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 독백
안녕? 난 루드라고 해. 19세. 도둑이지.
내 이름이 왜 루드냐고?
날 부르는 사람들이 하나같이 날 싸가지 없다고 하다 보니 어느새 이름이 루드(rude)가 되었어.
희한하지?
하지만 그도 그럴 게 난 부모가 없어.
내가 어릴 때 이미 모두 죽어버렸거든.
어쩌면 날 버리고 떠나갔는지도 몰라.
하지만 난 상관없어.
왜냐고?
나에겐 지금의 도둑 라이프가 있으니까.
난 지금의 도둑 생활에 만족하고 있어.
물론 대부분은 음식이나 생필품 등을 훔치기는 하지만 가끔씩 더 귀한 것을 훔칠 때도 있어.
바로 여자애의 빤쓰(?)야.
부모도 없고 가진 것도 없어서 도둑질이나 하는 이런 엿 같은 인생에 오직 내게 허용된 유일한 마약이 바로 여자애의 빤쓰를 훔치는 것이지.
삼엄하게 경비되고 있는(?) 옆집 담장을 넘어 이웃집 여자애의 빤쓰를 훔칠 때만이 내가 살아있다는 것을 유일하게 실감하는 순간이야.
물론 그러다 걸리면 죽도록 얻어터지지만 난 그래도 상관없어.
무릇 여자애의 빤쓰란 그 정도 가치가 있는 것 아니겠니?
그런데 항상 그렇게 빤쓰와 각종 음식물을 좀도둑질하던 나에게 어느 날 큰 전환점이 찾아왔어.
바로 우리 마을에 던전이 생긴 것이지.
그로 인해 깡촌이던 우리 시골마을은 갑자기 전 대륙의 화제가 되었어.
평소엔 시군구도 아니고 읍면리 수준이었던 우리 마을에도 사람들이 드나들기 시작한 것이지.
마을은 떠들썩해졌고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활기가 생기기 시작했어.
하지만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는데 바로 도둑질을 할 수 없게 된 것이야.
이전까지 대충 서리나 요정의 소행으로 넘어갈 수 있던 나의 도둑질도 마을이 커지면서 제도와 처벌이 엄격해지고 그냥 넘어갈 수 없게 된 것이지.
얼마 전에는 그렇게 여행객들의 주머니를 털다 하마터면 외팔이가 될 뻔했어.
다음에 또 걸리면 그때는 가만두지 않겠다더군.
자칫 잘못하면 절지동물(節指動物)이 될 뻔했는데, 아무리 나라도 그런 상황에서 더 이상 도둑질을 할 수는 없잖아?
하지만 이건 사실 이 세상이 잘못된 거야!
나라가 잘못된 거라고!
애초부터 부모와 재산이 없었던 나에게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없었어!
나도 딱히 도둑질이나 동냥 따윌 하고 싶진 않았다고!
나도 일자리를 찾고 싶었어!
만약 나에게 돈이나 각종 물품을 주었다면 그것은 나를 잠시 도와준 것뿐이지!
하지만 직업은 유용한 직무 기술과 경험을 발전시키면서 성취감과 함께 급여도 제공한다고!
나도 유급휴가와 복리후생, 자녀학비지원도 되는 주당 40시간짜리 정규직을 원했어!
흠흠흠, 서론이 길었군.
아무튼 갑자기 생긴 던전으로 인해 우리 마을은 난리가 났어.
그로 인해 갑자기 땅이 꺼지면서 마침 그곳에 서있던 망할 우리 마을 촌장 양반도 땅 속으로 빨려 들어갔지.
망할 놈의 영감··· 잔소리는 많이 했지만 속은 따뜻했었는데······.
어쨌든 그런 촌장의 희생을 시작으로 땅 속에서 계속해서 몬스터들이 튀어나오자 사람들은 대책을 강구하고 결국 몬스터를 토벌하기 위해 땅 속으로 들어가게 됐어.
그리고 지금은 어느 정도 안정화되어서 일정 층마다 빈 공간에 자리를 잡고 휴식 공간이나 안전지역도 만들어졌다더군?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몬스터들의 씨알은 마르지 않아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어.
왜냐고?
마을을 찾은 왕립 마법사 협회소속 마법사들의 말에 의하면 뭐라더라?
차원이 일그러져서 그 틈 사이로 괴물들이 계속해서 나온다는데 그 이상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
무슨 전문용어인 것 같았거든.
나야 부모도 없고 고아로 눈칫밥 먹으면서 살아온 인생인데 그런 어려운 말을 어떻게 아냐?
그냥 그런 것 같더라고.
어쨌든 마을 사람들 말을 들어봐도 그런 것 같고 아무튼 그렇다고 하니까 한동안 이 몬스터들의 침공은 계속될 것 같아.
하지만 그게 꼭 독이 되는 일만은 아니라서 처음엔 몬스터들의 침략에 피해를 입었던 우리 마을 사람들도 이제는 좋아하고 있어.
기존에는 워낙 깡촌이라 농사나 짓고 나무하면서 강에서 물고기나 잡는 게 다인 마을 사람들이었는데 도시가 세워지고 치안이 좋아지면서 도둑도 줄어들고 각종 문화생활을 누릴 기회나 소득도 올라갔단 말이야.
여기서 줄어든 도둑이란 나를 가리키는 게 아니고 아무튼, 흠흠!
이제 이 마을에서는 각종 몬스터의 가죽이라든가 뼈, 피, 골수 등을 가공하는 사업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우리 마을 사람들이 적응하는 건 무척 쉬웠어.
왜냐하면 원래 우리 마을 사람들은 각종 농업이라든지 그런 생필품을 만드는데 익숙했기 때문이지.
만약 상업도시나 군사도시였다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런 능력을 터득하지 못했을 거야.
다만 우리 마을 사람들은 아무래도 몬스터를 잡는 일에는 비교적 익숙하지 않았기에 처음에는 그런 몬스터들의 침략에 약간 난항을 겪었지.
하지만 왕국에서 토벌대가 오고 자유 모험가들도 몬스터 사냥에 합류하면서 그런 걱정은 없어졌어.
토벌대나 모험가들이 몬스터들을 사냥해서 각종 재료를 팔면 우리 마을 사람들은 그걸 가공해서 돈을 벌면 됐거든.
아니면 제 값을 내고 그 재료를 사든가 말이야.
그래서 지금 우리 마을 사람들은 몬스터 장비 가공과 중개업으로 떼돈을 벌었어.
얼마 전에는 던전이 생기기 전까지 빈곤하게 농사를 짓던 옆집 톰 아저씨도 스포츠 마차를 타고 다니더라고.
엄밀히 말하면 소가 끌고 다니니까 마차가 아니라 우차인 것 같은데 그 소가 워낙 좋은 혈통의 소라 이름도 아벤타도르 라고 하던가, 무르시엘라고 라던가?
아무튼 엄청나게 빠른 소라서 최고시속이 350km에 달하고 제로백은 2,9초라던데 거의 그 정도쯤 되면 이미 소가 아닌거지.
근데 사실 이 동네는 워낙 괴물들이 많아서 일단 그런 소의 형태를 하고 있는 동물은 아무 것도 아니긴 해?
마법사들은 각종 해골마나 유령마 같은걸 타고 다니기도 하니까 말이야.
근데 한번 봤는데 해골마는 썩은 내가 나서 못 타겠더라고.
사실 알고 봤더니 해골마는 마법사들 중에서도 비교적 급이 떨어지는 애들만 탄데.
아니면 재산이나 신용 등급이 낮은 애들이나 말이야.
그런 애들은 대출이 안 되니까 그런 똥차를 타는거지, 끌끌.
나? 난 무슨 차를 타냐고?
난 뚜벅이지.
왜, 뚜벅이라서 우습냐?
부모님이 주신 두발로 자기 맘대로 어디까지나 걷고 싶은 데로 걸을 수 있다는 건 큰 축복이라고?
게다가 나에겐 부모님이 주신 세 번째 다리도 있지, 으흐흐.
아무튼 마법사들도 국가공인 마법사고시에서 2차까지 합격을 하면 그 즉시 은행에서 마이너스 통장으로 1억 골드까지 대출해준다던데 해골마 타고 다니는 애들 보면 공부를 열심히 안했나봐?
마법사 연수생이 되면 2년 동안 약 2천만 골드의 연봉을 받고 5급 공무원 수준의 대우를 받는다는데 나하고는 거리가 먼 얘기지, 흠.
게다가 요즘에는 마법사고시도 없어지고 매직스쿨이니 마법전문대학원이니 뭔가가 생긴다고 말들이 많더라고?
참 마법사고시 준비하는 사람들도 힘들겠어?
고시원에서 알바하면서 학비랑 생활비 벌면서 공부하는데 말이야?
아무튼 우리 동네는 그런 몬스터에서 나오는 재료로 만드는 장비 가공업도 대륙 제일이지만 그와 못지않게 성업하고 있는 분야가 있어.
그게 뭐냐고?
바로 몬스터 요리점이야.
처음엔 이런 몬스터들, 생긴 것도 흉측하고 고기도 질겨서 먹을 것도 없다고 생각하고 가죽만 벗기고 다 갖다버렸는데 알고 보니 자양강장에 효과가 있지 뭐야?
말하자면 정력에 효과가 있다는 뜻이지.
아니나 다를까, 그 소문이 퍼지자 전국에서는 각종 모험가들과 남자들이 그런 몬스터 고기를 구하려고 우리 동네로 날아왔어.
그리고 던전 저층의 몬스터들은 씨가 마르기 시작했지.
중, 고층으로 가면 그런 몬스터들도 강해지고 아예 먹을 수 없는 몬스터도 있어서 식용으로 하기가 난감한데 어느 정도의 층까지는 그런 재료가 많나봐?
덕분에 동네 몬스터 요리점에서는 오크 거시기니 고블린 거시기니 각종 정력에 좋다는 요리들이 나돌고 있는데 그 인기가 어마어마해.
그리고 효과도 실제로 있나봐?
동종동식(同種同食)이란 말 알지?
이 말은 우리 대륙이 아니라 동방에서 나온 말인데 그 동네는 간이 아프면 간을 먹고 위가 아프면 위를 먹는 게 일종의 치료법인가봐?
나도 처음엔 미신인줄 알았는데 뇌를 먹으니 나도 똑똑해지더라고?
이제 내 똑똑함의 비결을 알겠지?
사실 나도 그렇게 뇌를 먹고 싶었던 것은 아니야.
어느 날 배가 고파서 몬스터 요리점에 숨어들어갔는데 마침 거대한 눈깔괴물 요리가 있더라고?
워낙 혐오스럽긴 했는데 그래도 맛은 있겠지 싶어서 먹었더니 맛도 쉣이었어.
그나마 워낙 배가 고파서 먹은거지 안 그랬으면 한입 먹고 바로 토했을 거야.
그런데 알고 보니까 이 눈깔괴물은 팔다리가 없고 데굴데굴 굴러다니며 전신이 뇌로 되어있어서 고기가 질기고 맛이 없다고 하더라고?
그야 그렇겠지, 눈이란 게 몸에서 가장 연약한 부위중 하나인데 그런 몸으로 굴러 다닐려면 얼마나 가죽이 두껍겠어?
그런 걸 먹은 내가 미친놈이지.
아무튼 그렇게 전신이 뇌랑 눈으로 돼있어서 특히 눈이랑 뇌에 좋다는데 그 때문인지 나는 시력도 상승했어.
그 시력은 이후 좀도둑질을 하는데 도움이 되었지, 후후.
하지만 그런 도둑질도 이제는 할 수가 없게 되었어.
얼마 전에 제대로 걸리고 말았거든.
내가 어렸을 때만 해도 상점에 한번 들어가면 5개의 감자와 2개의 빵, 그리고 3병의 우유를 들고 올 수 있었어.
하지만 지금은 안 돼.
왜 안 되냐고?
그 망할 놈의 CCTV가 너무 많아졌거든.
우리 동네에 마법사들이 들락거리면서 그 마법사들은 범죄를 막는다는 명목으로 온 동네에 수정구로 CCTV를 설치했어.
그 결과 이제는 좀도둑이 설 자리가 없게 됐지.
이게 말이나 돼? 말이나 되냐고?
도둑도 먹고 살 권리가 있는 거 아니야?
그러지 않으면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도둑들은 대체 어떻게 살란 말이야?
어찌됐든 이제 이 마을에서 도둑질을 하는 건 불가능하게 되었어.
24시간 수정구로 CCTV를 살피는 알바들에 의해서 이젠 도둑질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게 되었거든.
그래서 난 결심했어.
나 역시 지하 던전으로 진출하기로!
그 곳엔 아마 꿈과 희망이 있을 거야!
그리고 운이 좋으면 그 곳에서 몬스터들을 잡고 나 역시 거부가 되어 마을로 돌아올 수 있겠지!
재수가 없으면 그 몬스터들의 뱃속에서 발견될 수도 있지만 말이야.
아무튼 나의 소개는 여기까지로 끝났어.
어디 한번 앞으로 펼쳐질 나의 모험에 같이 들어와 볼래?
그곳에선 어떤 새로운 모험이 펼쳐질지 모른다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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