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로인과 린은, 그들의 앞에 있는 막사들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하늘 아래, 그들이 의지하고 있는 것은 오직 그들 자신의 시각뿐이었다. 어두운 밤이더라도 로인은 마나 덕분에 잘 볼 수 있었고, 린은 원래가 야행성 동물인 토끼이다 보니, 시야가 로인보다 넓었다.
“린, 일단 가장 먼저 군량이 어디에 있는지를 찾아야해. 알지?”
“...”
“일단... 찾는 것은 너에게 맡길게.”
로인이 입을 열었다. 아무리 로인이라지만 군량이 어디에 있는지 바로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지만 본래 동물인 린이라면 로인보다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린은 로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로인이 린에게 주머니 하나를 내밀었다.
“마법 주머니. 입구를 열면 내가 알 수 있으니까, 찾으면 주머니에 군량을 담고 있어. 내가 그리로 갈 테니까.”
“군량을 지키고 있는 군사들은...”
“죽이지 마. 기절만 시켜. 어차피 우리가 죽이지 않아도 내일 아침이면 죽을 테니.”
군량을 지키지 못한 죄는 컸다. 전시 상황에서 군량을 지키지 못한 죄는 바로 목이 떨어져도 될 만한 죄였다. 로인이 지금까지 파악한 젝슨 백작의 성격으로는 그들의 목을 벨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군사들의 사기는 조금이나마 낮아 질 것이다. 하지만 군율을 위해서는 목을 베지 않을 수도 없는 법. 아마 어쩔 수 없이 목을 베리라.
만약 젝슨 백작이 손해를 보지 않더라도, 죽이지 말라고 했을 것이었다. 린에게 살인이라는 좋지 못한 추억을 지금 안겨다 주기는 싫었다. 로인은 지금도 생생히 기억했다. 처음 살인을 했을 때의 느낌을. 기분을. 그것을 린에게 최대한 느끼지 못하게 해주고 싶었다.
“...”
린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빠르게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로인은 그런 린의 모습을 보며 자신의 검을 빼들었다.
“자... 쇼 타임.”
로인은 그렇게 중얼 거리며 빠르게 걸음을 옮겼다. 물론 군량을 모두 아공간에 집어넣기 전까지는 일을 벌일 생각이 없었다. 군량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말이다. 하지만, 일을 벌일 준비는 해 둘 생각이었다.
로인의 손과 발이 분주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인벤토리에서 주먹만 한 구슬을 여러 개 꺼낸 로인은 진영을 돌아다니며 여기저기에 뿌리기 시작했다. 계속 마나를 끌어올려 마법 주머니의 위치를 파악하고 있던 로인은, 마법 주머니가 열리자, 눈을 빛내며 그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로인의 입가에는 미소가 맺혀있었다.
린은 많은 양의 군량을 보며, 입을 벌렸다. 현지 조달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지, 상당히 많은 군량이 싸여 있었다. 린은 하나하나씩 주머니에 집어넣기 시작했다. 혼자서 하면 몇 시간은 거릴 것 같았다. 물론, 로인이 온다면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끝날 것이다. 아무래도 아공간이 무언가를 집어넣기에는 편했다.
“오. 꽤나 많네.”
로인은 많은 군량에 싱글 벙글 웃으며 열심히 한 포대씩 마법 주머니에 집어넣고 있는 린에게 잠시 바라보고 미소를 지었다. 린이 그와 눈을 마주치며 미소를 지었다.
로인이 아공간을 열어두고, 포대 묶음을 그 안에 집어넣었다. 계속해서 이동을 하는 와중이었기 때문인지, 일부의 군량을 빼고는 잘 포장이 되어 있어서 쉽게 옮길 수 있었다. 로인은 한 포대씩 열심히 옮기고 있는 린에게, 그만두고 경계를 시켰다. 자신이 한 번 움직일 것을 린이 몇 번씩 움직이며 고생을 해야 하니, 마음에 걸렸던 것이다.
린은 경계를 하면서도 로인을 힐끗 힐끗 쳐다보았다. 로인은 군량을 모두 옮기고, 아공간을 닫았다.
“린. 최대한 많은 막사한테 불을 붙이면서 빠져나간다. 알겠지?”
로인은 그렇게 말하고, 주변에 세워져 있던 횃불 하나를 집어 들었다. 로인은 인벤토리에서 병 두 개를 꺼낸 뒤, 하나를 린에게 건넸다. 기름이었다. 린은 기름을 받고, 횃불을 들었다.
“자, 가자.”
그렇게 말함과 동시에 로인이 뛰기 시작했다. 린이 로인의 뒤를 따랐다. 주변 막사들이 순식간에 불에 타올랐다.
“으아악!”
“저, 적이다!”
“습격이야!”
“불, 불 좀 꺼봐!”
젝슨 백작의 군대가 순식간에 혼란에 빠지며 여기저기서 비명이 난무했다. 로인은 인상을 조금 찌푸리며 계속해서 움직였다. 그리고 어느 순간.
펑! 퍼엉!
폭음과 함께 로인이 여기 저기 뿌려두었던 폭탄이 터졌다.
“으아아악!”
“뭐야!”
근처에 있던 병사들이 시체도 남기지 못하고 목숨을 잃고, 갑옷을 입고 있던 기사들이 피를 흘리며 쓰러진다. 습격은 성공이다. 하지만 로인의 표정은 그리 좋지 못했다. 사람을 죽인다는 것은 그리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
로인은 뒤에서 느껴지는 위험한 느낌에, 서둘러 옆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빠르게 달려가다가 옆으로 몸을 날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불타는 듯한 느낌과 함께, 로인의 옆구리에서 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다행히 뼈는 다치지 않았다. 아니, 뼈도 조금 베어졌지만 부러진 것은 아니다. 로인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면서도 서둘러 자신의 검을 뽑았다.
“...페르엔 제국의 병사인가. 아니, 방금의 몸놀림이 그냥 병사 일리가 없지. 기사, 아니면 자객인가.”
“당신은...?”
로인은 자신을 공격한 남자에게 달려들려던 린을 손짓하여 가만히 있게 하고, 입을 열었다.
“아... 자네가 알 필요는 없지. 그냥... 죽어.”
남자는 그렇게 대꾸하고는 검을 휘둘렀다. 로인은 이를 악 물고 인벤토리에서 꺼낸 포션을 상처 부위에 바름과 동시에 검을 휘둘러 남자의 검을 막았다. 피할 수 있는 성질의 그것이 아니었다. 피하지 못할 것, 검을 휘둘러 막는 것이 최선이었다.
카앙!
검과 검이 만나며 금속음이 울렸다. 남자는 자신의 공격이 막힌 것에 짜증이 이는지 다시 한 번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이미 로인은 남자의 검을 막은 뒤, 두로 물러나 도망을 치고 있는 중이었다.
“...”
남자는 이를 악물며 로인을 쫒아가려했지만, 이미 저 멀리까지 가버린 로인의 모습에, 검을 자신의 허리에 꽂았다.
“페르엔의 종이라면 전장에서 만나겠지.”
그는 그렇게 중얼 거리며 뒤돌아 걸음을 옮겼다. 그의 주군, 젝슨 백작이 목소리를 높이며 불을 끄고 있었다.
로인은 뛸 때마다 벌어지는 옆구리의 상처를 부여잡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포션을 발라 응급 처치를 하였지만, 치료가 되는 와중에 이렇게 격하게 움직이니, 상처가 다시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상처가 아물어가는 동시에 벌어지는 고통에, 로인의 얼굴이 찡그려져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린은 걱정스러운 듯이 로인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아직 걸음을 늦추면 안 되었다. 누군가 좇아온다면, 큰일이다. 린은 로인과 보조를 맞추며 로인의 옆구리에 포션을 발랐다. 계속해서 벌어지고 있는 상처라, 이렇게 포션을 지속적으로 발라주지 않으면 나중에는 포션으로 치료가 불가능 할 정도가 될 수 도 있었다.
로인은 도저히 참지 못할 고통에 크게 도약해 나무위로 올라갔다. 린이 그를 따라 나무를 올랐다. 로인은 두꺼운 나뭇가지에 앉아서, 숨을 거칠게 몰아쉬었다. 옆구리의 상처도 문제이지만, 남자의 검을 막으며 들어온 마나가 날뛰며 내상을 입히고 있었다.
남자는 로인을 죽이는데 그 정도의 마나만이 필요 할 것이라 판단한 모양이었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로인은 절대 죽지 않았다.
상대의 적은 마나를 로인 자신의 마나로 눌러 버릴 수도 있었건만 그럴 정신까지는 없었던 로인이었다. 로인은 옆구리의 상처를 린에게 맞기고, 자신은 내부의 마나를 배출 시킨 다음, 내상을 치료했다.
“후우...”
로인은 한숨을 내쉬며 나무를 내려왔다. 린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로인을 바라보았다. 로인은 린의 머리를 한번 쓰다듬고는, 다시 걸음을 옮겼다. 처음만큼 빠르지 않은 걸음이었다. 린은 로인과 보조를 맞추며, 걸음을 옮겼다.
처음만큼 빠르지 않다고 해도, 일반인들이 뛰는 것보다는 훨씬 빨랐다. 포션이 잘 스며들어 치료가 되자, 로인은 빠르게 달리기 시작했다. 고통이 사라진 지금, 로인의 입가에는 만족스러운 미소가 맺혀있었다. 군량을 통째로 훔쳐왔기 때문에 젝슨 백작의 부대는 자신의 군대가 지키고 있는 레모난 마을을 꼭 들려야 했다.
레모난 마을은 근처 십여 개의 마을 중, 가장 큰 마을인데다가 주변에 농작지가 많아서 식량창고 역할을 하는 마을이었다. 젝슨 백작의 3만 군대가 잠시 한숨을 돌릴 정도의 식량이 있었다. 젝슨 백작도 그것을 잘 알 것이고, 그렇기에 필사적으로 레모난 마을로 진격해 오리라.
이미 군량과 여러 물자를 가지고 오고 있는 후발대가 약 10여일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할 수 있었던 방법이었다.
로인과 린은 무사히 부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로인은 자신의 숙소인 레모난 촌장의 집에 들어가,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나인을 바라보았다.
“왜 않자고 있어. 새벽에 온다고 했잖아.”
“하지만... 너무 시각이 늦어서...”
“그러니까. 늦은 시간인데 왜 않자고 있었어. 걱정하지 말라고 했잖아.”
“...”
나인은 여태까지 졸린 눈을 붙잡고 기다렸건만, 보자마자 들려오는 꾸중에, 서러움이 넘치는 것을 느꼈다. 나인의 눈에서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안도감과, 서러움, 그리고 서운함이 합쳐진 눈물이었다.
로인은 눈물을 흘리는 나인의 모습에, 작게 한숨을 내쉬었다.
로인은 나인에게 다가가,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울지 말고... 이제 왔으니까... 빨리자. 내일, 아니면 모레는 너, 고생해야 하는데 이렇게 밤을 세면 어쩌자는 거야.”
로인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한 다음, 울고 있는 나인을 자신의 품으로 끌어당겨 그녀의 머리와 등을 쓰다듬었다. 나인은 부드러운 로인의 손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로인은 자신의 품에서 잠이든 나인을 침대에 눕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씻어야지?”
로인이 그렇게 말하며, 욕실로 들어갔다. 촌장의 집은 상당히 좋았다. 절대 흔하지 않은 욕실이 있는 것을 보면 그것을 예상할 수 있었다. 로인은 인벤토리에서 물을 꺼내 데우고, 욕조에 들어갔다. 린이 로인을 따라 욕조에 들어갔다.
그리 크지 않은 욕조였지만, 둘이 들어가기에 무리가 없었다. 로인은 젖은 린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린은 기분 좋은 표정을 지으며 눈을 감았다. 로인 또한 눈을 감았다. 하지만 방금 전투를 하고 온 몸이라도, 남자로서 몸의 변화가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린은 로인의 변화를 느끼고. 미소를 지었다. 일을 벌이고, 두 사람은 한참 뒤에야 나왔다.
- 작가의말
이얍얍! 분량 중복에 관한 일, 너무 죄송합니다. 혹시라도 분량 중복이 더 발견되면 바로 수정하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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