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3층(4) - 보스
“영상개화!!”
“해저로월!!”
쾅!!
안내양은 각각 그 팔에 박힌 칼 두 개로 상대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리고 호소.
“그만둬, 키사! 에마! 우린 이런 사이가 아니잖아!”
“이런 사이가 아니긴 뭐가 아니야!”
“우린 결국 이런 관계야!”
콰쾅!!
연이어 폭음이 일어났다. 안내양이 상대와 격돌하고 있는 것. 실제론 격돌이라기보다는 안내양은 방어만 하고 있다. 이 적들은 안내양이 잘 아는 사람들. 얼마 전까지 동료였던 자들이다.
“우리끼리 싸우지 말자! 우리가 힘을 합하면 보스도 쓰러트릴 수 있어!”
“개소리!”
“그러니까 니가 그 꼴이 된 거야! 니 팔을 봐!!”
그 말에 안내양의 시선이 무심코 자신의 팔을 향했다. 잘라지고 아무렇게나 칼이 쑤셔 박힌 볼품없는 팔. 팔이 잘리며 그녀는 자신감도 잃었다. 한때.
“우리가 이렇게 대항하면 결국 보스만 좋은 일 시켜주는 꼴이야!”
“그러니까 니가 항복하면 되잖아!”
“아니면 죽든지!”
이 키사와 에마라는 두 적들은 순순히 항복할 기세가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들 입장에서는 안내양이 배신자다.
그리고 적이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임무에 실패하고 그 손이 잘린 것에 대해 친구로서 안타까운 마음도 들고 애처로운 생각도 들었지만 지금은 얄짤 없었다. 조직이란 그런 곳이다.
조직은 어설프게 친구란 이유만으로 조직에 반기를 들었다고 쉴드를 쳐줄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때론 친구라도 죽여야 하는 곳이 조직이다.
정확히 말하면 굳이 친구를 죽일 필요는 없지만 죽여야 할 때가 오면 죽이는 것.
그것이 조직원으로서의 자세였다. 피도 눈물도 없다. 어설픈 감성은 죄악일 뿐.
그렇게 상대하고 있는데 이 적들은 마작의 기술을 사용하는 자들이었다.
영상개화와 해저로월은 그런 마작의 역, 역은 즉 족보인데, 둘 다 상당히 안 나는 역이었다.
그러니 그런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한다는 점에서 이 두 소녀의 능력을 알 수 있다.
두 소녀를 동시에 상대하고 있는 안내양과 마찬가지로 다른 일행도 무수히 많은 적을 상대하고 있었다. 각각 오목, 마작, 장기, 심지어 윷놀이나 화투라는 동방의 게임도 있다.
물론 마작도 동방의 게임이기는 하지만. 아무튼 이런 다양한 능력을 가진 적들에 의해 이 층은 지금 난리도 아니었다. 일행이 있는 곳은 지하 9층이었다.
일행이 도박을 하고 쫓기게 된 원인이 된 곳. 안내양의 말에 따르면 이곳에 보스가 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것이다. 이 층은 모든 곳의 근원지니까.
도박장에 사로잡힌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은 빚을 지고 그 대가를 갚기 위해 적들에 맞서 싸웠다. 사실 진정한 적은 이 도박장과 그 보스다. 그런데 사람들은 루드 일행에게 덤벼들고 있었다.
“그만둬!”
“우리에게 칼을 들이대지 마! 너희들이 싸워야할 진정한 적은 보스다!”
루드와 김창남이 그렇게 외쳐봤으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자들도 문제의 원흉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바로 보스다. 그리고 자신들.
“알고 있어······.”
“뭐?”
“알고 있다고! 하지만 우린 대항할 수 없어! 너희는 몰라, 그의 강함을!!”
어떤 자가 울부짖으며 덤볐다. 자세히 보니 그 역시 두 팔이 안내양처럼 잘리고 칼이 박힌 상태였다. 이것이 이곳 보스의 방식인 것 같았다.
실수를 하면 몸으로 그 대가를 치른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아주지 않는다. 설령 그 팔이 잘리더라도 조직에 봉사하라는 보스의 명령. 죽음보다도 더 무섭다. 그러니 저항할 수 없었다.
“여기서 더 나가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온 몸의 포가 떠지지! 그리고 죽지 않도록 계속해서 치료를 받아! 그렇게 피도 흘리지 못하고 고통 속에 온 몸의 포가 떠지다 포가 다 떠지면 자연스럽게 그 팔과 다리가 잘리지! 그리고 내장만 남기고 점점 그 살이 잘리다 결국 호흡기와 소화기관, 경추와 요추, 머리통만 남은채로 살게 되지!”
오싹! 일행의 온 몸에 전율이 달렸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그것보다 더한 형벌이 없다.
그야말로 지옥. 정말로 죽는 게 축복일 것이다 그런 상황이 되면.
‘그 말이 사실이야?’
‘맞아.’
싸우는 와중에 루드가 눈짓으로 은근슬쩍 물어보았는데 그 의도를 눈치 챈 안내양은 고개를 끄덕였다.
“미친······.”
그러니 전율할 수밖에 없었다.
‘그 보스란 놈은 제정신인가?’
어지간한 인간은 그런 발상 자체를 해내지도 못할 것이다. 발상 자체가 악마적이었다. 인간이 아니다. 아무튼 루드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두르며 싸웠다.
“크레센트 소드!!!”
채앵!
“으아악!!!”
초승달 모양의 검기, 흩뿌려진 크레센트 소드가 사방을 갈랐다. 이 검기는 그 위력은 부족하지만 범위만큼은 압도적이다.
루드의 최강 기술은 아예 그 달빛 자체를 지우는 루나 이클립스이지만 크레센트 소드도 나름 쓸모가 있었다. 세상에 쓸모없는 기술은 없다. 중요한건 그 활용이었다.
탁, 탁!!
허공을 밟고 날아가며 루드가 검을 휘둘렀다.
촤라랑!!
최근의 싸움을 거치며 루드는 한 가지 깨달음을 얻었다. 그로인해 얻은 기술이 바로 이 에어워크, 동방에서는 허공답보라 불리는 기술이었다.
단순히 그 허공을 마나로 굳혀 밟고 날아가는 기술이지만 그러한 기술의 구현은 매우 힘들다. 그러나 지금의 루드는 매우 간단하게 해내고 있었다. 그것이 깨달음의 힘이었다.
이 깨달음을 어떤 종교의 경전을 빌려서 말하자면 색즉시공 공즉시색. 무가 곧 유고 유가 곧 무다. 언뜻 없는 것 같이 보이는 공기를 일반인은 사용할 수 없는 마나를 통해 밟고 날아간다.
콰앙!!
허공을 밟고 날아가며 루드는 무수한 검기를 흩뿌렸다. 한편 적들은 각자 그 특기로 상대하고 있었다.
“가일수!”
“고목!”
“귀곡사!!”
쾅!
“젠장, 이번엔 바둑이냐!!”
이리저리 이동하는 와중에도 검을 마주치며 루드가 이를 갈았다.
루드는 체스나 블랙잭 등 다양한 게임에 능통했는데 바둑의 용어도 잘 알고 있었다.
가일수는 바둑에서 모양이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곳에 보강하는 수고, 고목은 바둑판의 특정 지점을 말하는 말이었다. 귀곡사는 바둑돌이 바둑판에서 이루는 특정 모양을 말하는 말이었는데, 이것이 미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참고로 미생은 바둑에서 집이나 대마가 아직 완전하게 살아있지 않은, 즉 죽지도 살지도 못한 말을 일컫는 말이다.
적들이 지금 가일수나 고목, 귀곡사 등의 용어를 외치는 이유는 하나였다.
전장의 특정 지점으로 루드를 몰고 그곳에서 특정 기술을 쓰자고 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루드는 바둑을 잘 알았다. 그래서 반대로 그런 외침을 듣고 적들의 의도를 간파했다. 그래서 반대로 분쇄.
콰앙!!
“으악!”
“으아악!!!”
적들이 피를 흩뿌리며 나가 떨어졌다. 이것이 진의 약점이다. 이들은 한마디로 지금 즉흥적인 일종의 진을 쳐서 그 세 명이 합공하고자 한 것인데, 루드가 바둑에 대해 잘 안다는 것이 패인이었다. 모든 진은 그 생문과 사문이 있는 법. 사문이 있으면 생문이 있다.
그러한 곳은 반드시 존재하는 것이었는데 사람을 포위하는 진도 생물과 같아서 그런 문이 없으면 성립이 안 되었다. 마치 코와 입이 막혔는데 살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적들의 대화를 통해 작전을 눈치 챈 루드는 생문에 해당하는 위치로 뛰어 들어가 세 명을 동시에 박살냈다. 그리고 다음 적.
“모!”
“윳!”
“쳇!”
루드가 혀를 차며 물러났다. 루드는 심지어 윷놀이도 안다. 윷놀이는 이 대륙에선 거의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는 게임이지만 루드는 알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노동운동을 했는데 루드는 나름 지식인이었다. 그리고 원래 그런 쪽에 관심이 많고 전에도 아예 토토방이라는 도박장에서 일해본 적이 있어서 도박에도 빠삭했다.
물론 그건 합법 도박장이었지만. 잠시 뒤로 물러나 패턴을 파악하던 루드는 단번에 뛰어 들어갔다.
“하프 문 소드!!!”
쾅!!
반달을 형상화한 루드의 검기. 그런데 반달은 그 한 면이 둥그스름하지만 반대로 한 면은 완전히 직선이다. 그래서 이 검기는 적을 둥그스름한 면으로 상대할 수도 있고 깎아지른듯한 직선으로 상대할 수도 있다. 다양한 활용도가 있는 검기였다.
루드는 적들의 윷과 모라는 패에 대항해서 하프 문 소드의 둥그스름한 면으로 마주쳤다.
“어?!”
“헉!!”
적들이 당황했다. 자신들의 검기가 루드의 검기에 닿자 빗겨 미끄러져나간다.
그러한 성질. 적들의 검기가 빗겨나가자 루드는 검기를 수직으로 세워 그 날카로운 모서리로 공격했다.
퍽!
검기에 맞았는데 마치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난다. 이것이 이 검기의 다른 본질.
수직으로 세운 반달은 둥그스름한 부분과 날카로운 부분을 모두 포함하고 있었다.
이 상태로 루드는 적의 여분의 검기를 흘려보내고 그와 동시에 공격했다.
그리고 다시 검기를 뒤집어 이번엔 아예 날카로운 부분으로 공격!
써걱!
반달의 마지막 모습. 그것은 둥그스름한 면에서 직선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처음엔 둥그스름한 면, 나중엔 그 둥그스름한 면과 날카로운 면이 이어진 곳으로 공격했다면 이제 루드는 그 날카로운 마지막 부분으로 공격했다.
그리고 그 부분의 성질은 당연히 예리함. 적의 검기를 흘려내고 빗겨내고 마지막으론 결정타를 내린다. 파상의 3단 공격. 루드도 몰랐는데 자신의 검기엔 이런 성질이 있었다.
달은 잔혹하지만 동시에 자애롭기도 하다. 이런 성질을 살린 검기. 어떤 면에서 이 검기는 심검에 닿아있었다. 아직 멀지만 그 오의를 극히 일부분이라도 담은 검기.
지금 루드는 적들의 대부분을 쓰러트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이유는 당연하다.
루드만큼 적들에게 정통한 자가 없었기 때문이다. 루드는 적들의 일면식도 없었지만 이 적들이 각종 게임에서 유래한 기술을 사용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는 이 도박장 보스의 취향이었는데 그렇게 해서 조직원들에게 기술을 쉽게 익히게 하고 그 이미지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이게 약점이 되다니······.
지금 루드는 그야말로 이 도박장 일원들의 천적이나 다름없었다.
아마 이 시스템을 만든 도박장 보스도 이런 사태는 예측하지 못했을 것이다.
설마 온 대륙 도박이나 게임에 대해 다 알고 있는 인간이 있다니. 심지어 동방의 게임도 말이다. 아무튼 루드가 싸우는 동안 일행도 분투해서 하나하나 적들을 쓰러트렸다.
“하앗!”
“차!”
플로드의 화염구, 이크의 힐, 김창남의 전기와 비치의 채찍이 사방을 갈랐다.
그리고 여전히 활약하는 바이올렛은 덤.
쾅!
지금도 바이올렛이 한 적의 아구창을 날린 상황이었는데 사실 이 바이올렛은 게임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다.
그래서 루드처럼 쉽게 파훼하지는 못하고 순수하게 힘과 속도, 그 기술로 밀어붙이고 있는 상황. 그렇게 일행이 미친 듯이 싸우고 있는데 전장에 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휴우···. 이대로 가다간 애들 다 죽겠군. 모두 싸움을 멈춰라!!”
그러자 모두가 돌아보았다. 그곳엔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한 중년의 남자가 있었던 것이다.
Comment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