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0
“이, 이게 무슨 일인가!”
제이슨 백작은 처참하게 부수어진 진영을 돌아보며 말을 더듬었다. 소드 익스퍼드 최상급에 오른 그이지만, 지금 이 상황에서는 진정을 하기 어려웠다. 제이슨 백작은 아직도 돌아다니고 있는 슬라임을 검으로 베어 죽였다. 슬라임은 핵이 잘려 단번에 죽음을 맞이했다.
“그, 그게... 갑작스럽게 어디선가 몬스터들이 나타나서 무차별 적으로 저희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트롤과 오우거, 미노타우로스, 오크... 평소에는 서로 잡아먹는 관계인 몬스터들이 서로를 공격하지는 않고, 오직 저희만을 공격했습니다.”
“아니, 몬스터가 어디에서 나타났다는 것인가!”
“너무 급작스럽게 나타난지라...”
기사의 말에, 제이슨 배작은 얼굴은 구기며 기사를 발로 찼다. 하지만 기사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제이슨 백작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왜 잘 살던 몬스터들이 자신을 공격한단 말인가. 그것도 엄청난 몬스터 때가.
게다가 그중에는 미노타우로스, 자이언트 오크 같은, 드래곤 산맥에서만 산다는 몬스터들도 있었다. 드래곤 산맥은 이곳에서 말을 타고도 몇 달이 걸릴 거리나 떨어져 있다. 그런 드래곤 산맥의 몬스터들이 이곳까지 온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피해는?”
“중상자 12만 7523명, 사망자 7만 3581명입니다.”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피해인가!”
제이슨 백작은 엄청난 피해에, 고함을 질렀다. 몬스터 때가 대단하다고는 하지만, 이렇게 피해가 클 수는 없었다. 합쳐서 20만이 넘는 피해가 아닌가. 순식간에 20%의 병력이 전투 불능이 되어 버린 것이다.
“그, 그게... 몬스터의 수가 많았고, 게다가 트롤이나 오우거는 일반 병사들로서는 도저히 상대가 불가능합니다. 특히 트롤은 온 몸에 창을 십여 개 박고서도 병사들을 도륙하니, 병사들로서는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럼 기사들의 피해는 어떤가.”
“총 800명의 기사중 97 명의 기사가 중상, 56명의 기사가 사망했습니다.”
“...”
제이슨 백작은 어이가 없어서 입을 벌렸다. 기사들이 150명 당했다. 어이가 없다. 제이슨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몬스터의 전력이 어땠기에 그런 피해를 입는 것이냐.”
“현재 파악된 몬스터의 수는, 오우거가 71마리, 트롤이 152마리, 미노타우로스가 4마리 오크는 약 6000마리. 대부분 워리어나 나이트들이었습니다. 몇몇은 샤먼이었고요. 자이언트 오크가 76마리. 슬라임이 초기 8마리였다가, 48마리로 늘어났습니다. 거기에 처음 보는 몬스터들도 여러 마리 있었습니다.”
“황당하군.”
제이슨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서 저렇게 많은 몬스터들이 튀어 나온단 말인가. 드래곤 산맥에서 습격을 당해도 저 정도는 아닐 터였다.
“출처도 모르겠습니다. 몇몇의 병사들이 빛나는 문에서부터 몬스터들이 나왔다고 하는데, 믿기 힘든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십여 명의 병사들이 그렇게 말하니 믿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십여 명? 아니, 경계를 하고 있던 병사들이 몇인데...”
“모두 죽었습니다.”
“...미치겠군.”
제이슨 백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답이 없다. 이 많은 몬스터들이 어디서 나타났다는 말인가. 땅에서 솟은 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닐 텐데.
“그리고...”
기사가 망설이듯 입을 열었다. 제이슨 백작은 또 뭐가 나올까. 하는 심정으로 기사를 돌아보았다.
“군량이 절반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어찌된 노릇인지는 모르나... 사라져 버렸습니다.”
“이런 멍청한!”
제이슨 백작은 화를 참지 못하고 다시 기사를 걷어 찾다. 제이슨 백작이 인상을 찌푸렸다. 군량이 반 토막 되었다. 보급을 위한 군대가 한 달 거리에 있기는 하지만, 그때까지 반 토막 난 군량으로 버틸 수는 없다.
20만의 군대가 전투 불능이 되어버린 것도 그렇고, 군량이 없어져 버린 것도. 모두 황당하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심각한 피해였다. 제이슨 백작은 몇 번 전투를 경험해 보았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 있는 일이었다.
“국경까지는 얼마나 남았지?”
“3일 거리입니다. 가장 가까운 마을까지는... 4일 거리입니다.”
“적군과의 거리는?”
“국경에서 1차로 적을 만나게 되겠고, 로인 루푸스라는 자작과 그의 군대가 일주일 거리에 있다고 합니다.”
기사가 바로 답했다. 제이슨 백작은 이를 갈았다.
“규모는?”
“약 1만... 이라고 합니다.”
“하.”
제이슨 백작은 고개를 저었다. 고작 1만. 몬스터의 습격으로 20만의 병사들이 전투 불능하게 되었지만, 아직 80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 고작 1만? 가소로웠다. 제이슨 백작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기사를 바라보았다.
“정확한 정보겠지?”
“정보는 정확합니다. 그런데...”
“뭐가 또 그런데야!”
제이슨 백작은 화를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 계속해서 그의 심지에 불을 붙이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다. 만약 또 다시 일어나면, 그는 폭발할 것이었다.
“참모님께서 만만히 보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기습의 달인이고, 용병술에 능숙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고작 1만의 군대로 지난 번 왕국의 침략 때 직접 적으로 피해를 입힌 군대가 총 20만이 넘습니다.”
“...그런 애송이가?”
“우습게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사람입니다.”
기사의 말에 제이슨 백작이 고개를 저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자신은 이미 수십 번 전쟁을 경험해본 사람이었고, 저 쪽은 겨우 1번 경험해본 애송이다. 전쟁은 경험이다. 아무리 대단한 사람이라고 해도, 전장을 수십 번 경험해본 둔재를 이기지 못한다.
전장은 일반 병사를 명장으로 만든다. 제이슨 백작은 애초에 명장이었고, 지금은 전장의 사령관이었다.
“뭐, 경험해 보면 알겠지.”
제이슨 백작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처참한 주변의 풍경이 그의 기분을 더욱더 좋지 않게 만들었다.
로인은 나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인의 긴 머리카락이 베개에 넓게 퍼져있었다. 로인은 나인의 머리를 쓰다듬던 손을 움직여 나인의 볼을 만졌다. 부드러운 나인의 볼을 쓰다듬자, 나인이 조금 움찔하며 눈을 떴다.
“마스터...”
나인의 말에 로인이 미소를 지었다. 나인이 몸을 일으키려했다. 하지만 로인이 나인을 제지했다.
“아, 조금 더 누워 있어. 힘들 텐데 말이야.”
로인의 말에, 나인이 얼굴을 붉혔다. 그녀가 로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할 리 없었다. 로인은 계속 해서 나인의 볼을 만지다가, 손을 내렸다. 나인이 누워 있다가 움찔 거렸다. 로인은 나인이 움찔 거리는 것을 무시하고, 볼에서 손을 내려 목을 가볍게 건드리며 계속 내려갔다.
로인은 나인의 가슴을 가볍게 만지다가, 일어났다. 계속 하고 싶었지만, 나인의 몸이 너무 굳어 있었다. 게다가, 린이 들어올 수도 있었다. 로인은 나인의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추고, 몸을 돌렸다.
“나는 먼저 나간다. 쉬다가 나와.”
로인이 그렇게 말하고 자신의 막사를 나섰다. 많은 일이 있었던 어제였지만, 그중 가장 특별한 일은 나인의 새로운 점을 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나인이 그렇게 말하는 것도, 소리치는 것도, 화를 내는 것도 처음 보았다. 로인은 잠시 그것을 떠올리다가 고개를 저었다.
‘뭐, 어쩔 수 없지. 더 이상 그렇게 해도... 포탈을 사용한다는 것은 변함이 없으니까.’
포탈을 사용하면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다. 그런 포탈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미련한 짓이었다. 몬스터의 손에 사람을 죽게 만들어서 불쌍하다고? 전장에서는 누구나 몬스터이다.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 그런 곳이 전장이고, 그 속의 구성원들은 모두 몬스터가 되기 마련이었다. 특별할 것도 없었다.
로인은 앞으로, 매일 포탈을 사용하여 기습을 할 예정이었다. 5일 거리가 떨어져있다. 로인의 군대도 움직이고, 상대의 군대도 움직일 터이니, 3일 정도면 만날 것이었다. 그 전까지, 매일 기습을 하면 적군을 상당히 줄일 수 있을 것이었다.
로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인의 얼굴이 계속해서 생각났다.
“로드.”
로인은 고개를 돌렸다. 크론벨이었다.
“아, 무슨 일이지?”
“드릴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아니면...”
“제 막사로 오셨으면 합니다.”
“알겠어. 가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크론벨이 로인을 잠시 보다가, 몸을 돌려 자신의 막사로 향했다. 로인이 그의 뒤를 따랐다.
로인은 뒤에서 크론벨을 보고 잠시 고개를 갸웃했다. 크론벨을 원래 말이 없었다. 꼭 필요한 말을 재외하고는 말을 하지 않았다. 먼저 말을 거는 것도, 보고를 할 것이 있어서 말을 하는 것이 전부였다. 말을 할 게 있다. 라고 말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게다가 자신의 막사로 초대한다? 로인이 크론벨의 막사를 가보는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크론벨의 막사는 대부분의 참모진과 비슷했다. 로인이 막사 가운데 정도에 위치한 테이블과 같이 있는 의자에 앉았다. 크론벨이 입을 열었다.
“적은 100만입니다. 우리는 1만이고. 어제의 습격으로 적이 받은 피해를 저희는 15만 정도로 가정하고 있습니다. 전투 불능의 피해를 포함한 수입니다. 어디까지나 가정이니, 틀릴 가능성이 있습니다.”
크론벨의 말에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남아있는 적의 수는 이제 85만, 저희는 1만입니다. 이 전쟁을 이길 수 있는 방법은 많지 않습니다. 포탈을 사용하는 것이 가장 좋겠죠. 하지만 포탈은 위험합니다. 상대뿐만 아니라 저희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너무 크니까요.”
크론벨이 말을 이었다. 로인이 가만히 그의 말을 들었다. 그의 말은 모두 맞았다.
“그래서 기습이 필요합니다. 우리 측의 피해가 없이 상대에게만 피해를 주는 방법은 그것뿐이니. 하지만 그렇게 아무리 수를 줄인다고 해도, 최대가 50만입니다.”
“그렇겠지. 몬스터가 군대를 뚫어버리고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안되니까.”
“그래서, 적을 이곳으로 유인해야 합니다.”
크론벨이 손을 뻗었다. 로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크론벨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지는 않았다. 그가 가리킨 곳은 평야였다. 별 것 없는 곳인데 왜 유인을 해야 하는가.
“여기는 왜?”
“저희가 상대하기 가장 편한 장소가 이곳입니다. 멀린이 마법을 사용하기 좋은 곳이고, 기사단이 돌격하고 좋은 곳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뒤에서 몬스터를 보내기에 좋은 곳입니다.”
“뒤에서 몬스터를 보낸다?”
“네, 있는 것은 모두 써먹어야죠. 후방에서 몬스터가 공격하면 적은 제대로 전투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크론벨이 말했다. 로인은 입을 열었다.
“뒤에서 몬스터를 보내기가 좋다는 것은 왜이지?”
“넓은 평야라면 몬스터가 돌아서 저희를 공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이곳은 폭이 좁고, 길이가 긴 평야입니다. 적군의 50만이 도열해 있으면 몬스터가 돌아서 올 가능성이 적어집니다. 게다가, 좌측은 강. 우측은 가파른 산길이라서 어디로 도망갈 염려가 없습니다.”
크론벨의 말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뭐, 유인이 그리 어렵지는 않겠고, 며칠 뒤에 제대로 한번 붙겠네.”
로인이 그렇게 말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 작가의말
이얍얍!
Comment '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