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3층 - 무명역류
챙, 챙챙!!
“젠장할!!”
루드는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지금 그의 앞에는 가면을 쓴 적이 따라붙어 있었다.
13층에 도착했는데 그곳에는 이미 적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원래 그 층의 주인은 죽어있는 상황. 그 층의 주인은 원래 목이 긴 공룡이었다.
정확한 명칭은 모르겠는데, 이 공룡이 길게 죽어 나자빠진 채로 일행을 반기고 있었다.
그리고 더불어 맞아주는 적들. 이 던전은 일부 층을 제외하고는 모두 그 차원이 랜덤하기 때문에 각 층을 거듭할수록 다른 사람을 만나기 힘들었다.
그러니 추적자가 있더라도 함부로 쫓아올 수 없었는데 역시 이 자들은 이 던전을 자기 집 앞처럼 돌아다녀서 나름 그 법칙을 아는 듯 싶었다. 그러니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일행은 각자 한명씩 적들을 맡아서 상대했다. 그 수도 일행과 같이 여섯 명.
루드, 이크, 바이올렛, 비치, 김창남, 플로드는 각각 전투에 전념했다. 하지만 적들은 쉽지 않았다. 이 적들은 얼마 전 만난 도박장 6인방과 같은 적들. 같은 소속이었다.
하지만 그 기술이 달랐다.
“차핫!!”
바이올렛의 상대인 퀸이 검기를 내뿜었다. 그러자 그 검기가 대지를 갈랐다. 상당히 먼 거리에서 내뿜었는데 온 대지를 가르는 검기.
촤악!!
그런 검기를 바이올렛이 피했다. 이 검기는 위험하다. 가능하다면 굳이 맞아줄 필요가 없었다. 그런데 그런 검기가 가로지르는 틈을 타 그 검기 뒤에 바싹 붙어 파고 들어오는 룩.
이들은 각각 그 체스 말의 이름과 능력을 딴 검객들이었다. 그리고 그 수도 체스 말과 딱 맞아 떨어진다. 폰, 나이트, 비숍, 룩, 킹, 퀸으로 이루어진 여섯 말. 그 여섯 말을 딴 여섯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알고 있겠지만 폰은 장기로 치면 졸과 비슷하지만 후진이 안 된다.
나이트는 장기의 말과 거의 같고 룩은 차. 다만 룩이 차와 완전히 같은 것에 비해 나이트는 장기의 말과 달리 적의 말을 뛰어넘을 수 있었다.
그리고 비숍은 대각선으로 보드 안에서 무제한적으로 이동할 수 있는데 퀸은 이 비숍과 룩을 합친 것과 같다. 즉 대각선과 전후좌우 어디로나 마음대로 갈 수 있는 상황.
킹은 퀸과 비슷하지만 그 사정거리가 무척 짧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이 킹은 이크를 노리고 있었다.
“큭!”
거리를 벌려야할 사제 이크에게 이런 초근접전을 펼치는 적은 매우 까다로운 것이었다.
플로드에게 붙어있는 것도 마찬가지로 사정거리가 짧은 폰. 그런데 사실 이크와 플로드에게는 그 어떤 적이 붙어도 붙는다는 것 그 자체가 상당히 짜증나는 행위다.
사제와 마법사의 적은 근접전을 펼치는 검사이므로. 그런데 다른 일행은 모두 도와줄 겨를이 없었다. 자기들 앞에 있는 적을 상대하기도 바빠서.
“크레센트 소드!”
“핫!”
루드의 상대를 맡은 나이트가 초승달 모양 검기를 피하며 따라붙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마치 초승달 같은 곡선적인 움직임을 하며 공격. 이 나이트의 가면은 말 그대로 말의 가면이었다.
마찬가지로 폰은 졸병의 가면, 비숍은 주교의 가면, 룩은 성채 모양을 형상화한 가면, 킹과 퀸은 말 그대로 왕과 여왕의 가면이다.
그런데 체스에서는 일반적인 그 권력과는 달리 여왕이 훨씬 더 강력했다.
체스의 킹은 상징적인 존재다. 장기의 왕이 잡히면 끝나듯이 체스 역시 킹이 잡히는 순간 패배. 하지만 아마 지금은 이 킹을 먼저 잡더라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을 것이다.
이 킹은 정말로 상징적인 존재였기 때문에. 다만 그 말을 형상화한 것 뿐이고 실제로 잡힌다 하더라도 아무 의미가 없다. 진짜 중요한 것은 퀸.
퀸이 사방으로 검기를 내뿜었다.
“큭!”
그 검기는 너무 길어서 퀸을 상대하고 있는 바이올렛 뿐만 아니라 다른 일행에게도 미치는 상황이었다.
“바이올렛! 그 검기 좀 어떻게 유도 좀 안돼요?!”
“하고 있어!!”
소리 지르는 루드에게 바이올렛 역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 대답하고 자세를 바로 잡았다.
이 퀸은 보통 상대가 아니다.
‘하필 이럴 때 화신체가 또······.’
그러나 화신체에만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은 선택이다. 그리고 항상 화신체를 쓸 수만은 없었다. 애초에 화신체는 그런 부작용을 감수하고 쓰는 기술이므로.
재사용대기시간이 돌아올 때까지는 아직 한참 남았다. 지금은 그저 화신체 없이 버티는 수밖에. 그리고 바이올렛은 화신체에만 의지하는 원 패턴 무술가가 아니었다.
“세이크리드 빔!!”
바이올렛이 뻗은 집게손가락에서 신성력의 빔이 나갔다.
“세이크리드 펀치!!”
그리고 빔이 맞는 것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곧바로 주먹을 쥐고 달려 나가기.
이중 공격이다. 그리고 지금까지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하지만 퀸은 검을 들어 그 빔을 반사해버리고 주먹 역시 받아쳤다.
챙!!
검과 주먹이 부딪쳤는데 마치 금속끼리 부딪친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문제의 빔은 다시 루드에게로.
“바이올렛!!”
“아, 내가 일부러 튕겨낸 것도 아닌데 어쩌란 말이야!!”
또다시 성질을 내는 두 사람. 두 사람은 지금 싸움이 제 맘대로 흘러가지 않자 매우 초조한 상태였다. 원래 그러다보면 내분이 생긴다. 그리고 패망. 하지만 사실 두 사람은 원래도 그렇게 좋은 사이가 아니었다. 그러니 이것은 흔한 일.
퀸뿐만 아니라 룩과 비숍도 문제였다. 퀸은 원래 룩과 비숍의 능력을 합친 존재인데 이 자들의 능력도 그와 비슷했다.
룩이 정면으로 저돌적으로 달려든다면 비숍은 대각선방향으로 돈다. 나이트는 적당히 직선과 곡선을 섞어 도는 상황. 그런데 나이트를 상대하던 루드가 외쳤다.
“바이올렛, 스왑!!”
“뭐?!”
“스왑(Swaps)!!”
루드가 검을 쥐지 않은 다른 한손으로 엄지와 검지를 펴고 휘휘 휘젓자 바이올렛은 그 뜻을 알아차렸다. 그리고 퀸을 적당히 상대하다가 힘을 주어 쳐내고 루드와 스왑!
“상대할 수 있겠어?”
“얼마든지.”
스쳐지나가며 바이올렛과 루드는 그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루드의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튀어 나가는 바이올렛. 루드가 제안한 것은 교환이었다. 서로 상대 교체.
지금 바이올렛은 적들 중 가장 강한 자를 맡고 있다. 적들 입장에서도 마찬가지.
하지만 루드는 교환을 요청했다. 그러면 루드가 가장 강한 적을 맡고 있는 사이, 바이올렛이 상대적으로 약한 적을 빨리 끝낼 수 있다. 그리고 다른 일행들을 도와주면 전투가 빨리 끝난다. 그런 계산이었다. 하지만 전투를 그리 생각대로 쉽게 되지 않았다.
“큭!!”
먼저 퀸의 검기가 너무 거셌다. 루드는 마검과 자신의 루나 소드 검법으로 받아내고는 있지는 그 위력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는 상태. 그러자 온 몸의 피부가 조각났다.
써걱! 써걱!
검기에 닿지도 않았는데도 위력을 완전히 죽이지 못하자 그 여파만으로 살점이 썰린다.
루드는 고통을 꾹 참으며 반격을 했다.
“하프문 소드!”
이런 적은 어설프게 간을 봐봤자 소용이 없다. 그래서 크레센트 소드를 건너뛰고 바로 하프문 소드. 생각 같아선 그보다 더 강한 기술을 날리고 싶으나 이 정도가 한계선이었다.
싸우면서 곁눈질로 흘끔흘끔 보긴 했지만 실제로 싸우면 그 기분이 완전히 다르다.
그래서 시험은 해봐야했다. 대략 어느 정도의 위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러나 퀸은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검기로 이 하프문 소드를 깨트리고 마저 검기를 날렸다.
“윽!!”
날아온 검기를 받은 루드가 밀려났다.
“이 바보야! 받지 말고 피해!!”
나이트를 상대하던 바이올렛이 소리 질렀다. 자신조차도 그 공격을 완전히 받을 자신이 없어 피했던 상태. 그런데 루드는 그걸 받아버렸다.
“으, 으아악!!!”
루드가 미처 견디지 못하고 반쯤 튕겨내다시피 하면서 피한 검기는 비치의 머리를 스쳐지나 구석에 처박혔다. 그리고 폭발!
펑!!
“으악, 방금 저 죽일려고 그랬죠?!”
“미안.”
비치는 더 따지려고 했으나 순간 핼쓱해진 루드의 얼굴을 보고 말을 잃었다.
루드는 순간적으로 워낙 강력한 검기를 쳐내서 그 마나를 과도하게 이끌어낸 상태였다.
그로인해 잠시 노화까지 와버린 상황. 초기에 그 마검을 사용할 때와 비슷했다.
“어머, 마나결핍현상이군. 그런 수준으로 나를 상대할 수 있겠어?”
“시끄러워!”
가면을 쓰고 있지만 호리호리한 체구를 볼 때 여자라고 생각은 했었는데 정말로 여자인 것 같았다, 저 퀸은. 인체가 산소를 흡입하지 않거나 흡입할 수 없는 상태가 되면 산소결핍상태가 된다.
그런 산소결핍현상도 뇌사 등 다양한 문제를 낳을 수 있었는데 마나결핍현상도 더 위험하면 위험했지 낫지는 않은 현상이다. 인체는 마나에 의해 움직이는데 그 마나가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하다.
설령 마나를 익히지 않은 사람이라도 최소한의 그 생존에 필요한 마나는 있었다.
이것이 생체 에너지인데 마법이나 검기를 쓰기에는 모자라서 보통 마나로도 쳐주지 않는다.
그런데 산소가 공급됨에도 불구하고 가끔 이 마나가 차단 되서 죽거나 마비가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게 마나결핍현상인데 보통 과도하게 힘을 많이 쓰면 발생했다.
혹은 누군가 인위적으로 일으키거나. 주로 흑마법사들이 타인의 마나를 갈취하면서 많이 발생하는데 이번의 마나결핍현상은 그런 건 아니고 순수하게 루드가 순간적으로 마나를 많이 써서 발생한 일이었다.
하지만 위험하긴 마찬가지다. 잠시 그 안색이 흙빛이 되었지만 잠시 숨을 고르며 마나를 회복한 루드. 정확히 말하면 마나의 흐름을 회복한 것이다.
“어때, 이제 살만해?”
“시끄러워! 지금 사정 봐준 거냐!!”
그렇게 쏘아붙이며 루드는 공격했는데 퀸은 피식 웃었다.
“그렇게 다시 급격하게 움직이면 다시 마나결핍현상이 온다구?”
“시끄럽대도!!”
그렇게 루드는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는데 긴장한 상태에서 마검을 휘두르자 결국 또 마나결핍현상이 왔다.
‘진짜였냐······. 헉, 헉!!’
그러자 마나를 회복하고 이번엔 루드는 그 흐름을 바꿨다. 격렬했던 지금까지의 공격과는 달리 매우 천천히, 천천히 하는 공격. 그러자 지금까지 여유 있던 퀸의 안색이 반대로 바뀌었다.
창백해지기까지 한 상황.
‘뭐야, 이 자식?? 순식간의 정의 상태로 들어갔어?!’
정의 상태란 정중동의 정, 즉 고요할 정을 말하는 것이다. 언뜻 생각하면 느린 것보단 빠른 게 강할 것 같고 조용한 것보단 격렬한 게 이길 것 같지만 실제론 다르다.
그리고 무도에서도 실제로 그런 정중동의 개념이 있었다.
선의 후. 후의 선. 실제 존재하는 이 개념은 상대방의 공격을 카운터 치거나 상대방이 공격하기 전에 먼저 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의 후, 후의 선. 나중에 치지만 더 빠르고 먼저 치기 전에 친다.
어떤 무술을 익히든 결국은 그 명칭은 달라도 이런 개념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루드는 눈을 감고 기다렸다. 상대방의 공격을 기다리는 상황.
“이자식이······! 소드 그래피티!!”
이 퀸의 공격은 마치 물감을 찍 긋듯 검기를 끝에서 끝으로 날려 보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러 뒤로 도약해 먼 거리에서 날린 검기를 루드는 포착했다. 그리고 검기를 가르며 그 흐름을 타 퀸까지 가격!
써걱!!
“······훌륭하군. 기술 이름이 뭐지?”
“무명(無名). 무명역류(無名逆流)”
“과연······.”
상대방이 날린 검기를 가르며 그 흐름을 타 반대로 적까지 가격하는 기술. 그래서 무명역류였다. 보잘 것 없는 기술이니 이름도 함부로 붙이지 않겠다는 말.
하지만 그 겸손과는 달리 기술은 강력했다. 제일 강한 퀸이 쓰러진 상황.
털썩!! 싸움이 급격하게 기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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