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3층(3) - 악의 축
“뭐, 뭐야 저거?!”
“손이 왜 저렇게 돼있어?”
일행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 강하고 아름답던 안내양이 손이 잘린 채 어딘가 의기소침한 모습으로 있었다. 분명히 웃곤 있는데 웃는 게 웃는 게 아니다. 그것은 슬픈 미소였다.
“······패배로 인해 잘린 거냐?”
“예, 역시 정확하시네요. 뭐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 거지만요.”
안내양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자 루드가 침통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그런 짓을 하다니······.”
“내가 이렇게 된 건 다 네 탓이야!!”
안내양이 불현듯 소리치며 자신의 팔에 달린 검을 휘둘렀다.
루드는 급하게 피했지만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그 가슴에 생긴 혈선에서 피가 흐르는 상황. 많이 흐르는 건 아니지만 조금씩 흐르고 있었다. 그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뚝뚝.
“내 탓이라니?”
“알면서 왜 물어?! 니가 도박에 이기고 우리들의 추격마저도 격퇴했기 때문에 우린 그 책임을 물어 처벌당한거야!!”
“내 탓이라고?”
“그래 네 탓이야!!”
“아니, 그건 너희들의 탓이다.”
우뚝. 검을 휘두르던 안내양은 그 공격을 멈췄다. 내뻗던 손은 가볍게 떨리고 있었다.
“내 탓이라니?”
안내양이 되물었다. 루드는 그런 안내양에게 침착히 말했다.
“도박에 진 것도 네 탓, 추격에 실패한 것도 네 탓 아니냐? 물론 도박은 몰라도 추격은 여섯 명이서 했으니까 그들 모두의 책임이 있지. 그들은 어떻게 됐냐?”
“모두 죽었어.”
“그래?”
“어느 정도 예상했다는 말투군?”
“책임자인 너를 그 꼴로 만들었는데 다른 자들은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지. 가만 보니 그들은 그 세력도 많고 인원이 한둘이 아닌 것 같던데 본보기로 삼기 위해서 죽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아. 사람이 그리 많으면 인재가 아깝다기 보다는 군기를 잡는 게 더 중요했겠지.”
“잘나셨군 정말······.”
“응?”
“아주 잘나셨어!! 하지만 너 때문에 내 인생은 엉망이 됐어! 내 손 어떡할 거야! 내 손 돌려내!!”
“돌려내라고 해도······.”
루드는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애초에 도박을 권한 건 네 쪽이잖아?”
“······.”
“그 층에 도착한 우리들에게 도박을 권한 건 네가 아니었어?”
“······.”
“그리고 너에겐 여러 번의 기회가 있었지. 블랙잭, 바카라, 포커. 심지어 바카라는 네가 이겼어. 그러고도 마지막 포커에서 진 건 니 실수가 아닌가?”
“하지만 블랙잭은 내가 한 게 아니었어!!”
“누가 그렇게 하래? 대리인을 내세운 건 너잖아.”
“······.”
“그리고 그 딜러를 졌다는 이유로 죽여 버린 것도 너고. 그런데 왜? 니가 당하니까 짜증나? 손이 잘리니까 죽고 싶고?”
“그래, 죽고 싶어!! 이런 몸으로 어떻게 살라는 말이야?!”
“그럼 죽어!!”
버럭!!
루드가 소리를 지르자 순간 안내양은 움찔했다. 그러자 루드는 언성을 높인 채로 계속 소릴 질렀다.
“뭘 잘했다고 난리야? 어차피 너도 그 어둠에 기생하여 먹고 사는 한 마리의 기생충이었잖아!! 그러다 네가 짓밟히니 짜증나? 남들을 짓밟다가?”
“니가 뭘 알아!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내 인생을 니가 뭘 알아!!”
안내양은 마구잡이로 검을 휘둘렀다. 그러나 평생을 손에 그 검을 쥐고 휘둘렀던 인간이 팔이 잘린 채로 아무렇게나 그 팔에 검이 쑤셔 박혀진 상태로는 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다.
박힌 칼을 주먹이라고 생각하고 싸울 수도 없다. 주먹과 칼은 완전히 그 종류가 다르고 싸우는 방법도 다르다. 칼을 수도라고 생각하고 싸울 수도 있지만 한계가 있다.
손은 수도의 형태로만 싸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권법, 장법, 지법, 점혈. 수많은 방법이 있다. 그런데 루드는 안내양의 외침에 맞서서 소리 질렀다.
“그렇게밖에 살 수 없었던 이유가 뭔데!”
“난 그 도박장 보스의 딸이야!”
멈칫. 루드는 물론 듣고 있던 일행 모두가 멈췄다. 자기 딸을 도박장의 하수인으로 쓰다니.
뭐 그건 좋다. 근데 졌다는 이유만으로 팔을 자른다고? 게다가 칩도 모두 회수해왔는데??
“후후, 원래 도박장이란 그런 곳이야. 일반인의 기준에서 그 어둠을 가늠하긴 힘들지. 그동안 난 도박장의 딜러로서 수많은 게임들을 이겨왔어. 설령 이기지 못하면 무력으로 그 돈을 빼앗았지. 그런 생활이 어언 몇 년? 난 그것 말고는 사는 방법을 모르게 되었어······.”
안내양의 시선이 어딘가 먼 곳을 향했다. 그녀는 지금 이곳에 있지만 이곳을 보고 있는 게 아니었다. 다른 어딘가를 보고 있었다. 그녀는 뒷세계 거물의 딸로 태어났다.
처음엔 자신이 어떤 환경에서 태어났는지 몰랐다. 그러나 곧 알아챘다.
항상 겁먹은 채로 자신을 바라봤던 사용인들. 하녀와 집사는 항상 긴장된 채로 자신을 대했다. 그러다 어린 자신이 울음을 터트리면 그 상대하던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
나중에 알았다. 그들이 죽은 것을. 자신의 아버지는 그런 아무렇지도 않은 이유로 사람을 죽였다. 자신의 어머니는 동방계였다. 정확히 말하면 동방에서 끌려온 노예.
그러나 그 반반한 미모를 보고 암흑가의 보스는 노예를 자신의 첩으로 맞아들였다.
그리고 일어난 지옥. 암흑가의 보스답게 그 부인들도 만만찮은 존재들이었다.
창녀, 사기꾼, 살인자, 방화범. 이상하게도 보스는 그런 여자들만 골라서 모았다.
그리고 그녀들에게서 태어난 악마의 자식들. 자식들은 암흑가 보스의 자리를 놓고 경쟁했다.
그건 엄마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설령 어둠의 세계에서도 한번 발을 들이면 그 끝을 봐야한다. 살인자, 협잡꾼들이 모인 곳답게 멀쩡한 사람은 거기서 버틸 수 없었다.
첫 희생자는 안내양의 어머니였다. 단순히 외모가 반반한 노예라는 이유만으로 그곳에 끌려온 비운의 여자.
나쁜 짓이라고는 아무것도 할 줄 몰랐던 그녀는 아무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 부인들의 흉계에 걸려 바로 죽었다. 단순히 독약을 탄 차 한잔에 바로 사망.
의심하지도 못하고 의심할 생각도 없었다. 만약 의심했더라도 별다른 방법은 없었을 것이다.
그것 말고도 처리할 방법은 많았기에. 그래서 안내양은 자신의 부모의 얼굴이 생각나지도 않을 정도로 어린 시절에 어머니를 잃었다. 사실 부모를 모두 잃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모가 아니었기에. 그저 생물학적인 아버지였다.
그녀에게도 어둠의 마수가 닿았지만 그녀는 운 좋게 그것을 모두 비껴나갔다.
아니, 운이 아니라 실력이라고 할까? 잘은 모르지만 이상한 냄새가 나는 차를 버렸더니 그걸 마신 동물들이 죽고, 어쩌다 몸을 돌렸더니 그 옆으로 화살이나 단검이 날아가고 원래 자신이 만지거나 먹었어야 할 물건이나 음식에 손대지 않았더니 대신 만진 다른 사람이 죽었다.
그녀는 감이 탁월했다. 매우 탁월했다. 원래는 절대 알지 못할 무형의 독을 감만으로 눈치 채고, 만져서는 안 되는 물건, 가서는 안 되는 이상한 느낌이 드는 곳에 가지 않았다.
천부적인 감. 그로인해 결국 그녀는 성장할 때까지 죽지 않았고 나중엔 경쟁자인 형제자매들을 모두 제거할 수 있었다.
“제거할 수밖에 없었어. 그러지 않으면 내가 죽었거든.”
그녀는 아련한 표정으로 어딘갈 쳐다보며 말했다. 아무리 감이 좋아도 그 경쟁자를 살려둔 상태에서는 운신의 한계가 있다. 그녀가 봐준 남매들은 결국 적이 되어 그녀를 노릴 것이다.
그래서 처리. 죽였다.
“그 후로 계속 도박장에서 일한거야?”
“그래. 그때 마침 이 던전이 열렸거든. 갑자기 생겨난 치외법권의 황금알 낳는 거위. 보스가 발을 뻗지 않을 수 없지.”
그녀는 아버지를 보스라 불렀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의 정도 없었고 아버지도 그녀도 그걸 원하지 않았다. 필요한 것은 단순히 직무를 행할 도구뿐. 그리고 지시를 내릴 사람뿐이다.
“그리고 이후 지하에서 희생양들을 잡았고?”
“그건 어쩔 수 없었어! 내가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단 말이야!!”
다시 울부짖으며 검을 휘두르는 안내양을 보며 루드는 조용히 말했다.
“그건 니 논리일 뿐이야.”
“!”
“설령 나 같으면 죽더라도 그런 짓을 하지 않았어. 도망가거나 자살했겠지. 그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야.”
실제로 그렇다. 루드는 한번 아닌 건 죽어도 아닌 성격이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상에서도 노동운동을 했을 리가 없다.
솔직히 루드도 개돼지처럼 그 정당한 수당을 받지 않고 그저 잘릴까봐 전전긍긍하며 오너 일가가 마음대로 횡포를 휘두르는 좇소기업에서 일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루드의 방식이 아니다. 설령 힘들더라도 그런 악한 인간들과 블랙 기업들에 맞서서 싸우는 것이 루드의 방식이었다. 가령 죽더라도 엿은 한번 먹여야한다.
“그럼 내가 죽어야 했다는 거야?! 지금 여기서 죽어?!”
“그래, 죽어! 한번 자살해봐라!!”
쿵!
쿵!
지켜보고 있던 이크를 비롯해 모두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게 말하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 어려움에 처한 사람보고 죽으라니!”
“그래요, 그건 너무 지나쳐요!”
이크는 물론이고 플로드도 비난하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왠지 비치나 김창남, 바이올렛은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시끄러워! 그럼 이 여자에게 걸려 그 인생을 잃고 도박장의 노예로 전락한 사람들은 어쩌라는 거냐! 그들의 인생은 누가 책임지지?!”
그러자 그녀들도 말을 잃었다. 그 말대로 그 수많은 자들의 인생은 누군가 책임져주지 않는다. 대신 보상해주지도 않는다. 단순히 피해를 입은 채 그대로다.
“도박장에 빚을 담보로 잡혀있는 영혼들! 불쌍한 노예들! 그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준단 말이냐!!”
그 말에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그들은 그때 보았다. 도박장 안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을.
그들이 모두 노예였다. 처음에 손님인줄 알았지만 그들은 도박장에서 뭔가 트러블이 생기면 바로 처리반으로 나섰다. 그리고 그들도 당한 방식이다.
“손님으로 왔는데 도박에서 지고 인생까지 저당 잡혀버렸지! 그들의 인생은 누가 보상해준단 말이냐! 누가 보상해준단 말이냐!”
아무도 루드의 부르짖음에 답하지 못했다. 그런데 루드가 이처럼 그런 노예들에게 감정이입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설령 기업이나 정권에 의한 피해자든, 뒷세계 어둠에 의한 피해자든 모두 피해자는 피해자였다.
그들은 루드 일행이 그랬던 것처럼 모두 자진해서 도박을 하러 나선 게 아니라 꼬드겨졌다.
그리고 정당한 도박이면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져도 그 승패를 인정하지 않고 도박에 나선 사람마저 볼모로 삼는 도박장의 행태.
사람을 노예로 삼는다는 점에서 그들은 루드의 적이었던 바깥의 그 블랙기업이나 좇소기업들과 똑같았다. 모두 똑같은 인간들이었다.
“그러니 어떠냐? 나와 손을 잡는 게.”
“뭐라고?”
“나와 함께 손을 잡고 그 보스라는 자를 물리치자. 모든 사건의 원흉을.”
루드는 손을 내밀었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