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20층(6) - 뛰어!!
“루드!!”
“루드, 왜 그래!!”
일행이 모두 불러대었다. 그러나 루드의 귀에는 이미 닿지 않는다. 안중에도 없었다. 들을 상황이 아니다. 들리지 않는다.
“저 자식!! 진짜로 무효화의 힘을 썼단 말인가!!”
“무효화의 힘??”
“듣지 못했나? 저것은 인간에게 금지된 힘이다!!”
허 박사가 열을 올렸다.
“태양의 힘과 달의 힘을 쓰는 것만으로도 대단한데 그 둘을 동시에 쓴다고?? 그것은 신에게나 허락된 일이다!! 실제로 방금 그는 너희들을 가둔 블랙박스를 여는 것만으로도 모든 힘을 다 소모했지!! 자, 이젠 어떡할 거냐!! 다시 한 번 루드에게 도움을 요청해볼 거냐?? 블랙박스!!”
콰아앙!!
“안 돼!!”
“루드!!”
일행은 다시 한 번 갇히면서도 자신들의 몸보다 먼저 루드를 걱정했다. 이 블랙박스는 초차원적 존재라 일개 인간의 힘으로는 당할 수 없었다. 오직 용사들만이 상대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태양의 용사와 달의 용사만이 상대할 수 있고, 그 둘이 힘이 모두 모여 있지 않으면 결국 질 수밖에 없었다. 그 정도로 차원의 힘이란 무서운 것이다.
차원, 공간, 시간. 이 모든 것은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은 힘이니. 그러나 허 박사는 쓸 수 있다. 원래의 그가 살던 세계, 지구에서 이어져 오는 힘이 그에게 전해진다.
수십 억 인류의 힘은 여전히 그를 지탱하고 있고, 루드는 자신의 힘 역시 대대로 많은 선대 용사들이 지탱해주고 있다고 했지만, 달의 신 난나와 태양신 샤마쉬는 이젠 모두 잊혀진 신이었다.
아무도 믿지 않는다. 극히 소수의 용사들 빼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샤마쉬는 여전히 힘을 주고 있었다.
“샤마쉬가 잊혀진 신이라고?? 인간의 몸으론 감당할 수 없다고?? 다 상관없다! 나는 오늘을 살아간다!! 그래도 나는 살아간다!!!”
자기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른 채 루드는 그저 내질렀다.
그 말 대로였다. 그는 살아있었다. 살아있다는 건 뭔가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만약 그러기 싫다면 당장이라도 죽으면 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간다는 건, 그에게 뭔가 사명이 있어서가 아닌가??
그건 루드 뿐만이 아니라 모두 마찬가지였다. 누구든 모두 살아간다. 각자 자기만의 마음을 담아, 자기만의 마음으로.
루드의 몸에서 새빨갛고 하얀 기운이 솟구쳤다. 이 눈부시도록 시린 기운은 각기 태양의 기운과 달의 기운이다. 루드는 다시 한 번 이 두 기운을 합해 모든 것을 부술 생각이었다.
아까는 그저 동료들을 구하기 위해서만이었고 처음 쓰는 것이라 위력을 몰랐지만, 이제는 조절할 수 있다. 설령 죽더라도, 루드는 이 기술을 쓸 생각이었다.
그로인해 동료들이 다 죽더라도······. 적어도 저 허 박사라는 놈의 손아귀에 장난감이 되거나 죽는 것보다는 그게 나을 것이다.
동료들도 블랙박스라는 감옥 안에서 루드의 기운을 느끼고 소리쳤다.
“가라, 루드!! 우린 신경 쓰지 마!!”
“그래!! 우린 이미 할 걸 다 이뤘어!! 미련은 없다!!”
이들은 모두 소외당한 자. 부모로부터 버림받고, 인간에게 기생해야만 살 수 있는 몽마라 같은 악마들 사이에서도 무시당하고, 그런 사연 있는 자들이 전부였다.
그래서 그들 마음속에는 항상 공허함이 있었다. ‘왜 태어났지??’ 그것이 그들이 수없이 한 고민이다. 왜 태어났을까?? 부모에게 버림받기 위해서?? 남들에게 무시당하기 위해서??
그런 자들이 자포자기하듯 던전으로 몸을 던졌고, 운명에 이끌리듯 자신들을 버린 부모들을 모두 만났다. 비록 그 중엔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죽은 자들도 있지만······.
만난 시간은 짧았지만 일행에게 서로는 모두 하나의 가족이었다. 오히려 가족이란 것들이 없었던 자들이라 더욱 반갑다. 그러나 만남이 있으면 헤어짐이 있는 법······.
모두는 서로의 운명을 직감했다. 루드는 눈을 질끈 감았다.
“미안하다!!”
콰아앙!!!
루드의 몸에서 거대한 기운이 뿜어져 나오기 직전이었다. 루드의 몸이 갈가리 찢겨지고 있었다. 아니, 붕괴하고 있었다. 인간에겐 허락되지 않은 금지된 힘을 손댄 죄······.
용사의 일족이라도 그것은 금지된 것이다. 그 힘은 신에게도 닿을 수 있는 것이니······.
비록 이젠 옛 신들도 모두 잊혀지고 역사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있지만······.
그러나 신들은 여전히 그에게 힘을 보탠다. 이 차원을 어지럽히고 세계를 마음대로 자신의 것으로 물들이는 무법자를 퇴치하라고 하고 있다. 루드는 그런 숙명을 느꼈다.
‘아아, 나는 이때를 위해 살아온 거구나······.’
루드는 자신의 존재 역시 사라짐을 느꼈다. 이제 아주 짧은, 일순의 순간이면 그는 이런 사고도 못하게 될 것이다. 더는 이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 그때 누군가 나섰다.
“이런이런, 안되지······. 적어도 마지막에는 부모 노릇을 해주게 해달라고.”
“?!”
“?!?”
그 곳에 있던 모든 자들이 경악했다. 박스에 갇혀 죽음을 기다리고 있던 일행들이나, 유이하게 오직 나타난 자들을 볼 수 있었던 루드와 허 박사도 경악.
“아니, 당신들이 대체 왜 나타난 거지??”
“하하, 마지막까지 부모에게 그러는 거냐. 루드. 미안했다.”
“그리고 사랑한다~!”
그것이 루드가 들은 그 두 사람의 마지막 말이었다.
콰쾅!!
“으아악!!!”
“으윽!!”
모두가 격렬한 충격에 시달렸다. 박스 안에 갇혀 상대적으로 충격이 경감된 일행들을 비롯해서, 바깥에 있던 루드 마저도.
눈이 멀 정도의 강렬한 빛이 발생하고, 박스는 모두 파괴됐다. 아이러니하게도, 루드는 마지막에 모든 것을 소멸시키려던 힘에 의해 그런 충격으로부터 보호받았다.
그러지 않았으면 죽었을 것이다.
“뭐지?!?”
“뭐, 뭐야!!”
영문을 알 수 없는 일행. 눈을 떠보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강했던 섬광도, 충격도 모두 사라지고, 그곳엔 단지 아무것도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무서울 정도로 적막만이 남았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
“루드, 너의 부모의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리고 허 박사인가 하는 그놈은 어디로 사라진 거야?!”
“몰라!! 나도 모른다고!!”
루드는 무서운 속도로 몸서리쳤다. 하지만 모른다고 해도, 사실은 알고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그리고 그런 일말의 희망을 깨부수듯이, 갑자기 누군가 나타났다.
스르륵.
“어, 용사??”
“루드의 아버지와 어머니다!!”
반가워하는 일행들.
“살아있었군요!!”
“당신들이 퇴치해준 겁니까?!”
“······.”
그러나 용사들은 웃기만 할뿐 말이 없었다. 바이올렛만이 그저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말했다.
“안 느껴지잖아······.”
“뭐??”
“느껴봐!! 그들의 생기가 안 느껴지잖아!!”
쿵!!
그제서야 일행은 알아차렸다. 아니, 이미 한편으론 알고 있었다. 그들의 모습도 어딘가 뿌옇고, 이젠 어디론가 사라져버릴 듯한 모습이다. 그런 위태위태한 모습이었다.
“우리 아들 루드.”
“!!”
루드가 눈을 부릅떴다. 그 눈은 충격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
“미안하다. 너에겐 마지막까지 폐를 끼쳤구나······.”
“폐라니, 무슨??”
“짐작하다시피, 우리는 죽었다.”
“!!”
“미안해. 엄마가 마지막까지 너에게 해준 게 없구나. 흑!!”
여자 용사는 울었다. 그들은 이미 죽은 상태. 마지막 남은 힘을 모아, 영령이 남은 말을 하는 상태였다.
“아, 아니에요!! 저는!!”
“여기서부턴 내가 말하지. 미안하다, 루드. 가능하면 우리도 살아남고 싶었지만······. 역시나 이 대소멸의 힘은 벗어날 수 없구나······. 고작 그 놈을 지워버리는 것이 고작이었다. 그 대가로 우리의 목숨도 잃었지.”
“크흑!!”
루드는 눈물을 삼켰다. 왜 울음이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토록 미워했던 부모가 아닌가??
그런데 그런 부모가 이제 와서 목숨을 구해줬다고 이렇게 눈물이 난다고??
그러나 이 눈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분노, 증오, 슬픔, 고뇌, 한숨. 그 모든 것이 이 눈물 안에 담겨있었다.
주룩주룩 흘러내리는 눈물에 잠겨, 분노와 증오는 사라지기도 했고 불타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이미 어쩔 수 없었다. 그들은 더 이상 증오할 수도 없는 저편의 존재가 되었으니······.
“왜 나선 거예요!! 왜!! 나는 죽을 작정이었는데!!”
“미안하다, 루드. 그러나 자식을 먼저 보내는 부모는 없는 법이지······. 더군다나 자식의 죽음을 미리 알고 그것을 막을 수 있는 부모라면······.”
“······.”
“루드, 용사란 무엇이라고 생각 하냐?”
“······.”
“나는 그것을 저주라고 생각했다.”
“!!”
“세계를 구하면 뭘 하는가!! 사랑하는 내 자식의 얼굴 한번 볼 수 없었다!! 핏덩어리였던 너를 그 마을에 남기고, 우리는 눈물을 삼키며 돌아섰다. 네 어머니는 참 많이 울었지.”
“여보!!”
그러면서도 여자 용사는 하염없이 울고 있었다. 영령이 울 수도 있다는 것을 일행은 이때 처음 알았다. 그리고 이런 눈물은 다시는 보지 못할 것이다. 그 정도로 사무치는 울음이었다.
“하지만 오늘에서야 나는 만족했다. 나는, 아니 우리는 오늘 이날을 위해 살아온 것이다. 그동안 용사 일을 하면서 많은 것을 번민했지······. 고뇌했고, 괴로워했다. 이 세상을 지키기 위해서라는 이유로 나 자신을 희생할 필요가 있는가?? 내 자식의 얼굴도 못 보면서?? 우습게도 우리의 일이란 그랬었다. 마왕을 쓰러트리고, 마신의 부활을 막기 위해 봉인지에서 한걸음도 나가지 못했지. 그러다 겨우 봉인이 완료되자 이제는 이 던전이 생겨 우리를 이끌었다. 모든 것이 그 허 박사인가 하는 자의 수작이었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너를 보니 기분은 좋구나. 살아라, 루드!! 너의 생명은 너의 것이다!! 살아있다는 것은 아름답다!! 마치 저 태양처럼, 뜨겁게 목숨을 불사르다가 가거라!! 그리고 기억해라!! 비록 못난 부모였지만 너를 사랑한 이 아비와 어미가 있었음을!!”
“흑흑, 루드!!!”
그렇게 영혼들은 사라져갔다. 마지막 남은 집념으로 이 생의 법칙조차 거부하고 잠시 미련으로 남았던 그들은 버틸 수 없었다. 아무리 용사라도 그들은 이미 망자이기에······.
마지막으로 남자 용사는 이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사랑한다, 루드.”
그의 얼굴은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미소엔 한 점 부끄러움도 없었다. 세계를 구하고, 아들을 구하고 불꽃같이 살다간 남자의 웃음이었다.
일행은 어느새 던전을 빠져나왔다. 무려 20층. 그러나 그 깊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깊었다.
그 심연······. 어지간한 자들은 몇 층도 가지 못하고 죽을 것이다. 그 정도의 어둠이 있기에.
그러나 던전은 이미 제 구실을 다했다. 차원을 왜곡해 실험을 하며 몬스터를 공급하던 허 박사가 사라졌기에, 던전은 이미 더 이상 던전이 아니었다. 그냥 땅굴이다.
이젠 차원조차 불안정해졌기에, 더 이상 유지되지 못했다. 비록 왜곡된 차원이라지만 그 차원 역시 허 박사가 조종하고 있었던 것······. 던전은 채 하루를 버티지 못하고 사라졌다.
“뛰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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