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층 - 코볼트
루드는 어두컴컴한 지하 던전으로 들어섰다.
어둡고 빛이 들지 않는 던전은 시작부터 퀴퀴한 냄새가 났고, 습기 때문에 벽면이나 바닥은 미끄럽고 물웅덩이 같은 것조차 고여 있어 그 옆에는 버섯까지 자라고 있었다.
“흐음, 물웅덩이에 버섯이라······. 근데 저거 먹어도 되는 건가?”
루드는 그런 식용 버섯에 대한 지식이 없었기에 함부로 그런 버섯을 먹을 수 없었다.
그래서 바로 먹지는 않고 이 버섯을 채집해놓기만 했는데, 만약 독버섯이라면 따로 또 쓸데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독버섯이라면 여러모로 쓸데가 있겠지. 암살이라든지 마취 등에 말이야, 낄낄.”
루드는 이 버섯이 어떤 버섯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버섯의 효과를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일부분을 뭉개서 즙으로 만들고 그 즙을 가지고 있는 단검에 바르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찔러보고 만약 대상이 멀쩡하면 그냥 먹을 수 있는 버섯일 가능성이 많았고, 아니면 바로 적이 쓰러지든지, 최소한 마비 정도의 효과는 올 테니 어느 쪽이든 알 수 있는 방법은 있었다.
이 버섯은 크기도 작고 색깔이 검은 색으로 그리 튀지는 않았지만 속설과 다르게 버섯이란 무조건 크고 화려해야만 독이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평소 보던 작고 수수하게 생긴 버섯과 비슷하게 생겨서 먹었는데, 잘못 먹고 그대로 황천에 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전문가가 아닌 이상 함부로 모르는 버섯은 먹지 말아야 했고, 이렇게 위험한 버섯을 루드가 챙겨두는 이유는 일단은 명색이나마 도둑이었기 때문이었다.
원래 도둑들이란 무력이나 기술이 딸리기 때문에 도둑을 하는 것이지, 그런 기술이나 무력이 있으면 좀도둑질을 해서 먹고 살 이유가 없었다.
그럼 기사나 병사를 해서 먹고 살면 되는 것이다.
그런 직장이 있는데 굳이 도둑질을 해서 먹고 사는 이유는 여러 가지 전과로 인해 왕국 병사의 길로 취직이 안 되기 때문이었는데, 왕국 병사쯤 되면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들이 기사가 되기 전에 수련을 거치려고 하는 과정인 경우가 많았다.
기사가 되는 것도 쉬운 게 아니라서 마나를 쓸 수 있어야하고 집안 고유의 가전무공 같은 것이라도 익혔어야 하는데 그런 게 안 되는 어중간한 지위의 가문이나 부유한 상인들의 자제가 그런 왕국 병사의 길로 가는 경우가 많았던 것이다.
그렇게 왕국 병사로서 수행을 하다가 마나를 익히면 기사가 되고 전쟁터에서 공을 쌓이면 작위를 얻어 귀족이 되는 것인데, 특히 이름 있는 귀족가라고 해서 지원하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이 대륙은 장자 상속의 법칙이 일반적이었고, 그 재산이나 작위도 오직 장남에게만 허락되는 것이다.
귀족의 작위가 모든 자손들에게 인정되고 재산 역시 분할상속하면 귀족이라는 이름의 값어치와 힘이 하락하므로 오직 장자에게만 그 모든 권리를 인정해주고 보통 나머지 자식들은 자기 혼자 힘으로 살아야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귀족의 수를 조절하고 그 수를 줄이기 위해 귀천상혼 같은 제도도 발생했고 이 왕국이나 대륙 역시 공통적으로 그러한 제도가 적용되는 부분이었다.
“뭐, 나랑은 상관없지만 말이야, 낄낄!”
태생적으로 고아인데다 못 배운 루드에게는 이런 사항은 그야말로 꿈속의 얘기나 마찬가지였다.
귀족이고 나발이고 당장 왕국 병사에도 지원이 안 될 정도로 흠결사유가 많은 인생인데 그런 귀족의 이야기 같은 것은 신경 쓸 필요도 없는 것이다.
“이래서 유전무죄, 무전유죄라고 하는구나!”
고아라 먹고 살려고 도둑질 좀 했더니 어느새 전과가 생겨서 왕국 병사는 물론이고 영지 9급 공무원직에도 도전했는데 실패하고 말았다.
그래도 먹고 살려고 책 같은 것도 훔쳐서 봤는데 말이지!
분명히 가채점을 해보니 점수는 넘은 것 같은데 합격이 안 된 걸로 봐서 아무래도 그동안의 전과가 공무원 시험에 떨어진 사유인 것 같았다.
“빌어먹을 세상!”
그렇게 루드가 투덜거리며 가는데 왠지 저 앞에서 뭔가 밝은 빛이 보이는 것 같았다.
“뭐지, 저건? 사람들인가?”
루드가 재빨리 달려가 보니 그곳에는 사람이 아니라 어처구니없게도 코볼트 한 무리가 있었다.
코볼트란 인간과 유사하지만 키가 작고 약간 동물에 가까운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말하자면 유사인종이었다.
이러한 유사인종들중에서는 코볼트라든지 고블린, 오크, 드워프, 엘프 등이 있었는데 인간들은 몬스터인 고블린이나 오크 등은 둘째 치고 심지어 거의 인간이나 다를 바 없는 드워프나 엘프도 유사인종이라 쳤던 것이다.
드워프나 엘프 입장에서는 자신들은 그냥 드워프고 엘프인데 유사인종이라고 칭하질 않나, 저런 몬스터와 같이 취급하니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실제로 그런 드워프나 엘프, 노움 등을 유사인종이라고 생각해도 면전에서 입 밖에 꺼내면 안 되었으며, 그러면 사생결단을 치러야할 수도 있었다.
공적인 자리에서 꺼내면 바로 전쟁에 들어갈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그렇게 인간 우월주의자들의 입놀림으로 인해 전쟁이 일어난 적도 있었으며, 대부분의 경우 인간들의 승리로 끝났지만 이런 엘프나 드워프 같은 종족들의 저력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에 대부분의 양식 있는 인간들은 그런 종족들 앞에서 유사종족이라고 칭하는 것을 삼갔다.
말하자면 흑인 앞에서 ‘Nigger’라고 하는 것과 똑같은 것이다.
현실에서도 그런 얘기를 하면 총 맞을 수도 있는데 이 세계에서도 그런 종족들에게 유사인종이라고 칭하는 것은 그 이상 할 수 없는 욕설에 가까웠다.
아무튼 루드는 눈앞에 있는 코볼트 무리를 유심히 살폈는데, 원래 코볼트들은 광산에서 살며 광부들에게 장난을 치는 일종의 요정 같은 존재였다.
금속 코발트의 이름의 유래가 바로 이 코볼트였는데, 어두컴컴한 광산 속에서 코발트 광석이 푸르게 빛나는 것을 보고 마치 사람들은 이것이 코볼트의 눈과 비슷하다고 하여 코발트라 이름을 붙인 것이었다.
옛날 사람들은 코볼트가 구리와 비슷하지만 다른 금속을 만들어서 광부들을 속인다고도 생각했다고 하는데, 아마 이처럼 코볼트가 장난기 많고 사람을 속이는 것을 좋아하는 성격이라서 그런 속설이 나온 듯싶었다.
‘뭐, 그 정도로 코볼트가 능력 있었으면 아마 연금술사라 불렸겠지만 말이야.’
실제로 구리도 아니고 구리와 비슷한 어떤 새로운 금속을 만들었다면 대륙의 모든 연금술사들이 달려와서 ‘아이고 코볼트 스승님!’ 이랬을 것이다.
그런 금속을 만들 정도면 조금만 더 연구해서 연금술사들이 궁극의 경지로 여기는 금이나 현자의 돌 합성도 가능할 텐데 왜 안하느냐는 말이다.
아마도 그건 코볼트에게 그런 능력이 없어서 그럴 것이다.
인간들은 도움만 된다면 무슨 짓이든 하는 생물인데 그런 기미가 없다는 것은 아마도 코볼트들이 그런 구리와 비슷한 금속을 만들 수 있다는 것은 낭설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아마도 어떤 왕국에서 쿠페르니켈(Kupfernickel, 악마의 구리)이라고 불렸던 니켈 광석인 홍비니켈석이 구리 광석과 매우 유사하게 생겼지만 구리를 추출해 낼 수 없었기 때문에 그곳 광부들에게 골칫거리 취급을 받고, 분명 그 광석에 구리가 들어있을 거라고 믿었던 광부들이 산도깨비 닉이라는 괴물이 저주를 걸어서 구리를 추출해내지 못한 거라고 굳게 믿었다는데 거기서 유래된 게 아닌가 싶었다.
말하자면 코볼트들이 광석에 장난을 쳐서 구리를 추출하지 못하게 만들었으므로 코볼트들은 구리와 비슷한 금속(니켈)을 만들어 사람들을 속인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무튼 이런 코볼트들은 장난기가 많지만 딱히 사람들에게 위해는 끼치지는 않고 평소엔 자신들도 곡괭이에 촛불을 들고 채광을 하러 다닌다고 하는데 왜 지금은 이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여서 돌아다니는지 루드를 모를 노릇이었다.
‘아니면 광맥이라도 찾아다니나?’
실제로 이 던전에 광맥이 있는지 아닌지 루드는 이제 막 들어온 참이기 때문에 알 수 없었는데, 아무튼 그런 루드를 보고 갑자기 우왕좌왕하던 코볼트들이 외치기 시작했다.
“인간이다!”
“양초 도둑이다!”
“너, 우리 양초 훔치러 온 거지!”
“아니, 잠깐 무슨 말이야? 난 도둑이긴 하지만, 아니 그런 건 상관없고, 아무튼 너희 양초 같은 건 관심없다구!”
루드는 필사적으로 항변해 보았으나 이 코볼트들은 뭔가 정신이 나갔는지 사람 말은 듣지도 않고 자기들끼리만 제멋대로 떠들기 시작하더니 갑자기 루드를 향해 돌진해왔다.
“너, 양초 못 가져간다!!!”
“제길!”
어쩔 수 없이 루드는 자신의 무기인 과도를 꺼냈다.
이 과도는 루드가 최소한의 호신용으로 지닌 것인데, 아무리 좀도둑이라지만 전과가 있는 루드에게 상점들은 제대로 된 무기를 판매하지 않았고, 그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과도를 들고 오게 된 것이었다.
상식적으로 아무리 재빠른 루드라고 해도 그 큰 검을 아무리 조심해도 훔쳐 나올 순 없었고, 최근엔 마법 수정구로 가게마다 CCTV가 달려있어서 더더욱 그럴 엄두도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잡화점에서 과도만 훔쳐서 겨우 온 것인데 그런 것도 이미 CCTV에 찍혀서 지금쯤 루드는 단순 절도범으로서 수배되고 있을지도 몰랐다.
“도둑질도 맘대로 못하는 더러운 세상!”
어떤 놈들은 나랏돈도 맘대로 훔친다는데 아무튼 루드는 그런 더러움은 더러움이고 지금은 살기 위해 코볼트들을 향해 열심히 과도를 휘둘렀다.
과도라고 해도 이 마을은 기술이 발달한 만큼 사람 하나 담그는 데는 문제가 없었고, 코볼트들은 보통의 인간보다도 연약한 것이다.
하지만 그 수가 많아서 거의 10여 마리가 되었는데, 약하다고 만만하게 보다가는 딱 코볼트 밥이 되기 좋았다.
코볼트들은 기본적으로 광산에서 살기 때문에 곡괭이와 삽 등으로 무장하고 있었고 아무래도 그런 광산 일들을 하다보니까 체력이 좋았던 것이다.
다만 신장이 작아서 사정거리와 힘의 한계가 있다 보니 만만하게 취급되는 것인데, 이런 코볼트의 상위호환 종족이 바로 드워프였다.
똑같이 광산에서 일하지만 고집에 세긴 해도 말도 잘 통하고 인간과 각종 물건 등을 거래할 수 있는 드워프와 코볼트 따위는 비교도 안 되는 것이다.
드워프제 무기나 갑옷, 각종 도구나 맥주, 소시지 등은 인간이나 다른 종족 등 전 대륙에서 알아주는 명품인데 도움도 안 되고 니켈을 구리라 속여서 장난치는 코볼트 놈들은 사실 그다지 인간 사회에 있어서 쓸모가 없는 존재였다.
그래서 광부들은 이런 코볼트들을 동네 개새끼 취급하듯 했는데 아무튼 루드 역시 지금 이런 코볼트들에 맞서면서 욕이 절로 나오는 상황이었다.
아무리 힘과 사정거리가 딸린다고 해도 쪽수엔 장사 없다고 10여 마리가 둘러싸고 곡괭이를 휘두르는데 자칫 잘못하면 곡괭이에 찍혀 죽을 판인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이 자신이 도둑이라 민첩성에 있어서는 자신이 있어서 피하고는 있는 것인데, 이것도 언제까지 갈 수 있을지는 몰랐다.
상식적으로 1 대 10의 싸움이면 아무리 강해도 1이 불리한 것이다.
쪽수가 많은 쪽은 교대로 돌아가면서 공격을 해도 되고 그러다 지치면 쉬면되는 차륜전을 펼치면 되는데, 혼자인 루드 쪽은 이런 공격을 계속해서 피해야하니 죽을 맛이었다.
게다가 곡괭이를 막는 것도 불가능한 것이다.
곡괭이는 일반적인 창이나 검 같은 직선적인 무기가 아니라 끝이 휘어져 있기 때문에 막아도 그 너머로 타고 들어오고, 실제로 막기가 굉장히 애매한 무기였다.
설령 막아도 이런 과일이나 깎아먹을 때 쓰는 과도로는 딱 부러지기 좋은 것이다.
‘망할 놈의 무기점 영감, 두고 보자!’
그냥 자신이 돈주고 무기를 샀으면 됐는데 훔치려다 실패하고 엄한 무기점 영감을 욕하는 루드의 인성은 둘째 치고, 아무튼 루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런 루드에게 기회가 찾아왔다.
훅!
“어?!”
코볼트들은 머리 위에 양초를 얹고 있었는데, 불붙은 그 양초의 그 촛농을 어떻게 뜨거운 걸 참고 견디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 양초의 불이 루드를 공격하려 움직이다 바람에 꺼지자 갑자기 당황하기 시작한 것이다.
“어?! 어?!”
“안 돼!!!”
고작 촛불 하나 꺼졌을 뿐인데 발광을 하는 코볼트들을 보면서 루드는 잘은 모르겠지만 뭔가 기회다,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다!”
그때부터 루드는 바람처럼 움직이며 아껴뒀던 자신의 최대한의 체력을 모두 활용해서 코볼트들의 양초를 끄는 일에만 집중했는데, 코볼트들이 휘두르는 곡괭이의 난무를 막거나 그것을 넘어 코볼트들을 공격하는 것은 힘들었지만 그냥 단순히 공격을 피하며 그런 양초들만을 끄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던 것이다.
코볼트들은 그런 움직임에 당황했는지, 이도 저도 못하고 버둥거리다 결국 차례차례 루드의 공격을 맞고 죽고 말았다.
루드는 처음엔 자신의 과도로 이런 코볼트들의 배때지를 푸슉푸슉 찌르다가 얼마못가 과도의 예리성이 둔해지고 피와 기름 때문에 못쓰게 되자 과도가 부러지지 않도록 품 속에 넣었던 것이다.
이러한 과도는 단순한 무기로써가 아니라 다양한 작업과 도구 제작에 쓸 수 있는 만능 도구이므로 아껴둬야 할 필요성이 있었다.
최악의 경우 아까 주운 버섯을 사용해서 독 단검을 만들거나 투척해서 비장의 수단으로 쓸 수도 있었던 것이다.
물론 그 버섯이 독버섯인지는 아직까지 모르겠지만.
아무튼 루드는 중간부터 그런 쓰러진 코볼트들의 곡괭이를 빼앗아서 남은 코볼트들을 쓰러트렸다.
상식적으로 민첩성도 위인데다 신장이나 완력 등, 1대1로 붙으면 훨씬 체력적으로 유리한 루드가 그런 코볼트들에게 질 리가 없었다.
물론 코볼트들이 일치단결해서 루드를 공격했으면 모르겠지만 코볼트들은 차례차례 꺼지는 촛불들에 당황해서 힘도 쓰지 못하고 쓰러졌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라도 있나?”
“야, 양초 꺼지면 안 돼······.”
“뭐······?”
“양초 꺼지면 안 돼···!!!”
“뭔 헛소리야!”
빠각!
그렇게 외마디 소리와 함께 마지막 코볼트도 쓰러지고 말았다.
루드는 주섬주섬 코볼트들의 시체를 돌며 전리품을 수거하고 있었다.
“윽, 이놈들 완전 거지 아니야? 식량은커녕 가진 건 양초밖에 없으니.”
그 외에도 코볼트들은 저마다 곡괭이나 삽 같은 것들을 들고 있었지만 그것 말고는 가져갈 게 아무것도 없었다.
드물게 품속에서 말린 도마뱀 같은 것들이 나오기도 했는데 워낙 냄새가 구린데다 썩은 내가 나서 먹을 마음도 들지 않았던 것이다.
“코볼트들은 이런 걸 먹는 건가? 미개한 놈들.”
루드는 투덜거리며 도마뱀 꼬리 같은 것들을 땅바닥에 내팽개치며 다음 층으로 향했다.
하지만 루드는 그런 자신의 등 뒤에서 무언가 어둠의 형체를 한 것들이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는 사실은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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