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3층(2) - 이상한 소녀
“으, 으음······.”
루드는 가까스로 정신을 차렸다.
자신이 정신을 왜 잃었는지, 대체 얼마나 정신을 잃었는지도 모를 지경이었다.
그 정도로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여긴 어디야? 으음······.”
“깨어나셨어요?”
“음?”
루드가 올려다보니 그곳에는 소녀의 얼굴이 방긋 웃고 있었다.
“억, 뭐야, 뭐야, 가까워!!!”
딱!
“아얏!”
예상외로 너무나도 가까운 소녀의 얼굴에 당황한 루드는 갑자기 일어났는데, 그로인해 소녀와 입술이 부딪친 것이다.
“앗!!!”
그 결과 루드는 일어나다가 다시 제자리에 누워버리게 되었으며, 이제야 눈치 챘는데 왠지 아까부터 뭔가 폭신폭신하더라니, 자신이 누워있던 것은 소녀의 허벅지인 것 같았다.
아마도 무릎베개를 하고 있었던 모양인데, 그 상태로 잠시 일어나기도 뭣해서 루드는 잠시 소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소녀도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길래 뭔가 그런 무드인가 생각해서 루드는 서서히 다시 입을 맞추려고 다가갔지만······.
짝!
“아얏!”
“어딜 넘보시는 거예요? 그것도 결혼도 하지 않은 소녀의 몸을!!!”
“아니, 분명히 지금이 딱 그런 타이밍인줄 알고 크흠······.”
“오빠, 아다죠?”
“크흠······!”
루드는 시선을 회피했다.
분명히 자신이 여친 사귄 경험이 없긴 한데 이런 식으로 공공연하게 자랑하고 다닐 수 있는 꺼리는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곳 대륙은 전반적으로 성문화가 문란한데 더군다나 이 왕국은 그중에서도 으뜸이라서, 첫 경험하는 나이가 보통 미성년자 때인 것이다.
그래서 성인이 될 때까지 경험이 없으면 보통 모지리 취급을 받았고, 그로인한 압박감으로 인해 친구들에게 놀림 받지 않기 위해 딱지를 떼는 애들도 많았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왕국 내에 던전이 버젓이 있는데다, 그 전에도 각종 몬스터들의 침략으로 인해 국경지대가 말썽을 겪고 그로인해 항상 사망자가 발생하므로 출산율이 중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이 왕국은 빨리 결혼하고 빨리 낳자! 라는 주의가 팽배해서 그러한 경향도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사실 역사적으로 봐도 국민들의 평균 수명이 짧았던 나라는 그만큼 많이 낳고 많이 죽었던 것이다.
각종 질병이나 기근, 천재지변, 사고 등으로 인해 평균 수명이 낮고 워낙 한 번에 사고가 터질 때마다 많이 죽었으므로 어쩔 수 없는 문제였다.
언뜻 생각하면 가구 수가 많아서 못 먹고 못사는 것 같지만 농경사회에서는 사람 수가 곧 일손이고 어차피 살다보면 대부분의 애들이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으므로 그만큼 많이 낳을 필요성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정상적으로 농사를 지으면 사실 아무리 아기를 많이 낳아도 매년 지독한 가뭄 등 천재지변이 있지 않은 이상 다 먹여 살릴 수 있었는데, 농민들이 못 먹고 사는 이유는 수탈이 심해서였다.
지주나 관리, 정부의 착취가 심했기 때문인데 말하자면 나라에 도둑놈이 많아서 문제지 나라에 돈이 없는 것이 아닌 것이다.
이는 예나 지금이나 어느 시대, 어느 왕국을 가도 다 비슷한 것으로, 이 왕국도 부정부패가 심해서 먹고 살기가 힘들었다.
‘그래서 나도 먹고 살기가 힘든 것이지, 어흠!’
“무슨 생각을 그리 골똘히 하고 있어요?”
“아, 아무것도 아냐, 어흠!”
루드가 먹고 살기 힘든 것은 나라에 부정부패가 심해서가 아니라 루드가 건실하게 일을 할 생각은 하지 않고 자꾸 좀도둑질로 생계를 유지해서 그런 것 같기는 하지만 아무튼 루드는 잠시 잡생각을 하다가 소녀의 말에 정신을 차렸다.
“그건 그렇고 여기는 어디야? 넌 누구고?”
“아, 여기는 아직 던전 지하3층이에요. 그리고 제 소개가 늦었네요. 전 아크비숍 수녀원에서 온 이크라고 합니다.”
“이크라면 동방무술에서 기합으로 쓴다는 그 이크, 에크, 이크, 에크할 때 그 이크야?”
루드는 잠시 개드립을 쳐보았지만 순간 이크의 눈매가 9서클 빙계 대마법 수준으로 싸늘해지자 바로 태세전환을 했다.
“하하하, 내 소개가 늦었네. 난 루드라고 해. 직업은······.”
“좀도둑이죠?”
“크윽!”
“하루하루 건실하게 일은 안하고 남의 물건이나 절도하면서 먹고사는 쓰레기죠? 퉷.”
“아니, 잠깐 내 직업은 어떻게 안거야?! 그리고 남의 물건이나 절도하면서 먹고사는 쓰레기라니 말이 심한 거 아니야?! 애초에 수녀원의 수녀가 그래도 되는 겨?!?!”
“함부로 말 걸지 마세요. 더러운 새끼.”
“말 거친 거 보소! 아니 근데 내 직업은 어떻게 안거야?!”
“찍어 맞춘 겁니다.”
“찍어 맞춘 거였냐!!! 아니 근데 하고 많은 그 직업 중에 왜 하필 좀도둑이라고 찍은 겨?!”
“당신 같은 한눈에 봐도 빈털터리에다 집도 절도 없는 사람이 제대로 된 직업을 가지고 있을 리가 있습니까? 딱 봐도 지상에서 좀도둑질이나 하다가 어차피 할 것도 없으니까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라는 심정으로 이판사판 지하에 들어온 거겠죠. 내 말이 틀립니까?”
“크흑, 너무 팩트 폭행을 당해서 할 말이 없다. 사실 너 수녀원이 아니라 수사기관에서 온 거 아니야? 아니면 점집이나? 추리실력이 보통이 아닌 것 같은데?”
“사실 수녀원에선 관상 보는 법도 가르칩니다.”
“진짜야?”
“아뇨, 뻥입니다.”
“뻥이었냐!!!”
아무리 봐도 이 이크라는 소녀는 뭔가 범상치 않아보였다.
“너 대체 정체가 뭐야? 아무리 봐도 수녀원에서 나온 일개 수녀로는 보이지 않는데.”
“아뇨, 전 수녀가 맞습니다. 다만 거기에는 뭔가 복잡한 사정이 있죠.”
“무슨 사정?”
“아, 그런 게 있습니다. 절대 귀족이었던 저희 아버지가 불륜으로 낳은 사생아인 저를 아무도 모르게 연줄을 이용해 시골 수녀원에 쳐 박은 게 아닙니다. 절대 그 때문에 제가 삐뚤어진 것도 아니구요.”
“그만해! 그런 타인의 사정 따위 알고 싶지 않아!!!”
예상외로 어두운 이크의 과거에 루드는 머리를 감싸 쥐고 괴로워했다.
이런 건 막장 드라마에서밖에 보지 못했잖아!!!
매일 밤 저녁시간 밥 먹을 때 마다 수정구에서 나오는 불쾌한 막장 드라마에밖에 보지 못했다구!!!
그렇게 루드는 잠시 괴로워하다가 이내 진정하고 말을 이었다.
“흠흠, 그래도 넌 그나마 낫구나. 난 부모가 없는 고아거든.”
“애비애미없는 후레자식이란 말인가요? 그럴 줄 알았습니다.”
‘이걸 그냥 콱!!!’
사실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한데 소녀의 발언이 너무 직설적이라서 잠시 루드는 곡괭이를 들고 이크의 두개골을 가볍게 쓰다듬어줄까 고민했다.
그 정도로 발언이 심각했던 것이다.
만약 몬스터나 남자 새끼가 이런 말을 해줬으면 바로 두개골에 구멍을 내줬을 텐데 그래도 루드는 기사도 정신이 있었기 때문에 꾹 참고 부들부들 웃으며 힘겹게 참아 나갔다.
만약 루드가 진정한 남녀평등주의자였다면 지금쯤 이미 이크는 저 멀리 떨어진 해골 병사들의 잔해와 같이 널브러져 있었을 것이다.
루드가 오히려 그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크는 지금 살아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크의 이런 발언들에 대해 루드가 결정적으로 공격적인 태세를 취하지 못한 이유도 있었다.
“사실 부모가 없는 게 더 나을 수도 있어요. 저도 예전에는 그래도 부모님을 좋아했거든요. 이 세상에 낳아주셨으니까 말이죠. 하지만 부모님이 아예 제 존재를 지우기 위해 암살자를 수녀원에 보내면서 그러한 마음도 사라졌죠, 후후.”
“슬퍼! 너무 슬퍼! 뭐야 그 얘기는! 어린 애가 겪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
“사실 이것도 다 뻥이랍니다, 헤헷!”
“뭐야, 또 뻥이었냐!!”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드는 이크의 얼굴에 감춰진 일말의 슬픔을 통해 모든 것이 거짓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어쩌면 전부 다 진실일수도 있었던 것이다.
가끔씩 사람은 이렇게 슬픈 일이 있을 때 얼굴에 가면을 쓰고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지금 이크의 모습이 딱 그 모습이었다.
루드는 그런 경우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왜냐면 자신의 모습이기 때문에.
루드 역시 태어날 때부터 부모도 없고 부모가 누군지도 모르는 채로 자라왔는데, 그런 상황에서 올바르게 크기란 어려운 것이었다.
물론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역경을 이겨내고 고난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아무래도 그런 사람들은 비교적 소수였던 것이다.
만약 그런 일들이 흔했다면 그런 일화들은 소위 말하는 감동 실화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지도 못했을 것이다.
흔하지 않기 때문에 그런 일들은 희소성이 생겨 가치가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상황에서 삐뚤어져, 탈선을 하거나 각종 범죄에 빠져들고 그렇게 평생을 보내는 경우가 있었는데 루드 역시 마찬가지였다.
루드 자신은 몰랐지만 루드가 도둑질을 하는 것 역시 그런 엇나간 마음 때문인 것이다.
사실 정상적으로 일을 하고 건실하게 돈을 모아서 결혼하고 평범한 삶을 살 수도 있었지만 루드는 그런 삶과는 거리가 멀었다.
어렸을 적부터 살기 위해 먹을 걸 훔치고 비바람에 떨면서 남의 집 마구간에서 노숙을 하던 루드로서는 그런 정상적인 삶과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다.
어디서부터 엇나갔는지, 아님 태어난 것부터가 잘못이었는지, 루드는 가끔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다면?
차라리 살 기회조차 없었다면?
그런 생각이 머릿속에서 끊이질 않았던 것이다.
물론 더 힘든 상황에서도 꿋꿋이 이겨내고 인간 승리를 쟁취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그건 그런 사람들이 대단한 것이지 루드만이 잘못한 것은 아니었다.
누구에게나 인간적인 연약함은 있었던 것이다······.
다만 루드는 선천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하고 그런 상황에서 부모도 없이 고아로 자라다보니 삐뚤어져서 도둑이외에 살아갈 방법을 찾지 못한 것인데 그렇게 루드가 자란 데에는 사회나 국가의 책임도 없지 않았다.
물론 이유야 어찌됐든 열심히 일을 하면서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은데 굳이 도둑질을 하면서 먹고 사는 데는 루드의 잘못도 있었지만 이미 철이 들었을 때는 그러한 삶의 방식밖에 몰랐던 것이다.
어느 순간부터 철이 들었을 때 이미 온 마을에는 루드를 싫어하는 사람들밖에 없었고, 그러한 원인은 루드가 고아였기 때문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루드를 먹여 살리기 위해 자기 애 줄 젖도 모자란데 젖동냥을 해주고 가난한 시골 마을에서 그런 부모 없는 애를 먹여살리려다보니 부담이 들었는데, 아무래도 사람인 이상 자기 애도 아닌 그런 애를 무조건 사랑으로 감싸주기는 힘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루드는 마을의 골칫거리가 되어있었고, 루드는 마을 사람들 거의 모두의 미움을 받았다.
오히려 어떻게 보면 그런 루드를 미워하는 마음으로 마을이 일치단결되고 있었는데, 루드는 그렇게 본의 아니게 마을 사람들을 단합시켜주는 희생양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 누구의 잘못도 아니었다.
제일 나쁜 건 루드를 버리고 간 부모인 것이다.
사정을 설명한 것도 아니고 아무 말도 없이 밤중에 마을에다 버리고 갔는데, 그러니 어떻게 된 것인지도 알 수도 없고 부모가 누군지도 알지 못했다.
사정을 알면 납득이나 해주겠고 누군지 알기라도 하면 증오의 대상으로라도 삼겠는데 그러질 못하니 항상 루드의 마음속에는 그런 답답함이 있었던 것이다.
잠시 그런 생각을 하던 루드는 자신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크에게 동질감이 생겨 측은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 소녀 역시 자신과 그리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루드는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이크에게 물어보았다.
“그건 그런데 대체 나는 왜 기절했던 거야? 상식적으로 네가 수녀원에서 와서 간단한 치료마법 정도는 쓸 수 있다는 건 알겠어. 그런데 내가 기절하는 건 말이 안 되잖아? 치료마법을 맞았는데 기절을 당하다니,”
“아, 그건 제 마법이 너무 세서 그래요. 철들었을 때부터 마법을 익혔는데 제 마법은 위력이 너무 강해서 조절이 안되거든요, 헤헷!”
“결국 원인은 너였냐!!!!!!”
루드는 분노해서 주먹을 부들부들 떨었다.
Comment '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