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3
들꽃들이 아름답게 피어있다. 그것을 바라보며, 남자의 입이 열렸다.
“저 들꽃들이 아름답지 않은가. 그저 볼품없는, 작은 들꽃일 뿐이지만 이렇게 많이 모여 있으니 그 아름다움이 장미와도 같구나.”
중년 남자의 입가에 인자한 미소가 걸리며 꽃들을 바라보았다.
“들꽃의 특징이 무엇인지 아는가?”
중년 남자는 고개를 살짝 돌려 그의 옆에 있던 기사에게 물었다. 하지만 기사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가 정말로 자신에게 물어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기에.
“남의 땅을 침략하여, 자신의 땅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지.”
중년 남자의 입가에 있던 인자한 미소는 더 이상 없었다. 그의 입가의 미소는 차가워졌다.
“시간이 되었다. 오랜 기다림에 지쳤다. 케센 왕에게 말해서 군사를 움직이라고 해라.”
중년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는 카밀라 제국의 황제, 물레우스였다.
나인은 영주의 집무실로 향한 급한 발걸음을 내딛었다. 그녀는 로인의 집무실 앞에서 잠시 숨을 들이쉰 뒤, 문을 두드렸다.
“들어와.”
로인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인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린이 로인의 옆에 앉아있다. 그녀의 숨은 불안정했다. 나인은 잠시 린을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카센 왕국이 선전포고를 함과 동시에 군사를 움직였어요.”
“...명분은?”
“예전에 잃었던 영지를 되찾는다는 명분을 가지고 있어요.”
“좋아. 이제 전쟁이 시작되는 구나.”
로인은 몸을 일으켰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던 일이다. 군대도 이미 모두 준비를 하고 있었고, 이미 대부분의 군대는 수도에 머물고 있었다. 국경과 먼 탓에, 수도에서 출병식을 한 다음 같이 움직이는 것이 빨랐다. 같이 움직이게 되면 자신이 총 사령관의 명령을 들어야 하는 입장이 되지만, 그것은 어쩔 수 없었다.
“오늘 바로 출발한다. 무리 없지?”
“이미 마차도 5대 준비되어 있으니 아무런 무리 없습니다.”
나인이 말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당연히 무리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물어 본 것이다. 소식은 빠르게 영주성을 휩쓸었다. 그에 마지막까지 로인과 남아있던 멀린과 우갈핸드가 서둘러 자신의 짐을 챙기고, 자신에게 배정된 마차로 달려갔다. 어차피 대부분의 군사는 수도에 모여 있고, 데리고 갈 사람은 별로 많이 않아서 그들에게 각자 하나씩의 마차가 주어졌다. 물론 그들의 마차는 여러 마법이 걸려 있었다.
어쌔신 부대만 데리고 가면 되었는데, 그것은 그리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어쌔신 부대는 대장인 린을 빼고 총 25명 이었다. 그들을 공간 확장 마법이 걸려있는 마차에 모두 태우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전쟁을 하는 동안 영지에 남아 있는 군사들은 500여명. 극히 적은 숫자였지만, 치안을 잡기에는 충분했다. 이미 몬스터들을 막아내는 방법도 잘 알고 있는 군사들이었다. 적어도 외부의 침략으로 위험에 빠질 일은 없을 것이었다.
“가자.”
매우 짧은 출병식과 함께, 로인이 출발했다. 나인은 처음 타보는 로인의 마차에 주위를 둘러보았다.
“넓군요.”
그녀의 감상평이었다. 역시 고클래스 마법사가 시전한 공간 확장 마법이라서 그런 것인지, 넓었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3명이서 지내기에 그리 좁은 것은 아니지.”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침대에 누웠다. 린이 자연스럽게 로인의 곁에 가서누웠다. 그녀는 불만이 있는 상태였다. 바로 나인이 로인의 마차에 탄 것. 린과 로인 만이 탔다면 눈치 보지 않고 여러 행동을 할 수 있을 터인데 나인이 있으니 하지 못하는 것들이 너무나 많았다.
나인은 붙어서 누워있는 둘의 모습에 잠시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조심스럽게 쇼파에 앉았다. 로인은 그런 그녀의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수도까지 전속력으로 달려 갈 테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어차피 군사를 움직였다고 해도, 군사를 움직이고, 침략을 하려면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릴 것이었다. 게다가 국경을 넘어 방어선을 함락한다고 해도 가장 가까운 도시를 공격하려면 적어도 2주에서 3주는 행군을 해야 할 것이었다. 물론, 그사이 조그마한 마을을 집어 삼키겠지만.
출병식이 시작되었다. 로인은 자신의 군대의 가장 앞에 서서 황제를 바라보았다. 황제는 확성 마법이 걸린 목걸이를 하고, 말을 하고 있었다.
“고로, 본 제국은 그저 단순히 침략을 막는 것뿐만 아니라, 침략을 막고 더 나아가 케센 왕국의 영토를 제국의 영토로 삼을 것이다!”
황제는 연설을 하고, 드디어 출병이 시작되었다. 총사령관은 테이나 후작이 맡았다. 라이칸 공작이 참전하지 않은 것은, 전쟁 초반부터 카밀라 제국이 간섭을 할까를 우려해서였다.
로인은 자신의 군대를 지휘하며 다른 이들을 따랐다.
명분은 그저 핑계에 불과했다. 사실 명분이라는 것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대부분 그저 전쟁을 위한 이유에 불과했다. 로인은 그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아무리 어이가 없는 명분이라도, 하나가 있으면 군대의 전투력이 올라간다는 것도 잘 알았다. 로인은 며칠간의 행군에 지친 군사들을 위해 술 한 잔씩 돌리며 이야기를 나누어 보도록 했다. 그것을 통해 적에게 분노하는 마음을 키울 생각이었다.
로인의 부대가 제국군이라는 군대에 소속이 되어 있는 만큼, 개별 행동은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로인은 별로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하지 말라는 규정이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다른 부대가 부럽게 보면 그 부대장들이 별로 좋게 보지만은 않는 다는 것이 문제였다. 로인은 그런 것 정도는 무시하고 술을 돌리기로 했다. 이번 전쟁에서는 무조건 자신과 자신의 영지의 이득만 생각하기로 했다. 필요하다면... 베르시아 백작도 이용할 생각이었다. 물론 정말로 그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만큼 로인의 결심은 대단하였다.
“린. 마법 주머니에서 맥주 꺼내서 한잔씩 돌려. 되도록 조용히. 무슨 소리인지 알지?”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되도록 조용히 돌리라는 말은, 2가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일단 조용히 돌려서 들키지 않는다면 그것은 상당히 좋은 일이다. 다른 부대장들과 사이가 벌어질 염려는 없으니까. 그리고 병사들도 자신의 부대장이 다른 부대 몰래 술을 내려 준다는 것에 감사함과 소속감을 동시에 느끼게 될 것이었다. 로인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로인은 잠시 후, 자신의 막사에서 나와 병사들의 막사들을 돌아다니며 술을 잘 먹으라며 여러 이야기를 하였다.
“시원하게 들이키게. 앞으로는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내가 최대한 자네들을 지키겠지만... 사람 인생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 않는가. 죽기 전에 맘껏 술을 먹어 봐야 하지 않겠나.”
“그럼요. 당연히 술을 배 터지게 마시고 죽어야 때깔이 좋죠.”
“하하하.”
병사들은 로인의 말에 맞장구를 치며 웃음을 지었다. 보통 병사들이었다면 죽음이라는 단어에 몸이 경직 될 수 있겠지만 애석하게도 로인의 병사들은 보통 병사들이 아니었다. 하루에도 여러 번 목숨이 날아갈 수 있는 몬스터들과의 전투를 수십, 수백 번 겪으며 정예병으로 거듭난 병사들이었다.
죽음이라는 단어를 들으면 더욱더 열심히 전투를 하는 자들이 그들이었다. 그런 것을 알기에 로인이 스스럼없이 죽음이라는 단어를 뱉을 수 있는 것이었다.
“왜 하필 우리 제국에 쳐들어오는 건지...”
로인은 중얼 거리며 술을 들이켰다. 병사들은 로인의 말에 성질을 부리며 맞장구를 쳤다.
“그러니까 말입니다. 왜 하필 우리 제국에 쳐들어와서 고향을 떠나게 만드는 것인지... 그냥 얌전히 있으면 자기들도 무사하고, 우리도 피해가 없을 것인데...”
“거기는 정말 미쳤지. 전력을 제대로 파악도 하지 못했을 거야.”
100인 대장 중 한명이 말했다. 100인 대장 정도면 자신의 군대가 얼마나 큰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었다. 물론 일반 병사들도 자신들이 다른 병사들 보다 강한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로인은 그런 모습을 보며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그저 불만과 자신감이 합쳐진 감정일 뿐이지만, 나중에 가서는 점차 커져서 적에 대한 분노로 바뀌리라. 로인은 슬그머니 자리를 떴다. 자신이 있으면 병사들이 불편해 할 것이다. 로인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다.
로인은 자신의 막사로 돌아왔다. 린과 나인이 나란히 앉아서 와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로인은 그런 둘의 모습에 잠시 미소를 짓고는, 그들의 앞에 앉았다.
“왜 안마시고?”
“마스터를 기다렸어요...”
나인이 입을 열었다. 린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린은 어차피 이런 종류의 물음에 쉽게 대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로인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럼 내가 왔으니, 이제 마시지.”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와인의 가볍게 개봉했다. 그는 나인의 잔과, 린의 잔에 술을 따라주었다.
“감사합니다. 마스터.”
나인은 그렇게 말하고, 로인이 들고 있던 병을 가지고 가서 자신이 로인의 잔을 채웠다. 로인은 자신의 잔이 채워지자, 잔을 들었다.
“승리를 위해?”
“마스터를 위해.”
로인의 말에, 나인이 그렇게 말하고 가볍게 로인과 잔을 부딪쳤다. 린 또한 자연스럽게 잔을 들어 그들과 잔을 부딪쳤다. 로인은 천천히 와인을 마시고, 미소를 지었다. 술을 즐기는 편은 아니지만, 긴장을 풀기 위해 한잔 정도 마시는 것은 기분이 좋았다. 아무리 로인이라지만, 전쟁인데 긴장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로인도 사람이고, 전쟁은 몇 번 겪어 보지 못한 고등학생일 뿐이었다. 시체와 비명이 난무하는 곳에서 제정신을 차리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로인은 고개를 들어 나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볼은 살짝 붉어져 있었다. 나인이 술에 약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와인 한잔에 벌써부터 볼이 붉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로인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나인.”
“예?”
로인이 나인의 이름을 부르자 나인은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너는 왜 나를 따라 온 것이지? 그냥 영지에 있을 수 있었는데. 굳이 전장에까지 따라오지 않아도 됐었잖아.”
사실 로인은 나인에게 영지에 있으며 영지를 관리하라고 했었지만, 나인은 한사코 고개를 저으며 로이을 따라가겠다고 한 것이었다. 전쟁에 해가 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잘 아는 로인은 고개를 끄덕여 허락을 했었지만, 왜 위험한 전장에 따라오겠다고 한 것인지 별로 이해되지는 않았다.
“...항상... 린을 데리고 다니면서, 저는 데리고 다니지 않는 것이 슬펐어요.”
“린은 영지에 있어도 할 수 있는 게 그리 많지 않으니까 그런 것이잖아.”
“그래도... 그게 부러웠어요. 그래서 따라오겠다고 한 거예요.”
로인은 나인의 대답에 어깨를 으쓱했다. 그게 부러웠다면 말을 했으면 다음부터는 걸음이 느려지더라도 나인을 데리고 갔을 터였다. 하지만 나인은 지혜로운 여인이었고, 자신이 간다면 일정이 늦어질 것을 알았다. 그렇기에 부탁을 하지 않은 것이었다. 로인은 거기까지 생각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로인은 다시 잔을 채우고 와인을 마셨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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