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쿨럭. 컥.”
승기는 마른기침을 하며 눈을 떴다. 석우는 린과 놀다가 승기가 눈을 뜨자,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정신이 드냐?”
“아...”
승기는 석우의 말에 몸을 일으켰다. 석우는 승기에게 들고 있던 물병을 건넸다. 메마른 목을 축일 만한 것이 필요했던 승기는 서둘러 물을 마셨다.
“그러게 왜 그 녀석의 주먹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주먹으로 막았냐.”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니까.”
“그것도 때에 따라 다른 거지. 무식하게 돌주먹에다가 주먹을 휘두르면 어쩌자는 거야.”
석우는 황당하다는 듯 헛웃음을 흘리며 말했다. 최선의 방어는 공격이다. 그것도 때에 따라 적용되는 말이었다. 바위가 계란을 깨뜨리려고 할 때 오히려 계란을 바위에 던지는 것이 방어인가? 아니, 피하는 것이 최선의 방어이다.
“그래서, 결과는?”
“뭘 물어. 당연히 네가 졌지. 가이스의 주먹에 손상이 가기는 했지만 가이스는 멀쩡하고, 너는 기절했다.”
“능력을 최대한 끓어 올린 건데도?”
“능력을 끓어 올렸으면 상대에게 피해를 입힐 생각을 해야지. 무식하게 상대의 공격에 맞서는 것이 아니라.”
“쳇.”
승기는 인상을 찌푸리며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런 흔적이 없다. 그 돌덩어리의 주먹을 맞받아 쳤음에도 아무런 상처가 없다. 승기는 고개를 올려 석우를 바라보았다.
“오늘은 이만 집에 가라. 가서 좀 쉬고, 내일 저녁에 보자.”
“...알겠어.”
승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후우...”
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드디어 도착한 라쿠스. 로인은 라쿠스의 성문을 바라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성문. 외형도 그리 대단하지 않았다. 그저 밋밋한 돌덩어리로 아무런 장식이 없이 싸여있는 성벽이다. 하지만 튼튼해 보이기는 했다.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야 하니, 튼튼한 것은 당연했다.
로인은 마차를 몰아 성문을 들어섰다.
“와아아!”
도시민들의 함성소리가 들린다. 로인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준비를 한듯했다. 모두가 로인을 반기고 있었다. 로인은 미소를 지었다.
‘저렇게 웃고 있어도 아마 속으로는 나를 욕하고 있겠지.’
로인은 속으로 생각했다. 평민들이다. 귀족이 영주로 부임되면 고통 받는 것은 평민들이다. 지금까지 영주가 없었으니 세금이 수입의 15% 정도 이었을 것이다. 영주가 없는 곳의 평민들의 세금은 곧바로 제국으로 들어간다. 제국은 15%를 세금으로 정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주가 온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세금? 모두 다 영주 마음이었다. 세금을 40%를 받든, 50%를 받든 영주의 마음이다. 평민 여자들을 잡아다가 자신의 성노리개로 써도 영주는 아무런 벌을 받지 않는다.
한 지역의 왕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영주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평민들은 엄청난 노력을 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저기에서 뿌려지는 꽃들.
‘이 꽃들을 준비하느라 수많은 사람들이 고생을 했겠지.’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이 세계의 귀족들의 이미지는 최악이었다.
‘뭐, 우리나라 국회의원들과 비슷한 건가.’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던 로인의 앞을 가로 막는 남자가 있었다.
“안녕하십니까, 영주님.”
“아, 네.”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라쿠스의 시장, 다만이라고 합니다.”
“로인 루푸스. 준남작의 작위를 받고, 라쿠스 지방을 영지로 하사 받았습니다.”
로인은 다만이 자신을 소개하자 고개를 끄덕이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저를 따라오시죠.”
시장의 말에, 로인은 알았다고 말하고 시장을 따랐다. 시장이 안내한 곳은 로인의 집이었다. 로인의 집은 거대한 저택은 아니었지만, 도시의 어떠한 집보다 컸다.
“먼저, 라쿠스 지방은 총 1개의 소도시와 8개의 마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인구는 대략 6500명 정도 되고, 세금은 15%입니다.”
시장은 로인을 보며 설명했다.
“흐음...”
로인은 시장의 말에 인상을 썼다. 6500명. 많지 않은 숫자다. 6500명이라면 인구보다 몬스터의 숫자가 더 많을 것 같았다.
“일단... 세금 조절부터 하겠습니다.”
“...”
시장은 고개를 숙였다. 이곳의 시장으로 살며 시민들의 행복을 위해 엄청난 노력을 했다. 세금을 최저로 유지하고, 몬스터의 공격을 막아내느라 엄청난 고생을 하였는데. 세금 조절을 한단다. 세금을 높이면 당연히 시민들의 불만이 커지게 되고, 자발적으로 몬스터와의 전투를 돕는 시민들이 줄어들게 된다. 결국, 망한다.
‘역시 귀족들이란...’
시장은 치밀어 오르는 욕을 삼켰다. 귀족들은 머리가 없는 것인지,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 자신의 재물을 불리기 위해서 시민들의 피를 빨아먹는다. 그것이 자신의 숨통을 쥐는 일이라는 것도 모른 체.
“어떻게... 조절 할까요?”
시장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 몬스터들의 공격도 잦고... 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높습니다. 이런 형편에 너무 많이 올리시면...”
시장은 로인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자신이 피해를 입더라도 시민들 전체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되지 않은가. 세금을 올리는 것을 최대한 막아 볼 생각이었다.
“아, 몬스터들의 공격... 그렇죠.”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세금을 너무 많이 거두면 시민들이...”
“몬스터를 상대할 군대를 양성하려면 돈이 필요하겠죠.”
“...”
“그래서... 15%에서 20%로 올리겠습니다.”
시장은 한숨을 내쉬었다. 5%라면 그렇게 많지는 않았다. 10%, 20%를 올리는 영주도 있다는데, 그리 나쁘지는 않았다.
“단. 월 소득이 25골드가 넘는 사람에게만 해당 됩니다.”
로인이 말을 이었다. 로인도 바보가 아니다. 세금을 올리면 시민들의 불만이 엄청날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하지만 몬스터의 공격을 막을 군대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다. 월 소득이 25골드가 넘어가는 사람들에게 세금을 더 많이 걷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어차피 월 소득 25골드가 넘어가는 사람이면 아슬아슬하게 25골드가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50골드, 100골드까지 버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것이었다. 아무리 인구가 적다지만 시장은 충분히 형성 되어 있었다.
“그리고 월 소득 25골드 미만인 사람들은 세금을 3% 줄여 12% 로 하겠습니다.”
부자들의 힘은 대단했다. 만약 이곳의 부자들이 들고 일어선다면, 그들을 막을 힘이 로인에게는 없었다. 하지만 만약 대부분의 민심이 로인에게 있다면 부자들도 쉽게 들고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었다.
어차피 평범한 평민들에게서 거두는 세금은 거의 없었다. 3% 낮춘다고 해서 별로 달라질 것은 없었다.
평민들의 세금을 낮추고, 그에 따른 손해를 부자들로 메꾼다. 아니, 메꾸기보다는 산을 쌓는 것과 다름이 없다. 빈부격차가 엄청난 곳이 판테아 대륙이다. 부자 한명에게서 걷는 세금이 평민의 수십 배가 되니 말이다.
지구에서라면 당연한 것. 하지만 이곳에서는 아니었다. 오히려 평민들에게는 40%의 세금을, 부자들이나 귀족들에게는 면세 권을 주기도 하는 곳이 판테아 대륙이었으니까. 그렇다고 부자들에게 평민들의 몇 배나 되는 세금을 내라고 하는 것도 문제가 따른다.
부자는 평민들에 비해 엄청난 권력을 가지고 있다. 엄청난 세금을 내라고 한다면 부자가 다른 영지로 떠나가 버릴 수도 있다. 그렇게 된다면 로인은 거두는 세금은 줄어들 수밖에 없고, 그렇다면 영지 운용에 많은 지장이 따른다.
“그, 그럼 지시대로 하겠습니다. 뭐 다른 것은...?”
시장은 로인의 지시에 놀라워하며 입을 열었다.
“다른 것...”
로인은 씨익 미소를 지었다. 지시를 내리려 했는데, 동시에 떠오른 창이 있었다.
[영지 상태창
영지명: 라쿠스
인구: 6543명
민심: 68/100
세금: 12%, 20%
군대: 병사 540명, 평균 레벨 58
기사 14명, 평균 레벨 114
재산: 1324골드.
정보: 매일매일 끈임 없이 이어지는 몬스터의 습격으로 주민들의 불만과 불안함이 높습니다. 낮은 세금을 유지하여 겨우 민심을 관리했지만 더 이상은 버티기 힘들어 보입니다.]
“흐음...”
로인은 상태창을 잠시 보다가 입을 열었다.
“영지 군대 상태창.”
[영지 군대 상태창
군대: 총 554명
보병: 350명
궁병: 190명
기사: 14명
정보: 수많은 몬스터들과의 전투로 많은 성장을 한 군대는 여타 다른 영지의 군대보다 강합니다. 보병이 양성 가능합니다. 궁병이 양성 가능합니다. 기사가 양성 가능합니다. 보병 양성은 명당 4골드, 궁병은 5골드, 기사는 45골드입니다.]
“군대 양성을 지시합니다. 기사 15명. 제 직속 수하로 두어서 제가 직접 가르치겠습니다.”
로인은 입을 열었다. 강한 군대가 필요했다. 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차피 오우거를 만나면 일반 보병들은 아무런 저항도 못하고 죽을 것이 뻔하다. 여타 다른 군대보다 평균 레벨이 높은 병사들이지만, 아직 정예병이라고 부를 만한 정도는 아니다.
정예병을 키울 생각이었다. 몬스터와의 싸움에서는 숫자보다는 정예가 필요했다. 적어도 트롤을 상대할 수 있는 기사들을 키울 생각이었다.
“오늘부터 몬스터 토벌을 시작합니다.”
로인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영지를 발전시키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 바로 몬스터 토벌이었다. 지금은 영지를 지킬 군사도 모자란 형편이었다. 일단 로인 혼자라도 시작할 것이다. 그 다음 자신 밑으로 기사들이 배정 된다면 그들을 성장 시키며 본격적인 몬스터 토벌을 시작할 것이었다.
다른 사람이 로인의 생각을 들었으면 입에 거품을 물것이었다. 말도 안 되는 일. 수많은 병력이 있어도 될까 말까 하는 일인데, 몇몇의 기사들만으로 몬스터 토벌을 시작하겠다니 황당한 것이다. 다른 사람이 아닌, 로인이기에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차근차근... 조금씩 수를 줄여 나가면 언젠간 되겠지.’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몬스터 토벌... 하지만 병력이...”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시장님은 그저 민심에 신경써주시면 됩니다.”
로인은 시장의 말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아, 알겠습니다.”
시장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나인.”
“예, 주인님.”
“사무직으로 할 생각이었는데... 지금 상황으로는 현장직을 해야 할 것 같다.”
“네?”
나인은 되물었다. 로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죄송합니다.”
나인은 무심코 되물었다가 고개를 숙이며 사과했다.
“아니, 언제든지 궁금한게 있으면 물어보고... 할 말이 있으면 해. 나는 너에게 영지 관리를 시킬 예정이었는데, 시장이 있으니 굳이 필요는 없을 것 같으니, 나와 함께 몬스터 사냥을 한다.”
“알겠습니다.”
나인은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감히 누구의 말에 토를 달겠는가.
- 작가의말
이얍얍! 이제 영지편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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