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8층(8) - 살기
화르륵화르륵.
바이올렛의 얼굴을 덮은 불이 꺼지지도 않고 계속해서 타올랐다.
그러자 이크가 급하게 달려와 치유주문을 날렸다.
이런 상황에서 불을 끈다고 옷 같은 것으로 탁탁 치면 오히려 상처가 더 심해지고 화상을 입은 얼굴이 뭉개질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에 다른 수단이 없다면 그렇게 옷이나 이불로 불붙은 부위를 뒤덮거나 치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크에게는 주문이란 수단이 있었다.
원래 화상전용 주문은 아니지만 이크는 주문을 날릴 때 발생하는 풍압으로 불을 날려버리고 동시에 화상을 치료했던 것이다.
실로 적절한 처치였다.
과연 치유사라고 할 만한 솜씨였는데, 그런 바이올렛을 치유하려던 이크는 멈칫했다.
“어???”
반대로 루드는 이 트윈헤드 오거에게 달려간 상태였다.
바이올렛이 날아가는 순간, 루드는 이미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이 오거는 비겁하게도 왼팔과 오른팔의 특성을 숨겼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 몸의 특성도.
마지막 순간까지 몰랐는데 알고 보니 이 트윈헤드 오거는 양 반신의 역할을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말하자면 원래는 육체를 담당하는 오른쪽 머리가 온 전신을 컨트롤하고 왼쪽 머리가 마법을 쓸 때는 왼손을 빌려서 마법을 날리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운용이 자유자재였던 것이다.
왼손으로만 쓸 수 있는 줄 알았던 마법을 오른손으로도 쓸 수 있고, 마지막의 그 표정을 보니 아무래도 서로 자아도 바꿀 수 있는 모양이었다.
원래 덜떨어진 표정을 짓던 오른쪽 머리가 왼쪽으로 가고, 반대로 왼쪽 머리가 오른쪽으로도 옮겨갈 수 있었던 것이다.
순간 일행은 오른쪽 머리도 똑똑한데 일부러 멍청한 표정을 짓는 것인가 했지만, 그런 건 아닌 것 같았다.
실제로 왼쪽으로 옮겨간 원래의 오른쪽 머리는, 지금도 실실 웃으면서 일행을 열 받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허나 이것도 함정일 수도 있었다.
실제로 그렇다고 한들 뭐 그리 달라지는 건 없으니 일행은 제각기 동시에 덤벼들어 이 트윈헤드 오거를 상대했던 것이다.
먼저 루드가 마검을 들고 휘두르고, 그 뒤를 비치가 채찍을 들고 보조했다.
이크는 뒤에서 그런 일행들의 회복에 들어갔는데, 갑자기 오늘 처음 만난 마법사 소녀도 화염구를 트윈헤드 오거에게 날렸던 것이다.
쾅!!!
그러나 트윈헤드 오거는 먼저 왼손으로 마검을 막아낸 후, 오른손으로 같이 화염구를 만들어내 소녀의 화염구를 상쇄시켰다.
그리고 비치의 채찍은 몸으로 막아냈던 것이다.
“으흠, 따끔한데??”
왼쪽 머리가 음흉하게 웃었다.
원래는 오른쪽 머리.
아마 로라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그렇다고 해서 물리적으로 뇌나 머리가 옮겨갈 순 없으니 아마 뇌파만 바뀐 것 같았다.
말하자면 서로의 뇌파를 교환한 것인데 거의 사이코키네시스나 텔레키네시스 급의 능력이었던 것이다.
둘 다 염동력이라는 뜻에서 비슷한 말이었는데, 이런 능력을 가진 자들은 멀리서 정신력만으로 물체를 움직이거나 다른 사람의 정신을 지배, 혹은 조작했다.
타인의 정신에 자신이 들어갈 수도 있었는데 이 오거도 그런 물체를 움직이는 능력이 있는지는 몰라도 아무튼 자신의 머리끼리 서로 뇌파를 교환했던 것이다.
사실 인간들 사이에서도 쌍둥이끼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도 교감을 하고 위기를 느낀다는 사례가 있는 걸 보면 전혀 말도 안 되는 건 아니었다.
말하자면 이 트윈헤드 오거는 인간으로 치면 샴쌍둥이인데 그런 능력이 있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는 것이다.
아무튼 각자 서로 다른 팔을 담당하고 있으니 그렇게 공격을 쉽게 막는 것도 당연했다.
어떤 무술가는 마치 다른 사람인 것처럼 양팔을 자유자재로 다른 기술을 써서 움직였다는데, 원래의 그 강력한 신체에다가 두 개의 머리, 그리고 그 머리가 각각 다른 팔을 써서 움직이자 공격을 하기도 막기도 수월했던 것이다.
“괴물이야, 저거.”
“그러게요.”
원래 몬스터라는 것 자체가 괴물이라는 말이었지만 이 트윈헤드 오거는 상궤를 달리하는 것이었다.
말하자면 원래 인간 세상에 있어서는 안 되는 생물인 것이다.
그야말로 신의 축복인지 저주인지 알 수 없는 생물이었는데, 저 트윈헤드 오거는 스스로를 축복이라고 부를지 모르지만 인간이나 기타 생물들에게는 저주나 마찬가지였다.
저 모습을 보니 루드는 신의 존재가 의심스러워졌던 것이다.
“대체 신이란 작자는 뭐하길래 저딴 생물을 만든 거야??? 저런 걸 만들어놓고 인간을 괴롭히려고 했다면 그야말로 사디스트 아니야??”
“샴쌍둥이가 태어날 확률은 대략 5만에서 10만분의 1정도라고 해요. 그 정도도 증상에 따라 다르고 머리가 붙어 태어날 확률은 250만분의 1이라고 하네요.”
“뭐야, 그 정도면 엄청 높은 거 아니야??? 인구가 5천만 명인 국가라면 그렇게 머리 붙은 아이가 대략 스무 명 정도 존재할 수 있고 그냥 샴쌍둥이라 10만 명중의 한명이라고 쳐도 500명 정도는 존재할 수 있으니. 그런데 너 그런 것도 알았냐?”
“사제니까요. 사제로서는 그런 여러 가지 증상에 대해 일단 공부는 해두는 법이죠.”
“그래서, 해결방법은?”
“외과적 수술과 치유마법을 동시에 사용했지만 전 세계적으로 분리가 성공한 적은 단 한번뿐이에요. 애초에 샴쌍둥이는 대체로 우애가 좋아서 수술받기를 원하지 않거든요. 수술 받아도 죽는 경우가 많고 제가 말한 사례는 그대로 수술 받지 않고 생활하면 척추 기형으로 인해 제대로 걷지도 못할 것으로 예상되었기 때문에 아기 때 수술을 받은 것이죠. 하지만 저 트윈헤드 오거는 달라요. 그 수술이 성공한 사례는 엉덩이만 붙어있었기 때문에 비교적 5시간 반이라는 짧은 시간에 수술이 성공한 것이지만 저희가 과연 수술을 할 수 있을지는······.”
“음, 쉽지 않겠군.”
루드와 이크는 저 트윈헤드 오거를 쓰러트리는 것이 아니라 아예 반으로 갈라버리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었다.
적어도 한쪽 머리를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현실의 샴쌍둥이는 조금 보통 사람과 다르긴 해도 그래도 결혼도 하고 운전면허까지 따는 등 행복하게 사는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주변에서 분리 수술을 권유해도 서로 떨어지기 싫다고 거부하는 우애가 깊은 모습도 보였는데, 그런 사람과는 달리 이 트윈헤드 오거는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귀라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오거라는 말 자체가 식인귀의 대명사나 다름없었고 그 주식은 인간을 비롯한 각종 동물이었다.
한손으로 인간을 들고 그대로 우적우적 씹어 먹는데 그런 트윈헤드 오거랑 일반적인 인간 샴쌍둥이랑은 완전히 차원이 다른 것이다.
오거로 태어나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으면 모르겠는데 그럴 생각도 없는 것 같고, 그렇게 만들기도 불가능한 것이었다.
사자가 어찌 풀을 먹겠는가?
실제로 소화를 돕기 위해 풀을 먹는다는 말도 있는데 주식은 그게 아닌 것이다.
동물이지.
이 오거도 주식이 인간이었다.
원래 인간을 한번 맛본 맹수는 그 맛에 들려서 다른 동물은 못 먹는다고 하고 그래서 인간을 먹은 동물은 무조건 죽이는 것이 원칙이라는데, 그렇게 사살하기에는 이 트윈헤드 오거가 너무나 강했다.
군대가 출동해야 할 판인 것이다.
사실 일행은 몰랐지만 인간 병사나 기사는 이런 몬스터들에 대한 교육을 제대로 받기 때문에 심지어 마나를 터득하지 못하고서도 무리를 이루어 진을 치거나 각종 병기와 전술로 오히려 오거를 농락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것이 바로 전술이자 기술인데, 제대로 된 군사훈련을 받지 못한 일행은 이중에서 트윈헤드 오거의 특성을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그저 머리가 두 개 달리고 마법도 사용하며 매우 세다, 이 정도였는데 그런 걸 가지고 잡기에는 이 트윈헤드 오거를 상대하기에는 지식이 매우 부족했다.
실제론 몬스터마다 약점이 있어서 그 약점을 공략하면 비교적 쉽게 쓰러트릴 수 있는 것이다.
이 트윈헤드 오거를 비롯한 오거의 약점은 다리였다.
오거이기 이전에 이런 키가 큰 생물은 무조건 다리가 약점인 것이다.
몬스터 이전에 거인증에 걸린 사람도 다리가 그 몸에 비해 비교적 약했다.
보통 키가 크다고 해서 무조건 거인증은 아니었지만 190에서 2미터를 넘어가면 거인증인 확률이 큰 것이다.
물론 다른 신체 부위의 크기라든지 성장호르몬의 상태와 뇌하수체 종양 등을 봐서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했지만 그런 경우가 많았다.
이런 오거는 보통 신장이 최소 2미터에서 3미터로, 이 오거도 대충 키가 한 3미터쯤 되었다.
트리케라톱스 같은 것도 대충 높이가 그 정도 되었는데, 아마 수중이 아닌 육상동물로서는 그 정도가 한계일 것이다.
기린도 커봤자 대략 5.5미터, 코끼리도 보통 3~4미터가 되었던 것이다.
이런 생물들은 키가 크면 클수록 그 관절에 걸리는 부하가 많아져서 오히려 더 힘들었다.
그래도 코끼리나 기린 같은 동물들은 사족보행 동물이므로 그렇게 네 개의 다리에 무게가 분산돼서 좀 낫지만, 이 트윈헤드 오거나 오거는 이족보행 동물인 것이다.
사람도 키가 190에서 2미터를 넘으면 무릎관절에 엄청난 부하가 온다.
그런데 키가 3미터에 몸무게가 6톤이 넘는 이 오거가 무릎이 멀쩡하겠는가?
사실 그래서 오거가 이렇게 엄청나게 많이 움직이지는 않는 것이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통증도 커지고 소모가 큰 것이다.
그래서 처음 루드를 공격했을 때처럼 기회를 봐서 기습을 한다든지, 바이올렛의 공격을 적당히 맞아주다가 카운터를 날리는 것이었다.
게다가 이 트윈헤드 오거는 마법을 쓸 수 있으므로 제자리에서 마법을 날려 공격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결국 다가가든 안다가가든 일행에게는 불리한 싸움이고, 그나마 가능성 높은 방법이 다리를 중점적으로 노리는 것인데 다들 전문가가 아니라 그러한 생각을 하지 못했다.
단순히 트윈헤드 오거의 두 머리와 마법, 그리고 서로 공격을 교차하는 특성 만에 정신이 팔려서 그런 것에 신경을 쓰지 못한 것이다.
말하자면 등잔 밑이 어두운 것이었다.
딱 봐도 코끼리 다리보다 두꺼운 저 다리를 보면, 당연히 다리가 약점이라고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리고 다리를 공격한다고 해도 그리 쉽게 되는 것이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비교적’ 약점인 것이지 그렇다고 해서 무슨 눈이나 사타구니 같은 수준의 급소도 아닌 것이다.
그렇게 다리를 노릴 바에야 그냥 진짜로 머리나 성기 같은 급소를 노리는 것이 나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일행이 감히 먼저 덤벼들지 못하고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뒤에서 스산한 한기가 일어났다.
일행이 돌아보니 그곳에선 누워있는 줄 알았던 바이올렛이 손도 대지 않고 일어나 천천히 공중에 떠오르고 있었던 것이다.
“저 건방진 개새끼가······.”
바이올렛의 눈에 살기가 번쩍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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