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6층(7) - 가해자가 된 피해자
“비록 죽을만했다지만 실제로 죽으니 참으로 안타깝군······.”
“그도 어떻게 보면 단지 피해자 중 한명이었을 뿐이었는지 모르죠······.”
멀어져가는 기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루드와 안내양이 입을 열었다.
“자주 있는 일이잖아요? 가해자가 된 피해자.”
“그렇지······.”
루드는 씁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가해자가 된 피해자. 그것은 자신들이 받은 고통을 자신의 자식들에게 그대로 가하는 부모도 포함된다.
가령 어떤 사람이 어렸을 때 별 것도 아닌 걸로 너무 혼나거나 맞는다면 그는 커서도 그렇게 할 확률이 많다. 사람은 자신이 당한 고통을 되새기며 보상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정당화한다.
‘나도 이렇게 당했어!! 나도 고통스러웠고 그러니 너희도 고통스러워야하며 고통스러운 게 당연해!!’
이것이 가해자가 된 피해자들의 논리다. 설령 이렇게 의식하진 않더라도, 그들은 잠재의식 속에서 이런 고통에 의해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든다.
언뜻 생각하면 자신이 당했는데 왜 이런 걸 또 반복하는가, 자신은 당했으니 후대나 다른 사람에겐 그걸 물려주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드는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다.
사실 범죄란 일으키지 않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고, 이런 자식들에게 가하는 고통도 범죄였다. 다만 이 범죄는 매우 빈번하게, 혹은 은밀하게 상습적으로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아마도 전 세계에서 지금도 일어나고 있을 범죄들.
“사람은······ 이렇게 항상 남을 고통스럽게 해야만 하는 걸까요??”
“사람뿐만이 아냐. 생물은 항상 남을 고통스럽게 하지.”
가령 어떤 생물이 있다. 이 생물은 살기 위해서 항상 남에게 고통을 주어야 한다.
가젤을 잡는 치타? 얼룩말을 잡는 사자? 영양을 잡는 악어?? 이들은 무슨 악의가 있어서 생물을 잡는 것이 아니다. 괴롭히려고 잡는 것도 아니고. 단지 ‘먹고 살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다.
“사람뿐만이 아니라 모든 생물은 남에게 고통을 주고, 그러면서 살아가. 그렇게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남을 해치며 살아야하지.”
“그러나 그건 약육강식의 법칙이에요.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고기나 생선을 먹어야 하고 그럴려면 반드시 어떤 생물을 살생해야겠죠. 하지만 그건 어쩔 수 없어요.”
“사람만이 자신이나 동족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야. 가령 고래 같은 경우 음경을 암컷의 숨구멍에 박는 경우가 있지. 마치 사람이 원래 그 용도로 만들어진 것이 아닌 항문에 자지를 박듯이 말이야.”
“꼭 그런 예를 들어야 하나요?? 그보다 애널이라든지 존슨, 딕, 페니스 등 다른 용어 많잖아요??”
“그건 그냥 외국어로 말한 거 아냐!! 그런다고 뭔가 본질이 달라져?! 오히려 애널에 존슨을 박는다는 게 더 에로틱해 보이는데??”
“그건 당신 생각이죠!!”
“그럼 그것도 네 생각이지!!”
‘또 시작이군······.’
일행은 모두 그런 생각을 했다. 어떻게 된 게 이 루드와 대화만 하면 모두가 말리고 만다.
분명 생물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생물에게 어떤 고통을 줄 수밖에 없냐는 대화를 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대화가 애널이니 존슨이니 하는 얘기로 변질되고 말았다. 아무튼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는 루드.
“험험, 아무튼 그런 사례는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냐. 가령 사자는 자신이 암사자와 관계해서 낳은 것이 아닌 새끼들을 모조리 물어 죽일 때가 있지. 무리의 우두머리 숫사자가 바뀔 때 이런 일들이 일어나는데 이건 원숭이 세계에서도 일어나는 일이야. 이미 새끼가 있으면 암컷들은 교미를 거부하고 육아만 하기 때문에 수컷들은 기존에 이미 태어난 새끼들을 모두 죽이지······. 참 안타까운 일이야. 그런 걸 생각해보면 이크나 플로드는 적어도 첩에게서 태어났는데 죽지는 않았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너도 그렇고.”
“예~ 참 죽여주지 않아서 저희 부모님에게 감사하네요.”
“그렇게 삐딱하게 말하지 말고. 태어난 이상 모든 사람에겐 그 사명이 있겠지. 너도 힘든 시간을 보냈겠지만 그런 저주스러운 부모만이 아닌 너에겐 정상적인 부모도 있었어. 너의 어머니도 그런 악인이었나?”
“아니죠······.”
안내양은 입을 다물었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저 먼 동방에서 끌려와 그곳에서도 첩이 된 가련한 여인. 그녀는 그런 여인에게서 태어나 자랐는데 아직도 어머니의 향기는 여전했다.
항상 그녀 곁에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
“니 말을 들으니 갑자기 천하의 효자인 닉 퓨리가 떠오르는군.”
“예??”
“아냐, 이건 어벤저스3를 봐야만 알 수 있는 얘기거든.”
“이상한 사람······.”
안내양은 루드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는데 이건 진짜로 어벤저스 : 인피니티 워를 봐야만 알 수 있는 얘기였다. 오역으로 인해 천하의 효자가 되어버린 닉 퓨리.
아무튼 루드는 얘기를 계속했다.
“군대도 그렇고 직장도 그렇고 선임들은 자신들이 당한 부조리를 후임들에게 풀기 바쁘지. 그리고 다시 그 후임들이 선임이 되어 하는 반복······. 그런 가해는 대학에서도 선후배 사이에서 존재하고 구린 학교일수록 이런 똥군기가 강하지. 혹은 심지어 독재자가 되는 영웅?? 자유를 향해 싸운 투사가 자신이 집권을 하자 누구보다 지독한 독재자가 된다든지······.”
“참 아이러니하군요.”
영웅이 독재자가 되는 아이러니. 이런 경우는 너무 많아서 도저히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였다.
나폴레옹? 카다피? 푸틴? 후세인? 아웅산 수지? 올리버 크롬웰? 카이사르? 장제스? 카스트로? 호치민?? 그 외에도 이런 독재자가 된 영웅은 수도 없이 많았다.
“한편 다단계에 엮인 사람들은 자신도 물건을 강매하고 피해자가 되지만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나서지. 자신들의 피해를 복구하려고. 혹은 며느리를 괴롭히는 시어머니? 자신도 며느리 시절 그런 걸 당해서 치가 떨릴 텐데 말이야. 혹은 학교폭력의 가해자들도 오히려 한때는 피해자였던 경우도 있다고 하고, 이런 학교폭력을 당하지 않더라도 집에서 가정폭력을 당하면 그런 아이들은 학교에 가서 남을 때릴 확률이 높다고 하지.”
“힘이 센 부모에게는 차마 덤비지 못하고 힘없는 다른 아이들을 때리는 거군요.”
“그래, 너 동물원의 코끼리 얘기 들어봤어?”
“네.”
“알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묘기를 가르치며 채찍질을 하는 사육사들이 있다고 하지. 애초에 묘기를 배우기 위해 태어난 게 아닌데 아기 코끼리들이 얼마나 말을 잘 듣겠어?? 그들은 인간의 말을 듣기 위해 태어난 것도 아닌데. 그 결과 억지로 잡은 코끼리에게 가해지는 매, 훈련······. 그리고 코끼리를 가두고 아주 작은 말뚝에 매어두는데, 어렸을 적에는 그런 아기 코끼리를 잡아두기에 충분하지만, 그런 말뚝을 바꾸지 않고 그대로 쓴다면 다 큰 코끼리에겐 통하지 않겠지.”
“그냥 뽑혀나가겠지요.”
“하지만 코끼리는 다 커도 그 말뚝을 억지로 뽑아낸다거나 거기에서 벗어나지 않는다고 해.”
“여전히 그 말뚝이 크고 강하다고 생각하는 거군요.”
“그래, 여전히 아무리 힘을 써도 뽑히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지······. 이제는 아무렇지도 않게 뽑을 수 있는데. 가정폭력도 그와 비슷해. 어떤 항상 술에 취해 가족을 때리는 가장이 있다고 치자. 그럼 그 가장 밑에서 큰 자식은 커서 힘으로 아버지를 제압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압하지 않거나, 혹은 하려다가도 못하기도 하지.”
“왜 그럴까요??”
“그건 그 아버지가 단순히 자식을 때리는 걸로 끝나는 게 아니라 그 경험이 자식에게는 트라우마로 작용하기 때문이야. 술 취해서 항상 자식을 때리는 아버지는 공포의 상징이고, 그는 항상 아이들에게 그런 상징으로 작용하지. 그 결과 시간이 흘러 아버지보다 더 힘이 세져도 자식들은 저항하지 못하는 거야. 그 자식들 안의 아버지는 항상 힘세고 폭력적인 악의 화신이거든. 그런 이미지지. 그건 거의 심령 그 자체에 적용하는 것이라 대항하지 못해.”
“끔찍하군요.”
“한편 그건 아버지에게서만 일어나는 게 아냐. 너는 그래도 어머니는 좋은 분이었지만 오히려 가정 폭력은 남자뿐만이 아니라 여자에게서도 많이 일어나.”
“그렇군요.”
“오히려 남자는 하루 종일 일하느라 밖에 있는 경우가 많고, 육아를 담당하는 건 대부분 여자지. 아무리 시대가 바뀌고 성 관념이 변화한다 해도 그건 어쩔 수 없어. 왜냐하면 여자는 아이를 낳고 젖을 먹여 기르는 신체적 특징이 있기 때문이야. 그렇게 아이를 기르는데 아이는 보통 말을 안 듣지. 교육되지 않은 아이는 거의 짐승이나 다름없어. 밥을 안 먹겠다고 떼쓰고, 나중에 가족들이 다 먹고 나면 그때서야 혼자 먹겠다고 난리치는 경우도 많지. 외출하면 그렇게 조용하라고 했는데 난리를 쳐서 부모에게 개망신을 주고 노키드존을 만드는 아이들도 있고, 천방지축으로 뛰다 사고를 일으키는 아이들도 존재해. 뜨거운 물이나 기름을 엎는다든지······. 물론 자신의 아이가 사고를 일으켜 피해자가 발생했는데도 오히려 가게 직원들이 관리를 하지 않아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고 보상금을 뜯어내는 부모도 있었지. 그래서 지금 노키즈존이 점점 늘어나는 것이고.”
“끔찍하네요.”
루드의 말 대로였다. 실제 어떤 식당에서 애가 뛰다가 뜨거운 국물을 들고 오던 여자에게 부딪쳐 국물이 엎어지고 여자는 화상을 입었는데, 그 부모는 사과하긴 커녕 식당 직원들이 자기 아이를 잘 감시하지 않아 일어난 일이라며 소송을 걸고 보상을 받았다.
이후 그 식당을 비롯해 다른 식당에서도 노키즈존이 점차 확산되는 건 당연했다.
사실 부모들에겐 억울한 게, 모든 부모들이 다 그러지는 않았다.
그러나 가령 항아리 짬뽕 집에서 남의 휴대폰을 잡아 항아리에 든 짬뽕에 빠트리는 등 개념 없는 애들 같은 사건 등이 많자 노키즈존은 엄청나게 늘어나는 추세였던 것이다.
“물론 이건 가해자가 된 피해자와는 별로 상관없는 문제긴 한데, 이렇게 인간 세상의 문제는 끝이 없어. 갈수록 새로운 문제들이 일어나고, 분명히 교육을 받고 배운 사람들인데 오히려 그런 사람들이 더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도 많지. 너희도 들어본 적 있지? 우리가 배워야 할 모든 건 유치원에서 전부 배웠다고.”
“그렇군요······. 그런데 당신은 왜 성추행을 하는 거죠??”
뜨끔!! 루드가 움찔했다. 이건 가불기. 흔히 말하는 가드불능기다. 거의 필살기.
그러자 루드는 궤변으로 위기를 모면했다.
“그, 그건 내가 유치원을 안 나와서 그런 거야!! 나도 유치원을 보내줄 부모만 있었더라면······!! 큭!!”
“또 감성팔이하네.”
“이젠 지겹다 지겨워.”
이크와 플로드가 그렇게 말했는데, 루드는 잠시 움찔하다 말했다.
“후후, 사실 나도 가해자가 된 피해자 중 하나일 뿐이야······. 부모가 없는 나는 모성에 굶주려서 그만 그런 짓을······.”
“확실히 가슴에 집착한다는 점에서 그런 설득력은 있네요. 하지만 그건 그거고 범죄는 범죄. 부모 없는 아이들이 모두 범죄를 저지르지는 않죠. 마치 노키즈존을 만드는 일부(?) 개념 없는 아이나 부모처럼, 당신 같은 사람들 때문에 고아의 이미지가 안 좋아지는 겁니다.”
“큭!! 나를 욕하지 마!! 차라리 다른 고아들을 욕해!!”
“예?!”
“아, 실수했다. 나를 욕하더라도 차라리 다른 고아들은 욕하지 마!!”
“그게 당신의 본심이군요.”
“아, 아니야!!”
“사람은 위급할 때 본심이 나오는 법이죠.”
“아, 아니라니까!! 흠흠, 아무튼 너희들도 잘 알았지?? 비록 허울뿐이더라도 부모가 죽은 슬픔이 있겠지만 잘 털고 일어나. 부모가 없어도 잘 성장한 나 같은 사람도 있으니까.”
“전혀 납득이 안 되는데요······.”
“뭔 개소리야······.”
“큭······.”
성추행범 루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못하고 다시 구속되어 끌려갔다.
그렇게 개처럼 끌려갔는데 이 루드의 궤변이나 똥꼬쇼들이 전혀 효과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도 루드가 이렇게 난리법석을 떨어주니 기분이 한결 낫긴하네······.’
‘물론 성추행범인 건 여전하지만······.’
그렇게 이크와 플로드는 각자 생각하다 눈이 마주치자 문득 키득, 하고 웃었다.
물론 그들이 서로의 생각을 알아차렸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그들 뒤로, 루드는 마법으로 된 수갑을 찬 채로 다시 개처럼 끌려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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