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피곤한가?”
“아아, 별로 그렇게 신경을 써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언제부터 저를 신경 써 주셨다고.”
멀린이 장난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는 조금의 진실도 가미되어 있었다. 언제나 멀린에게 연구를 시키는 로인이다. 로인은 그저 쉬엄쉬엄 하라고 설계도나, 흥미로운 연구 주제를 내밀고는 한다. 하지만 어떻게 마법사가 된 입장에서 쉬엄쉬엄 할 수 있겠는가.
밤을 새워서라도 하는 것이 연구다. 당연히 피곤 할 수밖에 없었다. 멀린은 그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었다.
“연구가 힘든가 보군. 알았네.”
“아, 절대 힘들지 않습니다. 제겐 힐링 마법과 슬립 마법이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3시간을 자도 6시간을 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죠. 연구 과제는 1달에 하나씩만 주시면 됩니다.”
멀린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혹시나 자신이 힘들어 할 것을 생각해 로인이 연구 할 것은 주지 않는 다면 큰일이다. 멀린은 지난 1년 동안, 로인과 함께 있으면서 많은 것을 배웠고, 많은 것을 깨달았다. 만약 계속 바하드 자작 밑에 있었다면 10년을 해도 못 이루었을 성과였다.
“전쟁이 끝나면, 연구 할 거리는 넘칠걸 세. 포탈을 연구 하는 것 만해도 꽤나 걸릴 것 같은데.”
“뭐, 그렇겠죠.”
멀린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포탈은 매우 흥미로웠다. 그것을 다 연구하지 못했는데 전쟁이 일어난 것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최대한 빨리 끝내고, 집에 돌아가자.”
로인이 그렇게 말했다.
“그래야죠. 싸악 쓸어버리고, 갑시다. 어차피 전쟁은 매일 일어나지 않습니까. 몬스터들과 전쟁을 빈번하게 치루는데, 뭐 다를 게 있을까.”
멀린의 말에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그의 고개가 갸웃했다.
“우리는 몬스터와 전투 경험이 많지?”
“하루가 멀다 하고 싸우는데, 당연히 많죠.”
“그럼 저 쪽은?”
“뭐, 대부분 몬스터를 몇 번 상대해 보았겠지만 그리 능숙하지는 못할 겁니다. 대륙 어디의 병사라도 우리만큼 몬스터와 전투에 능숙한 병사들은 없을 걸요. 드래곤 산맥 근처라면 모를까. 거기도 근처에는 접근을 안 하기 때문에 우리보다는 아닙니다. 우리는 몬스터를 사냥 하는 수준이니까.”
멀린의 말에 로인의 입가에 미소가 맺혔다.
“똑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수의 몬스터가 몰려오면 우리가 이기겠지?”
“아무래도. 제가 실드만 치고 버티기만 해도 되는 거 아닙니까. 근데 그건 왜...”
멀린은 대답을 하고, 물어보려다가 불안한 마음에 말끝을 흐렸다. 로인이 씨익 웃었다.
“어쩌면... 우리, 정말 피해 하나도 없이 엄청난 대군을 상대 할 수도 있겠는데?”
로인이 말했다.
“무슨 묘안이 있으신가 보군요.”
여태껏 잠잠하던 크론벨이 입을 열었다. 로인이 어깨를 으쓱했다.
“뭐, 묘안이라고 보기보다는... 지금 쓸 수 있는 것은 모두 쓴다. 이라고 하는 게 맞겠지.”
“...하지만 지금 저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쓰더라도 완전히 피해가 없을 수는 없습니다.”
크론벨의 대답에 로인은 웃었다.
“너무 시야를 좁게 가지지는 마. 우리가 쓸 수 있는 것은 무궁무진하니까.”
“로드께서 쓰시려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크론벨이 물었다. 멀린이 눈을 감았다 떴다.
“포탈.”
로인의 입이 열렸다. 포탈. 분명 포탈은 로인이 조정할 수는 없지만, 쓸 수 있는 물건이었다. 포탈을 적진 한가운데에다가 설치를 해 놓으면? 몬스터들이 튀어 나올 것이고 적들은 몬스터들과 사투를 벌일 것이다.
적들은 몬스터들과 전투로 죽음을 당할 것이고, 몬스터들도 적들에게 목숨을 잃을 것이다. 수많은 전공을 챙기고, 몬스터의 사체까지 챙길 수 있는 방법이었다. 그렇게 상황을 지켜보다가 나중에 적당한 시기를 보아서 다시 포탈을 수거 하면 되었다.
손 안대고 코푸는 방법이고, 일석이조, 차도살인지계였다.
“으음... 그 방법은 쓰시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왜?”
멀린의 말에 로인이 그를 돌아보았다. 피해를 입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다. 왜 쓰지 말아야 하는가.
“자칫 잘못하면 대륙의 비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심각한 상황이 되고 말겁니다.”
“우리가 왜 대륙의 비판을 받지?”
“전쟁에서 몬스터를 사용하는 것은...”
“전쟁에서 몬스터를 왜 사용해? 어떻게 사용하는데? 알면 좀 가르쳐줘라. 나도 좀 써보게.”
“...”
멀린은 로인의 대답에 입을 별렀다. 황당했고, 충격이었다.
“몬스터를 사용한다는 것은, 말이 안 돼는 일이야. 그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던가? 못하지. 초인의 반열에 드는 멀린도 못하잖아. 나도 못하지. 몬스터를 뱉어 내는 것은 포탈이야. 나는 그 포탈을 사용할 뿐이지.”
멀린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로인의 말이 맞았다. 인간이 감히 몬스터를 사용하지 못한다. 이용하는 것은, 치밀한 계획을 통해 가끔 할 수도 있지만, 조종을 하여 사용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몬스터가 의도적으로 만들어 졌다는 것을 대륙은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할 것이다. 고로, 포탈을 사용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멀린의 입이 다물어 졌다. 그의 입에서 점차 미소가 생겨났다.
“잘만 쓰면... 정말 피해를 하나도 만들지 않고 승리 할 수도 있겠는데요?”
멀린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로인이 멀린의 말을 듣고 크론벨을 돌아보았다.
“제 생각이 짧았군요. 제 자신도 언데드이면서, 몬스터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못하다니.”
“뭐, 좋아. 그럼 포탈을 사용한다는 걸로 결론이 난거지?”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주먹을 쥐었다. 포탈이 어떠한 효과를 내줄지는 확인해 보아야 할 것이었다.
고개를 돌린 로인이 멀리서 보이는 불빛을 보았다. 어두운 밤이라 불빛은 잘 보였다.
“크론벨. 여기, 마법주머니다. 데리고 가고 싶을 만큼 데리고 가서 군량을 가지고 와라.”
로인이 말했다. 자신이 직접 나서려 했지만, 저번에 혼자 군량을 옮기다가 고생한 기억이 있었다. 별로 다시 겪고 싶은 일은 아니었다.
크론벨은 로인에게 마법 주머니를 건네받아 적진으로 향했다. 그의 뒤를 50명의 블랙 와이번 기사단의 기사들이 따랐다. 로인은 아공간을 열었다. 검은 색의 어두운 아공간에서 푸른빛이 세어 나왔다. 희미한 빛이었지만 혹시라도 적군이 볼까 놀라 로인은 아공간을 닫았다.
로인이 크론벨을 기다리다가, 몸을 움직였다. 이제 군량은 대부분 담았을 것이었고, 적군 한가운데 있어도 잘 빠져나올 크론벨이었다. 오히려 혼란을 만들어 주는 것이 빠져나오기 쉬우리라.
로인은 적진으로 조금 들어가 아공간을 열었다. 포탈을 너무 한가운데에 놓는 것은 다시 포탈을 회수할 때 힘이 들 수도 있었다. 포탈을 가만히 내버려 두면 아군에게도 피해가 갈수 있으니 포탈을 적당히 상황을 보아서 회수를 할 생각이었다.
로인은 아공간에서 포탈을 꺼내 놓고, 바로 자리를 떴다. 포탈은 로인이 마지막으로 자른 것을 복구하고 있었다. 로인은 멀리서 그 모습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복구는 꽤나 빨리 되고 있었고,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몬스터가 튀어 나올 것 같았다.
“왜 몬스터가 나오지 않는 거죠?”
멀린이 로인에게 물었다. 멀린은 로인처럼 눈이 그리 좋지 못했다. 마나를 사용한다면 일반인보다는 눈이 좋게 할 수는 있었지만 검사의 몸과 마법사의 몸은 달랐다.
“복구 중이다.”
“복구?”
멀린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포탈에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몬스터들은 어두움에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익숙해져서 공격을 시작했다. 가장 먼저 나온 것은 트롤이었다. 트롤 2마리가 나오자 로인은 씨익 웃었다. 트롤은 일반 병사가 상대하기 가장 까다로운 몬스터 중 하나였으니까.
“크론벨이 아직 안에 있습니다.”
“알아, 근데 곧 빠져 나올 거야.”
로인이 말했다. 그런 그의 눈에 어느새 말을 소환하여 달리고 있는 크론벨이 보이고 있었다.
크론벨도 빠져나오고 있었고, 몬스터도 소환되었다. 이제, 구경만 하면 되었다.
“으아악!”
“모, 몬스터다!”
“습격이야!”
“사, 살려줘... 아악!”
적군의 진영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몬스터들이 보이는 대로 족족 병사들을 죽이고 있었다. 트롤과 오크, 그리고 오우거까지. 심지어는 미노타우로스도 있었다. 로인은 거대한 도끼를 들고 있는 미노타우로스를 바라보았다. 미노타우로스를 보는 것은 로인도 처음이었다.
“오, 미노타우로스도 있군요. 드래곤 산맥에서만 산다는 미노타우로스까지 오다니.”
멀린 또한 조금 감탄하며 그것을 지켜보았다. 그는 호기심 있는 눈으로 전장을 살펴보았다.
“슬라임. 깊은 동굴에서만 사는 몬스터인데. 용케도 지상 구경을 하는군요.”
멀린이 또다시 말했다. 로인이 멀린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과연. 로인의 시선 끝에 사람보다 큰 슬라임 몇 마리가 보였다. 로인은 고개를 갸웃했다. 슬라임은 게임에서 항상 초보의 경험치가 되어주는 몬스터다. 그런 슬라임이 전장을 휩쓸 듯이 지나가고 있었다.
“슬라임이 원래 저렇게 강한가?”
“...슬라임의 강함은 크기에 비례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뭐, 크기가 크면 사람을 한 번에 집어 삼켜서 1분도 되지 않아 소화를 시켜버리거든요. 크기가 작으면 머리를 감싸서 머리만 소화 시켜 버립니다. 마나를 사용하지 않은 공격은 무시해 버릴 수 있는 재생력이 있기에 상당히 상대하기 까다로운 존재입니다. 핵을 찾아서 부수면 일반 병사도 슬라임을 처리 할수 있는데, 이런 어두운 밤에 핵을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이죠.”
“호...”
멀린의 설명이 로인이 흥미롭다는 듯이 입을 벌렸다. 슬라임에 대한 인식이 조금 달라졌다.
로인은 돌아온 크론벨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크론벨이 로인에게 마법 주머니를 내밀었다.
“절반 밖에 담지 못했습니다. 그 이상은 들어가지 않아서...”
“아아, 괜찮아.”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다시 고개를 돌려 전장을 바라보았다. 몬스터와 인간이 서로 싸우고 있었다. 대체로 병사들이 당하고 있었다. 이미 피해를 입은 병사가 천단 위였다. 몬스터는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으니, 피해는 기하급수 적으로 늘 것이었다.
대체로 카밀라 제국군이 당하고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곳도 있었다. 기사들이 모여서 미노타우로스를 상대하고 있었다. 그런 그들의 곁에는 트롤과 오크들의 시체가 널브러져 있었다. 아직 몬스터의 출처를 정확히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기습을 와서 그냥 가만히 있는 것도 나쁘지 않은 일이군요.”
멀린의 말에 로인이 피식 웃었다. 멀린의 말대로, 가만히 있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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