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5층(8) - 화르륵
엠폴리오와 루드의 검이 부딪쳤다. 그리고 다시 부딪치는 엠폴리오와 안내양의 검.
그렇게 일행은 서로 스쳐 지나가며 엠폴리오와 검을 맞댔다.
하지만 고작 혼자에 불과한 엠폴리오는 그 한 몸으로도 일행의 공격을 충분히 버티고 있었다. 루드, 이크, 바이올렛, 플로드, 비치, 김창남, 안내양. 게다가 바바리안 둘까지 있었다.
총 아홉 명의 아군이 있는데 이 엠폴리오를 끝장낼 수 없는 것이다.
‘미친놈!!’
‘뭐 이렇게 세!!’
루드와 안내양은 얼굴을 찌푸렸다. 지금 엠폴리오와 가장 많이 검을 부딪치는 것이 바로 이 두 사람이었다.
이크와 플로드는 주문으로 보조했고, 비치와 김창남의 채찍이 스쳐 지나가고 빠지자 곧바로 그 빈자리를 바바리안 셋이 메꿨다.
바이올렛은 아직 자신이 세르마의 이단 심문관이기 이전에 바바리안이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아 여러모로 충격이었지만, 어쨌든 싸우는 수밖에 없었다.
확실히 이상한 점은 여러 가지로 있었다. 무엇보다 여자 치고는 상당히 큰 키. 키 170의 여자는 이 대륙에서 거의 없었다. 그리고 화신체.
교단의 설명으로는 신의 힘을 불러와 자신의 몸에 강림시키는 기술이라고 했지만 여태까지 자신 말고는 누구도 사용하는 걸 본적이 없었다.
그래서 자신만이 특별히 선택받은 존재이거나 혹은 엠폴리오를 비롯해 법황 등의 고위 성직자는 쓸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사실 세르마 교단이 설명한 화신체의 원리 자체는 대충 맞았다. 신의 강림.
하지만 그 정체는 세르마의 강림이 아니라 바바리안들이 믿는 신의 강림이다.
바로 대지모신. 바이올렛은 어렸을 적 납치되어 자신이 바바리안이라는 사실도 그들 특유의 지식도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이런 화신체를 써버렸다.
오랫동안 수련한 바바리안들이나 쓸 수 있는 바바리안의 극치.
하지만 이젠 그 화신체를 써서 교단에 대항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이 어렸을 적 납치되었다고 하여 교단은 적인건가??
그리고 자신 역시 교단의 개로써 수없이 많은 더러운 짓들을 했는데 이제 와서 바바리안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그게 용납 받을 수 있는 건가??
“으아아아아!!!”
그런 고뇌로 인해 바이올렛은 미친 듯이 고함을 지르며 싸웠다. 하지만 맨손으로 바이올렛의 화신체 공격을 막는 엠폴리오.
“너무 소리 지르지 마. 약해보이잖아.”
그렇게 엠폴리오는 키득, 웃으며 들고 있던 검으로 바이올렛의 몸을 미친 듯이 찔렀다.
콰과과과곽!!!
1초에도 열 번 이상이나 찔러대는 이 검의 난무는 순식간에 바이올렛의 몸 여기저기에 바람구멍을 만들었다.
다행히 급소는 모두 방어하여 타격이 거의 없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피해가 전혀 없었던 건 아니었다. 몸 여기저기서 상당한 양의 출혈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이크!!”
“여깄어요!!”
바이올렛이 외치자 순식간에 이크의 힐이 날아와 치유해주었다. 그러자 검에 의해 뜯긴 옷자락 너머로 순식간에 치유되는 게 보이는 상처.
“호오, 특급 치유사인가? 일행 중에 이런 인재가 있었는지는 몰랐군. 정했다. 너희 일행은 모조리 세뇌해서 데려가겠다. 정 안되면 저 사제라도. 저런 권능을 가지고 있는 사제를 데리고 가면 우리 교단의 미래는 더욱 밟게 빛나겠지!! 대충 봐도 죽은 자 이외에는 모두 소생할 수 있을 것 같은 파워가 담겨있는데 너만은 데려가겠다!! 놓치지 않겠다, 사제!!!”
“히이익!!!”
이크가 겁먹은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그렇게 바이올렛의 뒤에 숨는데 아직 상처가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바이올렛이 칫, 하며 인상을 찌푸리며 숨을 고르는 동안 다른 바바리안 둘이 달려들었다. 그리고 내지르는 주먹.
“하아압!!!”
쾅!!
미처 피하지 못하고 엠폴리오는 두 주먹을 맞았다. 그러나 공격에 의한 먼지가 걷히고 나니 보이는 건 정확하게 주먹을 받아낸 검.
푸슉!!
화신체에 의해 극도로 강화되었을 주먹에서 핏물이 솟아올랐다. 화신체를 쓸 수 있다는 건 이들도 극도로 수련한 바바리안이라는 셈.
그런데 그런 신이 강림한 주먹을 검 한 자루로 깨버렸다. 이 검기는 그야말로 불길한 기운의 결정체. 마찬가지로 신의 힘을 담았다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건 불쾌함 밖에 없었다.
신은 신이라도 사신의 힘이 거기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세르마란 놈은 원래 이렇게 불쾌한 놈인가?! 검에서 풍겨 나오는 기운 조차도 역겹기 짝이 없군!!”
“신성모독이다!!!”
침착하게 공격을 받아내던 엠폴리오는 갑자기 광분하여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큭!!”
그리고 좀 전까지 그럭저럭 공격을 받아낼 수 있었던 루드는 점점 버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런 루드의 위기를 구해준 것은 바로 일행들이었다.
“플래시!!”
“뇌신!!”
“풍신!!!”
콰아앙!!!
안내양과 김창남, 비치의 공격이 동시에 한 장소를 갈겼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엠폴리오.
“어디지?!”
“뒤다!!”
엠폴리오는 이미 일행을 무시하고 이크에게로 달려가고 있었다. 이 사제의 힘은 잘 보았다.
그렇다면 계속 놔둘 경우 일행이 계속해서 회복하는 건 당연한 지사.
이크의 마력에는 한계가 있지만 엠폴리오에게는 그걸 굳이 다 쓸 때까지 놔둘 생각은 없었다. 게다가 마력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도 알 수 없는 것이다.
“잡았다!!!”
그렇게 엠폴리오의 눈이 광기로 희번덕거리며 검을 들어 올리는데, 옆에서 갑자기 화염구 하나가 날아왔다. 바로 플로드였다.
“폭발!!”
쾅!!!
“으아악!!!”
엠폴리오는 드물게도 비명을 지르며 날아갔다. 전혀 낌새를 눈치채지 못한 공격.
플로드는 자신이 엠폴리오의 주의에서 벗어난 것을 알게 되자 은밀히 마나를 움직여 이 공간에 퍼트려놓았다.
그래서 원래는 일정 거리를 날아가고 나서야 폭발할 수 있는 화염구를 바로 옆에서 폭파.
이게 별 것 아닌 것 같아 보이지만 얼굴 바로 앞에서 갑자기 화염구가 터진다고 생각해보라.
어지간한 실력자도 아무런 손을 쓰지 못하고 당할 것이다. 그 결과 치밀하게 준비한 플로드의 한 수는 누구보다도 먼저 엠폴리오에게 타격을 입힌 것이다.
그러나 이 행동은 엠폴리오의 분노를 불러왔다.
“저 개년이!!!”
힐끗!! 광기로 물든 엠폴리오의 두 눈이 플로드를 포착했다. 검을 들지 않은 한 손으로 얼굴의 화상을 감싼 채, 엠폴리오는 날 듯이 지상을 달려 플로드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검을 내려쳤던 것이다.
“화염결계!!!”
쾅!!
그렇게 검을 내리친 엠폴리오였으나 공격엔 실패했다. 갑자기 일어난 플로드 주변을 감싸는 결계. 붉은 화염이 흘러내리듯 움직이며 사방을 덮었다. 그러자 어리둥절해하는 플로드.
“어, 이걸 내가??”
플로드는 마법학교에서 갖가지 주문들을 다 배웠지만 실제 사용에는 실패했다. 그 이유는 플로드가 워낙 화염계 마법에 특화인데다 그 중에서도 화염구만 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마법에 재능을 가진 사람들 중에도 가끔씩 이런 이단아가 나왔는데, 하나는 잘했지만 반대로 말하면 그 하나말고 아무것도 잘하는 게 없는 사람이 있었다. 그게 바로 플로드였다.
그리고 마법사는 최소한 두 계통 이상의 마법은 대체로 소화할 줄 알아야 했는데, 그 이유는 마법 면역때문이었다.
고위급 몬스터들, 특히 정령들은 그 자체가 원소로 이루어져 있어 특정 계열의 마법에는 전혀 피해를 받지 않거나 오히려 회복, 혹은 강해지는 개체들도 있었다.
가령 불의 상급 정령에게 어설픈 불로 공격하면 그 정령에겐 오히려 도움만 되는 것이다.
아마 그 정령은 에너지가 증가하는 기분을 느꼈을 텐데, 그래서 한 가지 계통만 잘하는 마법사는 별로 쓸모가 없었다. 하물며 한 가지 마법만 잘하는 마법사야.
그건 그 마법을 아무리 잘 다룬다고 해도 마찬가지다. 그런 마법에 면역인 몬스터를 만나면 무조건 도망가야 하고 재수 없으면 죽는 것이다.
그것은 특히나 파티의 경우도 마찬가지라서, 보통 마법사는 특유의 시전시간 때문에 전사나 검사 등이 포함되어 있는 파티의 호위를 받으며 주문을 시전했다.
그리고 검사는 특별히 검기나 마법검을 사용하지 못하면 속성 공격을 할 수 없다.
그런데 파티의 유일한 마법사가 한 가지 속성밖에 사용하지 못해서 파티가 전멸을 하게 된다면? 그래서 플로드 같이 하나만 잘하는 반푼이 법사는 원래 파티를 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홀로 이 던전에서 모험을 하고 있었는데 이 플로드를 일행이 거둬 마법사 구실을 할 수 있게 만들어줬던 것이다.
그런데 위기에 닥치자 원래는 쓰지 못했던 마법도 쓰게 된 플로드. 플로드는 사실 전에도 이 화염결계를 어쩌다 쓴 적이 있지만 그 후에도 위기를 벗어나자 다시 마법을 사용하지 못했다.
사실 플로드의 문제는 한 가지 마법만 쓸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위험하지 않으면 제 실력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보통 이건 대부분의 사람들도 그렇지만 숙련된 무인이나 마법사들은 그런 훈련과 실전에서 쓸 수 있는 힘을 거의 비슷하게 맞춘다.
반복된 훈련은 실전을 적응하게 만들고, 실전에서 배운 깨달음은 다시 훈련에 적용되는 것이다.
그런데 아무튼 오랜만에 미증유의 위기를 만난 플로드는 무의식적으로 이 방어 마법을 써버렸다. 그리고 눈앞에서 미친 광신도의 검이 닥치자 플로드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공포가 몸에 각인되었고, 그로 인해 플로드는 질질 오줌까지 싸고 있었던 것이다.
주르륵!!!
흘러내린 오줌이 곧바로 자신이 만든 화염결계의 열기에 의해 증발해버렸다.
그 결과 오줌은 특유의 지린내만 남기고 사라졌는데, 아마 이 사실은 플로드만 알 터였다.
그리고 지금은 플로드도 정신이 없어서 그런 사실마저 눈치 채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데 플로드가 잠시 방어에 성공한 틈을 타 비치와 김창남이 동시에 따라 붙었다.
그리고 외치는 김창남.
“잘했다, 플로드!! 아직 공격할 수 있지?!”
“네, 네!!”
“좋았어, 합체공격이다!! 뇌신!!”
“풍신!!”
“에, 엑?! 화염구!!”
뭔가 잘 모르겠지만 일단 플로드는 화염구를 발사했다. 합체공격이라는데 자신이 할 수 있는 공격은 화염구밖에 없었다. 그 결과 김창남의 뇌신, 비치의 풍신에 합쳐진 화염구.
번개와 질풍, 불꽃의 3단 공격이 동시에 날아갔다. 그리고 융합된 이 공격은 더 큰 시너지 효과를 내며 엠폴리오를 불태웠던 것이다.
퍼어엉!!!
그 결과 제 아무리 강력한 엠폴리오라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쓰러져 버렸다. 쓰러진 엠폴리오의 몸에는 아직까지 불이 붙어있었다.
김창남의 번개는 순간적으로 엠폴리오의 근육을 마비시켜 방어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사실 엠폴리오에게 치명타를 입힌 공격은 플로드의 화염구였다.
원래 화염공격은 모든 속성 중에서도 단순히 위력만이라면 최강. 물론 그 효과는 단순하지만 화상 등도 일으키고 부가적인 효과도 있다. 하지만 맞지 않으면 모든 것이 도로아미타불.
그러나 김창남의 번개가 순간적으로 0.1초도 되지 않는 시간동안 엠폴리오를 마비시켜 방어할 마나를 끌어올리지 못하게 할 동안, 비치의 질풍으로 인해 증폭된 화염구가 엠폴리오를 불태웠다.
그 결과 엠폴리오는 아무 말 없이 얼굴에 불이 붙은 채로 그대로 누워있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화르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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