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3층(9) - 재생
“인큐버스는 원래 집도 절도 없어!! 그러다 괜찮은 여자 만나면 아무데나 막 박고 사는 거야!!”
“어머, 저급해라!! 막 박고 산다뇨?? 인큐버스라 원래 그런 저속한 말만 쓰는 거예요??”
“응? 내가 말한 건 한 곳에 정착지를 정하고 기둥 박고 산다는 말인데? 그냥 말해본 거에 이상한 의미를 부여하는 건 바로 너 같군?”
“크윽!!”
안내양이 한번 쏘아붙여봤으나 김창남 역시 만만치 않았다. 애초에 인큐버스로서 여자를 꼬시려면 언변이 좋아야 한다. 그냥 인큐버스라고 다 되는 게 아니다.
그래서 인큐버스들 중에는 여성에게 인기가 없는 인큐버스도 있었다.
뭐 그건 사람도 마찬가지지만. 아무튼 적당한 타이밍이다 싶어 루드가 끼어들었다.
“어때, 이런 재치 있는(?) 친구들. 동료로 삼고 싶지 않아??”
“전혀요!”
“나도 싫어!!”
안내양은 물론이고 김창남도 고개를 홱 돌렸다. 그러자 한숨을 쉬는 루드.
“후우, 그래. 너도 가고 싶은 곳이 있을 텐데 너무 내 생각만 했군. 미안해. 너무 내 입장만 강요해서. 그래, 가버려. 어디든 가고 싶은 대로 가버려.”
“아, 아니, 잠깐만요······.”
갑자기 루드가 태세를 전환하자 안내양은 당황했다. 사실 안내양도 이 그룹에 관심은 있었다. 구성원 하나하나가 정상이 아닌 것 같기는 하지만, 반대로 그만큼 재미있을 것 같기도 하다. 또 그만큼 강하고. 이들의 괴짜스러움과 더불어 강함은 이미 입증되었다.
던전에 도전하지 않는다면 모를까, 만약 도전한다면 이만큼 좋은 팀도 없었다.
그리고 상당히 오랜 기간을 던전에서 살았지만 이 안내양도 그 끝을 알 수 없었다.
위험성 때문에 몬스터를 퇴치하거나 도박장의 돈을 떼먹고 도망간 추적자를 쫓는 것도 어느 층 이상은 한계가 있었다.
평소 도박장의 돈을 떼먹고 간 도망자에 대한 추격을 강조하는 보스였지만, 일정 층 이상이 지나서 놓쳐버리면 그냥 추격조에게 순순히 돌아오라고 명령했다.
‘어차피 그 놈은 죽은 목숨이다. 그러니 그냥 돌아와라.’
돈을 목숨같이 여기는 평소의 보스라고는 이해할 수 없는 발언이었는데, 솔직히 납득되는 것도 있었다. 진짜로 깊이 들어갈수록 이 던전은 지옥이니까.
처음엔 뭐 코볼트나 고블린 이딴 몬스터가 나오는데, 훈련받지 않은 일반인들에게는 그것도 버겁다. 하지만 그런 코볼트가 고블린이 나중엔 잡몹 같이 보이는 고층 몬스터들.
언데드에, 불사에 가까운 몬스터도 나오고 전설의 마수. 이쯤 되면 코볼트 고블린은 진짜 장난이었다. 심심풀이 장난.
아무튼 안내양은 고민하고 있었는데 솔직히 다른 멤버들이야 약간씩 사정은 달라도 결국 던전을 클리어하려고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안내양은 애초에 그런 욕심이 있어서 있던 게 아니라 어떻게 보면 그녀 역시 감금된 사람이었다. 뒷세계의 보스이자 자신의 아버지에 의해 이 던전이라는 이름의 감옥에.
하지만 결국 호기심이 두려움을 이겼다. 어찌됐든 이들은 자신의 복수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들이고, 물론 그 과정에서 그들의 이득도 있었지만 어찌됐든 그녀가 도움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녀도 출중한 무인이었기 때문에 아무도 클리어한 적이 없다는 이 던전을 최초로 클리어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결국 덥석 낚인 안내양.
“하겠습니다!! 저를 동료로 받아주세요!!”
‘크큭, 낚였군······.’
마침 뒤돌아서 있던 루드는 안내양에겐 보이지 않는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계획대로다.’
마치 그렇게 데스노트에서 잃어버렸던 기억을 되찾은 야가미 라이토 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데, 안내양은 몰라도 이를 다른 일행들은 보았다. 그리고 루드의 흉계를 눈치 챈 것도 덤.
‘역시 그런 꿍꿍이가 있었군······.’
‘뭐 결과는 좋지만······.’
‘저런 강한 사람이 동료로 들어온 건 좋은데 뭔가 좀 마음에 걸리네요······.’
이크와 바이올렛, 플로드는 각자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한편 아직도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김창남과 반대로 뭔가 위기의식을 느낀 비치.
‘이, 이래선 여자가 한명 더 늘잖아?! 안 돼, 내 경쟁상대가 느는 건 하나라도 더 막아야 돼!!’
비치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루드가 입을 열었다.
“이크.”
“네, 네??”
음흉한 밀당으로 안내양을 일행에 받아들인 루드를 보고, 이크는 묘한 눈빛을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당황하며 대답했다.
‘드, 들켰나??’
그러나 루드가 무슨 프로페서X도 아니고 그런 독심술을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아무튼 목적을 밝히는 루드.
“안내양의 손, 치료해줄 수 있겠어??”
“뭐, 치료해주는 건 가능하죠. 게다가 우리 동료가 됐으니.”
“예?? 치료해주는 게 가능하다고요??”
안내양은 깜짝 놀란 표정이 되었다. 지금 안내양의 팔은 팔꿈치부터 양팔이 그대로 잘려나가고 거기에 칼날이 붙은 상태였다. 그것도 자신이 쓰던 애검.
그나마 자신의 애검이 붙은 것은 다행이었지만, 팔이 잘리고 검이 붙었는데 제 실력이 나올 리가 없었다. 솔직히 일상생활도 거의 불가능하다. 역시나 그 점을 지적하는 루드.
“그 손으로는 포크질도 못하잖아. 아, 나이프질은 가능하겠군.”
“······.”
이게 놀리는 것인지 위로하는 것인지 안내양은 감을 잡지 못했다. 확 찌를까 생각하고 있는데, 거기에 루드가 더 불을 붙였다.
“그리고 똥 싸고 똥도 못 닦겠지. 아님, 뭐 내가 해줄까? 조금 찝찝하긴 한데 동료니까 그 정돈 해줄 수 있어. 봉사하는 마음으로 내가 좀 희생하지.”
슉!
“으악!! 뭐하는 거야!!”
“당신이야말로 뭐하는 짓입니까!! 숙녀의 똥구멍 운운하고 있다니!!”
“아니, 난 똥구멍 드립은 안쳤어!! 그냥 닦아주겠다고만 했다고!!”
“그게 그거 아닙니까!!”
“사람의 호의를 이렇게 무시하다니!!”
“이게 무슨 호의입니까!! 그딴 호의 그냥 하지마세요!!”
안내영은 양팔의 검을 마구 휘두르고, 루드는 그 검을 피해다녔다. 한참 그렇게 술래잡기를 하다가 결국 지쳐 멈춘 두 사람.
“헉헉, 이쯤하자. 이젠 지쳐서 도망갈 힘도 없다.”
“그럼 당신을 베기에 가장 적절한 타이밍이군요.”
“너도 지쳤잖아.”
“······.”
“아무튼 이크가 고쳐줄 수 있으니까, 잠시 양팔에 박힌 검을 빼야겠다. 좀 아파도 참아.”
“아니, 어떻게 잘려나간 팔을 고칠 수 있다는 거죠??”
“이 꽉 깨물어라.”
그러나 루드는 무시하고 안내양의 입을 무슨 천으로 틀어막았다. 그러자 읍읍, 거리는 안내양.
“죽을 것 같아도 참아. 잠시 죽고 싶을 거다.”
“읍, 으아아아아악!!!”
입에 천이 물려 있는데도 안내양은 참지 못하고 비명을 질렀다.
“젠장, 천이 너무 작았나??”
결국 천을 하나 더 꺼내 마저 안내양의 입에 채우는 루드. 입안에 천이 가득 찬 안내양은 침을 질질 흘리고 있었다. 고통 때문에 이미 눈도 살짝 뒤집어 진 것이 제정신이 아니다.
그런 안내양을 슬쩍 보더니 다시 작업을 계속하는 루드.
“웁, 읍읍읍읍!!!”
비명을 지르는 안내양을 무시하고 루드는 양팔의 검을 빼냈다.
“미친 자식, 아예 지져놨군.”
루드는 욕지거리를 하더니 쓰러져있던 보스에게로 가서 머리통을 걷어찼다.
뻐엉!!
그러자 축구공같이 피를 뿌리며 저 멀리 날아가는 보스의 머리통.
“히익!!”
그 길에 있던 사람들 몇 명이 하늘에서 흩뿌려지는 피를 맞았는데, 루드가 사과를 했다.
“아, 미안합니다 여러분!! 그래도 그 새끼 살아있는 동안 좋은 거 먹었을 테니까 피는 신선할 거예요!! 그러니 걱정하지 마세요!!”
루드는 자신도 뭐라고 하는지 모를 개소리를 대충 지껄여 뜬금없이 봉변을 당한 사람들에게 사과를 하고 마저 안내양의 팔에 박힌 칼을 뽑았다.
“아, 안되겠다. 도와줘요, 바이올렛.”
“으음.”
지금 발버둥치는 안내양을 네 명이서 동시에 잡고 있었는데, 팔을 잡고 있던 바이올렛이 칼날을 빼는 자리로 바꿨다. 그리고 자연히 팔을 잡는 루드.
“어이쿠, 무슨 힘이 이리 세??”
전에도 싸워봐선 알지만 안내양은 확실히 대단한 무인이었다. 그런데 힘은 아무래도 여자인 만큼 그리 세지 않았는데 과장 좀 보태서 지금은 거의 바이올렛 급 같다.
물론 진심을 담은 바이올렛보다는 못하겠지만. 원래 사람은 평소에 모든 힘을 다 쓰지 않고 무의식적으로 리미터를 걸어 그 한계를 봉인했다.
그런데 생사의 위기에 놓이거나 이렇게 고통스러울 때는 그 힘이 다나온다.
이게 인간이 순간적으로 발휘할 수 있는 엄청난 힘이었다.
“우리랑 싸울 때 이렇게 힘을 썼으면 위험했겠어, 아주??”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드는 적당히 농담을 하며 분위기를 계속 전환했다.
그렇게 분위기가 심각하면 안내양이 받을 고통이 더 커질 거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설령 고통스럽더라도 화제를 전환하고 의식이 거기에 집중되면 통증이 덜해진다.
실제로 병원 치료 등에서도 어린애나 동물들을 치료할 때 그렇게 하니까.
그런데 칼날이 얼마나 깊고 단단히 박혀있는지, 게다가 불로 지져놓으니 이건 뭐 거의 칼을 빼내는 게 아니라 살을 잡아 뜯는 거였다.
끔찍하게 비명을 지르다 이젠 아예 울기까지 하는 안내양을 보며 루드는 측은한 생각이 들었다.
‘불쌍하기도 하지. 부모 잘못 만나서······.’
그런 생각에 루드는 저도 모르게 안내양의 땀이 찬 이마와 머리카락을 쓸어주었다.
그러자 안내양은 왠지 좀 잠잠해졌다. 본능적으로 안심이 되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안내양의 이마를 닦아준 루드는 그 땀이 묻은 손바닥을 슬쩍 핥았다.
할짝!!
“으음, 역시 미소녀의 땀은 맛있네. 미소녀는 땀도 맛있군.”
그 모습을 이크와 플로드가 혐오스러운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으윽, 쓰레기.’
‘진정 쓰레기다.’
사람이 아파 죽을 정도의 고통 속에 몸부림치고 있는데 미소녀의 땀 맛 드립을 치고 있다니.
그런데 그 다음에 내뱉은 루드의 발언이 더 가관이었다.
“아, 다음엔 미소녀의 피를 맛보고 싶다. 과연 어떤 맛일까.”
“······.”
이젠 아예 이크와 플로드는 루드를 사람취급하지 않기로 했다. 전부터 약간 이상한 건 알고 있었는데 이 정도라니. 밖에서 노동운동도 하고 고시공부도 했다는데 고시공부 하다가 돌아버린 건가?? 그런데 실제로 고시생들 중에는 변태가 많았다.
물론 다 그런 건 아닌데, 어떤 나라의 고시촌에는 변태 유흥업소가 많았다.
이는 고시생들의 스트레스가 장난 아니기 때문인데, 실제 고시생들 중에는 미친 듯이 공부하는데도 합격이 안 오니까 진짜로 정신분열증이 오는 사람도 있었다.
게다가 나름 배운 사람들이라 그 성적취향도 매우 복잡하고 다양해서, 이로 인해 그 고시촌 유흥업소에는 SM이나 코스프레 같은 모 성진국에나 있을 법한 플레이를 해주는 업소도 있었다. 겉으로는 무려 동방예의지국인 척을 하면서도.
이크와 플로드는 그런 나라의 사정까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이 루드가 뭔가의 이유로 인해 약간 돌아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다. 분명 정상은 아니다. 그렇다고 아주 미친놈도 아니긴 한데.
“후후, 원래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는 매우 모호하지······. 이 미쳐버린 세상에서 휩쓸려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어쩌면 내가 먼저 미치는 게 낫지 않을까??”
일행의 그런 시선을 의식했는지 루드는 묻지도 않은 혼잣말을 했다.
그 모습을 보고 이크와 플로드는 확신했다.
‘이건 진짜 미친놈이다.’
‘그것도 침착하게 미친놈.’
그런 일행의 생각은 둘째 치고 아무튼, 안내양의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박힌 칼날을 적출하고 이크가 힐을 하니, 놀랍게도 잘린 팔이 재생되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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