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7층(3) -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
“세상을 멸할 힘이라구요??”
그렇게 경악하는 일행에게 여자는 설명해주었다.
“네, 그 말은 과장이 아닙니다. 이 세상은 음양과 오행이라는 요소가 이루어졌는데, 우리 용사 일족은 애초에 동방에서 왔습니다.”
“동방??”
같은 동방의 후손인 안내양이 물었는데,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이 대륙과는 다른 대륙. 그리고 이 대륙에선 기껏해야 4대 속성 정도로 세계를 파악하던데, 그건 잘못된 겁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좀 부족하죠. 동방에선 앞서 말했듯이 음양과 오행이라는 체계로 세상을 파악하고, 이 대륙의 4대 속성은 그 안에 모두 포함되어 있습니다.”
“흐음······.”
플로드가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마법학원에서 10년 넘게 4대 속성론을 강조하며 배웠는데, 그것이 부족한 이론이라고 하니까 뭔가 반발심이 드는 것이다.
그건 어떻게 보면 그녀의 세계를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다.
이를 아는지 모르는지 설명을 계속하는 여자 용사.
“그렇게 세상은 먼저 음과 양이라는 두 에너지로 갈리는데, 그 음양 안에 또 다른 오행이 있습니다. 먼저 불은 오행에도 들어가지만 양의 에너지이기도 하죠. 물 역시 오행의 한 요소이기도 하지만 음의 에너지이기도 합니다. 그 외에 나무, 금속, 흙······. 이렇게 세상을 구성하는 요소들을 모두 포함하여 음양오행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건 잘못된 거 아닌가요?? 가령 4대 속성에는 바람의 기운이 있고 그 안엔 또 번개가 포함돼있지만 당신의 음양오행론에는 그런 게 없는 것 같은데요.”
입술을 삐죽이며 태클을 거는 플로드에게 여자 용사는 웃으며 친절히 설명했다.
“바람, 그리고 번개의 기운은 금, 즉 금속에 포함돼있습니다. 번개는 금속에 끌리죠? 그런 식으로 우리는 설명합니다.”
“칫!!”
플로드는 다시 입술을 삐죽였으나, 그녀로서는 그게 맞는지 아닌지 몰라 태클도 걸 수 없었다. 원래 시비도 알아야 걸 수 있는 법······.
그렇게 얼추 알아야 시비라도 걸 수 있는데 서방의 4대속성론만 알고 있는 그녀로서는 더 이상 지적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반대로 이 용사의 일족이라는 여자는 그런 음양오행론은 물론 4대속성에 대해서도 모두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그러니 저리 자신 있게 설명을 하지.
“우리는 비록 동방에서 왔지만 이 대륙에 정착한지 꽤 오래되었고 그로인해 당연히 이 대륙에 있던 기존의 이론을 모두 연구했습니다. 그렇게 내린 결론은, 4대속성만으로는 어둠에 대항하고 용사의 일족으로서 악을 물리칠 수 없다는 겁니다.”
“하지만 4대 속성에 근거한 마법사들도 악마를 잘만 물리치잖아요?? 실제론 대마법사란 존재들도 있고.”
이크가 물었다. 그러나 그녀는 시비를 걸려는 것이 아닌, 정말로 궁금했기 때문이다.
거기에도 답을 해주는 여자 용사.
“그건 4대 속성론도 결코 나쁜 이론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4대속성엔 수, 화, 지, 풍이 들어가는데 그건 음양오행의 수, 화, 토, 금과 해당합니다. 즉 목이 없는 거지요. 나무, 식물의 기운. 하지만 그걸 4대 속성론에서는 암묵적으로 지에 포함하고 있습니다. 즉, 땅의 기운. 사실 그것만으로도 그리 나쁘진 않지만, 동양의 음양오행론에서는 따로 나무의 기운을 다룰 만큼 그것을 비중 있게 보고 있어요. 아까 당신들이 지적했던 바람이나 번개의 기운을 우린 금에서 다루듯이, 결국 당신들도 4대 속성이라곤 하지만 부족한 부분을 어느 정도 깨닫고 보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이 4대 속성이지, 그 외에도 빛이나 어둠 같은 요소도 있죠. 당신들도 알고 있죠? 에테르론.”
“그렇죠······.”
플로드가 납득했다. 에테르는 고대 철학에서 공기를 말하는 것이었는데, 그래서 4대속성중 하나인 풍의 기운에 속해있었다.
한편 그와는 별도로, 에테르를 단순히 공기나 어떤 물질이라고 생각한 것이 아니라, 빛의 매질로 상상하기도 했다.
“그 이론에 따르면 이 대륙도 단순히 4대 속성이 아닌, 최소한 5대속성은 갖추게 되는 겁니다. 4대속성의 가운데 빛의 속성이 있는데, 빛은 반대로 어둠을 낳죠. 빛이 닿지 않는 공간, 빛의 반대편에 어둠이 있는 겁니다. 그것까지 치면 6대 속성. 즉 이 대륙의 이론도 그리 나쁘지 않아요. 다만 어디까지나 동양의 음양오행론에 비해서 밀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도 한 속성이 부족하니까.”
“그렇군요······.”
이제야 납득한 플로드. 그러나 다시 질문했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기본적으로 4대 속성밖에 가르쳐주지 않아요!! 그리고 전부터 생각했는데 대마법사와 일반적인 마법사들 사이에는 어떤 벽이 있어요!! 그게 뭔지 혹시 아시나요?!”
플로드가 절박한 어조로 말했다. 어떤 분야든 레벨이 높아지면 단순한 노력이나 지식의 증가로 그 단계를 넘어서진 못했다.
즉 지식을 넘어선 지혜, 깨달음이 필요한데 그녀도 그런 벽에 막혀있었던 것이다.
이에도 친절히 답해주는 용사.
“그게 바로 4대 속성 외에, 빛과 어둠의 속성을 깨닫는 겁니다. 그 차이가 대마법사와 그냥 마법사의 차이를 가르는 거죠.”
“아······.”
“원래 빛과 어둠은 인간에게 허용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애초에 불조차 인간에게는 금지된 것이라, 신화에 따라 다르지만 프로메테우스, 혹은 루시퍼가 목숨을 걸고 인간에게 전해줬다고 하죠. 그 결과 그들은 영원에 가까운 세월 동안 고통 받거나 저주받아 타락했습니다. 지금도 그들은 존재한다고 하죠. 아무튼 빛과 어둠은 단순한 속성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시공간’에 관련된 겁니다.”
“시공간??”
“네. 과학적으로도 지금 블랙홀이라는 존재가 알려졌고, 그에 따른 웜홀이나 화이트홀이라는 개념도 있죠. 물론 블랙홀과는 달리 그게 없다는 이론도 있지만······. 이런 이론들을 옛날부터 대마법사들은 연구하고 있었습니다. 아니, 어찌 보면 그걸 깨달은 순간 대마법사가 될 수 있는 거죠. 시공간을 넘어서. 단순히 말해서 빛보다 빨리 움직이면 미래, 혹은 과거로도 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시간을 벗어난 존재가 돼서 무한이 수행한다면?? 아마 신이나 악마에 필적하는 자가 될 수도 있을 겁니다. 그리고 화이트홀은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의 출구 개념으로 제시된 것인데, 그것이 존재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만약 존재한다면 그 어떤 곳으로든 이동할 수 있죠. 그 중간통로인 웜홀을 통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현대 양자론에서는 그런 웜홀이나 화이트홀은 없고, 그저 블랙홀은 무한히 에너지를 흡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천천히 증발하다 언젠가 소멸할 존재라고들 합니다. 물론 양자론적으로 이해만 됐을 뿐이지 확실히 검증된 건 아니지만요. 그렇게 여러 가지 설들이 있는데, 그걸 연구하고 깨닫는 게 바로 대마법사들입니다. 비록 이론엔 차이가 있지만, 대마법사들이 결국 연구하는 건 최종적으로 그 두 가지로 귀결됩니다. 시간, 그리고 공간. 그리고 그것을 연구하다보면 당연히 빛과 어둠으로 이어지게 되죠.”
“그렇군요······.”
플로드는 뭔가 알듯 말듯 하는 얼굴이 되었다.
‘아, 좀만 더하면 뭔가 깨달을 것 같은데······.’
원래 깨달음이란 그런 것이다.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다. 그렇게 플로드가 떠오를 듯 말 듯 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얼굴을 찌푸리고 있는데, 김창남이 물었다.
“그런데 당신들은 왜 그런 빛과 어둠의 에너지를 쓰지 않는 겁니까?? 이론을 알고 있다면 쓰는 것도 가능할 텐데.”
김창남을 빤히 바라보던 여자는 말했다.
“당신은 몽마군요??”
“그렇소.”
“몽마라는 건 즉 악마. 하지만 악마라고 해서 모두 강대한 마기를 뿜거나 마신의 힘을 쓰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긴 하오. 마신은 우리들의 아버지, 즉 근원. 당신들에게도 신이 있듯이, 우리에게도 신이 있소. 그가 바로 마신.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그들을 믿고 따르는데, 물론 그 힘은 쓰지 못하오. 어림도 없는 일이지. 마치 신을 믿는 사제들이 신의 창조물 중 하나인 태양의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처럼.”
“그와 마찬가지에요. 그리고 애초에 빛과 어둠은 언뜻 보면 우리가 말하는 음양의 에너지와 비슷해보이지만, 약간 느낌이 달라요. 그래서 굳이 구분해서 부르는 겁니다.”
“그렇구려······.”
“잠깐, 왜 평소와는 달리 그런 말투를 써요??”
플로드의 지적에 김창남은 당황한 표정이 되었다.
“무, 무슨 말이오?? 소인은 원래 이런 말을 썼소.”
“아니, 전에 잠깐 그런 말 쓴 적 있긴 한데 그건 바이올렛한테 쥐어터지고 변태가면 같은 모습으로 나타났을 때 잠깐 그런 거잖아요?? 그리고 바이올렛 말고 다른 일행들에겐 모두 그냥 반말하면서.”
“그, 그건, 흠흠······.”
김창남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는데 그가 이런 말투를 쓰는 이유는 당연히 긴장했기 때문이었다. 이 여자는 용사의 일족. 게다가 혼자서 자신들 다섯을 동시에 상대할 정도로 괴물이다.
애초에 마왕도 때려잡았다는데 일개 몽마 정도는 그냥 잡몹 수준.
‘제길, 마왕은 이 자들이 때려잡은 거였나. 어쩐지 한 20년 전에 소리 소문 없이 사라졌더라니······.’
김창남은 식은땀을 흘렸다. 당연히 악마와 용사는 천적. 게다가 이 용사는 약한 것도 아니고 이미 마왕을 무찌른 전적이 있다.
실제로 붙어봐서도 그 힘을 충분히 짐작했는데 그러니 그녀가 작정하고 나서면 거의 죽은 목숨이었던 것이다. 그러니 긴장하고 있었는데 여자 용사가 피식 웃었다.
“그렇게 긴장하지 말아요. 안 잡아먹으니.”
“그렇다 해도······.”
“용사의 일족은 한 번한 약속은 지킵니다. 그것이 비록 마족이라고 해도.”
“······.”
“그리고 당신 둘, 몽마죠?”
“네? 네!!”
조용히 묻어가려던 비치도 결국 그 정체를 들키고 당황했는데, 이들은 사실 인간으로 변장한 채였다. 그런데 아무렇지도 않게 들키다니······. 과연 용사는 용사였다.
“원래 같았으면 자기들끼리 번식하지도 못해 인간에게 기생하는 이 미개한 종족을 단번에 구제(사형)했겠지만······.”
움찔. 두 몽마가 움찔했다.
“그래도 내 아들······과 함께 여행한 것 같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하죠.”
“아, 아니 어이?! 용사가 그렇게 대충대충 해도 돼??”
“중요한 것은 악마냐 아니냐가 아니라 그 행동이 어떻냐는 것입니다. 태생이 비록 악이라도 당신들처럼 비교적 정상적인 악마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리고 원래 몽마들중에는 특히 그런 경우가 많죠. 인간들에게 도움을 주거나 위대한 인물들을 낳거나.”
“그렇군······.”
“당신들같이 얼빵한 몽마들 잡아봤자 아무 의미도 없고, 지상엔 선을 자처하는 악도 많아요. 당신들도 그런 건 많이 보았죠?”
“아······.”
그런 게 바로 세르마의 교단이었다. 그걸 똑똑히 경험한 일행은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세계를 멸할 힘이라니 그걸 왜 루드가 가지고 있는 거죠??”
“아, 그 점을 깜박했네요. 내 정신이라니······.”
일행은 결국 본론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진지한 표정으로 말하는 용사.
“원래 내 자식, 루드는 절대 존재할 수가 없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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