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
“...shit. 저건 별로 좋지 않은데...”
로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며 중얼거렸다. 포탈을 사용한 것은 어디까지나 적군에게 피해를 주려는 의도였다. 넘쳐드는 몬스터 때문에 아군까지 몬스터에게 피해를 입으면 작전은 실패나 다름이 없었다.
로인이 이렇게 자리에서 일어나 욕을 중얼거린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저...건 확실히 좋지 않을 것 같죠?”
멀린도 자리에서 일어나 말했다.
“오크 맞지?”
“오크는 오크인데...”
로인이 자리에서 일어나 욕을 중얼거린 것은, 오크 때문이었다. 그냥 오크는 아니었다. 오크는 오크인데, 사람보다 큰 오크였다. 오크는 원래 성인 남자보다 키가 작다. 하지만 그 힘이 뛰어나 병사들이 쉽게 상대하지 못하는 몬스터였는데, 키가 2미터를 넘어 3미터에 육박하고 있으면 오우거보다 강할 것이 분명했다.
그런 오크들이 떼거지로 나오고 있었다. 지금까지 나온 것이 50마리 정도. 그 50마리가 포위를 뚫고 빠져나가려 하고 있었다. 근데 그 방향이 좋지 않았다.
“자이언트 오크인가.”
멀린이 중얼거렸다. 로인이 고개를 돌려 멀린을 바라보았다. 자이언트 오크, 로인도 알았다. 게임에서 자주 등장하는 몬스터 중 하나였으니까. 하지만 게임에서 보던 것과는 달랐다. 말이 2미터, 3미터지, 실제로 보면 엄청났다. 샤벨타이거도 자이언트 오크 앞에서는 고양이가 될 정도.
“어떻게 해야 하지?”
로인이 중얼거렸다. 옆에서 멀린이 입을 열었다.
“지금으로서 최선의 방법은... 골렘들을 소환해서 자이언트 오크를 상대하게 하는 것이죠.”
로인은 멀린의 말에 가이스를 소환했다. 가이스는 소환이 되자마자, 적진으로 달렸다.
콰앙
가이스의 주먹이 가장 앞에 있던 자이언트 오크를 때렸다. 자이언트 오크가 휘청 이더니, 이네 쓰러졌다.
“취엑?”
덩치는 커졌어도 지능은 똑같은 모양이다. 로인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가이스에게 명령했다.
“가이스, 아이언 골렘!”
10기의 아이언 골렘들이 나타나 자이언트 오크들과 대치했다. 자신들 보다 큰 아이언 골렘임에도 불구하고 자이언트 오크들은 무식하게 방망이를 휘둘렀다. 로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골렘들로 하여금 자이언트 오크를 유인해서 적진 한가운데 떨구어 놓으면 될 것 같습니다.”
멀린이 옆에서 조용히 말했다. 로인은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가이스가 자이언트 오크와 싸우며 일부러 죽이지 않고 도망을 갔다. 분노한 자이언트 오크가 가이스를 따랐다. 나머지 골렘들도 그렇게 했고, 자이언트 오크들은 분노하여 그들을 따랐다.
“... 포탈을 사용하는 것. 조심해야겠군.”
로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크론벨을 돌아보았다. 크론벨이 고개를 끄덕이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로인이 크론벨의 뒤를 따랐다. 순식간에 목표한곳, 포탈 앞에 도달한 크론벨이 검을 휘둘러 포탈을 베었다. 동시에 로인이 아공간을 열었다. 포탈은 아공간 속으로 들어갔다.
더 이상 몬스터들은 나오지 않았다. 로인은 이제껏 나온 몬스터만으로도 충분하다 여기고 포탈을 회수하여 멀린에게 갔다.
“이제 돌아가자.”
“예.”
“그래도 이대로 돌아가는 것은 조금 아쉬우니... 멀린.”
멀린이 작게 한숨을 쉬고 윈드커터를 시전 했다. 마법 아이템의 도움을 받아 시전한 윈드커터는 본래 멀린이 시전할 수 있는 양의 두 배나 많았다.
쉬익.
윈드커터가 부드러운 바람소리를 내며 뻗어나갔다.
“모, 몬스터. 억.”
여러 몬스터와 대치하고 있는 최전방의 조금 뒤에 서있는 병사들이 하나씩 뒤로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들의 몸은 모두 반으로 갈라져 있었다. 로인은 그 모습을 보고 몸을 돌려 말에 올랐다.
“습격은... 잘 되셨나요?”
“뭐, 그렇지.”
로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정도면 잘 된 게 맞았다. 아무런 희생도 없었고, 엄청난 수의 적병이 죽임을 당했으니까. 지금도 몬스터와 대치하며 죽임을 당하고 있을 터였다.
‘정말 손 안대고 코푸는군.’
로인은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떴다. 나인이 로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전투의 흔적이 없군요. 마스터.”
나인의 눈은 정확했다. 로인에게 전투의 흔적은 없었다. 전투를 하지 않았으니, 흔적이 있을 리 없었다. 로인은 어깨를 으쓱했다.
“직접 전투를 하지는 않았으니까.”
“습격은 성공하셨는데, 직접 전투를 하지 않으셨다고요? 믿기 힘든 말인거, 아시죠?”
“뭐, 멀린도, 크론벨도, 나도. 모두 직접 전투를 하지는 않았어. 가지고 있는 것을 이용했지.”
“...뭔가 불안한 것은 왜일까요.”
나인이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로인은 그 귀여운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나인을 잠시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
“아, 별로 불안해 할 필요는 없는데. 우리 측 피해는 없음. 전무. 상대측 피해는 적어도 5만, 많으면 한 10만 까지도 가능 할 것 같은데.”
아직 전투의 끝을 보지 않고 왔다. 로인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피해가 약 5만 명가량이었다. 부상, 사망 모두 포함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 이말이죠. 전투를 치루지도 않고.”
나인이 물었다. 로인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했다.
“몬스터를 이용했어.”
“몬스터?”
“아, 정확히는 포탈을.”
로인이 말하고 미소를 지었다. 나 잘했지, 라고 묻는 아이처럼. 하지만 나인의 얼굴은 대번에 굳었다.
“그... 몬스터가 나오는 포탈을요?”
“어. 피해도 하나도 없고. 적군과 몬스터를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방법이니까.”
로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인의 표정이 별로 좋지 못했다. 로인이 나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로인을 똑바로 마주 보았다. 그녀의 손이 올라갔다.
짜악.
나인의 손바닥과, 로인의 뺨이 마찰을 하며 소리를 내었다.
‘어...라?’
로인은 멍한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나인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지고 있었다. 로인은 그런 나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나인의 얼굴은 많은 감정을 담고 있었다. 분노, 슬픔, 안타까움, 당황스러움. 나인의 입이 천천히 열렸다.
“어떻게, 어떻게 그럴 수 있어요? 마스터가 어떻게!”
나인의 고함에 로인이 놀라 손을 뻗었다. 하지만 나인은 로인의 손을 때려, 뿌리쳤다. 나인은 다시 입을 열었다.
“어떻게... 몬스터를 이용해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거죠? 자신과 같은 사람을... 어떻게 몬스터의 밥으로 내던져 줄 수 있는 거에요?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도 않나요? 몬스터에게 죽임을 당해야 하는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은 건가요?”
“...”
로인이 손을 움찔거렸다. 그의 입술은 열릴락 말락, 달싹거리고 있었다. 처음이다. 여자에게 뺨을 맞아 본 것도 처음이고, 나인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도 처음이다. 로인은 당황스러웠다. 무엇이 잘 못 되었는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과는 별게로 당황스러웠다. 항상 자신을 주인으로 생각하고, 잘 섬기던 나인이었는데...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잖아요? 몬스터에 의해, 목숨을 잃고, 가장을 잃고, 가족을 잃고, 희망을 잃은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봐왔잖아요!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 거죠? 그것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이!”
“...!”
‘아...’
확실히. 그는 몬스터로 인해 피해를 받는 사람들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그들은 몬스터들에게 목숨을 잃었으며, 가장을, 아들을, 희망을 잃었다. 그것을 지켜보고도, 적군이라고 몬스터와 일부러 전투를 하게 만들었다.
“당신은...! 그 사람들이 불쌍하지 않은 건가요? 적군이라는 이유로, 같은 인간을 어떻게... 적군이라도, 그들은 사람이에요. 그들에게도 가족이 있고, 돌아갈 집이 있어요. 그것을 잘 아는 당신이, 어떻게 그들을 몬스터의 손에 죽임을 당하게 할 수 있는 거죠?”
나인이 흐느꼈다. 나인의 목소리는 점차 작아졌다. 로인이 나인에게 손을 뻗었다. 나인이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래도 그녀의 입은 멈추지 않았다.
“당신이 무슨 마족이라도 되나요? 인간의 목숨은 벌레의 그것과 같이 여기는 마족이라도 되나요? 그게 아니면, 당신의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인간의 목숨을 쉬이 여기는 것인가요? 이방인이라서, 그런 건가요? 그저... 이것은 유희거리 밖에 되지 않는 것인가 보죠?”
나인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로인은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확실히. 나는 그들을 사지로 몰아넣었지. 몬스터의 손으로 말이야.”
로인이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했어야 하지?”
“적어도 직접...!”
“아, 몬스터의 손에 죽임을 당한 그들이 불쌍한가?”
로인의 목소리가 조금 차가워졌다. 나인은 그런 로인의 목소리에 심장이 얼어붙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아...”
나인이 질끈 눈을 감았다. 자신은 종이었다. 그런데 감히 주인의 얼굴에 손을 대고, 소리를 쳤다. 당장 죽어도 할 말이 없는 죄이다.
‘내, 내가 왜...’
나인 자신도 왜 그랬는지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가 평소에 존경하고, 사랑하던 그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감히 종의 신분으로 그의 얼굴에 손을 대었다.
“나는 몬스터를 이용했으니, 몬스터보다 더 나쁜 놈이 되겠군. 이런, 사람들이 몬스터보다 더 나쁜 놈의 손에 죽어서는 안 되겠어.”
나인이 가슴을 부여잡았다. 로인은 그런 나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고개를 들어.”
로인의 말에, 나인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몬스터를 이용해 사람을 죽인 나야. 몬스터 보다 더한 나의 손에, 사람이 죽으면 얼마나 불쌍할까. 아, 그럼 어쩔 수 없이 포탈을 계속 이용해야겠네? 몬스터를 이용하는 나는, 뭐... 너의 말처럼 마족이라도 되나보지. 아, 이방인이라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말이야.”
나인이 결국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았다. 로인 또한 천천히 앉아 나인을 바라보았다.
“그런데 말이야. 마족이라도, 이방인이라도 자신의 수하는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백성은 소중히 여기고, 자신의 친구는 소중히 여기지.”
“...”
“나는... 내가 마족이, 마왕이 되는 한이 있더라도 내 백성들에게 피해가 없었으면 하거든. 모두가 행복하게 다시 집으로 돌아갔으면 하거든... 이미 몬스터로 인해 고통 받는 내 백성들인데, 같은 인간 때문에 고통을 받지는 않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어?”
로인이 말하며 나인을 감싸 안았다.
“죄, 죄송해요.”
나인이 울음을 멈추지 못하며 말했다. 로인은 그녀를 토닥였다.
“아, 별로. 괜찮아.”
로인의 말에 나인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나인의 흐느낌과 함께, 로인의 옷이 젖어갔다.
- 작가의말
이얍얍!
Commen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