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8층(10) - 탈룰라
슈우욱! 털썩!
바이올렛의 몸 주위에 맴돌고 있는 것 같던 에너지가 사라지고 솟구쳐 오른 붉은 머리도 다시 원래의 보라색 빛깔로 돌아왔다.
그런데 바이올렛은 바닥에 주저앉아 헉헉거리고 있었다.
“헉, 헉······.”
아무래도 이 화신체라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비록 일부라지만 신의 편린이 들어왔는데 인간의 몸으로 무사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나마 바이올렛이 신앙인이라 그러한 페널티를 최소화시키고 버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도 부담이 완전히 없어지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 터프한 바이올렛도 지금 두 손으로 바닥을 짚고 헉헉거렸던 것이다.
“저기, 괜찮아요, 언니??”
이크가 먼저 달려와 치유주문을 걸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다친 것은 아닌데 워낙 지쳐서 치유주문이 필요할 정도였다.
잠시 후 주문을 받고난 바이올렛은 일어섰다.
“고맙다, 이크. 역시 너밖에 없구나.”
바이올렛은 무심한 표정으로 이크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헤헤.”
그러자 이크는 싱긋 웃었는데 그 무뚝뚝한 바이올렛에게서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 모양이었다.
바이올렛도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바이올렛은 뭉개진 오거 고환을 보고 있던 루드에게 다가갔다.
“히이익!!!”
그러자 루드는 자신도 모르게 사타구니를 감쌌던 것이다.
바이올렛은 그런 루드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어깨를 툭 치고 지나갔다.
“이제 알았겠지? 다음부터는 조심해라. 결국 이번에 죽을 뻔한 것도 색을 밝히다 그 사단이 난 것 아니냐?”
“예, 예예!!!”
루드는 미친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히 좀 전에 보여준 바이올렛의 무위를 보면 화신체를 안 써도 자신을 반으로 찢어버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정도로 경악할만한 모습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바이올렛이 지나간 후 이크도 다가와서 주의를 주었다.
“정말··· 앞으로는 조심 좀 하세요. 바이올렛 언니도 말했죠??”
“응, 그건 좋은데 이크······.”
“예??”
드디어 이 손버릇 안 좋은 루드가 개심했나 해서 이크는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어보았다.
비록 밉상이지만 그래도 앞으로 한동안 같이 가야하는 일행인데 서로 척지고 살 건 없었던 것이다.
“저기, 내 오른쪽 어깨 좀 치료해주지 않을래?? 방금 바이올렛이 치고 가서 탈골됐는데.”
“······.”
이크는 할 말을 잃었다.
바이올렛은 좋게 말로만 경고를 한 것이 아니라 직접 몸으로 위협을 준 것이다.
과연 바이올렛다웠다.
그저 그런 위력의 행사 없이 좋게 말로만 할 인물이 아닌 것이다.
어쨌거나 탈골되었다고 하니까 치료를 해주려는 이크였는데, 루드가 다시 말을 걸었다.
“저기, 이크······.”
“아, 왜 또 불러요!!!”
“남는 바지 하나 없어??”
“그건 또 왜요??”
“방금 전에 그만 지려버려서······.”
“그냥 좀 뒤지세요.”
이크는 딱 잘라 말했다.
바이올렛의 살기에 루드가 오줌을 지려버려서 일행은 잠시 또 시간을 허비했다.
사실 바이올렛도 체력적으로 어느 정도 회복된거지 정신적으로는 상당히 소모가 심해서 쉴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안 그래도 잠시 쉬어가자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마침 루드가 오줌을 지려서 바지를 빠는 바람에 시간이 생겼던 것이다.
‘저 자식도 나름 쓸모는 있군.’
바이올렛은 자존심이 강해서 비록 다음 층에 어떤 몬스터가 있는지는 몰랐지만 되도록 쉬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화신체를 쓰지 않았으면 모를까 그런 비장의 무기까지 쓴 시점에서 조금도 안 쉬고 가기도 참 애매했다.
화신체는 그만큼 신체의 부담이 큰 기술이므로 한번 쓰면 한동안 다시 쓸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오줌 지린 바지를 빤다고 난리를 떠는 루드의 저 짓거리가 참으로 타이밍이 좋긴 했는데, 원래 바이올렛도 그렇게 겁을 줄 생각은 아니었다.
단지 그저 앞으로는 조심하라고 어깨를 툭 친 것인데 화신체의 여파가 아직 남아있어서 루드의 어깨를 탈골시켜버린 것이다.
툭 쳤다고 어깨가 탈골된 걸 보면 루드가 허약한 것 같지만 사실 그래도 일반인치고는 꽤 강해서 그렇게 된 것이었다.
정상인 같았으면 어깨가 으스러지는 것이다.
그나마 마나가 있어서 탈골되는 정도로 끝난 것인데 아마 바이올렛을 만나기 전처럼 마나가 없었다면 어깨가 부스러졌을 수도 있었다.
말하자면 바이올렛은 병 주고 약 주고를 반복한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해도 애초에 그런 짓을 당해도 쌌지만.’
아무리 성욕을 불러일으키는 감시자의 고기를 먹었다고 해도 루드의 손버릇은 좀 과한 것이었다.
지상이었으면 바로 요즘 유행하는 미투 운동에 의해 처벌받을 상황이었던 것이다.
아무튼 저렇게 오줌을 지릴 정도로 겁을 먹었으니 앞으로는 한동안 잠잠할 것이 분명했다.
‘뭐 그렇지 않으면 다시 손봐주면 되고.’
루드가 알면 기겁할만한 무시무시한 생각을 하는 바이올렛이었으나, 루드는 이 사실을 알지 못했다.
만약 알았다면 또 한 번 지렸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그런 바이올렛은 둘째 치고 루드는 근처의 강에서 바지를 빨아 허공에 대고 흔들었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의 눈길이 있으니 팬티를 입고 있는 건 어쩔 수 없었는데, 이건 체온으로 걸어가면서 말려야했다.
그런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루드는 찝찝해졌던 것이다.
‘덜 마른 팬티를 입고 가야하다니, 씁. 그렇다고 팬티도 벗어서 말릴 수도 없고.’
아까까지만 해도 홀딱 벗고 비치와 야한 짓을 서슴지 않고 하던 루드였는데, 그래도 여러 사람 앞이라 부끄럽긴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당사자끼리는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면 쪽팔린 것이다.
뭐 그런 걸 페티시로 또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긴 한데 다행히 루드는 아직까지는 그 정도는 아니었다.
세간에는 배달을 시켜놓고 옷을 홀딱 벗은 채로 계산을 하러 입구에 나간다는 사람도 있었는데 루드는 쪽팔려서 그런 짓은 못할 것 같은 것이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자신은 옷을 벗고 있는데 남은 입고 있다고 생각하면 부끄러운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다들 벗고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게 자신만 벗고 있고 다른 사람들은 입고 있으면 혼자 바보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참 여고 앞 바바리맨들도 대단한 인간들이야. 그렇게 사는 걸 보면.’
그런 인간들은 노출증이 있어서 자신의 알몸을 남들에게 보여주고 그 반응과 자신의 수치심을 성적 흥분으로 바꿔서 즐기는 종자들이었는데, 실제 현실에서는 이런 자도 있었다.
그 자는 도로의 맞은편을 왔다 갔다 하며 소위 말하는 닌자딸(?)을 치다 체포되었는데 알고 보니 멀쩡한 직업이 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흔히 바바리맨이라고 하면 다 직장도 없고 가족도 없는 막장인생일 것 같지만 의외로 다 제대로 된 직업이나 가정이 있다고 한다.
다만 그 억눌린 성욕을 상식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방향으로 풀었는데 그런 걸 생각하면서 그래도 루드는 자신은 낫지하는 생각을 했던 것이다.
‘그래도 난 그 정도는 아니지, 에헴!!!’
겨 묻은 개가 똥 묻은 개 나무라는 꼴이었는데 솔직히 도찐개찐이었다.
바바리맨 짓을 하는 것이나 남을 멋대로 만지는 것이나 성폭력범인 건 마찬가지인 것이다.
아무튼 루드는 다 빤 바지를 들고 허공에 이리저리 흔들고 있었다.
‘젠장, 언제 마르나 이거······. 바람이나 불 속성 마법을 쓸 수 있는 사람이 있으면 단번에 말릴 텐데.’
그런 생각을 하던 루드는 문득 소녀를 바라보았다.
화염구를 쓰던 낯선 소녀.
오늘 처음 만났지만(그것도 적으로) 그래도 오거가 쓰러지고 통로가 열리자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게 되어 일행은 서로 적대하지 않았던 것이다.
기존에 함께하던 일행과 달리 소녀는 왠지 뻘쭘한 듯 조금 떨어져 있었는데, 루드는 그 소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저기, 미안한데······.”
“꺄악, 팬티만 입고 뭐하는 거예요!!! 그것도 물에 젖은 흰 팬티를!!!”
“저기, 그래서 온 거거든?? 혹시 이 바지 좀 말려주지 않을래??”
“제가 왜요??”
“너 때문에 하마터면 죽을 뻔했잖아!!!”
“아니, 그건 서로 입장이 달라서 그랬던 거 아니었나요?! 그리고 결국은 살았잖아요!!!”
“허, 이거 칼로 찔렀지만 안 죽었으니 됐다는 것 같은 심보 좀 보소. 그럼 합의금 내놔, 합의금!!! 너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맨입으로 쓱 닦을 생각이야?!”
“쳇, 좋아요. 이리 줘보세요.”
소녀는 이런 오줌지린 바지 따위 말리기 싫었지만 합의금 타령하는 거 보니 더러워서 말려주기로 했다.
그렇지 않으면 자꾸 시끄럽게 굴 것 같았기 때문이다.
“불타올라라, 히트 업!!!”
그런데 물기를 말릴 약간의 열기만 있으면 되는데 이 소녀는 정말로 열기를 불러내서 바지를 태워버렸다.
워낙 순식간에 타는 바람에 루드도 미처 말리지 못한 것이다.
“뭐하는 짓이야, 내 단벌바지를!!!”
“아니, 내가 일부러 그랬나요!!! 힘 조절이 안 되는 걸 어떡해요!!!”
“그럼 미리 말을 했어야지!!!”
“이래서 안할려고 했는데 굳이 해달라고 한건 당신이잖아요!!! 그럼 이런 부작용도 감수해야죠!!!”
“그럼 그런 사항을 설명하고 끝까지 안했어야지!!! 내 옷 물려줘!!!”
“어머머, 이 사람 보소!!!”
그렇게 옥신각신하다 결국 안 되겠다 싶은 루드는 소녀의 바지를 벗기려고 했다.
그거라도 입어야 되겠다 싶었던 것이다.
“못 물려주겠으면 니 바지라도 내놔!!!”
“꺄악, 이 사람 보세요!!! 남의 바지를 벗기고 있어요!!!”
그 말에 휴식을 취하던 일행이 일제히 루드를 쳐다보았다.
그러자 루드는 어쩔 수 없이 시선이 신경 쓰여서 바지를 벗기는 것은 그만두었던 것이다.
“제길, 두고 보자!!! 너 이름이 뭐야???”
“저요? 이름은 알아서 뭐하게요??”
“그래도 앞으로 한동안 같이 다닐 수도 있는데 이름은 알아둬야지!!! 서로 야야하고 부를 거야??”
“좋아요. 제 이름은 플로드에요.”
“플로드(plode)? 뭐야, 그 개 같은 이름은? 누가 지어준거야??”
“저희 부모님이 지어주신 건데요.”
“정말 좋은 이름이네. 왠지 그럴 것 같았어.”
부모님이 지어주셨다는 말에 루드는 순식간에 태세전환을 해서 칭찬을 했다.
원래 이름은 보통 부모가 지어주는 게 당연한데 루드는 고아인데다 싸가지가 없다는 뜻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루드(rude)로 이름 지어졌으므로 그런 사실을 깜박 간과한 것이다.
“어머, 당신. 보통 이름은 부모님이 지어주는 게 당연한 거 아니에요?? 그런데도 개 같은 이름이라니. 누구한테 그런 말버릇을 배운 거예요??”
“미안, 난 고아라서······.”
“아, 미안합니다. 애비애미가 없었군요.”
“뭐라고! 너 지금 패드립했냐!!!”
“그럼요! 그럼 어쩔 건데요!!!”
루드와 플로드라는 이름의 소녀가 옥신각신거리고 있는데 멀리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휴식을 다 취한 일행이 두 사람을 불렀던 것이다.
“뭐하고 있어? 얼른 가자. 안 그러면 놔두고 간다?”
“아, 네, 갑니다, 가요!!! 그건 그렇고 넌 좀 두고 보자. 아마 혼쭐나게 될 거다.”
“흥, 누가 할 소리를요? 그쪽이나 혼쭐나지 마세요.”
루드와 플로드는 서로를 노려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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