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5층(2) - 흥미로운 존재
한편 루드가 이단 심문관들을 죽여 버리자 겨우 세뇌 주문에서 벗어난 일행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아이고, 두야······.”
“마치 숙취와 기분이 비슷하네요.”
머리를 감싸 쥐고 온 인상을 다 찌푸리는 바이올렛과 이크. 그런데 어리둥절해진 바이올렛이 물었다.
“어라, 너 미성년자 아냐?”
“······그냥 예를 든 것뿐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이크는 술을 자주 마셨다. 그것도 포도주를. 그도 그럴 것이 수도원은 원래 포도농사나 포도주 제조도 자주 하고, 그게 중요한 일이었다.
포도주를 특히나 신의 피로 취급하기 때문에 신의 육체인 빵과 함께 신성시하고 직접 밀과 포도를 길러 먹는 것이다.
그래서 단순히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흙투성이가 되며 농사를 짓는 것이 이 대륙 수도사들의 일상이었는데, 사제인 이크도 당연히 그런 일을 했다.
그리고 귀족의 사생아로 태어나 수도원에 버려졌는데 그런 술이라도 안마시면 이런 세상 버틸 수가 없다.
‘줫같은 세상······. 줫같아서 못해먹겠네······.’
그렇게 혀 꼬부라진 소리로 매일 밤 술을 마시고 잠들었는데 아마 사실 이 중에 제일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이크일 것이다. 주량도 술을 많이 마실수록 느는 것이다.
물론 간의 알콜 해독능력은 대체로 타고 나는 것이기 때문에 주량에 비례해서 느는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정신을 잃거나 토하지 않고 버틸 수 있는 양은 늘어난다.
아무튼 그렇게 알고 보면 이크는 애주가였는데, 착한 어린이는 따라하지 말자.
한편 일행이 아직까지 정신공격의 후유증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루드는 미친 듯이 검을 휘둘렀다.
“크레센트 소드!!”
역시나 전매특허인 초승달 모양의 검기를 뿌려냈는데, 이 가장 약한 검기를 이단 심문관 단장 엠폴리오는 아무렇지도 않게 막아냈다.
챙!
“인사 차원이냐?! 그럼 이번엔 내가 답하지! 세이크리드 소드!!”
쾅!!
엠폴리오는 딱 봐도 검에 가득 신성력을 담고 공격해왔는데, 순간 하늘에서 뭔가 거대한 빛줄기가 내려와 검에 감돌았다. 심지어 이곳은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그게 가능해?!”
“하하, 그분의 권능은 어디에도 미친다. 반대로 미치지 않는 것이 이상한 법!! 생츄어리!!”
탕!
기묘한 소리와 함께 주변 공간이 이상하게 달아올랐는데, 불쾌한 느낌을 받은 루드는 재빨리 뒤로 뛰어 피했다. 그리고 벗어나자마자 기운이 솟구쳐 오르는 공간.
콰앙!!
엠폴리오는 방금 전 자신의 검에 신성력을 가득 담은 것처럼 이 일정 구역을 ‘성소(聖所)’로 만든 것이었다.
사실 생츄어리는 성소라기 보단 정확히 말하면 안식처인데, 루드에게는 위협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공간에 가득 담긴 신성한 기운이 내부의 적대적인 존재에게 몰아치는데, 만약 벗어나지 않았다면 탈출하지도 못하고 그대로 갇혀 내부에서 증폭되는 기운에 짜부라졌다.
그걸 감으로 탈출한 루드.
“하하, 쥐새끼 같은 게 감은 제법이군. 그럼 이건 어떨까? 슈팅스타!!”
슈팅스타, 혹은 미티어나 폴링스타라고도 불리는 이것은 말 그대로 유성이었다.
무수한 별똥별이 하늘에서 떨어졌다. 이곳은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피해!!”
안내양의 외침과 함께 세뇌 주문의 후유증으로부터 최대한 빨리 몸을 회복하려고 기운을 집중하던 일행은 일제히 피했다.
콰광쾅쾅쾅!!
순식간에 지하 던전이 초토화가 되었다. 아무리 신의 사도라지만 이런 고급 기술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다니. 괜히 이단 심문관의 우두머리가 아니었다. 더군다나 아직 끝나지 않은 기술.
“사자의 소생!!”
부스스. 쓰러졌던 이단 심문관들이 다시 일어났다.
이들은 모두 퀭한 눈을 하고 핏기가 없는 눈으로 일어섰는데, 루드는 어설프게 죽인 게 아니라 확실히 모두 죽여 버렸으므로 이들은 되살아날 여지가 없었다.
만약 이크라도 이런 시체는 못 살릴 것이다. 이크는 어디까지나 살아있는 사람에게 ‘회복’을 해주는 것이지 소생은 할 수 없으니까. 그런데 일어난 시체들.
루드는 황급히 바이올렛에게 물었다.
“이거 뭐죠??”
“으윽, 성령을 불러 죽은 자의 영혼을 되살리는 것이다.”
“죽은 자가 진짜로 되살아난다구요??”
“몰라, 말은 그렇게 하지만 실제론 기억이나 행동의 연결성이 보이지 않아!! 하지만 살아있을 때의 능력은 그대로 쓰니까 모두들 빨리 달려들어 처치해! 안 그러면 또 주문이 날아온다!!”
그러자 안 그래도 세뇌주문의 후유증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는 와중에도 무리하게 유성을 피하느라 더욱 큰 부하가 걸린 일행은 억지로 이단 심문관들을 쓰러트렸다.
여기서 쓰러트리지 않으면 진짜 돌이킬 수가 없는 것이다. 아마 아까 루드가 이단 심문관들을 죽이는데도 엠폴리오가 가만히 보고 있었던 이유는 어차피 살리면 그만이기 때문인 듯 했다.
실제론 살아난다고 해도 그대로 살아나는 것이 아니지만 엠폴리오에게 그딴 건 상관없다.
중요한 건 자신의 수족이 되어 충실히 그 명령만 따를 존재가 필요한 것.
한편 이를 보던 이크가 이를 악물었다.
“저건 사자를 사악한 영으로 되살리는 이교의 금지된 술법이네요. 저걸 자칭 대륙 최고의 종파라고 하는 세르마 교단이 쓰다니······.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언데드 돌리기!!!”
“???”
쾅!!
이크가 주문을 외우자 다시 세뇌주문을 외우려던 이단 심문관들, 이제는 언데드 사제가 된 자들이 일제히 터져나갔는데, 썩은 고기가 사방으로 튀자 일행은 일제히 눈을 찌푸리며 피했다.
원래 시체가 이렇게 빨리 썩지는 않는데, 방금 전 사악한 영혼들이 들어오면서 시체는 곧바로 변질된 상태였다. 원래 육체는 영의 영향을 받아서 사악한 영혼이 들어오면 곧바로 부패하는 것이다. 이건 빙의를 당해도 마찬가지였는데 그 점을 루드는 알아차렸다.
“으윽, 마치 영화 엑소시스트를 보는 듯 하군!!”
“엑스시스트요??”
“뭐야, 안 봤어?? 어린 소녀에게 악마가 빙의하고 신부 두 명이 그걸 퇴마하는 내용이라구!! 지금은 고전 취급을 받지만 얼마나 명작인데!!”
그 말대로 엑소시스트는 공포영화 사상 남을 불후의 걸작으로 꼽혔는데, 보통 평론가와 일반 대중들의 평가는 어느 정도 갈리고 공포영화는 그런 경향이 더 심했다.
그런데 일반 대중이나 평론가나 대체적으로 꼽는 명작이 바로 이 엑소시스트.
작중에서 빙의당한 소녀 리건은 얼굴이 흉측해지고 목이 360도 돌아가는 등 기괴한 모습을 보여주는데 지금은 보면 별 것 아닐 수도 있지만 당시엔 충격이라 영화관에서 보다가 기절하거나 심지어 심장마비로 사망한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 악마를 묘사했다거나 하는 이유로 시위를 하거나 상영을 방해하려고 영화관에서 최루탄을 터트리는 사람이 있었을 정도.
의외로 이 영화를 좋게 평가하는 종교도 있었는데 이건 결국 선이 승리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등장하는 신부들 두 명 중 한명은 악령에게 공격당해 죽고 다른 한명은 순수한 엑소시즘으로 퇴마하지 못해 악마를 자신의 몸에 받아들이고 창밖에 뛰어내려 자살하는 것으로 영화가 끝나니 완전한 해피엔딩은 아니었지만······.
하지만 어떻게 보면 그렇게 두 종교인이 희생해서 악마가 퇴치됐기 때문에 그게 종교인이 할 노력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어린 소녀 대신 죽었으니.
아무튼 이 빙의당한 이단 심문관들의 시체는 그 얼굴도 흉측하게 변해버렸는데, 그걸 되살아나지 못하게 이크는 아예 터트려버렸다. 그런데 언데드 돌리기라니?
“아니, 잠깐. 근데 너 방금 언데드 돌리기라고 했냐??”
“그게 왜요??”
루드의 질문에 이크는 답했는데, 루드는 순간 박장대소했다.
“언데드 돌리기라니!! 그거 원래 턴 언데드(Turn Undead)를 말하는 거 아냐?! 낄낄!!”
“언데드 돌리기 맞잖아요, 턴 언데드!! 뭐 잘못됐어요?!”
“아니, 그렇다고 해도, 낄낄!!”
루드는 그 후에도 한동안 계속해서 웃었는데 이젠 일행들뿐만 아니라 엠폴리오도 어이가 없어서 쳐다봤다.
“그게 그렇게 웃기냐?”
“웃기지 그럼! 언데드 돌리기라니!! 물론 사자를 땅으로 돌린다는 점에서 돌리기는 맞지만, 낄낄!”
한참 웃던 루드는 그러다 잠시 후 뭔가 한기를 느끼고 웃음을 멈췄다.
그곳엔 싸늘한 얼굴을 한 이크가 쳐다보고 있었다.
“자꾸 그러면 또 힐 안해줍니다?”
“아, 미안. 사실 연기였어. 조크. 그러니 그리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아.”
“······.”
아무리봐도 루드는 제대로 반성한 게 아닌 것 같았는데, 이크는 한숨을 쉬며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게다가 원래 루드는 이런 캐릭터인 것이다.
마치 가오갤의 스타로드처럼 이상한 타이밍에 갑자기 개그를 쳤는데, 일행은 이런 코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쇼는 다 끝났나?”
“그럭저럭. 그런데 어쩌나? 내가 쇼하는 동안 우리 일행들은 모두 회복된 것 같거든.”
“······.”
마치 가오갤에서 스타로드가 로난을 상대로 시간을 벌려고 춤을 추었듯이, 루드는 뜬금없이 옛날 영화얘기나 하면서 시간을 번 것이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일행들.
“당신이 그런 의도로 시간을 끌었다구요?”
“내가 볼 때는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갑자기 생각난 대로 영화 얘기한 것 같은데······.”
뜨끔!! 정곡을 찔리자 루드는 움찔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플로드는 둘째 치고 자신의 육노예(?)인 비치도 그렇게 지적하다니. 그러자 갑자기 루드는 슬픈 표정을 했다.
“내 말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구나······. 심지어 비치 너마저······.”
“연기는 적당히 하시죠. 당신 연기엔 이제 속지 않습니다. 무슨 지상에서 노동운동을 하다 온 것이 아니라 연기도 하다 오셨어요? 그리고 마지막 그 말도 시저의 ‘브루투스, 너마저도?!’ 그 말을 빗댄 거죠?”
“······.”
어째서인지 이제 루드의 언행 하나하나는 모두 이크에게 분석당한 상태였다. 단순히 태클걸기만 하는 플로드와는 차원이 다른 상대.
“크윽, 역시나 내 최고의 숙적답군.”
“적은 제가 아니라 그 앞에 있는 이단 심문관이겠죠. 제발 좀 정신 차리세요.”
“아, 그런가?”
루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는데 이것도 연기였다. 사실 세뇌 등의 정신공격은 말 그대로 정신에 충격을 주는데, 이건 단순히 쉰다고 해서 급하게 회복되는 것이 아니었다.
세뇌 등의 마이너스 공격에 의한 데미지를 회복할 수 있는 최고의 약. 그것은 ‘웃음’이다. 그 사실까지는 몰랐지만 루드는 본능적으로 별 시답잖은 이상한 짓거리를 하며 자신을 광대처럼 희화화했다.
루드의 한심한 짓거리를 본 일행은 그 모습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어 실소를 흘릴 정도였는데, 세뇌의 후유증으로 인한 통증은 엄청나서 만약 가만히 있었으면 상당히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루드가 웃긴 짓거리를 하자 일행의 관심은 그런 고통이 아닌 어느새 자기도 모르게 루드의 행동 쪽으로 옮겨갔다.
마치 어린 아이에게 주사를 놓을 때 장난감 등으로 다른데 시선을 돌리고 그 와중에 잽싸게 주사를 놓는 것과 똑같은 일을 루드는 해버린 것이다.
그리고 루드 자신이나 일행은 몰랐지만 이단 심문관인 바이올렛이나 엠폴리오는 이 사실을 바로 알아차렸다.
‘역시 보통이 아니야······. 아무리 우리 일행이라지만······. 솔직히 루드가 없었으면 그동안 몇 번은 죽었다.’
이젠 처음에 루드를 단순히 멍청한 변태로 취급하던 바이올렛도 루드에 대한 평가가 180도로 바뀌었다. 다만 겉으로 말하지 않는 건 덤. 말하면 건방져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도 건방지지. 그러니 이점은 말하지 않는 게 좋을지도.’
그렇게 바이올렛이 입 다물고 있는데 엠폴리오도 이채로운 눈으로 루드를 지켜봤다.
수없이 많은 이교도를 죽여온 이단 심문관의 입장에서도 루드는 아주 흥미로운 존재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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