부 추력으로 돌리면 속도가 꽤 나오지 않을까요?”
“지구와 달까지 거리인데··· 공기 저항도 생각해야죠.”
“역시 물고기 모양이 최고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청새치 같은 모양으로 뒤쪽에 엔진을 다는···”
“거기에 부유하는 이물질의 충돌도 대비해서···”
거기에 연구원들은 아공간 인공위성 데이터가 정확한 위치를 분석하였다.
프로그래머들이 매달리자 자동 항법 장치와 추가적인 프로그램이 즉석에서 제작된다.
사람들은 뭐가 재밌는지 노량진의 연구 동에서 잠도 안 자고 탐험선을 제작 중이었다.
“최소 3주 이상은 날아가야 할 거리입니다.”
“그럼 캠핑카처럼 숙식이 가능하도록···.”
“무중력이니 우주선에 준하는 설비를···”
“탐사선에 회전력을 줘서 인공중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갑자기 장황해지는 계획에 태훈은 제동을 걸었다.
“아니요. 최대한 간단하고 빠르게 갈 수 있도록 준비해주세요.”
연구원들은 격납고 한쪽에 박스를 깔고 침낭과 간이 침대를 놓고 작업에 매진했다.
태훈은 그런 이들에게 매일 스마트팜에서 재배한 신선한 과일과 메뉴를 바꿔가며 노량진 호텔-타임루프의 식당에서 사 온 음식들을 제공했다.
“계속 중독되고 있어···.”
“뭐가 말이야?”
“여기···.”
“시간차 던전?”
“응. 꼭 시간이 정지한 거 같아.”
“나도 그래. 엊그제 집에 들렀는데 아들 녀석이 그냥 평범하게 ‘다녀오셨어요?’ 하더라. 난 여기서 이틀을 고생했는데··· 애는 그냥 학교 갔다 온 거지.”
“난 오히려 그게 좋아. 내 시간이 무한하게 늘어난 느낌이야.”
“너 그게 바로 일 중독이야.”
“왜? 좋잖아. 월급도 세 배인데.”
하루가 72시간으로 늘어나니 당연히 그렇게 느낄 것이다.
태훈은 모르는 척 진행 상황을 물었다.
“어느 정도 진행되었습니까?”
“지금 뼈대 용접이 끝났습니다. 한 번 보시겠어요?”
그렇게 제작되는 제품은 날개가 없는 형태의 항공기.
청새치 모양으로 뽑힌 긴 원통형의 물방울 형태에 꼬리 쪽에 몇 겹의 프로펠러가 설치되어있었다.
그것도 태훈의 부탁으로 전기 모터가 아닌 엔진이 장착된 형태였다.
전투기의 제트 엔진으로 제작하자는 의견도 많았지만, 그쪽은 일정상 시간이 너무 걸렸다.
문제는 차원의 링에 넣고 빼기엔 크기도 문제였고.
태훈의 요구는 적절한 형태로 빨리 준비할 수 있는 것.
“그편이 좋습니다. 보급을 차원의 링으로 할 계획입니다. 연료를 쉽게 옮길 수 있으니 그 방법이 가장 편리합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연료나 보급 걱정 없는 쪽으로 설계를 변경하겠습니다.”
원본의 차원의 링을 들고 갈 테니 보급은 문제없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무중력에서의 연료 주입 등 해결해야 할 요소들은 많았다.
“우선 여길 한번 보시죠.”
차츰 윤곽이 잡히고 있는 탐험선.
연료만 공급되면 작아도 시속 600km의 속도를 꾸준히 낼 수 있다고 하니 발견한 카메라까지의 총 예상 도착 시간은 24일 정도.
도착하면 돌아올 때는 차원문을 이용할 수 있으니 편도로 탐험 시간을 잡으면 충분했다.
태훈은 탐사선이 제작되는 동안 항공기 자격증을 따기 위해 부지런히 경비행기를 몰고 비행 연습해야 했다.
***
탐험 당일.
“제가 봤던 모델이 아니네요?”
“예. 그 모델은 정말로 연습기 수준이었습니다. 따로 조립된 탐사선이 아공간에 있으니 한번 살펴보시죠.”
완성된 탐사선은 자신이 오케이했던 버전에서 발전해 연구원들이 만든 두 번째 버전이 이미 아공간에 조립되어 있었다.
작은 침대칸과 화장실, 무중력 욕실과 운동을 할 수 있는 기계까지 붙어있는 지름 3m, 길이 17m의 긴 원통형의 우주선 모듈이었다.
‘유인 우주선 만들고 싶었던 욕망을 여기에 다 쏟아부으셨구먼···.’
태훈의 씁쓸한 미소.
그래도 덕분으로 편하게 여행은 할 수 있을 듯.
“외부로 움직이실 때는 어떻게···.”
“그건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가고일을 타고 날아다닐 수 있으니.”
“아··· 그러면 굳이 제트 슈트 같은 것은 필요 없으시겠네요.”
“맞습니다.”
“그럼 외부 유영에는 여기 준비된 호흡기를 꼭 착용하시고 움직이시길 권장합니다. 평상시처럼 호흡이야 가능하겠지만, 너무 건조한 공기여서 폐에 엄청나게 무리가 가게 됩니다. 오래 호흡하시면 기관지와 폐에 문제가 생깁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준비가 완료되자 어쩌다 길드의 팀장급들이 모두 모였다.
“정말 혼자 괜찮으시겠어요?”
“네. 물론입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 저 없는 동안 길드를 부탁합니다.”
“에이. 그 작은 차원의 링으로 계속 통신 보내실 거잖아요.”
“매일 도시락 싸서 넣어드릴게요.”
“크아앙. 나도 같이 가고 싶어라으아!!”
전혀 긴장감이 없다.
아니 오히려 그편이 좋았다.
“다녀오겠습니다.”
태훈은 좁은 운전석에 몸을 실었다.
뒤편에서 플라잉 슈트를 입은 연구원들이 탐사선의 위치를 잡아준다.
준비가 완료되자 프로펠러를 돌려 시동을 걸었다.
웅웅웅웅웅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다녀오세요!”
태훈은 검고 검은 아공간의 저 먼 심해를 향해 조종 레버을 당겼다.
뒤로 당겨지는 중력감.
인사를 하던 연구원과 길드의 팀원들이 있던 구멍은 금세 하얀 점이 되어 멀어지고 있었다.
***
웅웅웅웅.
검은 심연
어둠의 바다다.
태훈의 【용안】으로 바라봐도 마나의 빛이 퇴색된 심연.
검은 보라색의 무거운 마나만 가득 들어찬 곳이었다.
태훈은 하염없이 날아가는 탐험선에서 혼자 멍하니 검은 창밖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대부분은 위치교정과 GPS, 방향 지시등이 자동으로 이루어져 태훈이 직접 뭔가를 해야 할 일은 없었다.
“심심하네···.”
그때, 태훈의 원본 차원의 링에서 미니언 족장이 가고일 블루와 함께 튀어나왔다.
“냐뇨냐?”
“음?”
“아. 도시락을 가지고 왔다냐뇨.”
“아. 그래?”
“오늘은 맛있는 으녀녀녀···?”
“아. 여긴 무중력이야.”
미니언 족장이 무중력에 적응을 못해 하늘에서 버둥거리길 잠시···.
가고일 블루가 날아가 잡아주자 겨우 자세를 잡고 벽에 붙는다.
“재밌냐뇨. 오늘 점심은 낚지 볶음에 오이무침입니냐.”
한쪽으로 튕기듯 날아가 도시락을 챙겨선 추진력을 이용하듯 방방 뛰며 다가왔다.
꼭, 초등학교 때 가지고 다녔던 보온병처럼 생긴 다단 도시락.
“와. 맛있겠네.”
용기에 깔끔하게 포장된 낙지볶음과 시원한 무 냉국.
거기에 오이무침에는 부추가 가득 들어가 있었다.
국을 열자 무중력 때문에 국물이 둥둥 떠올라 둥글게 뭉친다.
태훈은 얼른 국물부터 후루룩 마셨다.
“크~! 시원해. 이거 노량진 함바집 고블린 솜씨네.”
“아뇨냐. 그거 구하린 팀쟈니 솜씨냐뇨.”
“진짜?”
“요즘 구하린 팀쟈니 요리 공부하뇨냐.”
요리를 한 번도 해본 적 없는 친구인데···.
라면도 끓일 줄 몰라서 매번 사발면으로 때웠다는 이야길 공공연하게 했던 기억이 나자 피식 웃음이 나왔다.
“다른 길드원들은 어때?”
“주조령 팀장이 요트 샀다냐. 그거 타고 목포에서 제쥬 간다뇨.”
“진짜?”
“둘만 간다고 다들 부러워하뇨냐.”
“와. 나도 발리에 한 번 가야되는데···.”
발리엔 광명시 자신의 길드 사무동이 있는 땅을 팔았던 노인 백광혁과 노량진 던전에서 돼지를 키우던 고상만 헌터가 요트 사업을 하고 있었다.
“간다 간다 하면서 한 번을 못 가봤네···.”
젓가락을 움직여 낙지볶음을 흰 쌀밥에 올려 한입.
매콤한 고추장과 탱글탱글하게 볶인 낙지가 입 안에서 씹히는 맛이 일품이다.
거기에 아삭한 오이무침을 추가하자 매콤한 맛이 시원하게 중화되며 화끈함을 깔끔하게 다잡아준다.
“와. 요리 잘하네.”
“고블린 요리사가 도와줬다냐.”
그때.
차원의 링에서 얼굴을 쏙 내밀고 이쪽을 살피던 구하린이 후다닥 사라지는 모습.
태훈은 잠자코 웃으며 낙지볶음을 밥에 올려 남김없이 먹었다.
“이 책은 모다냐?”
“아. 정령술.”
할아버지가 남겨주신 책 중에 아직 이해하지 못한 내용의 교과서.
정령술에 대해서는 아무리 읽어도 도무지 감이 잘 잡히질 않았다.
아무래도 재능의 문제이거나 각성의 문제이지 않을까 싶은 내용.
‘차라리 정령술사의 재능을 가지고 있는 구하린 팀장이 읽으면 더 빨리 배울 수 있을지도···.’
그렇다고 책을 덜컥 맡길 수도 없으니 차근차근 공부하며 자필로 필사를 하는 참이다.
“난 이제 가본다냐”
“응. 그래. 밥 잘 먹었다고 전해줘.”
“알았다뇨.”
미니언 족장이 가고일 블루를 타고 훌쩍 원본의 차원의 링으로 들어갔다.
슬쩍 따라 얼굴을 넣어보니, 장소가 주방이다.
저쪽에서 구하린이 미니언 족장에게 이런저런 이야길 묻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여행 2일 차의 하루가 그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
삡-삡-삡-삡-
위이이이이잉.
갑자기 들어오는 경고음.
태훈은 습관적으로 엔진의 추력을 줄이고 레이더의 감지 화면부터 살폈다.
전방 진행 방향에 걸리는 물체가 있었을 때 울리는 경고음이었다.
태훈이 레이더를 확대하자 앞에 나타난 물체의 음영 이미지가 잡힌다.
검은 배경에 하얀색 블록들로 물체의 모양을 출력했다.
“음?”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틀어 물체로 다가갔다.
자칫 잘못하면 탐사선의 뒤 프로펠러의 영향으로 뒤쪽으로 빨려 들어갔다가 날아가 버릴지도 몰랐다.
조심스럽게 커다란 잠자리채를 들어 다가오는 물체를 잡아내 본다.
“아!”
작은 여아용의 아기 신발.
태훈은 라텍스 장갑을 끼고 재빨리 그 신발을 살펴본 후 비닐 팩에 밀봉해 일련번호를 기재했다.
(넘버. 027)
계측기를 조작하자 GPS 위치와 발견 시간이 적힌 스티커 라벨이 출력됐다.
그걸 봉지에 붙이고 다시 원통형의 플라스틱 상자에 넣는다.
“미셸 박사님?”
[네. 대표님. 말씀하세요.]
“좀 천천히 말씀해주시겠어요? 시간차가 있어서 그런지 박사님 말씀이 너무 빨리 들리네요.”
[···알겠습니다.]
“스물일곱 번째 부유물을 발견했습니다. 여자아이의 신발로 보이네요.”
[음. 그렇다면 그 25년 마법진이 만들어졌던 마을의 주민 것이겠네요.]
“그때 사고에 몇 명이나 함께 실종된 거죠?”
[음···. 마법진을 지탱하던 차원 마법사 다섯 명. 그리고 그 마법사들을 테러하던 빌런 1명. 마법진을 구경하던 연구진과 마을 주민은 총 37명입니다.]
“그중 생환한 사람은 미셸 혼자고요.”
[···맞아요. 아. 그리고 25년 동안 여러 던전의 아공간에서 흘러들어온 미라가 된 시체가 26구입니다. 대부분 신원이 파악되었고, 모두 그 던전 마법진 붕괴 때 함께 빨려 들어갔던 연구원과 마을 주민이었습니다.]
“이 신발의 주인도 있나요?”
[음. 좀 더 자료를 찾아볼게요.]
그렇게 기다리길 잠시.
[···아. 그 아이는 11명의 실종자 명단에 아직 있군요. 미라가 발견되거나 한 경우는 없었습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아공간 항해를 진행하면서 불편한 상황은 없으신가요?]
“네. 아직···.”
[그럼 한가지 확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세요.”
[자료화면을 보내겠습니다. 한 번 확인 부탁드립니다.]
미셸이 보낸 영상은 레이더 영상으로 제법 큰 덩어리의 부유물이었다.
“이건···.”
[저희가 정확하게 파악한 것으로는 저 부유물은 캘리포니아 던전 사고 때 함께 날아갔던 던전의 마법진 주변 가까운 곳에 있었던 목조 가옥의 일부입니다. 저희 연구진의 코드명은 ‘엘리스네 집’이죠.]
“아··· 그럼 이 신발의 주인이···.”
[맞아요. 그 신발의 주인인 엘리스와 그의 가족이 실종자 명단에 포함되어있어요.]
“그렇군요.”
[지금 계신 곳에서 12도 정도 꺾어서 내려가면 1,421km 지점에 있습니다. 카메라 위치와는 조금 거리가 있지만, 한 번 조사를 부탁드리고 싶네요.]
그 정도 거리라면 2시간 코스.
특별하게 급한 상황은 아니니 가보기로 한다.
“알겠습니다. 항로를 그 ‘엘리스의 집’으로 초점을 맞춰서 진행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네. 그럼 두 시간 후에 봬요.]
통신을 끝낸 후 태훈은 라벨이 붙은 밀봉된 플라스틱 통을 차원의 링에 넣었다.
아마도 수거한 연구진이 면밀하게 분석할 터.
잠시 쉬고 있자 레이더가 재조정되며 탐사선의 방향이 미세하게 틀어지며 관성이 변하는 느낌.
레이더에는 이미 ‘엘리스의 집’이 확연한 모습으로 잡히고 있었다.
***
엘리스의 집은 특별한 것 없는 흔한 미국식의 목조 주택이었다.
지붕이 정확하게 절반으로 날아가 딱 보면 허리케인에 폭파된 모습.
태훈은 그 비어있는 집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영상 보이세요?”
[네. 잘 보입니다.]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겠습니다.”
안타깝지만, 안쪽에는 미라도 없었다.
재난 이후에 사용한 흔적도 없었으니, 그냥 방치된 폐허일 뿐.
하지만, 그 안에서 태훈의 눈에 걸린 것이 있었다.
엘리스라는 이 작은 신발의 주인이었을 아이가 그린 가족의 그림.
“!!”
네모와 세모로 그린 집 안에는 노란 머리의 아빠와 파란 눈의 엄마가 꽃처럼 그려져 있었다.
그곳에서 소녀는 작은 강아지와 함께 활짝 웃고 있었다.
‘가족.’
엄한 곳에서 코가 시큰하게 올라왔다.
태훈은 코를 한번 쓱 비비곤 미셸에게 말했다.
“연구동 안쪽 격납 창고는 다 비워졌나요?”
[네. 말씀하신 대로 다 비웠습니다.]
“그럼 이 집은 그쪽으로 이동하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태훈은 오랜만에 네 개의 서클에 자신이 가진 용기의 전부를 쏟아냈다.
“하합!!”
태훈의 손에서 뻗어 나온 용의 기운이 하얗게 뭉쳐졌다.
그렇게 만들어진 거대한 게이트.
게이트의 너머엔 놀란 얼굴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연구실의 격납고가 보였다.
“내려갑니다.”
태훈은 그곳으로 목조의 폐가를 밀어 넣었다.
조심스럽게 기중기와 연구원들이 게이트에서 나오는 건물을 받아낸다.
***
여행 18일 차.
오늘도 당번처럼 미니언의 족장이 차원의 링으로 낑낑거리며 들어왔다.
“오늘 메뉴는?”
“오늘은 족발에 순두부 된장국이뇨냐. 오늘은 나도 식사 전이니 같이 먹냐뇨.”
“좋아.”
그렇게 포장을 뜯고 상추쌈에 족발을 올려 한 입 베어 물고 있을 때
미니언 족장은 물끄러미 검은 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훈이 족장에게 물었다.
“할아버지와 엄마에 대해 말해줄 수 있을까?”
깜짝 놀랐는지 족장이 태훈을 깊은 눈으로 바라본다.
그리고
“대마법사이자 용왕 엘비가르엘이 지배하던 땅의 주인이신 김용우 영주님이 25년 전에 떠나면서 한 이야기가 생각난다뇨.”
음?
뭐라고?
“이제는 이야기할 때가 되었뇨냐.”
깊게 우수에 찬 눈으로 미니언 족장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선작과 좋아요는 작가에게 큰 힘이 됩니다. 즐겁게 보셨다면 부탁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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