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3
로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항상 그렇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기분 좋은 일은 아니지 않나. 벌써 3번 연속으로 습격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로인은 자신의 검을 뽑아 들었다. 항상 그랬듯이, 습격의 시작은 멀린의 마법이었다. 이번에는 마법 물품의 도움을 받아서 마법을 시전했다. 그 편이 더욱 쉽고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윈드 커터!”
아직은 해가 뜨지 않은 이른 새벽. 눈에 보이지도 않는 바람의 칼날이 적진을 갈랐다. 몇 배나 강화된 보초들이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졌다. 하지만.
삐잉 삐잉
마나의 파동이 일어나며 소리를 내었다. 마나를 일정량이상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소리였다. 반응은 기사들의 막사에서 일어났다.
“습격이다!”
기사들의 외침에 병사들이 엄청난 속도로 일어나 막사 밖으로 빠져 나왔다. 불안한 마음에 잠도 못 자던 병사들이었다. 로인은 인상을 찌푸렸다. 예상을 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적의 반응이 빠를수록 입힐 수 있는 피해는 줄어든다. 로인은 서둘러 궁수들에게 신호를 보내었다. 급하게 나온 병사들은 별다른 무장을 하고 있지 않았다.
대기를 하고 있던 궁수들이 일제히 화살을 쏘았다. 적병들이 여기저기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중 몇몇은 폭발을 일으켰다. 병사들의 행동이 위축되었다. 궁수들이 계속해서 화살을 쏘았다. 로인이 손을 들어 궁수들을 멈추었다. 충분히 피해를 입혔다. 어차피 활의 사거리가 있어서 더 큰 피해를 입히려면 기다려야했다. 병사들이 모두 물러난 것이다.
로인은 멀린과 나인을 돌아보았다. 마법 물품을 하나씩 들고 있는 그들은 마법을 시전 했다. 역시나 가장 효율성 있는 윈드 커터였다. 보이지 않아서 피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게다가 윈트 커터는 사거리가 활과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멀었다.
마법에 당한 적병들이 비명을 내질렀다. 로인은 비명을 들으며 병사들을 돌아보았다. 아직이다. 알람 마법을 설치한 마법사들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레몽 후작. 그가 나타난다면 바로 후퇴를 해야 했다. 물론 자신이 이렇게 혼란을 만들었으니 조금 있으면 베르시아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올 것이다. 레몽 후작은 베르시아 백작과. 자신은 그의 떨거지들만.
로인은 그렇게 생각하고, 미소를 지었다. 비명이 들려온다. 하지만 비명이 들려오는 방향이 달랐다. 로인이 있는 반대편의 진영에서 비명이 들려온다. 베르시아 백작이 군대를 이끌고 온 것이다. 로인은 검을 들고 돌격을 명했다.
레몽 후작은 베르시아 백작의 기운을 느끼고 베르시아 백작의 군대 쪽으로 갈 것이 뻔하다. 이제 군대를 움직여도 될 때였다.
“돌격! 모두 죽여라.”
로인의 목소리에 전군이 일시에 움직였다. 잘 훈련 받은 병사들이 이미 부서지고 부서진 목책을 넘고 적병들에게 돌격했다. 적병들은 안절부절 하지 못하다가, 기사들의 명령으로 서둘러 대열을 맞추었다. 로인은 피식 웃었다. 고작 저런 행동으로 돌격을 막을 수는 없다. 아직 완벽하게 무장을 갖추어 입은 병사들도 아닌데, 로인의 군대에 상대될 리가 없었다.
로인의 군대와 적병들이 뒤섞였다. 로인은 그들 중 지휘관들만 노렸다. 기사들이 죽어 말위에서 떨어졌다. 로인은 그들의 목숨을 거두며 마치 사신 같은 모습으로 주변을 돌아보았다. 이미 주변의 지휘관급의 기사나 병사들은 모두 죽어 있었다. 린과 그녀의 부대의 힘이었다.
“일단 이쪽은 정리 되었고, 저쪽도 레몽 후작만 처리 되면 정리가 되겠지.”
로인은 마음을 편히 먹었다. 이미 공은 충분히 세웠고, 굳이 조급할 필요는 없었다. 로인은 눈에 띄는 기사들과 지휘관들은 모두 죽이며, 적병들의 혼란을 회복시키지 못하게 만들었다.
아쉽게도 기사단이 오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베르시아 기사단이 상대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로인은 이제 전쟁이 끝났다는 것을 느꼈다. 아니, 전쟁이 끝나는 것은 아니지만, 전투는 끝났다. 레몽 후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저 멀리서 뜨는 해가 보이고, 그 해가 주는 조그마한 빛이 아군의 깃발을 비추고 있었다.
이번 전투에서 로인의 군대가 쓰러트린 적병은 약 2만. 적은 숫자는 아니었다. 지금까지 모두 합치면, 젝슨 백작의 3만. 그리고 습격으로 8만. 지금 2만. 총 13만의 적군을 로인의 군대가 상대했다. 이번 전쟁에서 최고 공신자로 이름이 올라도 될 만한 공이었다.
물론 아직 본진이 처리되지 않았으니 뭐라 말할 수는 없었다. 로인은 며칠 동안 잠을 잘 자지 못한 것을 깨달았다. 하루에 고작 2시간씩 잠을 잤다. 로인은 전장의 피 냄새를 맡으며 눈을 잠시 감았다 떴다.
로인은 이제 됐다고 느끼며, 부대를 물렸다. 정리는 다른 부대가 알아서 할 것이다. 로인은 베르시아 백작을 찾았다. 그는 미간을 찌푸리고있었다.
“레몽 후작은...”
“죽었네. 세상은... 소드 마스터 한명을 잃었지.”
베르시아 백작이 말했다. 하지만 로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소드 마스터 한명이 사라지고 또 다른 소드 마스터 한명이 나타날 겁니다.”
“그게 누군가.”
“저라고 대답하면 너무 잘난 척이 심하겠죠? 크론벨. 블랙 와이번 기사단의 단주. 소드 마스터가 될 겁니다.”
“그는 레몽 후작과의 전투로 팔을 잃었다고 들었는데.”
“팔이 없다고 소드 마스터가 되지 못하는 것은 아니죠.”
“...”
베르시아 백작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별로 동의하는 듯한 표정은 아니었다. 사실 팔을 잃었다면, 검의 균형이 무너지는 것이 사실이었다.
“전투는 우리의 승리입니다. 압도적으로 승리를 거두었네요. 적어도 제 부대는.”
로인은 그렇게 말했다. 베르시아 백작은 고개를 끄덕였다. 적어도 로인의 부대는 압도적인 승리를 거두었을 것이 확실하다. 어차피 수가 앞서고 있었기에 승리는 확실했다.
“덕분에.”
“별로, 한 게 없다고... 말 할 수는 없겠죠? 그래도 레몽 후작을 맡아 주셨던 덕분이죠.”
로인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말했다. 베르시아 백작은 쓰게 미소를 지었다. 로인이 없었다면 전투는 승리하기 어려웠을 것이었다. 적군의 절반을 상대해준 사람이 로인이었다. 그가 없었다면 이렇게 쉽게 전투를 치루었을리 없었다.
“레몽 후작... 내가 레몽 후작을 죽여서 얻은 영광과 자네가 10만을 죽여 얻은 영광. 무엇이 더 클 것이라 생각하는 가.”
“글쎄요. 그건 두고 보면 알겠죠.”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몸을 돌렸다. 피곤했다. 이 피 냄새가 지긋지긋했다. 벗어나고 싶었다. 이 전장을. 피로 뒤엎여 있는 이곳을.
로인은 한숨을 내쉬었다. 스스로 너무 감성적이다. 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다. 왜 그럴까. 전쟁의 충격이 이제야 다가오는 것인가. 사람을 수백, 수천 명 죽였기 때문에 그런 것인가. 로인은 고개를 저었다. 이렇게 감성적으로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어서 빨리 이 전쟁을 끝내야 했다. 얼마나 걸릴지 모른다. 만약 카밀라 제국이 본격적으로 전쟁에 참여 한다면 전쟁은 길어질 것이다. 로인은 서둘러 이 전쟁을 끝내고 싶었다. 원래는 카밀라 제국이 구원병을 보내면 그 구원병을 모두 죽이고 도리어 카밀라 제국으로 쳐들어가는 것을 생각했다.
사실 카밀라 제국이 조금이라도 구원병을 보낸다면, 제국간의 전쟁은 당연히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거기서 공을 세우고. 바로 남작, 아니면 자작까지 노려볼 생각이었다. 한 50만의 적군을 죽이면 되겠지. 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이가 없는 생각이지만, 로인에게는 그것을 실행할 능력이 있었다. 이 전쟁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준비를 했던가.
하지만 지금은, 서둘러 전쟁을 끝내고 싶다라는 마음 밖에 들지 않았다. 힘들었다. 숨 막히게 움직이며 전쟁을 하는 이 상황이 그리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게다가... 할 일이 있었다. 어쩌면 정말 무모한 것일지도 몰랐지만, 그는 전쟁이 끝나고 할 일이 있었다.
“나인.”
로인이 욕탕에 몸을 담그고 입을 열었다.
“예. 마스터.”
“내가 밤 시중을 들라고 하면.”
로인의 말에 나인의 얼굴이 굳었다. 밤 시중. 그것이 뜻하는 바를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 로인은 눈을 감았다 떴다. 피곤하고 지친 상태다. 누군가를 안고 싶었다. 그 품에 안겨 잠들고 싶었다. 그의 눈에 나인이 들어왔다. 린도 없고, 실비아도 없다.
“나쁜 놈이 되는 건가?”
“...”
로인의 말에, 나인은 고개를 강하게 저으며 부정하고 싶었다. 절대 아니라고. 당신은 나의 주인님이라고. 나를 소유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로인은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 하지만 그녀는 가만히 서있을 뿐이었다. 그녀의 입이 열리지 않을 것 같자, 로인은 다시 눈을 감았다 떴다. 매우 느리게 움직이는 그의 행동이 나인의 마음을 간질였다.
“아니면... 주인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행사하는 마스터가 되는 걸까.”
로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참방거렸다. 눈을 감고 고개를 쳐들었다.
“...”
나인은 이번에도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나인도 알았다. 이것이 불충하다는 것을. 주인이 묻는 말에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는 다는 것을 나인은 전에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하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녀의 마음속에서 두 마리의 오우거가.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렇다고, 당신에게는 권리가 있다고 답하라고 말하는 오우거. 그렇지 않다고, 나쁘다고 답하라는 오우거. 그녀는 눈을 감았다. 그녀가 어떻게 해야 할까. 그녀는 갈등했다.
“피 냄새는 계속 남아있네.”
로인은 중얼거리며 눈을 떴다. 전장에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곳에 막사를 세웠지만 역시나 피 냄새가 진동했다. 20만이 흘린 피는 강이 되어 흘렀다. 그의 눈에 막사의 천장이 들어왔다. 검은 색의 천장이 그를 삼키는 듯 했다.
“수건.”
로인의 말에, 나인은 화들짝 놀라며 서둘러 수건을 펴서 로인의 몸에 있는 물기를 닦았다. 로인은 나인이 자신의 몸을 모두 닦자, 옷을 입었다.
나인은 문득 떠오르는 기억에 비틀거렸다. 아버지가 말했다. 혹시라도... 자신이 패하게 되면 도망을 가라고. 그러다가 잡히면... 스스로 목숨을 끊으라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불행해 진다고.
‘...지금... 저는 행복한 걸요. 아버지. 우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아요. 하지만... 저는 지금 행복해요. 마스터가 있기에 행복해요. 그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 행복해요.’
그녀는 그렇게 속으로 중얼 거렸다.
나인은 고개를 들었다. 그녀가 비틀거리는 것을 보고, 그녀를 잡아준 로인이 그녀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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