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4층 - 무면검귀
어찌어찌 일행은 혼란을 수습하고 지하14층으로 향했다. 그 와중에 이크는 진짜로 치료를 해주지 않아서, 루드는 자력으로 마나를 끌어올려 회복했다.
“그렇다고 진짜로 회복 안 해주냐?”
“안 해준다고 했잖아요. 전 한번 안하기로 하면 진짜로 안합니다.”
“너무하구만······.”
“너무하기는 오빠가 너무 하죠.”
“앞으로도 계속 치료 안 해줄 거야?”
“오빠 하는 거 봐서요.”
“끄응······.”
루드는 불만이 가득 찬 얼굴을 한 채 걸었다. 마찬가지로 뾰로통한 얼굴로 걸어가는 이크.
이크로 루드에게 불만이 많았다. 변태인데다가, 변태이고, 변태다.
그리고 저번 층에서 루드가 한 말들은 하나같이 이크를 경악하게 만들었다.
‘뭐? 내 육노예가 되어줘?? 그게 사람이 할 소리인가??’
한편 루드의 불만.
‘쯧, 그냥 드립으로 친 건데 그걸 뭐라고 하다니. 이래서 어린 애들 앞에서는 함부로 드립을 못 치겠다니까. 알 거 다 아는 아줌마들이 오히려 섹드립치기는 더 편하지.’
사실 이런 건 섹드립을 했냐 안했느냐가 아니라 주변 인물, 특히나 당사자인 안내양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했다.
하지만 겉으로 봐선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는 안내양.
아무튼 그렇게 일행은 한참 걸어갔는데 우거진 숲 속에서 갑자기 누군가 튀어나왔다.
스르륵.
처음에 일행은 그들이 처음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줄 알았다.
하지만 분명히 처음엔 없었다. 이크와 플로드는 긴가민가했지만 나머지 일행들은 직접 칼과 몸을 맞대는 무인이라 그 감각이 아주 정확했다. 결국 걸음을 멈춘 일행.
“누구냐?”
“히히히······.”
그들은 이상한 소리를 냈는데 말은 없고 그저 웃음소리뿐이었다.
그에 불쾌함을 느낀 바이올렛.
“누구냐니까!!”
“히히히!!!”
그와 동시에 덤벼든 그들.
슈왁!!!
그들은 2인조였다. 각각 남자와 여자. 즉 남녀. 그런데 소름끼치게도 눈이 없었다.
코, 입, 귀, 다 있는데 눈만 없다. 아예 없는 것이 아니라 남자는 눈이 마치 불로 태워진 듯 일그러져 닫힌 상태였고, 여자는 눈꺼풀 째로 꿰매진 상태였다.
그렇게 덤벼드는 무면귀들. 그들은 검을 휘둘렀는데 얼굴도 없고, 그런 상태로도 검을 휘두르니 무면검귀라 할만 했다. 정확히 말하면 눈이 없으니 무안검귀라 해야 할까??
아무튼 일행은 맞섰다.
채채챙!!
‘이 자식들!!’
‘빠르다!!’
루드와 안내양은 눈을 마주쳤다. 둘 다 상당히 빠른 쾌검수였는데도 불구하고, 이 무면검귀들은 그에 못지않았다. 심지어 단 두 명으로 여러 명을 상대하고 있으니 그보다 더 빠를 수도 있었다.
루드, 이크, 바이올렛, 플로드, 비치, 김창남, 안내양. 이 일곱 명이 지금 일행이다. 그런데 일곱 명의 공격을 두 사람의 무면검귀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피하고 있었다.
“호호호!”
“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소름끼치는 웃음소리들을 내면서 공격을 해왔는데, 대체 눈도 안 보이는데 어떻게 공격을 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제기랄, 이것들 어떻게 보는 거야?!”
“그러게요?! 마음의 눈이라도 달렸나??”
마음의 눈, 심안. 어떻게 보면 무술의 최고 경지중 하나라고 해도 될 만한 그 기술을 쓰고 있는지도 몰랐다. 솔직히 눈도 못쓰는데 그런 기술이 없으면 애초에 싸울 수도 없다.
“젠장, 이 자토이치 같은 놈들!!”
자토이치는 눈은 보이지 않지만 검술의 달인인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 시리즈이자 그 주인공의 이름이다.
그리고 자토이치라 불리긴 하는데 여기서 자토라는 말 자체가 사실 맹인을 가리키는 말로 즉 자토이치는 맹인 이치라는 말이 되는데, 실제 이름은 이치라 보면 되었다.
실제로 자토이치는 평소엔 단순한 맹인 안마사인 척 하면서 다니는데, 그렇게 믿을 만큼 안마를 잘했다. 그리고 안마나 악기 연주 등이 사실 그 당시 맹인들이 먹고 사는 방법이었다.
“염병할 놈들!! 눈이 안보이면 안마라도 하고 먹고 살 것이지!! 네놈들 같은 싸이코패스들 때문에 맹인들이 이상하게 보일 거 아냐!!”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무면검귀는 여전히 소름끼치는 소리를 내며 공격해왔다.
“안 되겠다, 안내양! 합공!!”
“예??”
“합공!!”
다짜고짜 외친 합공이란 뜻이 무슨 뜻인진 몰랐는데, 아무튼 루드의 움직임에 안내양은 맞춰주었다. 루드는 검기를 펼쳤는데, 이것을 반대편에서 안내양은 받아주었다.
두 사람은 얼마 전 적으로 만나 서로 목숨을 걸고 싸웠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두 사람의 호흡을 맞춰주었다. 즉 이런 거다.
서로 평소에 아무리 호흡을 많이 맞추고 친한 사람이라도, 반대로 그렇게 적대적으로 싸우진 않는다.
혹시나 사고가 생길 수 있으므로 가급적 급소는 노리지 않고, 그 기술의 강도도 낮게 한다.
그런데 두 사람은 생사를 걸고 싸웠기 때문에 반대로 상대방의 움직임이나 기술 등에 대해 훤히 아는 상태였다. 서로 죽이려고 싸웠던 상대이기에 서로에 대해 더 잘 아는 아이러니함.
“크레센트 문!!”
“원 페어!!”
채앵!!
반대편에서 서로 다른 기술이 교차했다. 초승달을 형상화한 루드의 검기를 안내양이 받아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간에 쌓이는 막대한 경력.
힘의 소용돌이는 가운데 있던 남자 무면검귀를 찢어버렸다.
써걱!!
남자 무면검귀는 마치 믹서기에 갈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그런데 실제로 두 사람이 한 합동공격은 그런 효과와 다르지 않았다.
서로 맹렬하게 검을 휘두르며 가운데 있는 상대를 찢어발기는 힘. 그 힘은 무시무시한 것이었다.
‘저건 나도 버티기 힘들겠군······.’
바이올렛마저 그렇게 생각할 정도였는데, 남자 무면검귀가 쓰러지자 갑자기 여자가 발작을 일으켰다. 그리고 날카롭게 튀어나온 이빨을 뽐내며 괴성을 지르는 건 덤.
“캬아아아아악!!!”
“윽!”
“크윽!!”
가장 가까이 있던 루드와 안내양은 귀를 틀어막았는데, 단순한 괴성이 아니라 내상을 입히는 음파공격이었다.
루드는 왠지 불쾌한 기분과 함께 가슴에서 피가 올라오려는 것을 막기 위해 잠시 가만히 서있었다. 이대로 움직이면 바로 피를 토할 것 같았다.
한편 의외로 멀쩡하게 움직이는 안내양. 안내양은 이 던전에서 수많은 몬스터를 상대해봤기 때문에 이렇게 음파공격을 하는 적도 많이 상대해보았다.
특히나 드래곤은 아니더라도 용 비스무리한 생물이나 동물형 몬스터, 혹은 밴시 같은 것도 있는데 그런 몬스터들의 비명을 들으면 사기가 저하하고 지금의 루드처럼 실제로 내상을 입는 경우가 있다.
그리고 드래곤의 포효는 드래곤 피어라고 하여 대상에게 절대적인 공포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에 절대로 들으면 안됐다. 그럼 공포에 질려 우왕좌왕하다 혼자 자멸한다.
아무튼 이렇게 경험의 차가 두 사람의 상태를 갈랐는데, 상대적으로 멀쩡한 안내양은 루드가 회복할 동안 잠시 시간을 벌어줬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합동 검기를 펼치는 동안 섣불리 끼어들지 않고 지켜보던 일행들도 공격하는 건 덤.
이크는 아무 망설임 없이 바로 힐에 들어갔고, 플로드는 화염구를 날렸다. 그리고 좌우에서 김창남과 비치가 채찍을 휘두르고 바이올렛이 정면으로 돌진하는 건 덤.
퍼엉!!
빗나간 화염구가 숲을 불태웠다. 그리고 김창남과 비치, 바이올렛은 3대 1인데도 불구하고 무면검귀를 맞추지 못했다.
그리고 아까 루드와 안내양의 검기에 휩쓸려 만신창이가 됐던 남자 검귀로 곧이어 일어났다.
심지어 여자 검귀는 피투성이가 된 남자 검귀에게 다가가 입을 맞추었는데, 그러자 입술에 피로 된 립스틱이 묻었다. 그 모습을 보고 더 소름이 끼친 일행.
“이 개자식들이!!”
“누굴 물로 보나!!”
그러나 분노한 자들도 있었다. 바로 바이올렛과 김창남. 그들은 자신들을 농락하며 중간에 입까지 맞추는 검귀들을 보고 경악했다. 그리고 분노. 결국 자신들의 기술을 쏟아냈다.
“홀리 펀치!!”
“썬더어~! 브레이크!!”
콰쾅!!
동시에 하늘에서 내려온 신성력과 번개가 그들의 몸에 깃들었다. 하지만 여전히 맞추지 못하는 바이올렛.
“큭!!”
아무리 신성력이 깃들어도 속도가 월등히 빨라지진 않는다. 사실 바이올렛은 파워 타입이고, 바이올렛의 속도는 일류지만 이 검귀들은 초일류다.
저런 초일류의 스피드 타입을 잡으려면 같은 스피드 타입이 있어야했다. 아니면 바이올렛이 방심을 유도해서 카운터를 먹이든지. 바이올렛은 뒤를 힐끔 쳐다봤다.
어느새 상처에서 회복한 루드가 잠시 일행이 싸우는 걸 지켜보고 타이밍을 잡다가, 순간 끼어들었다.
슈왁!!
“쳇, 빗나갔나!!”
“낄낄!!”
“호호호호호호!!”
여전히 기분 나쁘게 웃는 검귀들. 그러자 루드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김창남, 비치, 합체공격이다!!”
“뭐라고??”
“뭔 소리에요??”
“파이널 다이나믹 스페셜!!!”
파이널 다이나믹 스페셜은 슈퍼로봇대전이라는 게임의 합체기로, 작품마다 그 구성은 달라지지만 마징가Z, 그레이트 마징가, 그렌다이저, 겟타 드래곤, 혹은 진 겟타가 합쳐서 펼치는 합체기술이다.
일행은 그런 파이널 다이나믹 스페셜이 뭔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합체공격이라는 말에 아까 루드와 안내양이 펼친 합공인가보다 하고 힘을 합쳤다.
“썬더 브레이크!!”
“풍신!!”
슈와악!!
김창남의 몸에 번개가 깃드는 것과 마찬가지로, 비치의 몸에 바람의 힘이 깃들었다.
그러자 그 기술명에 맞춰주는 김창남.
“뇌신!”
“풍신!”
““크로스!!””
둘 다 번개 같은 기술이었다. 질풍 같은 기술이고. 바람과 번개의 힘을 머금은 두 사람이 스쳐지나가며 채찍으로 여자 무면검귀를 난타했다.
짜자작!!!
“꺄아악!!”
이번에 낸 소리는 아까 같은 음파공격이 아닌 단순한 비명이었다. 음파공격을 할 생각도 못하게 만드는 고통. 고대로부터 채찍은 가장 강력한 무기들 중 하나였다.
몸을 파고드는 그 채찍은 살점을 찢어내고 뼈를 드러낸다. 말 그대로 육체를 걸레로 만드는 채찍의 위력. 그래서 채찍형을 당한 사람들은 죽는 경우가 허다했다.
비틀비틀 거리는 여자 검귀와 아까 입은 부상에서 회복하지 못하는 남자 검귀를 검기로 한군데 몰아넣고, 루드와 안내양 역시 그런 김창남, 비치와 함께 호흡을 맞췄다.
“파이널 다이나믹 스페셜!!”
“그러니까 그 기술이 대체 뭐냐구요?!”
의문에 가득 찬 일행의 물음은 아랑곳하지 않고, 루드는 멋대로 기술명을 정해버렸다.
그리고 난무. 검의 난무가 두 검귀를 찢어발겼다.
써걱! 써걱! 써거걱!! 그리고 도망치지 못하게 함께 마무리를 하는 몽마들의 채찍.
철퍽!! 공중에서 고깃덩어리들이 쏟아져 내렸다. 네 사람의 공격에 곤죽이 된 두 검귀가 아예 고깃덩어리가 되어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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