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1
결전의 날이 밝았다. 라고 하기에는 날씨가 좋지 않았다. 로인은 비가 올 것만 같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어둑어둑한 하늘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 같았다.
“멀린.”
로인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앞을 지나가는 멀린을 바라보았다.
“네?”
“특별 임무다.”
로인이 입을 열었다. 멀린은 인상을 살짝 찡그렸다. 특별 임무. 말이 특별 임무이지 황당할 정도로 힘든 임무를 줄 것이 뻔했다. 멀린은 특별 임무가 반갑지 않았다.
“뭡니까.”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로인의 밑에 있는 것만으로도 많은 것을 배우고, 또 이미 알았던 것을 재정립할 수 있다. 게다가 흥미로운 연구 주제까지 모두 로인이 준다. 그에게는 로인은 보물 창고나 마찬가지였다.
“독. 적의 음식에 독을 풀어.”
“그걸 왜 저한테 시키십니까. 린이나, 다른 어쌔신들에게 시켜야죠.”
“포이즌 마법을 써. 포이즌 클라우드를 군량 위에다가 쓰면 되잖아? 비도 올 것 같은데.”
“...”
멀린은 로인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왜 자신은 마법을 잘해서 이런 명령을 받는 단 말인가. 멀린은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자신이 가면 호위를 할 사람도 같이 가야 한다. 인력 낭비가 되는 데 왜 이런 일을 시키는지, 멀린은 이해하지 못했다.
“독은 어떤 독으로 뿌릴까요.”
“정신에 금이 가게 할 만한 독.”
“...정신 쪽은 마나가 많이 듭니다.”
멀린이 말했다. 독을 만드는 것은 마나가 꽤나 드는 작업니다. 특별히 정신에 영향을 주는 마법은 마나 소모가 극심했다. 하지만 로인은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다.
“남는 게 마나잖아.”
“...소드 익스퍼트 이상은 중독이 되지 않을 것이 뻔합니다.”
“상관없어. 어차피 소드 익스퍼트들은 중독 되도 쉽게 정신에 금이 가지는 않으니까.”
로인이 가볍게 말했다. 멀린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어떨 때는 정말 자상하게, 신경을 많이 써주는 로인이었지만 이럴 때는 정말 무심하다. 멀린은 그것이 지도자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시도 때도 없이 자상하게, 마음을 써주면 밑에 사람들뿐만 아니라 지도자가 힘들어 질 수 있었다.
“...알겠습니다.”
멀린은 별로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까라면 까야지. 멀린은 자신이 왜 이런 처지가 되었나 생각해 보았다. 역시나. 치밀어 오르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엄청난 연구 과제를 보고 한 눈에 반한 탓이었다. 아직도 그의 눈에는 콩깍지가 쓰여 있었다.
“그럼, 필요한 병력은 알아서 차출해가. 나인이나, 린의 부대는 안 되니까. 그 둘은 제외하고.”
“그럼 크론벨과 블랙 와이번 기사단의 기사 10명을 데리고 가겠습니다.”
“맘대로.”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멀린은 로인이 고개를 끄덕이자 몸을 돌려 크론벨의 막사로 향했다. 로인이 멀린의 뒷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마법을 사용해 적을 중독 시킨다. 매우 좋았다. 로인은 스스로 이런 생각을 한 자신이 기특했다.
오늘이나 내일 중으로 적군과 전투가 있을 것이었다. 그것을 대비해서 적군의 정신을 약하게 만드는 독을 풀어 놓는 것은 정말 신의 한수였다. 뒤에서 몬스터가 몰려오고, 앞에서 로인의 군대가 쳐들어오는 상황이다. 적군의 정신이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만약 이미 적의 정신을 약하게 만들어 놓았다면, 적의 정신은 붕괴되고, 전투 의지를 상실하게 된다. 이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그 후로는 보리밭에서 보리 베기와 같은 것이었다. 로인은 그것을 상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뭐 하세요?”
“아, 그냥. 하늘이나 보고 있었지.”
나인이 로인에게 소리친 “그날” 이후로, 로인은 나인과 함께 침대를 쓰고 있었다. 전에도 같이 침대를 쓴 적은 꽤나 있었지만 이번에는 그 의미가 조금 달랐다. 로인은 밤마다 여전히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하는 적군을 불쌍히 여기는 나인의 마음을 위로했다.
그러면서 또 새벽에는 습격을 가해 몬스터의 손에 죽임을 당하는 적군을 지켜보았다. 나인도 알고 있었고, 로인도 나인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너는, 방금 일어났나 보지?”
“날씨가 쌀쌀해서...”
나인의 말에 로인이 피식 웃었다. 잠시 나인을 보던 로인이 입을 열었다.
“그럼 따뜻하게 해줘?”
“네?”
나인은 자신의 팔을 만지다가, 고개를 들었다. 이내 그녀의 볼이 붉어 졌다.
“아, 아니요. 괜찮아요.”
나인이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나인은 린과 다르게 부끄러움을 탄다. 로인은 그런 나인이 귀여웠다.
로인은 나인과 함께 자신의 막사에서 수다를 떨다가, 시계를 확인했다. 이곳은 과학이라는 것을 이용해 볼 생각은 없는지 모든 것을 마법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 덕에 시계도 마법으로 움직이는 것이었다.
로인의 고개가 갸웃거렸다. 시간이 한참이나 지나 있었다. 몇 시간이나 지났는데, 멀린 일행이 돌아오지 않고 있었다. 고작 마법 한번 쓰고 오는 것인데, 이렇게 시간이 걸릴리 없었다.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는 일처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자신이 직접 가게 만드는 수하들을 어떻게 해야 할까 생각하며 걸음을 옮겼다.
로인이 자신의 앞으로 보이는 적진에, 걸음을 늦추었다. 로인의 검이 뽑혔다.
“하아...”
로인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멀린이 마법의 위력을 조절하는 것에 실패를 한 모양이었다. 한 무리의 적병들이 여기저기 널브러져 자신의 머리를 부여잡고 있었다. 어느 병사는 미친 듯이 아군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었다.
로인이 고개를 흔들었다.
“저건 뭐다냐.”
로인이 눈을 깜박였다. 크론벨과 멀린, 그리고 기사 10여 명이 적진 한가운데에서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포위하고 있는 것은, 수백의 기사였다. 로인은 고개를 저었다. 그저 독이나 풀고 오라고 한 것인데, 왜 저렇게 전투를 하고 있는 것인가.
로인은 인상을 한번 쓰고는, 걸음을 옮겼다. 적 기사들에게 포위 되어 있는 멀린과 크론벨을 구해야겠지만, 로인은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로인은 그들을 별로 걱정하고 있지 않았다. 이미 크론벨의 주변에는 10여 명의 적 기사가 쓰러져 있었고, 블랙 와이번 기사단의 기사들도 그와 비슷한 수의 적 기사를 죽인 것 같았다.
저 기사들 보다 블랙 와이번 기사단이 훨씬 강하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도와줄 필요는 없었다. 멀린과 크론벨이 함께 있는 이상, 소드 마스터라고 해도 질 수밖에 없었다.
로인이 달려간 방향은,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자가 있는 곳이었다. 로인이 검을 들어 휘둘렀다. 가장 화려한 갑옷을 입고 있는 자, 제이슨 백작은 갑자기 자신에게 들어오는 공격에, 놀라 검을 뽑았다.
제이슨 백작은 소드 익스퍼트 최상급의 이름에 걸맞게 로인의 공격을 막아 내었다. 제이슨 백작과 로인이 동시에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 로인은 기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한 걸음 물러나게 되자, 인상을 찌푸렸다.
로인은 분명 달려오고 있었고, 제이슨 백작은 가만히 서있는 상태에서 공격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똑같이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는 것은 로인의 실력이 제이슨 백작보다 떨어진 다는 뜻이었다.
로인은 전력으로 상대할 생각으로 오러를 만들었다. 제이슨 백작도 로인의 오러를 보더니 곧바로 자신도 오러를 시전해 검을 휘둘렀다. 급소를 향해 찔러 들어오는 검을, 로인은 흘려보내고 반격했다.
흘렸다고는 하지만, 오러와 오러가 만났기에 충격은 어쩔 수 없었다. 오러가 서로 갈리며 거북한 소리를 내었다.
제이슨 백작이 순식간에 검을 회수해 로인의 공격을 막았다.
“제법이군.”
어느새 로인의 실력을 파악한 것일까, 제이슨 백작은 로인이 자신 보다 하수라는 것을 깨닫고, 여유를 찾았다. 로인은 제이슨 백작의 말에 미간을 찡그렸다.
“너도, 제법이다. 내가 인정한 사람은 거의 없으니까, 좋아해도 좋아.”
로인이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이익.”
제이슨 백작이 이를 물며, 검을 휘둘렀다. 로인이 그것을 막았다. 검술은 아직 제이슨 백작보다 떨어지지만, 마나의 양은 제이슨 백작과 비등하다. 로인이 버틸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마나의 양 때문이었다.
“가이스!”
로인이 가이스를 소환했다. 동시에 10기의 골렘도 소환되어 크론벨과 멀린을 포위하고 있던 기사들을 공격했다. 제이슨 백작은 그것을 보고, 인상을 한번 찌푸리더니 강하게 검을 휘둘렀다. 로인이 검을 들어 제이슨 백작의 검을 막았다.
제이슨 백작이 골렘들을 처치할 의향으로, 도약했다. 하지만 제이슨 백작의 몸은, 그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큭.”
가이스가 흙을 움직여 제이슨 백작의 발을 묵었다. 로인이 그것을 놓치지 않고, 검을 휘둘렀다. 제이슨 백작은 서둘러 자신의 검을 들었지만, 당황한 제이슨 백작이 로인의 검을 제대로 막을 리 없었다. 게다가 제이슨 백작은 움직이려 하다가 잡혔기에, 몸의 균형이 무너진 상태였다.
피가 흩뿌려졌다. 로인의 검이 제이슨 백작의 가슴을 갈랐다. 단숨에 목을 베어 죽이려 했지만 역시나 소드 익스퍼트인지, 그 상황에서 몸을 돌려 피했다. 로인은 재차 검을 휘둘러 제이슨 백작을 공격했다. 하지만 제이슨 백작은 이미 마나를 사용해 흙을 부순 상태였다.
콰왕.
제이슨 백작이 검을 들어 로인의 검을 막았다. 로인이 손을 통해 느껴지는 고통에 인상을 찌푸렸다. 로인은 뒤로 펄쩍 물러났다. 제이슨 백작은 로인을 쫒아가려다가, 멈칫하고는 바로 몸을 돌려 골렘들에게 향했다.
‘더 이상의 피해를 만들 수는 없다.’
제이슨 백작이 속으로 생각했다. 이미 기사들이 200명 가까이 죽은 상태다. 고작 10여 명에 달하는 적에게 기사들이 150명 가까이 당했다. 거기에 아이언 골렘들이 나타나, 기사들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있었다. 기사들은 고급 인력이다. 더 이상 기사들의 죽음이 있으면 안 되었다.
로인은 그런 제이슨 백작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이미 크론벨과 멀린 일행은 포위망을 빠져나왔고, 멀린들이 있던 곳에는 아이언 골렘들이 그 자리를 메꾸고 있었다. 로인이 뒤돌아 달렸다. 이제 후퇴할 시간이었다.
제이슨 백작이 기사들을 제치고 들어가,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제이슨 백작의 얼굴은 굳어 있었다. 그러던 제이슨 백작의 얼굴이 미묘하게 찡그려졌다.
‘베는 느낌이 없다?’
제이슨 백작이 황급히 주위를 둘러보았다. 아까까지만 해도 있었던 아이언 골렘들이, 흔적만 남기고 사라져 버렸다. 제이슨 백작은 아이언 골렘들의 발자국이 찍혀있는 땅바닥을 보았다. 그는, 귀신에게 홀린 느낌이었다.
로인은 그런 제이슨 백작을 멀리서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이언 골렘들은 가이스가 소환을 해제하면 바로 역소환이 되어 버린다. 로인은 제이슨 백작이 아이언 골렘의 머리를 베어 버리려는 순간, 가이스에게 명령해 아이언 골렘들을 소환 해제 시킨 것이었다.
로인이 몸을 돌렸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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