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6층(4) - 쿵
“끝났다고 생각하나?”
“그럼??”
어깨를 관통당하고 주저앉은 루드를 보며 실반이 말했다.
“검을 쓰는 어깨를 망가트렸다. 이제 너는 두 번 다시 검을 잡지 못하겠지.”
“그럴까?? 그런데 나는 양손잡이다!!”
콰앙!!
다시 한 번 루드의 검이 작렬했다. 다친 오른손의 검을 마치 미끄러지듯 놓치더니 그걸 왼손으로 잡는다. 그리고 휘두르는 검. 이 불시의 일격에 노련한 백전노장의 검사 실반도 당했다.
“큭!!”
“언젠가 일부러 검을 놓친 척하고 이런 공격을 한번 해보려고 했는데 말야······. 오늘 니가 내 소원을 이루어주는군!!”
다시 한 번 부딪치는 검기. 그러나 말과는 달리 루드의 검기는 예전 같지 않았다.
먼저 통증. 통증은 반응을 둔화시키고 반시신경을 떨어트린다. 그리고 두려움.
이미 한번 당한 공격에 두 번째 당해도 이상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 루드는 자신을 과신하지 않았다. 그러나 적당한 두려움은 방심을 막지만, 과도한 두려움도 그리 좋지 않다.
자신만만한 척 했지만 루드는 사실 떨고 있었다. 인간이면 어쩔 수 없는 두려움.
어깨가 당했는데 갑자기 목이 날아가도 이상하지 않다. 게다가 지금은 아까보다 상황이 더욱 좋지 않은 것이다. 그 결과 움츠러든 몸은 두 번째 공격을 허용했다.
푸슉!!
“자, 이제 왼팔도 못쓰게 됐다. 이젠 어떤 곳으로 공격할 거지??”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어처구니없게도 피격의 순간 검이 떨어지자 루드는 그걸 입으로 받았다. 마치 예상했다는 듯이. 찔린 어깨는 자신의 의지와는 달리 검을 놓았다. 그걸 입으로 받아낸 루드.
“하하, 마치 곡예와 같군. 아님 그걸 예상한 건가?”
“어느 정도는.”
“그렇다고 해도 그걸 실행에 옮길 인간은 거의 없을 것이다. 자, 이제 양팔이 병신이 된 상태에서 어떻게 공격할 거지?”
“너 혹시 롤로노아 조로라고 알고 있냐?”
“······.”
롤로노아 조로는 전설적인 해적 검사로 어렸을 때 죽은 친구의 유지를 잇기 위해 그 검을 입에 물고 싸운다.
양 손에 든 자신의 검과 입에 문 검까지 합쳐서 모두 세 자루의 검을 쓰는데 그래서 삼검류라고 스스로 칭하는 것이다. 아무튼 그런 어처구니없는 루드의 말에 대답하는 실반.
“알긴 아는데.”
“그와 같은 것이다. 롤로노아 조로는 입에 검을 한 자루 물고 싸우는데 그것만으로도 사람을 쓰러트릴 수 있다. 그가 가능하다면 나에게도 불가능하진 않겠지.”
“그건 그렇게 몇 년 동안이나 검술을 수련한 롤로노아 조로니까 가능한 거잖아?”
“······.”
실반의 지적에 할 말을 잃는 루드. 그러나 루드는 굴하지 않았다.
“후후, 넌 롤로노아 조로가 왜 그렇게 강한지 알고 있나??”
“왜지??”
“단련된 사람일수록 치악력, 즉 턱 힘이 강하다. 이건 격투기 선수들뿐만 아니라 야구나 배구 등 스포츠 선수에게도 공통적인 사항이지. 힘을 줄 때는 사람이 자연스럽게 이를 악물게 된다. 그래서 발달하게 되는 치악력. 그래서 스포츠 선수들은 자기 힘에 의해 이가 일반인들보다 과도하게 닳게 되고 그로인해 마우스피스를 끼고 운동을 하는 사람도 있지. 마우스피스는 적에게서 나의 이를 보호하기 위한 것만이 아니다. 내 힘에 의해 내 이가 부스러지는 것을 막기 위한 용도도 있지. 그런데 그렇게 이를 악무는 과정에서 치악력이 발달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아예 거의 항상 입에 검을 물고 이를 악문 채 싸우는 롤로노아 조로. 그럼 그 힘은 얼마나 강할까?? 상상해봐라, 얼마나 강할지!!”
“근데 넌 롤로노아 조로가 아니잖아.”
“······.”
루드는 말을 잃었다.
“그렇게 몇 년씩이나 개고생해서 삼검류를 익혔을 건데 넌 롤로노아 조로가 아니지. 그런 입으로 물고 싸운다는 변칙 검술이 통할 거라고 생각했나?? 차라리 의수에 검을 달고 싸우는 것이 더 빠를 것이다. 자, 이제 헛소리는 다 끝났나?? 딸의 동료라 그래도 상당히 봐주면서 했는데 더 이상의 자비는 없다. 사위고 나발이고 그 이전에 순순히 항복하지 않으면 이번엔 목을 날려버리겠다. 두 번째 경고는 없다.”
“그렇게 나오는 건가? 하지만 내겐 입으로 할 수 있는 다른 것이 있다. 이크!!”
사와악!!
루드가 부르자 이크는 즉시 회복마법을 날려주었다. 그러자 파손된 어깨가 동시에 복구되는 기적. 루드는 입에 물었던 검을 그 즉시 오른손으로 들었다. 그리고 다시 자세를 취하는 루드.
“자, 봤지? 내가 입으로 할 수 있는 것을??”
“과연 입만 살았구나. 지켜야할 대상에게서 보호받는 아이러니함이라니.”
“원래 동료는 서로 돕는 것이다. 이렇게 도움 받고 나도 필요할 땐 도움을 주는 것이지. 그렇지 않나, 이크?!”
“네, 뭐······.”
“엑, 반응이 왜 그래??”
그런데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이크의 반응은 시원찮았다. 심지어 짜증까지 냈던 것이다.
“말시키지 말아욧!! 지금 싸우느라 바빠 죽겠는데!!”
“미, 미안······.”
그 결과 루드는 머리를 긁적거릴 수밖에 없었는데, 실반의 휘하 열 명의 기사는 각자 그 무력이 상당해서 한 명도 아니고 두 명씩 붙으니 일행은 모두 고전했다.
‘큭, 한명이었으면 진작에 제압했을 텐데!!’
일행은 모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제압은 내가 피해를 입지 않을 때, 상처 없이 상대방을 무력화시킬 수 있을 때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생사를 건 싸움.
반대로 우위에 있는 적들이 지금 루드 일행을 무력화하여 제압하려는 중이었다.
비록 적이라지만 그들은 딸의 동료들. 그래서 실반이 가급적이면 상처 없이 제압하려 했던 것이다.
“기억해라. 지금 너희들의 생존은 오로지 내 자비에 의한 것임을. 만약 내 마음이 바뀐다면 너희 목숨은 없다.”
“하하, 그러니까 지금 우리들이 숨 쉬고 살아있는 것도 다 당신 덕분이라는 거군요?? 참 고~맙습니다~! 고마워서 눈물이 날 지경이네요!!”
빈정거리는 루드를 보고 실반은 손가락을 한번 딱! 하고 튕겼다. 그러자 거세지는 공격.
“큭!”
“아악!!”
“괜찮아?!”
그제서야 루드는 자신이 성급했나 생각했는데 오히려 플로드가 루드를 두둔했다.
“괜찮아요.”
“뭐?! 하지만 상처가!!”
“괜찮아요!! 버려놓고 이제 와서 딸이라고 쫄랑쫄랑 나타나 데려간다는 사람의 뻔뻔함에 비하면 이 정도 고통은 양호!! 아무것도 아니에요!! 난 당신을 아버지라 생각하지 않아!! 내 아버지는 죽었어!! 내가 버려져 마법학교에 맡겨진 순간부터 말이야!!”
“딸아······.”
실반은 짐짓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그건 사고라고 하지 않았니? 나도 널 지키고 싶었다. 하지만 부인의 등쌀에 못 이기고 너를 마법학교에 맡기고 만 내 어리석음!! 그래도 태어날 때부터 니가 마나를 타고 난 것을 알고 난 널 마법학교에 맡겼다!! 그리고 그 와중에도 꼬박꼬박 양육비를 부쳤지!! 넌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고 싶지 않았니?!”
“······물론 궁금하긴 했어. 하지만 자식을 버린 부모가 돈만 부쳐준다고 무슨 소용이 있지?? 심지어 계모라도 그런 짓을 하진 않아!! 당신은 부모가 자식에게 돈만 부쳐주면 된다고 생각한 거야?!”
“그건······.”
실반은 말을 잃었다. 확실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어려서부터 난 마법학교에서 허드렛일을 하며 마법을 배웠어. 하지만 나에겐 사대속성 중 오직 불의 속성밖에 발현되지 않았지!! 하지만 지금은 그것에 감사해!! 내 앞길을 막는 모든 걸 태워버릴 수 있으니까!!”
콰아앙!!!
플로드가 만들어낸 불꽃이 격렬하게 불을 뿜었다. 플로드란 이름도 부모인 실반이 지은 것이 아니었다.
첩의 자식이라 태어나자마자 정실부인의 강렬한 반대에 의해 키우지도 못하고 마법학교에 버리듯 보냈는데, 그곳에서 마법을 익혔음에도 불구하고 플로드는 불 이외에 다른 속성을 익히지 못했다.
그건 그녀의 분노 때문. 그녀는 세상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자신을 버린 부모, 그런 자신을 업신여기는 마법학교의 선생들과 학생들. 그 결과 그녀에게서는 분노의 불꽃밖에 발현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화력은 발군. 불의 속성 중에서도 제한된 마법밖에 쓰지 못하는건 반대로 그녀의 분노가 워낙 강하기 때문이다.
그녀가 내뿜는 불길은 워낙 증오의 마음이 가득 담겨 있어 다른 형태로 구현되지 못했다.
보통 초보 마법사가 구현하는 화살? 구슬의 형태? 보통 마법사는 그런 단순한 모양부터 시작한다.
그렇게 차차 단계를 높이며 자신이 원하는 형태나 구조로 마법을 구현하는데 그녀가 만들 수 있는 것은 그저 무식하게 큰 화염구뿐이었던 것이다.
“네가 만든 이 괴물을 지켜봐!! 난 괴물이 되었어!! 모든 것을 태워버릴 수 있는 괴물이!!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직 태우고 또 불태우는 것뿐이야!! 자, 내 증오를 맛봐!! 자신의 딸이라는 자가 만든 증오를 말이야!!”
콰아앙!!!
엄청나게 거대한 불꽃이 그녀의 손가락에서 발사되었다. 마치 손으로 총 쏘는 시늉을 하듯 검지를 내뻗고 쐈을 뿐인데, 그곳에서는 여태까지 낼 수 없었던 가장 강력한 위력의 불꽃이 나갔다.
그러나 그것은 반대로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나간 것. 집중된 마나는 손가락 끝에 모여 한 점 핵을 형성하고는 어마어마한 기세로 거대화하여 발사됐다.
그 위력은 시전자인 플로드를 오히려 태울 정도. 플로드란 이름은 폭발하다란 뜻의 익스플로드(explode)에서 마법학교의 사람들이 지어준 것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아무리 강한 위력의 화염구를 만들 수 있어도 고작 그것밖에 못하는 플로드는 그저 반푼이 마법사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최소한 두 개 이상의 속성을 쓰지 못하는 마법사는 무용지물. 그런 건 특정 속성에 면역을 가진 몬스터를 만나면 바로 죽는다.
게다가 심지어 그 마법저항력 낮기로 유명한 무식한 전사들도 요즘엔 그런 속성면역 효과가 있는 성물 정도는 하나씩 들고 다녔다.
그리고 불의 속성은 가장 대중적이자 보편화된 강력한 속성이므로 그 속성에 저항을 가진 성물이나 도구를 들고 다니는 건 당연한 일······. 그래서 플로드는 쓰레기 취급당했다.
‘저런 마법사는 아마 동네 트롤들 처리하는데 밖에 소용이 없을 거야! 하하하하하하!!’하며 플로드는 비웃음을 당했는데 그 결과 그동안 응축된 플로드의 분노는 엄청난 결과물을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 화염구는 얼마나 그 심상이 많이 들어갔던지 특유의 증오심마저 구현되어 거의 새까만 빛이었다. 증오의 화염구. 그리고 발사된 화염구는 워낙 빨라 이크를 상대하던 기사 하나를 태워버렸다.
대부분 발 빠르게 피해버렸는데 하필 플로드를 등지고 있던 이 기사는 미처 피하지 못하고 정통으로 맞아버렸던 것이다.
“으아아아아악!!!”
기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한 비명을 지르며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갑옷과 옷은 물론 피부, 근육, 내장, 뼈까지 순식간에 타버렸다.
그렇게 모든 것이 사라지고 그저 검이었던 금속이 녹아 땅에 주르륵 흘러내렸는데 그것만으로도 만족하지 못하고 화염구는 계속해서 돌진했다. 애초에 실반을 노린 화염구.
실반 역시 그걸 피하지 못했다. 플로드의 증오심에 압도당한 것인가?? 거의 20년에 가까이 쌓인 증오는 노련한 검사인 실반의 발을 묶었다.
보통 어떤 공격에는 그런 각오나 증오가 담기는 경우가 있다. 모골을 송연하게 만드는 증오.
그 결과 실반은 자신이 쌓은 20년 가까이 되는 업보를 그대로 맞이했던 것이다.
“으아악!!!”
최후의 순간 검으로 저항해보았으나, 이 증오의 불길은 모든 것을 녹이며 격중했다.
검도, 그것을 둘러싼 검기도, 갑옷도, 피부도, 근육도. 내장과 뼈만이 완전히 타지 않고 익은 채로 너덜너덜하게 그 속을 드러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반은 죽지 않았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처음 적중한 기사가 그 화염구의 위력을 상당히 줄였던 것이다.
쿵!! 실반이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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