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2
능력자 협회 미국 본부장. 그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사실 능력자 협회의 본부장이 한가할리 없는 것이다. 그런 그가 석우와의 면담을 허락 한 것은 순전히 석우가 오우거의 사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석우는 일주일 뒤로 잡힌 능력자 협회의 본부장과의 약속으로, 미국으로 가게 되었다. 돈은 능력자 협회에서 대주기로 했다. 사실 석우도 돈이 있으니, 굳이 능력자 협회에게 지원을 받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주겠다는데 굳이 거절할 석우는 아니었다.
돈을 벌면서, 사회를 경험하면서 석우는 조금 바뀌었다. 받을 것은 받았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들은 했다.
석우는 자신의 위에 앉아 있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넓은 공간에 좌석이 두 개 있었다. 석우와 린의 좌석이었다. 능력자 협회에서 좋은 대우를 해주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렇게 앉아 있어야해? 네 자리도 있는데.”
석우는 의자를 뒤로 눕혔다.
“심심해.”
린은 중얼거렸다. 석우는 미소를 지었다.
“영화나 봐.”
“재미없어. 이상한 마시멜로나 나오고.”
린은 과자를 입에 집어넣으며 말했다.
“얼음 여왕이 나오는 영화도 있을 텐데?”
“난 순록 싫어해.”
린은 고개를 도리도리 저었다.
“이제 2시간 밖에 안 남았으니, 책이라도 읽던가.”
“아니야. 그냥 공부할거야.”
석우는 린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린이 공부를 한다고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러고 보니 린도 공부를 시켜야 할 텐데.’
석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까지 린에게 너무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린이 아무리 토끼라지만 공부를 시켜야 세상을 살아갈 것 아닌가. 적어도 중학생 수준의 공부는 시켜놔야 될 것 같았다.
“무슨 공부?”
“남자 공부.”
“...”
석우는 린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린은 미소를 지었다.
“어떻게 배울 건데. 그거 이 세상에서 두 번째로 어려운 과목인거, 알지?”
“모든 것은 몸으로 격어 봐야지.”
린의 말에, 석우는 피식 웃었다.
“너는 연습용 인형이 되는 건가?”
“에이, 마스터가 그리 말하면 안 되지. 교과서라고 하자.”
린은 키득키득 웃으며 석우의 입술을 바라보았다. 석우는 점점 다가오는 린의 얼굴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근데 어쩌냐. 나는 네 교과서가 될 마음이 없는데.”
“교과서가 자기가 교과서가 되고 싶어서 됐겠어? 사람이 그렇게 만드니까 그런 거지.”
“어이고. 그런 거였나?”
석우는 웃으며 말했다. 린은 석우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지고 갔다. 석우는 거부 하지 않았다. 석우의 입술과 린의 입술이 잠깐 동안 만났다가 때어졌다. 린의 얼굴이 조금 붉어졌다.
“이제 네 자리로 돌아가.”
석우는 린에게 말하며 눈을 감았다. 린은 입술을 삐죽 내밀며 석우를 바라보았다. 명백한 축객령이었다.
“칫.”
린은 아쉬운 듯 일어나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석우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린이 투덜거리는 말을 들었다.
석우가 미국에 처음 내렸을 때의 기분은 이랬다. 여기도 사람이 사는 곳이구나. 한국과 별 다를 게 없었다. 그저 외국인들이 많고, 표지판들이 모두 영어라는 점이 다를 뿐이었다. 문화의 차이? 솔직히 잘 모르겠다. 문화의 차이라고 해봤자 실제로 체감하지 못 할 정도의 차이뿐이었다.
“우와. 저 사람 좀 봐. 어떻게 걸어 다니는 것이 가능하지?”
린은 입을 벌리며 말했다. 석우는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알아듣는 사람이 거의 없을 테지만, 린의 무례한 행동이 그리 보기 좋지는 않았다.
“그런 말 하는 거 아니다.”
“하지만 사실인걸.”
“너는 토끼라서 멍청하다. 라는 말을 들으면 기분이 좋아?”
“나는 멍청하지 않아.”
“...”
석우는 잠시 생각하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해보니 린은 보통의 사람보다 지능이 높았다. 절대 멍청하지 않았다.
“그럼 가슴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토끼일 때는 어쩔 수 없지만... 지금은 가슴, 평균 보다는 크다고 생각하는데.”
“...애효... 어쨌든 그런 말 하는 거 아니야.”
“알겠어.”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스터 정.”
“아, 네.”
석우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외국 남자가 손을 내밀고 있었다.
“저는 미국 능력자 협회에 소속되어 있는 스티븐이라고 합니다.”
“아, 스티븐씨, 반갑습니다.”
석우는 미소를 지으며 악수했다.
“머무실 숙소까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석우는 감사를 표했고, 스티븐은 고개를 저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것뿐입니다.”
“차가 상당히 좋군요.”
석우는 조수석에 앉아 있는 스티븐을 바라보며 말했다. 운전은 전문 운전기사가 하고 있었다.
“협회에서 지원해 준 것입니다. 운전자가 일주일 동안 가시고 싶은 곳에 대려다 드릴 것입니다. 운전면허가 있으시다면 직접 운전을 하실 수 있으십니다.”
“아, 그것 참 아쉽네요. 제가 운전면허가 없군요.”
“운전면허는 되도록 빨리 따는 것이 좋죠. 어서 빨리 여자를 꼬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뭐, 그렇고 싶지만... 이미 여자가 많아서 말이죠.”
석우는 스티븐과 농담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었다.
‘일주일동안 나를 감시 한다는 것인가...’
석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예상했던 일이지만, 기분이 좋을 리 없었다.
“아, 확실히...”
스티븐은 백미러를 통해 린을 흘깃 바라보았다. 린은 무표정한 얼굴로 바람을 즐기고 있을 뿐이었다.
“아, 그런데 영어를 잘하시는 군요?”
스티븐은 시선을 돌려 석우를 보며 말했다.
‘어라?’
석우는 그제야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끼고, 잠시 당황했다. 영어. 평범한 한국인이다. 영어를 잘 할리 없었다. 하지만 석우는 지금 스티븐이 무엇을 말하는지 모두 알아듣고 있었다.
‘시스템의 효과중 하나인가. 이거 정말 좋군.’
석우는 속으로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판테아 대륙의 언어도 시스템의 도움으로 알아들었을지도 모른다.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워서 말이죠.”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다. 한국인답게 어려서부터 영어를 배웠고, 가끔 집에 찾아오는 외국인 손님들과 대화하며 영어를 사용했다.
스티븐은 석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숙소는 상당히 좋았다. 뉴욕 메리어트 마르키스. 호텔의 이름이었다. 석우는 고급스러운 방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린은 커다란 침대를 보고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침대위에 올랐다. 석우 또한 린의 옆에 누우며 천장을 바라보았다.
“마스터.”
“응?”
석우는 린이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나 배고파.”
이제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있었다. 석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밥 먹으러 가자.”
석우는 간단히 짐을 풀고, 레스토랑으로 내려갔다. 음식은 석우가 평생도록 먹어보지 못한, 고급스러운 음식이었다. 맛도 맛이지만, 일단 눈이 즐거웠다. 가벼운 에피타이져로 나온 스프하나에서 고급스러움이 느껴질 정도였다.
석우는 어차피 돈도 많은데,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라는 마음으로 음식을 먹었다. 몬스터가 최초로 출몰한 한국이 걱정이 되기도 했지만 이미 트롤 정도는 승기가 상대할 수 있었다. 석우는 약속대로 승기를 3급 능력자로 만들어 주었고, 트롤을 상대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승기의 능력인 불은 트롤보다 약한 몬스터들은 모두 한방에 즉사 시킬 수 있게 만들었고, 트롤이라도 상처 재생을 더디게 만들어 다른 사람보다 쉽게 상대 할 수 있었다.
‘최초로 나온 몬스터가 오우거라는 것이 마음에 걸리기는 하지만 말이야...’
석우는 속으로 생각하며 메인 요리로 나온 요리를 먹었다.
린은 음식을 먹으며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사실 석우가 가지고 있는 돈으로 보자면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충분히 즐길 수 있는 것들. 석우는 행복해 하는 린의 모습을 보며, 자주 놀러 가야겠다고 속으로 생각했다.
“밥 먹고 시내 구경 좀 할까?”
린은 석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스터와 데이트라면 어디든 좋아.”
석우는 린의 말에 쓰게 웃었다. 계속 해서 대쉬를 해오는 린이다. 자신의 마음도 점점 열리고 있었다. 이러다가 정말로 린과 관계를 가지게 되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된다. 순간순간 갈등이 생겼지만, 결혼 전에 관계를 가질 마음은 없었다. 그 마음이 흔들린다는 것이 문제이긴 하지만 말이다.
석우는 음식을 모두 먹고, 프라푸치노를 들고 린과 밖으로 나왔다. 기사가 석우를 따라 나서려 했으나, 석우는 고개를 저었다. 감시를 당한 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어서 린과 함께 돌아다니는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을 것 같았다.
“좋다.”
센트럴 파크를 거닐며 여유롭게 산책을 하던 린이 벤치에 앉으며 말했다. 석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은 아무래도 공원이 적고, 규모도 크지 않으니 미국의 센트럴 파크에 오니 한국보다 좋을 수밖에 없었다.
석우는 벤치에 앉아 바쁘게 돌아다니는 뉴요커들을 바라보았다. 점심시간이 조금 지난 시각이라, 사람들이 많이 있지는 않았다.
린은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 석우의 손을 잡았다. 평소의 린과는 다르게, 조심스러운 모습이었다. 석우는 그런 린을 보고, 피식 웃었다. 자신과 해외에서 데이트를 한다는 사실에 설레기라도 한 것일까? 석우는 잠시 린을 바라보다 시선을 돌려 빌딩들을 바라보았다.
높게 솟아 올라있는 빌딩들. 석우는 저런 빌딩들을 위에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고 보니... 록펠러 센터의 Top of the Rock.은 꼭 가보라고 했지.’
석우는 지아가 자신이 미국에 간다고 하자, 말해준 것들을 생각했다. 석우는 지아에게 자세히 말하지는 않고, 그저 여행을 갔다 온다고만 말했다. 그러자 지아는 석우에게 많은 것들을 알려 주었다. 먹어야 할 것, 가야 할 곳. 센트럴 파크도 지아가 와보라고 한 곳 중 하나였다.
“록펠러 센터로 가자.”
석우의 말에, 린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는 록펠러 센터가 무엇인지 몰랐지만, 석우가 가자고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좋았다.
록펠러 센터는 이름값을 했다. 석우는 거대한 록펠러 센터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곳에서 Top of the Rock의 표를 미리 예매해 두고, 조금 뒤에 와서 야경을 구경할 계획이었다.
석우는 록펠러 센터에 들어가, 표를 예매했다. 영어를 할 수 있으니, 어렵지는 않았다.
‘기대 되네.’
석우는 속으로 생각했다. 처음 와보는 미국이다. 그런 미국 뉴욕의 야경을 볼 수 있으니, 기대가 되는 것은 당연했다.
석우는 록펠러 센터를 조금 둘러보다가 나왔다. 린은 그저 석우의 리드에 따랐다. 석우는 굳이 바쁘게 움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여, 어느 한 커피숍에 들어가 커피를 즐기며 창밖으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외국인들도 있었지만, 관광객들의 비율도 만만치 않았다. 석우는 여유를 즐겼다.
“마스터.”
석우는 고개를 돌려 린을 바라보았다. 린은 커피잔을 잡고 있는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고 있었다. 석우는 그런 린의 손을 흘깃 바라보았다가 린의 눈을 마주쳤다.
“왜?”
“우리... 나중에도 여기 올까?”
“그래. 나중에도 오자. 여행 많이 가보자. 로마에도 가보고, 프랑스, 캐나다도 가보자.”
석우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히히.”
린을 밝은 얼굴로 웃었다.
- 작가의말
이얍얍! 록펠러 센터 가보신 분? 아, 그리고... 바니걸이 무엇인지 알려 주실 분. 바니걸이 뭔지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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