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1층(5) - 고기
“무슨 이름입니까??”
“더트루킹갓엠퍼러올마이티보스쇼군차르칭기즈칸마제스티카이저소제프레지던트메시아제너럴챔피언히어로불멸자파라오마에스트로그랜드마스터지니어스오라클스페셜워치프 어때?”
“······.”
“······.”
잠시 루드의 작명을 들은 일행은 순간 말을 멈췄다. 그리고 터져 나오는 조용한 분노.
“야, 장난해?”
“에엣?!”
“야, 장난하냐고.”
지금까지 한 번도 반말을 한 적 없던 인큐버스가 진지하게 분노했다. 원래 분노도 어설픈 분노가 아니라 이렇게 조용한 분노가 더 무섭다. 내리깐 목소리에서 느껴지는 진정한 분노.
그러자 루드도 진지하게 해명했다.
“이, 이건 장난이 아닌데요?! 실제 어떤 인물에게 붙여진 호칭이란 말입니다!!”
“그게 누군데?”
“어떤 오크 대족장이요. 사실 오크가 아니라 호드라는 연합 자체의 수장이었죠.”
“내 잠시 알아보고 온다. 만약 사실이 아니면 알아서 해라.”
그렇게 인큐버스는 허공으로 푸슉! 하고 사라졌다. 원래 몽마들에겐 그 번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마계와 인간계를 맘대로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이 있긴 한데 그 평소의 능력과도 뭔가 다른 것 같았다. 다른 자들은 몰라도 같은 몽마인 비치는 알아보는 상황.
‘흐응, 신의 사도가 되었다더니 진짜로 뭔가 능력을 얻었나?’
그러나 그런 건 비치에겐 딱히 관심 없는 것이었다. 지금 비치의 관심사는 이 루드가 말한 그 장황한 이름이 정말로 실존하느냐에 대한 것이었다.
‘설령 있다 해도 그런 정신 나간 이름을 누가 붙인 거지??’
아마 붙였다 해도 진짜로 어떤 칭송의 목적이 아니라 조롱을 위해 붙였을 것이다. 그렇게밖에 생각되지 않는 칭호. 뭐든지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
그러니 일행도 이 칭호가 단순히 조롱이라는 것은 이미 눈치 챘고, 다만 그 칭호가 실존하는 것이냐에 대한 관심만이 쏠려 있었다.
그런데 잠시 후 나타는 인큐버스는 뭔가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있네.”
“그렇죠? 가 아니라 실제로 있잖아, 이 새끼야!! 왜 사람 말을 못 믿어?!”
그러자 이제는 반대로 루드가 기세등등해졌다. 그 칭호의 어감은 둘째 치고 칭호 자체는 실존하는 것. 그런데 인큐버스 역시 반박했다.
“그렇다고 해도 딱히 좋은 칭호는 아니잖아, 이 새끼야!! 알고 보니 그 칭호의 주인 고대신한테 감염 되서 타락하고 죽었드만!! 그런 걸 칭호라고 쓰라고 붙여준 거냐?!”
“뭘, 니가 그렇게 안하면 되지. 그보다 왜 자꾸 반말이야?! 너 원래 존댓말 쓰는 캐릭터 아니었냐??”
“좇까, 이 새끼야!! 존댓말도 난 존대를 하고 싶은 대상에게만 한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반말한 적이 없는데 너한테는 예외다. 이 성추행범 새끼.”
“뭐라고?!”
그러자 두 사람은 단번에 붙었다. 각자 아예 그 칼과 꼬리채찍까지 빼들고 싸우는 상황.
실제로 거의 죽일 기세였다.
“오늘 너 죽고 나죽자!!”
“오냐, 나도 오늘 너 죽이고 지옥 갈련다!!”
“흥, 지옥(마계)에는 너 같은 거 받아줄 자리도 없는데?! 내가 마계에서 하루 이틀 살아본 게 아니거든?!”
“그럼 네놈이 믿는다는 주님 곁으로 보내주마!!”
이 인큐버스가 믿는다는 신이 누군지는 모르겠는데 이딴 마물이 믿는 걸로 봐선 딱 봐도 제대로 된 신이 아닐 것 같았다.
‘보나마나 바이올렛이 믿는 세르마 같은 신이겠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이나 쳐 죽이는 쓰레기 신!!’
세르마의 경전에는 세르마 자신이 별 것도 아닌 일로 사람을 학살한 일이 아주 자랑스럽게 쓰여 있었다. 이걸 보고 세르마 교인들은 ‘오오, 역시 주님.’ 이러면서 그 권능을 찬양하는 모양이던데, 루드가 보기에는 그냥 인간백정신이다. 학살 신. 그런 건 신도 아니다. 그저 현상.
다만 지나친 힘을 가진 어떤 이 세상의 섭리가 우연히 아카식 레코드에서 빠져나와 그 과정에서 인격이 부여된 결함신이 분명했는데, 그런 신은 딱 제재해야 할 대상이었다.
‘아마 이 생각을 바이올렛이 알면 그 즉시 죽일려고 하겠지.’
그 생각을 한 루드는 싸우는 와중에도 바이올렛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눈썰미가 좋은 바이올렛은 이 와중에도 루드가 자신을 쳐다보는 걸 바로 눈치 채고 ‘얘가 왜 날 보는거지?’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런 눈치 빠른 바이올렛도 이런 루드의 생각은 추호도 모를 것이다. 설령 눈치 챘다고 하더라도 심증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법.
‘아냐, 바이올렛 정도 되면 진짜로 죽일려나?’
지금까지의 행동이나 사회에 있을 때부터 충분히 들은 바이올렛의 악명에 의하면 그런 심증만 쌓여도 죽일 수도 있긴 했다. 애초에 이단 심문관이란 것 자체가 아무 증거도 없이 사람을 이교도로 몰아 죽이는 것에 특화된 자들이니까. 그 자들은 인간백정이다. 인간백정.
사람을 죽이는 걸 우습게 아는 자들. 지금이야 위험한 던전에서 서로 힘을 합치고 어쩌다보니 같이 행동도 하며 나름 정이란 것도 쌓였지만 위험해지면 언제 배신할지 모른다.
이단 심문관이란 자들은 인간의 정보다 타산적인 관계로 행동하는 인간들이기 때문이다.
‘설령 자신이 알고 지내던 자들도 그 쓸모가 없어지거나 정적이 되면 이교도로 몰아 죽이는 게 이단 심문관들이지. 그러니 조심하는 수밖에.’
루드가 계속 그런 생각을 하며 바이올렛을 힐끔힐끔 보고 있는데, 정작 바이올렛은 딴 생각을 하고 있었다.
‘저 자식, 또 내 몸 주무를려고 그러나??’
말이야 이제 더 이상 그런 손장난을 하지 않는다지만 사람 일은 또 모른다. 바이올렛도 솔직히 루드를 100% 신용하지는 않는 상황.
아마 특별한 일이 없으면 배신할 것 같지는 않긴 한데 뭐든지 항상 그 어떤 확률을 100% 단정해서는 곤란했다. 그러면 반드시 통수를 맞는다.
기적같이 항상 1%의 확률을 뚫고 어김없이 날아드는 통수. 배신이란 믿기에 당하는 것이다. 그러니 배신을 당하지 않으려면 서로 믿지 않으면 되는 법.
그러니 일행도 서로 행동은 같이 하지만 그 신용은 완전히 하지 않는 상태였다. 이건 다른 자들도 그렇다. 다만 그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상식적으로 이 던전에서 며칠 봤다고 그렇게 의기투합하는 것도 말이 안 되고.’
현실은 무슨 소설이나 만화가 아니다. 심지어 몇 십 년을 지켜 본 사람도 기회가 오면 배신을 때리는 경우가 드물지 않은데, 그러니 일행에게 완전한 신뢰를 기대하는 것이란 어려웠다.
반대로 그렇게 서로 믿으면 어리숙한 자라는 뜻이다.
진정한 어른은 함부로 남을 믿지 않는다. 그것이 어른. 슬프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이 인간의 숙명.
그런데 한참을 싸웠지만 이 루드와 인큐버스는 결판이 나지 않았다. 의외로 이 두 사람은 그 실력이 비등비등했다. 사실 바이올렛을 제외하고는 그 차이가 그리 크지 않을 것이다.
심지어 주문을 쓰는 이크나 플로드도. 다만 그 주문을 쓰느냐, 체술을 쓰느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바이올렛을 제외한 다섯 사람의 전투력은 거의 비슷비슷하다.
게다가 루드는 얼마 전 안내양을 상대하면서 상당한 수준의 진보를 이루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인큐버스를 압도하지 못했다.
물론 이는 두 사람이 전력을 다하지는 않았기 때문. 상식적으로 서로 마음에 안 든다 해도 이정도로 죽고 죽일 것 같으면 아예 파티 자체의 성립이 불가능하다.
이 루드의 파티뿐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팀은 다 그 불화합이 있었다.
단순히 조별과제만 해도 그 안에서 죽일 놈이 나오고 실제로 죽이네 살리네 난리가 난다.
이는 여러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그 안엔 쓰레기가 있기 때문. 대현자 지로보 선생님의 말씀이다. ‘사람이 다섯 명이나 모이면 그 중에 반드시 한명은 쓰레기가 있다.’
이것이 지로보 선생님의 지론이다. 그러니 그런 조별과제도 아니고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우는 던전에서 이런 갈등이 발생하지 않을 리 없었다.
즉 이것은 기선싸움이다. 기선제압을 하기 위한 싸움. 만약 여기서 지면 앞으로의 모험이 상당히 피곤해진다.
이 던전이 언제까지 계속되는지도 알 수 없는데 그렇게 기선을 제압당한 채로 다닐 수는 없다. 그러니 미친 듯이 싸우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력을 다한 건 아니었다.
‘여기서 이기려면 필살기를 꺼내야 하는데······.’
‘꺼낼까?? 그러다 진짜로 죽이게 될 지도 모르는데??’
그러나 이 두 사람도 서로를 죽일 마음은 없다. 다만 사소한 다툼과 그 기선싸움이 발단이 된 것.
게다가 여기서 진짜로 한명을 죽여 버리거나 둘 다 동귀어진 해버리면 나머지 일행들이 오히려 곤란해진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슬슬 우리를 말리겠지, 하며 두 사람이 일행을 쳐다봤는데, 정작 일행은 다른 걸 하고 있었다.
“냠냠.”
“아, 맛있다.”
“삼겹살 좀 더 구워 봐요.”
“오케이.”
바이올렛이 돌판 위에 삼겹살을 더 올렸다. 그러자 고기가 지글지글 익는 상황.
지글지글!!
“와, 맛있겠다!!”
“역시 야외에서는 삼겹살이 짱이지.”
“냠냠쩝쩝!!”
루드와 인큐버스를 제외한 네 사람은 미친 듯이 고기를 구워먹고 있었다. 그 속도가 너무 빨라 처음에 두 사람은 그 여자들이 걸신들린 줄 알았다. 미친 듯한 속도.
그런데 원래 여자들이라고 해서 딱히 무조건 음식을 적게 먹거나 천천히 먹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여자들도 있는 것. 오히려 적지 않은 여자들이 강된장찌개에 비빔밥을 마구 퍼먹는다거나, 치킨을 통째로 한 마리 뜯는 등 남자에 지지 않는 식욕과 위장을 가진 여자들도 있었다.
그와 더불어 간식 배는 또 따로 있다고 디저트는 따로 챙기는데 그 정도쯤 되면 어지간한 남자들보다 더 많이 먹는 것 같기도 했다. 때론 보고 있으면 무서울 정도.
물론 그 칼로리는 어디로 가지 않는다. 그래놓고 나중에 난 물만 먹었는데 왜 살찌냐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에 대해 어떤 헬스 트레이너는 말했다.
물만 먹어서 살이 찔 수가 있다면 이 세상의 모든 기아 문제를 다 해결할 수 있다고.
그러자 물만 먹어도 살찐다던 그 사람은 얼굴이 벌개져서 떠났다던데, 아무튼 그 미친 듯한 기세를 보자 루드와 인큐버스도 조바심이 들었다. 지금 먹지 않으면 자기들 몫이 하나도 남지 않을 것 같았던 것이다.
“자, 잠깐!! 우리들 것도 남겨줘요!!”
“그래, 자기들끼리만 다 먹을 생각입니까?!”
루드와 인큐버스가 허겁지겁 달려와 자리를 비집고 들어와 앉았는데, 그러자 바이올렛이 물어보았다.
“뭐야, 너희들. 그대로 계속 싸우는 것 아니었냐? 그거 보면서 즐겁게 식사할 생각이었는데.”
“저희도 먹고 살아야죠! 사람이 어떻게 밥도 안 먹고 싸웁니까?!”
“그보다 이 고기 맛있네요. 언제 이런 돼지고기를 확보한 거죠?!”
허겁지겁 돼지고기를 먹는 두 사람이었는데, 바이올렛은 침착히 말했다.
“뭐야, 몰랐냐. 이거 우리가 전에 잡은 트윈헤드오거 고기인데.”
“풉!”
“푸왑!!”
루드와 인큐버스는 일제히 그 입안에 든 고기를 뱉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