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0층(5) - A탑
털썩!!
한편 루드가 쓰러지는 순간, 다른 두 사람은 여전히 싸우고 있었다. 아니 세 사람인가?
서 있는 사람은 놀랍게도 안내양과 바이올렛, 그리고 비치였다. 비치의 상대였던 남자는 벌써 쓰러졌다.
비치가 자신의 상대를 이렇게 빨리 쓰러트린 것도 놀라운데, 반대로 이 안내양이 두 사람을 상대로 버티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이 안내양은 그렇게도 고수란 말인가? 화신체를 못쓴다고 해도 바이올렛은 바이올렛이다.
호랑이가 발톱 뽑힌다고 이빨이 없단 말인가? 심지어 발톱에 이빨이 다 없어도 그저 한 대 내려치는 것만으로도 인간을 비롯해 어지간한 생물은 다 죽인다. 같은 맹수 급이 아닌 이상에야. 거기서 버틸려면 적어도 하이에나 급은 돼야겠지. 가끔씩 하이에나도 미쳐서 사자의 먹이를 뺏을 때가 있다. 물론 혼자서는 덤비지 않지만.
그런데 이 안내양은 단독으로 바이올렛은 물론 비치의 공격까지 버틴다. 아무리 화신체의 후유증으로 인해 컨디션이 안 좋은 바이올렛이라고 해도 이렇게나 강하다고?
바이올렛 역시 이를 갈며 말했다.
“너 같은 건 상태만 좋으면 금방······.”
“해치울 수 있다구요?”
“······.”
“왜 이러세요, 천하의 이단 심문관이 혓바닥도 길게. 쫄리시는 건 아니죠?”
“그걸 어떻게?”
“어떻게 이단 심문관인 줄 알았냐구요? 그야 당연하죠. 일개 심문관이면 몰라도 당신은 부단장. 좀 더 자신의 지위에 대한 자각이 있어야 할 것 같군요. 아님 생각보다 겸손한 건가?”
바이올렛은 입을 다물었다. 그 말대로다. 이단 심문관 부단장은 왕국기사단으로 쳐도 2인자에 해당하므로 그 정도의 인적사항은 널리 알려져 있다. 게다가 그 대상이 피에 미친 이단 심문관으로 알려진 바이올렛임에야.
이 던전은 각국의 정예들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모험을 오는 일종의 치외법권 지대이다. 루드가 자신도 모르게 먹은 감시자의 고기처럼 현상계에서는 구할 수 없는 마물의 고기 같은 것이 있으므로 그 보상을 얻으려고 오늘도 많은 모험가들이 이 던전을 방문한다.
그러나 대부분은 몬스터 밥. 그리고 무법지대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각국이나 어둠의 뒷세계인들이 그 균형을 유지하고 있으므로 그런 질서에 혼란을 줄 수도 있는 강자들은 표면에 드러난 공식, 비공식적인 인물을 포함하여 모두 관리하고 있다.
1층부터 저층 몇 층은 어차피 들어오는 경로도 많고 그 차원이 유동적이라 관리하지 않지만 어차피 9층 등 몇몇 층에서는 그 차원이 고정되므로 나름 검문소도 설치되고 들어오는 인간들을 마치 출입국 심사대처럼 관리한다. 자신도 모르게 신상이 파악당한 일행. 그러니 모를 수가 없다. 그 유명한 블러디 바이올렛이라면.
“듣자하니 유명하시던데요? 바깥세상에서 몇 명을 죽였죠? 100명? 1000명? 10000명?”
“시끄럽다.”
“어머, 아님 그런 건 신경도 안 쓰시는 건가요?”
“시끄럽다고 했다!!!”
이 바이올렛이 시끄럽다고 하는 이유는 무슨 죄책감 같은게 들어서가 아니라 진짜로 시끄러웠기 때문이었다. 아직 이 바이올렛은 교단의 광신도로서 자신이 한 짓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언젠간 그 죄를 알 수 있을는지······.
바이올렛과 안내양은 주먹을 맞댔다.
쾅!!!
놀랍게도 바이올렛의 주먹을 같은 주먹으로 받아낸다. 그리고 날아오는 비치의 채찍도 이번엔 검으로 받아치는 상황.
챙!
연검이다. 그런데 실제 연검은 아니고 손잡이만 있는 검에 마나로 검날을 형성해서 연검처럼 쓰고 있는 상황. 연검이라기보단 채찍에 가깝다. 아님 채찍에 가까운 연검인가? 어차피 그 사용은 유동적이다. 순식간에 바뀔 수 있는 마나의 특성.
마나는 흔히 단순히 강하거나 약하거나 세거나 뭐 그런 차이밖에 없다고 아는 사람들이 있는데 실제로는 다르다.
가장 기본적인 4대 속성의 마법만 해도 같은 마나를 바탕으로 불, 물, 전기, 흙의 공격을 할 수가 있고 어둠이나 빛의 공격, 심지어 끈끈하거나 딱딱하거나 부드럽거나 무른 다양한 성질을 가진다. 사용하기에 따라 다른 것. 이는 마나가 온 우주의 근원이 되는 구성 물질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 가능성은 무한대. 그로인해 사용할 수 있는 능력도 무한대이다. 이론상으로만 따지만 결국 우주도 창조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휘청휘청한 연검이나 채찍 하나 만드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 안내양의 능력은 그것이다.
“저기, 궁금한 게 있는데, 니 코드네임은 뭐지??”
“어머, 예리하시네요.”
비치의 물음에 안내양은 싱긋 웃었다.
“저는 조커입니다.”
“?!”
“?!?”
순간 비치와 바이올렛은 이해를 하지 못했다.
“조커라고??”
“네, 딱히 비밀도 아니니까 말씀을 드리죠. 우리 일행은 여섯 명. 로열 스트레이트 플러시를 이루는 다섯 가지 패는 바로 K, Q, J, A, 10입니다. A와 10은 가장 그 낮은 숫자와 높은 숫자. K, Q, J는 각각 그 왕과 여왕, 신하를 가리키죠.”
“그런데 네가 여왕이 아니라고?”
“그런 건 그냥 편견에 불과합니다. 조커에 비하면 킹과 퀸도 장난에 불과한 것. 조커는 무엇이든 될 수 있습니다. 무엇이든요. 마치 체스의 폰과 같죠. 무슨 말인지 아시겠습니까?”
“모르겠는데.”
“저도요.”
“······.”
안내양은 할 말을 잃었다. 이것들은 체스도 한번 안 둬봤나? 체스의 폰은 그 체스판 끝까지 가는 순간 승급하여 나이트와 비숍, 룩, 퀸 중 아무 말로나 변할 수가 있다. 즉 같은 폰이나 킹만 아니면 무엇으로든 변할 수가 있다는 것. 여기서 폰은 장기로 치면 졸이고 나이트는 말, 룩은 차이다. 비숍은 약간 다르지만 상에 가까운 존재. 대각선으로 움직이니까.
그리고 퀸은 룩에 비숍이 더해진 말이다. 즉 장기로 치면 상과 차가 합해진 것. 단순히 생각해도 엄청나게 강하다. 그 전투력은 폰의 아홉 배라고 하니까. 이런 것들을 안내양은 친절히 설명해주었다.
“아이쿠, 또 도박장 딜러로서의 버릇이 나오고 말았군요. 체스는 내기에도 없는 종목인데 항상 이렇게 설명해주고 만다니까요, 호호.”
그리고 안내양은 웃었다. 일종의 직업병이란 말과 함께. 그런데 싱긋 웃는 것과는 달리 이 안내양의 말이 사실이라면 사태는 엄청나게 심각하다.
조커는 다른 어떤 카드로도 바뀔 수 있는 패. 즉 와일드카드라는 말이다. 조커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가령 자신의 패에 2,2,2,3,6,10과 조커 같은 형태로 카드가 있으면 어차피 지금 트리플은 이미 확정이니까 조커를 다른 아무 카드 중 하나로 바꿔서 풀하우스로 만들든지, 아니면 같은 2로 만들어서 포카드를 만드는 것도 가능하다. 그야말로 사기카드.
남을 따라하는 카드다. 실제로 포커에서 조커는 쓰지 않는다. 그야말로 사기니까. 조커를 넣고 하면 로열 스트레이트 플래시 같은 것도 상당히 빈번하게 뜰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밥 먹듯이 뜨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국가와 도박장에 따라 그 룰이 천차만별인 만큼 이런 조커를 넣는 곳도 있다.
이 도박장이 바로 그곳. 정확히 말하면 게임할 때는 없는데 이렇게 상대방이 돈을 너무 많이 따거나 반대로 낼 돈을 내놓지 않으면 수금조로 안내양이 나선다.
딜러가 수금조로 바로 바뀌는 상황. 결국 이들이 지금 대립하는 이유도 돈 때문이다.
루드는 도박장의 돈을 너무 많이 따버렸다. 100만 골드(100억)를 따버렸으니까. 게다가 자신의 초기 자본금은 불과 1000골드(천만 원)였다. 딜러인 안내양과 도박장으로서는 분노가 치밀지 않을 수 없는 상황.
원래 지상의 도박장들도 플레이어가 너무 많은 돈을 따버리면 아예 그 날은 도박장에서 쫓아내버린다. 그런 날이 계속 되면 결국 블랙리스트 등재. 실로 야비한 수법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잃어버린 돈을 되찾기 위해 서로 목숨까지 걸고 싸우고 있는 상황이다.
무법지대인 지하의 특성상 그 칩을 실제 금으로 만들었기에 발생한 현상. 원래 플라스틱 등으로 만들어진 칩이면 그냥 돈을 안주면 되는데 실제 금으로 만든 것이 화근을 만들었다.
안내양을 비롯한 도박장 6인방도 이렇게 대량으로 돈을 딴 데다 수금조의 추격까지 뿌리쳐가며 싸우는 일행은 처음 보았다. 게다가 두 명이 쓰러진 상태, 실제로는 다섯 명이 쓰러진 상태다. 안내양은 이를 모르는 상태.
‘대체 왜 안 오는 거야······.’
겉으로는 싱글싱글 웃고 있는데 속이 타들어간다. 일부러 할 필요가 없는 얘기를 해서 상대방의 동요를 유도하고 일행이 올 시간을 벌었는데 아직까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대체 뭘 하는거지? 이 던전은 그들의 앞마당이다. 한 20층, 30층 규모면 몰라도 10층 정도면 그야말로 제집 앞마당과 가깝다. 제집 방안. 그런데 진작에 나머지 적들을 쓰러트리고 나타났어야 할 3인방이 나타나지 않는다. 안내양은 아직 인큐버스라는 변수의 존재를 모른다.
그로 인해 원래는 쓰러졌어야 할 이크와 플로드가 버티고 오히려 자신의 일행들이 쓰러졌다는 사실을. 그러나 적도 오지 않는다. 그래서 안내양은 믿을 순 없지만 자신의 일행 세 명이 이크와 플로드와 함께 계속해서 싸우고 있는 중이라고 생각했다. 마치 자신이 지금 그렇게 하듯이.
실제로는 그 두 명은 지금 마나를 회복하고 있는 상황이다. 조금 있으면 오는 상황. 게다가 인큐버스도 있다. 그들까지 오면 5대1의 상황. 사실 루드는 지금 쓰러져 있으므로 4대1의 상황이지만 그래도 버거운 건 마찬가지다. 실제로 이 안내양은 제 컨디션의 바이올렛을 상대로도 1대1로 이길지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그래서 안내양은 승부수를 던졌다. 지금까지처럼 방어위주가 아니라 선제공격으로 나간다. 오히려 두 명을 빨리 해치우고 반대편으로 가서 자신이 도와줄 생각이다. 그 와중에 루드의 숨통은 확실히 끊고. 만약 살아있다면.
그런 생각을 하며 안내양은 주먹을 날렸다. 이에 맞서 주먹을 날리는 바이올렛.
“보이드 펀치!!!”
“?!?”
영문 모를 기술 명에 바이올렛이 당황했다. 본래 그 기술 명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술 명이란 기술의 정체성을 담은 것. 이름에는 마력이 있다. 전혀 상관없거나 어설픈 이름을 지으면 오히려 기술 위력까지 떨어진다. 그러한 언령의 마력.
안내양의 보이드 펀치는 자신에게 닿은 바이올렛의 주먹을 마치 접착제로 붙인 것처럼 떨어지지 않게 만들어 끌어당겼다.
“어, 어어?!?”
갑작스런 힘의 흐름에 주먹이 당겨지는 바이올렛. 그 무게중심까지 잃어버린다. 그때를 놓치지 않고 다리를 걸며 넘어지는 바이올렛의 얼굴에 무릎을 날리는 안내양.
빠각!!!
바이올렛의 머리를 양손으로 잡고 날리는 니킥에 의해 뭔가 부러지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불쾌한 소리. 그리고 고개를 든 바이올렛의 얼굴에서 코피가 홍수처럼 흐른다.
줄줄줄!
바이올렛은 코피가 흐르는 코를 쥐어 잡았다.
“A탑.”
안내양은 싱긋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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