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7
“못 보던 얼굴인데. 단순히 능력자 자격으로 이곳에 온 것인가?”
“아, 그건 아니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로인이라고 합니다. 로버트.”
석우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긴장감 넘치는 트윈헤드 오우거와의 전투의 진지함을 풀기 위함일까? 석우의 행동에는 가벼움이 섞여 있었다. 로버트는 그런 석우의 행동이 눈을 반짝였다. 로버트는 어린 나이에 이렇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몬스터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생명을 죽이는 것에 망설임이 없다. 로버트 자신은 조금 망설여져 석우가 트윈헤드 오우거를 공격하는 것을 방관하고 있었다. 그러니 석우가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오, 자네가 바로 로인이었군. 안 그래도 자내를 좀 만나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젊은데다가, 상당한 실력의 능력자 인 것은 처음 알았지만, 자네에 대한 이야기는 많이 들었네.”
로버트의 말에 석우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제가 그렇게 유명한 줄은 몰랐습니다만.”
“자네가 유명한 이유도 있겠지만. 내가 자내를 한번 만나보고 싶었던 이유도 영향을 미쳤겠지.”
로버트가 말했다. 석우는 고개를 갸웃했다. 자신을 만나보고 싶었다고 하는데, 왜 자신을 만나보고 싶어 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솔직히 평범한 사람들이 보았을 때나 대단한 정도지, 아직 로버트나 메이르 회장 정도 되는 사람이 보면 그리 대단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들의 눈에는 석우가 단지, 운이 좋아서 이곳 까지 오게 된 애송이로 보였을 것이었다.
“저를 보고 싶으셨다니, 이유를 모르겠군요.”
“뭐, 그건 차근차근 이야기를 하도록 하고... 일단 이 몬스터의 시체를 처리 하도록 할까?”
로버트가 자신의 앞에 쓰러져 있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시체를 바라보며 말했다.
“반반으로 하죠.”
“응?”
로버트는 갑작스러운 석우의 말에, 고개를 돌렸다.
“대충 저랑 로버트랑 반 정도씩 피해를 준 것 같으니, 몬스터의 시체를 반으로 나누는 것이 합당 할 것 같은데.”
석우의 말에, 로버트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도 시체에 관심이 있었지만, 자신 혼자 독차지 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그리고, 어차피 석우가 몬스터의 시체를 가지고 가도 할 수 있는 것은 얼마 없다고 생각해서 차라리 돈을 주고 팔라고 할 생각이었다.
“저 시체를 처리할 방법은 있고?”
“없지는 않지만, 지금은 없네요. 일단 제가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뭐, 알겠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석우가 시체를 모두 가지고 갈 수도 있다는 것은 생각하지도 않고 있었다. 그는 장사치들을 잘 알았다. 다른 사람들과는 몰라도, 이 위쪽에 있는 사람들과의 거래에서 장난을 칠 수 있는 장사치들은 없었다. 그것은 석우도 마찬가지라고 판단했던 것이었다.
석우는 아공간을 열어 트윈헤드 오우거의 시체를 집어넣었다. 로버트가 입을 벌렸다. 세상의 모든 과학과 정 반대되는 현상이었던 것이다.
“이거 이거. 검사가 아니고 마검사였던 것인가? 아공간 마법은 상당히 고클래스의 마법이라고 들었는데.”
“아니, 그저 스킬의 힘입니다.”
“스킬?”
“제 능력은 게임 캐릭터가 가지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죠. 게임에서 보이는 상태창과, 스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아공간이고.”
석우는 자연스럽게 말했다. 로버트는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겠네. 더 이상 물어보지는 않도록 하지. 어쨌든. 이 상태로는 모임이 불가능 할 것 같으니, 정리를 해야겠군.”
“제가 할 수는 없는 모양이니... 로버트가 알아서 해주시리라 믿습니다.”
“내가 정리하도록 하지.”
로버트가 수트를 벗으며 말했다. 석우는 수트가 저절로 벗겨져 가방 모양으로 변하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다.
“하나 궁금해서 그러는데, 영화에서 나오는 자비스와 같은 인공지능을 구현하셨습니까?”
“아니. 그건 열심히 해봤는데, 불가능이더군. 그래도 정교하게 프로그램을 해놓아서, 인공지능과 비슷해.”
“알겠습니다.”
석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만약 완벽한 인공지능을 개발했었더라면, 석우는 굳이 현대에서 골렘을 만들 때 마법을 사용하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 하지만 로버트도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을 실패했다니, 일찌감치 마법의 도움 없이 인공지능을 만드는 것을 포기하도록 했다.
석우는 지아와 함께 자리를 떴다. 이미 회원들은 모두 각자 집으로 돌아간 상태였다.
“덕분에 주변 신경 쓰지 않고 상대할 수 있었어.”
석우가 지아를 보며 말했다. 지아는 어깨를 으쓱하며 답했다.
“뭐, 덕분에 내가 무사 할 수 있었어 라고 답해 줘야하나?”
“하하.”
석우가 웃으며 말했다. 석우가 자신의 집 문을 열었다.
“마스터!”
린이 달려왔다. 석우는 달려오는 린을 살짝 피하고는, 바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온 몸은 땀으로 젖어 있었고, 옷 여기저기에는 트윈헤드 오우거의 피가 묻어 있었다. 잠시 서운한 표정으로 석우를 바라보던 린은 석우의 옷에 피가 묻어있자. 얼굴을 풀었다.
석우는 피로한 몸을 이끌고 샤워를 한 다음, 개운한 표정으로 옷을 입었다. 편한 활동복으로 갈아입은 석우는, 침대에 누웠다.
똑똑.
“들어와.”
석우의 말에, 방문이 열리고 린이 들어왔다. 린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석우에게 다가왔다. 석우는 린을 보고 몸을 일으켰다.
“혼자 심심하지는 않았어?”
석우의 말에, 린은 빠른 걸음으로 석우에게 다가가 석우를 껴안았다.
“...혼자 할 것도 없이. TV만 보고 있었어.”
조용히 말하는 린의 목소리에, 석우는 잠시 미안함을 느꼈다. 석우는 린의 머리를 쓰다듬고, 린을 때어내었다. 석우는 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같이 재미있는 놀이라도 하자. 오늘은 밤새서 놀자!”
“밤새면서?”
“어. 지아랑 같이 보드게임도 하고... 아니면 xbox나... 여러 가지 있잖아?”
“응!”
린은 고개를 끄덕였다.
로인은 자신의 앞으로 날아온 급보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제 2황자, 에드워드가 보낸 급보였다. 내용을 요약하자면 바쁘겠지만 자신을 한 번 만나러 올라오라는 내용이었다. 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가지 않을 수도 없는 입장이었다. 2황자가 직접 불렀는데, 어떻게 거절을 할 수 있겠는가.
내키지는 않았지만, 가는 수밖에 없었다. 로인은 영지를 관리하는 것만 해도 바쁜 와중에 왜 2황자가 자신을 부르는 지 이해할 수 없었다. 자신이 영지전에 승리하고, 영지를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을 알 텐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자신을 부른 것은 분명 자신의 충성심을 확인하려는 것이리라. 로인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니면 내 능력을 시험 해보려는 것일 수도 있겠지.’
로인은 머리를 굴리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차피 어떤 이유에서든 2황자가 자신을 불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고, 자신은 가야하는 입장이었다. 굳이 복잡하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린.”
로인이 나직이 입을 열었고, 로인의 뒤쪽에서 린이 모습을 드러내었다.
“같이 좀 가야 할 것 같아.”
로인의 말에 린은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그녀는 가끔은 지나치게 진지했다. 특히 로인의 표정이 그리 좋지 않을 때, 그녀는 진지했다. 로인은 자신의 자리를 정리하기 시작했다. 일단 영지의 일을 모두 정리를 해놓고 떠나야 했다. 로인이 직접 지시하거나 직접하고 있는 업무는 별로 없었다. 영지도 안정기에 들어섰고, 나인과 멀린, 그리고 멀린과 뜻을 같이 하는 기사와 몇몇의 가신들은 이미 자신의 명령을 듣고 있었고, 로인은 넘쳐나는 인재들을 가만히 둘 사람이 아니었다.
나인은 정보부를 관리하는 와중에 멀린에게 마법을 배우고 있었고, 기사단장과 기사들은 블랙 와이번 기사단에게 훈련을 받음과 동시에 군대를 정예화하고 있었다. 로인이 가장 많이 신경 써야 할 부분은 바로 몬스터와 상단에 관한 것이었는데, 아무리 몬스터로 인한 피해가 거의 없더라도 부상자들과 사망자들이 가끔 나왔고, 병사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면 영지민들의 불안감이 가증했다. 치안에 문제는 없지만 조금씩 불안을 느끼고 있는 영지민들의 생활은 정상적으로 돌아가지 못할 때가 있었다.
원래 자신의 영지였던 라쿠스 지방의 사람들은 오히려 피해가 거의 없는 것에 감사하며 활기차게 살아가고 있었지만, 전 바하드 자작령의 사람들은 그렇지 않았다. 로인은 그런 문제 때문에 머리를 감싸고 있는 상황이었다.
“어쩔 수 없지. 멀린에게 부탁하는 수밖에.”
멀린이 마법 물품과 나인을 가르치느라 바쁜 것은 알지만, 영주인 자신이 없을 때 자신을 대신할 사람은 멀린 밖에 없었다. 로인은 간단한 준비 후, 3일 후에 떠나기로 하고 다시 서류를 살폈다.
린은 로인이 다시 서류를 살피기 시작하자, 잠시 그를 바라보다가 모습을 숨겼다.
3일은 당연하게도, 금방 지나갔다. 처리해야 할 일도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금방 지나간 것이다. 로인은 수도까지 가는 것에 마차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냥 가도 되지만, 먼 길을 불편하게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영주 전용마차. 최고급 목제와, 외관에도 신경을 써서 평범한 귀족의 마차처럼 보였다. 수수하지만, 동시에 고급스러움이 담겨 있는 마차였다.
정말 중요한 것은 마차의 기능이었다. 마차는 스프링이 달려있어 마차에 탄 사람들에게 충격이 가지 않도록 했고, 모터가 달려있어 유사시에는 말이 없어도 달릴 수 있었다. 그리고 가장 좋은 점은...
“넓군.”
마차는 넓었다. 매우. 멀린은 고클래스의 마법사답게, 공간 확장 마법을 걸어주었고, 마차는 바깥에서 보는 것보다 족히 열배는 넓었다.
“이래서 마법사가 중요하다니까.”
로인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마차 한쪽에 있는 침대에 누웠다. 어느새 린이 옆에 서 나타나 같이 누웠다. 마차는 전문 마부가 몰고 있을 것이었다. 마부라고 하지만, 정보부의 사람 중 하나라서 무력도 떨어지지 않았다. 웬만한 산적들은 소리 없이 넘어 가리라.
로인은 편안함을 느끼며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판테아 대륙에서는 오랜만이네. 이렇게 한가하게 누워 있는거.”
“마스터가 항상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하니까 그렇지. 그냥 멀린에게 알아서 하라고 하고 마스터는 쉬면 되잖아.”
“에이, 어떻게 그럴 수 있냐. 그래도 내가 영준데.”
로인은 린의 말에, 웃으며 답했다. 린은 로인을 바라보았다. 사람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귀여운 토끼의 모습이 연상되는 린의 모습에, 로인은 린의 이마에 입을 맞추었다. 그는 요즘, 자신의 마음이 자주 흔들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지아가 있었지만, 린도 나쁘지 않았다. 어차피 지아와 결혼을 한 것도 아닌데, 린과 자신이 무엇을 하든 무슨 상관인가.
로인은 흔들리는 자신의 마음을 느끼면서도,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린은 상당히 매력적인 여자였고, 자신에게 헌신적이었다. 이런 린을 내버려두고 지아만을 바라본다면 그것은 너무 가혹했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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