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2
실비아는 자신의 방문으로 들어오는 눈을 보며 무표정한 얼굴을 지었다. 그녀는 어지러운 머릿속을 달래며 조심스럽게 창틀에 얇게 싸인 눈을 만져 보았다. 차가운 느낌이 그녀의 손을 타고 몸으로 침투했다. 실비아는 차가운 한기가 자신의 손가락을 타고 올라오자,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의 고운 얼굴에 흠집이 생겼다.
“실프.”
실비아는 조용히 중얼 거렸다. 그녀의 부름에 실프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소환 주문도 없이, 이름만 부르는 것으로 실프를 소환한 실비아는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지.
-요즘 무슨 일이 있는 거야? 왜 그렇게 기운이 없어...
실프는 걱정스럽게 실비아를 바라보았다. 그녀가 가볍게 실비아의 주위를 돌았다. 따스한 바람이 실비아의 한기를 덮어 주었다. 실비아의 표정이 조금 풀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것도 아니야. 단지... 나는 이렇게 나날이 강해지는데, 그는 어떨까. 잠시 생각해 본거야.”
실비아가 입을 열었다. 이미 로인을 마지막으로 본 것이 몇 개월 전이었다. 그 동안 로인을 만나보지 못했으니 그에 대한 그리움은 점점 커져만 갔다.
-그는 잘 지내고 있어. 그 또한 강해지고 있고... 그의 영지도 점점 강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어.
“눈의 정령들에게 물어본 거야?”
-눈의 정령들에게도 물어보았고... 골렘들의 왕에게도 물어보았어.
“가이스? 가이스는 그저 중급 골렘의 정령일 텐데?”
-10 명의 철기사들을 부하로 두고 있어. 그는 이미 상급의 정령이 되었어. 뭐, 골렘의 정령이 그밖에 없으니, 빠른 성장은 당연하겠지.
실프의 말에 실비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돌보아야 할 다른 정령들이 없으니, 그의 성장이 빠른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물론, 로인의 곁에 있었다는 점도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으리라.
“미안하네. 나 때문에 너희는 한 달 전에야 겨우 중급으로 등급을 올렸잖아.”
-덕분이라고 하는 게 맞는 표현이겠지. 네가 좋은 친구를 둔 덕분에, 정령석도 얻고 마나 포션 또한 얻었잖아.
실프가 말했다. 모두 로인이 실비아에게 준 것이었다. 그것 때문에 몇 백 년을 수련해도 힘들다는 등급을 올리는 것에 성공했다. 대량의 정령력과 마나를 받아서 그런 것임이 분명했다.
실비아는 쓴 웃음을 지었다. 자신 덕분이라고 말은 하지만, 모두 로인에게 받은 것이니 로인 덕분이었다. 실비아는 로인이 부럽기만 하였다. 자신이 비록 로인보다 더 좋은 정령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기는 하였지만, 그녀의 능력은 성장이 더뎠다.
아마 경험과 아이템의 문제일 것이라 그녀는 생각했다. 간간히 몬스터를 해치우며, 요즘은 자주 성 밖에 나가서 몬스터를 사냥하였지만. 미숙한 것은 여전했다. 몬스터를 발견하기도 전에 그녀가 몬스터에게 발각당해 몬스터가 몰려오는 것이 자주 일어났다.
실비아는 잠시 찌푸렸던 인상을 폈다. 그녀는 입을 열었다.
“실프, 눈 좀 치워줘.”
그녀의 말에 실프는 고개를 끄덕이고 몸을 부지런히 움직이며 눈을 치우기 시작했다. 실비아는 실프가 눈을 모두 치우자, 그녀를 소환 해제 시켰다. 실프와 이야기를 나누었음에도 그를 그리워하는 그리움은 전혀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더욱 더 커지는 느낌이었다. 실비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고는 창문을 닫았다.
로인은 눈으로 뒤덮여 있는 커다란 집을 보고 인상을 찡그렸다. 어제, 사망자가 한 명 늘었다. 보통 때였다면 로인은 슬퍼하며 장례를 잘 치룰 수 있게 하라고 말을 하고 넘어갈 일이었다. 하지만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바로 죽은 아이가 고아라는 점과, 마지막으로 들른 곳이 쿠아인이라는 상인의 집이었던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로인이 직접 쿠아인의 집으로 찾아 온 것이었다. 그저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로인은 이상한 느낌을 받으며 그의 문을 두드렸다.
똑똑.
대답은 조금 뒤에 들려왔다.
“누구세요?”
“지나가던 사람입니다. 눈이 너무 심해서... 잠시만 신세를 질 수 있겠습니까?”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안의 동향을 살폈다. 대답을 한 사람은 잠시 조용히 생각 하는 듯싶더니, 문을 열었다.
“들어오세요.”
“아, 감사합니다.”
로인은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옷에 묻은 눈을 털고 그의 집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론이라고 합니다.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쿠아인이라고 합니다. 난로 근처에서 좀 쉬세요. 따듯한 스프를 가져다 드리겠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그럼.”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난로 앞에 가서 앉았다. 그는 난로까지 가면서 빠르게 집안을 훑어보았다. 별다를 것은 없었다. 다만, 평민들은 가지지 못할 여러 장식품들을 보아서 그가 제법 돈을 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간단한 조사를 하여 알고 있었던 사실이다.
쿠아인은 잠시 눈을 빛내며 로인의 뒷모습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쓸 만하군.’
그는 속으로 생각한 뒤에 로인에게 줄 스프를 가지러 주방으로 향했다.
“어디서 오셨습니까? 이곳 주민은 아닌 듯싶은데.”
쿠아인인 로인에게 스프를 가져다주며 물었다. 로인은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하며 그것을 받았다.
“아, 원래 이곳에서 자라다가, 부모님을 몬스터에게 잃고 돈을 벌겠다고 수도로 갔다가 결국 조금의 돈만을 모아서 다시 고향을 찾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와보는 고향인데, 너무나 많이 변했군요.”
로인이 자연스럽게 말했고, 쿠아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내면의 미소는 더욱더 진해졌다.
‘가족도 없고.’
“몇 개월 전에 영주님이 바뀌면서 영지 또한 많은 부분 바뀌었지요.”
쿠아인이 대답했다. 로인은 쿠아인이 자신을 쓸어보는 눈빛에 잠시 눈을 감았다 떴다.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로인은 그의 대답을 듣고서야 스프를 입에 가져다 대었다. 로인은 스프를 삼키자 미약하지만 몸을 도는 피로함에 잠시 이상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고, 마나를 살짝 일으키며 스프를 계속해서 먹었다.
‘독이라... 죽을 위험이 있는 독은 아니고... 수면 역할을 하는 독이군.’
로인은 속으로 생각하며 마나로 독을 모두 없앴다.
‘뭐, 그래도 성의를 봐서라도 잠들어 줘야지.’
“으... 왜 이리 졸리지?”
로인은 인상을 찌푸리며 바닥으로 누웠다. 쿠아인은 로인이 바닥에 눕자, 미소를 지었다.
‘가족도 없고, 돌보는 사람도 없다. 처리해도 알 사람은 없어.’
그는 그렇게 생각하며, 입을 열었다.
“이봐!”
“예에!”
그의 부름에, 덩치 큰 남자가 어디선가 나타나 달려왔다.
“이 남자를 지하실에 두도록 해.”
“하지만 지하실에는...”
“상관없어.”
쿠아인의 말에, 남자는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로인을 들고 지하실로 내려갔다. 쿠아인은 잠시 로인을 보다가, 미소를 지었다.
“얼굴이 대단하군. 상급이야.”
그는 그렇게 말하고, 하인들을 불러 로인의 흔적을 없에었다.
‘호오... 이 녀석 봐라?’
로인은 쿠아인의 행동에 어이가 없음을 느꼈다. 수면제를 먹이고, 지하실에 가두란다. 로인은 자신을 의자에 앉히는 남자의 행동을 느끼고, 눈을 번쩍, 떴다. 남자는 놀라 뒤로 넘어졌다. 로인은 남자의 배를 걷어찼다.
남자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나직히 신음을 흘렸다.
“으...”
로인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여러 명의 아이가 겁을 먹은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을 보는 로인의 눈에 불꽃이 튀었다. 상황이 이해가 갔다. 쿠아인. 그자는 노예상인이다. 로인은 상황을 파악하고 바닥에서 고통에 뒹굴고 있는 남자를 보았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
“크으...”
남자는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고 신음만 흘렸다. 로인은 인상을 찌푸리고 다시 그를 걷어찼다.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는데?”
“사, 살려주세요. 저는 그저 시킨 일을 한 것 밖에는...”
“알겠으니까, 이게 다 뭐냐고.”
“쿠, 쿠아인이 고아들을 잡아다가 옆 영지의 다른 상인에게 팔고 있어요. 이 주일에 한번 씩...”
남자는 떨리는 목소리로 순순히 토해 내었다. 로인은 이를 악 물었다. 자신이 영주가 된지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고아들이 사라지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이었다. 로인은 다시 발을 들어 남자를 걷어차 그를 기절 시켰다. 남자는 외마디 비명을 지르며 기절했다.
“린.”
로인이 린을 부르자, 지금껏 모습을 숨기고 있던 그녀가 모습을 드러내었다.
“쿠아인을 잡아와.”
“...”
그녀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모습을 다시 감추었다. 그녀가 다시 돌아온 것은 잠시 후였다. 그녀의 손에 들린 쿠아인은 몸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있었다. 로인은 그를 보며 치밀어 오르는 화를 참지 않고 그대로 분출 시켰다. 로인의 발이 빠르게 휘둘러져 쿠아인의 배에 꽂혔다.
“커억.”
쿠아인은 자신의 배를 잡으며 앞으로 고꾸라졌다.
“야,”
로인이 나직히 쿠아인을 불렀다. 쿠아인은 아직도 고통에서 벋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이 새끼가. 정말...”
로인은 다시 한 번 걷어차려다, 멈추었다. 힘 조절을 하지 않아서, 방금 찬 것 만해도 쿠아인은 죽을 수도 있었다. 죽지 않은 것이 다행인 상태에서, 다시 한 번 걷어차서 죽게 만들 수는 없었다. 본보기로 보여야 할 사람인데, 쉽게 죽어버리면 안되지 않은가.
“감히 내 영지에서 납치를 해서 팔아? 노예 상인에게? 정말 겁을 상실했네.”
로인은 그렇게 말하며 주먹을 쥐었다 폈다. 자신이 영주로 있는데도 불구하고 납치를 해서 노예 상인에게 팔았단다. 그렇게 해서 팔아넘긴 고아가 얼마인지, 그는 알 수 없었다. 로인은 자신 스스로가 용서가 되지 않았다. 조금만 더 주의를 기울였다면 알 수 있었을 고아들의 실종이다.
큰 그림은 신경을 쓰면서 작은 것에 신경을 쓰지 못했다. 그저 영지 상태창을 보면 알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15세가 넘은 아이들은 모두 정식으로 영지민이 되기에, 15세가 넘은 아이들이 팔려나갔다면 영지 상태창을 보는 것만으로도 알 수 있는 것이었다.
로인은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피해 받은 많은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린, 이 일은 나인에게 맡긴다. 무조건 공개 처형을 하라고 해. 그리고 여기 있는 아이들은 일단 학교에서 돌보라고 하고, 팔려나간 고아들은... 최대한 찾아.”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지하실을 나섰다. 완벽한 영주가 되기란 힘들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통 받는 아이들이 이렇게 많이 있었는데, 알아차리지 못했다는 점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만들고 있었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여전히 눈이 내리고 있었다.
- 작가의말
이얍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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