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10층(7) - 돌아온다
그때 마침 통로가 번쩍하더니 플로드와 이크, 인큐버스가 들어왔다.
번쩍!!
차원이 연결된 이 통로들은 사람이 왔다갔다하면 그에 반응하여 빛을 낸다.
그로인해 당연히 알 수 있는 사람의 출입. 바이올렛과 비치를 끝장내려 다가가던 안내양이 고개를 돌렸다.
무심. 실로 무심하다. 그 표정에는 한 점 감정도 없다. 그저 자신에게 대들고 가로막는 것이라면 모두 부술 뿐! 사람을 죽이는 것조차 개의치 않는다. 이 여자는 바이올렛과 같은 과.
인간 백정이다.
“바이올렛!!”
“루드!!”
쓰러져 있는 바이올렛과 루드를 보고 일행이 외치며 달려갔다. 하지만 가로 막는 안내양.
흠칫! 일행이 모두 경악했다. 지금 서 있는 사람은 자신들과 안내양 뿐.
그럼 안내양이 나머지 일행을 모두 쓰러트렸단 말인가? 근데 루드나 비치라면 몰라도 바이올렛을 쓰러트린 건 이해가 가지 않는다. 바이올렛은 자신들이 생각하기로는 무적.
직접 당해서 그 고환마저 뭉개진 인큐버스는 물론이고, 플로드나 이크도 길든 짧든 그 바이올렛을 곁에서 봐왔기에 거의 인간이 아닌 생물이라고 알고 있다.
화신체를 쓰면 트윈헤드오거마저 찢어버리는 바이올렛의 괴력. 그런 신의 힘을 직접 휘두르는 성권사 바이올렛이 쓰러져 있다고? 게다가 코에서 피를 줄줄 흘리면서?
이해가 가지 않는다. 대체 뭐지??
그러나 안내양은 사정 봐주지 않았다. 게다가 기다리지도 않는다. 아무 말도 없이 덤벼드는 안내양. 이 안내양에게 중요한 것은 일행의 목숨과 그들이 가져간 칩뿐이다.
모조리 제거하고 그 칩만 회수하면 될 뿐. 황금으로 된 칩은 목숨보다 귀중하다.
보통은 아무리 황금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그런 목숨과 재화를 비교할 수 있냐고 할 것이다.
그런데 실제론 그런 비교가 빈번하게 이루어진다. 솔직히 말해서 몇 천 골드(몇 천만 원) 준다고 하면 사람 찔러 죽일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보다 더 적은 돈을 준다고 해서 나설 사람은 많을 것이다.
그 정도로 귀한 돈. 돈은 목숨보다 중요하다!
물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을 것이다. 대부분이고. 그런데 세상에는 몇 푼 안 되는 푼돈을 위해서도 사람을 죽이는 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이 바로 킬러, 암살자.
사람 죽이는 걸 생업으로 삼는 자들이다. 그들의 앞에 불과 몇 백 골드(몇 백 만원)만 있어도 일어날 살인.
이 대륙은 그래도 치안이 나은 편이지만 동남쪽에 있는 대륙은 워낙 치안이 안 좋아서 관광지에 있는 숙박업소에서도 사설 경비병들을 고용해 총을 들고 다니게 한다.
웬 다 떨어진 옷을 입은 해적 같은 자들이 펜션 근처에 어슬렁거리길래 기겁했는데 알고 보니 펜션 측에서 고용한 사설 무장경비원이었다는 웃지 못 할 사실.
그 정도로 치안이 안 좋다는 것이다. 솔직히 그러면 아무리 경비원이라고 해도 오히려 찜찜한 느낌이 든다. 갑자기 돌변해서 총 들고 우리를 위협하는 게 아닌가 하고.
아무튼 루드 일행이 딴 돈은 무려 100만 골드. 동방의 돈으로 거의 100억이다.
그러니 살인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돈. 일개 도박장에서 어떻게 그리 많은 돈이 모일 수 있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곳은 온 대륙의 시선이 쏠린 황금알을 낳는 거위, 게다가 치외법권 지대이다.
이곳에서 나오는 각종 몬스터나 마물의 고기는 영약에 버금가는 효과를 내기 때문에 지상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된다. 실제로 만년하수오 같은 것도 드물게 발견된다. 이 던전이 온갖 차원으로 다 이어져 있기 때문. 그래서 총기를 든 2층의 외계 고블린 같은 것도 발견되고. 어쩐지 요다와 비슷하게 생겼었다.
아무튼 안내양은 주먹을 뻗었다.
“보이드 펀치!”
“!”
“?!”
잘은 모르지만 이크와 플로드도 거기 실린 미지의 힘을 알아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 날고기는 루드와 바이올렛, 비치가 쓰러진 걸로 봐서 이 힘은 장난이 아니다.
셋 다 스타일에 차이는 있지만 그들은 숙련된 무사들. 그리 쉽게 쓰러질 자들이 아니다.
그러니 자연히 경계하게 되는 세 사람.
“화염구!!!”
빵!!!
마나를 회복한 플로드의 손가락에서 강력한 화염구가 나가고, 이를 이크가 뒷받침했다. 화염구 뒤에 붙어 그 속도를 가속시키는 이크의 주문. 몰랐는데, 알고 보니 두 사람은 왠지 그 마나 상성이 잘 맞았다.
원래 사악한 흑마법사나 강령술사가 아닌 이상 대체로 어느 정도 마나의 파장이 맞을 수는 있는데, 이렇게 딱 맞아떨어지는 것도 드물다.
거의 같은 유파라고 해도 될 수준. 그렇게 화염구 뒤에 이크의 힐이 마치 부스터처럼 속도를 가속시키자 속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졌다. 그리고 작렬하는 화염구!!!
콰앙!!!
화염구는 터지긴 터졌다. 그런데 터진 곳은 다른 곳. 안내양은 화염구를 손으로 받아 채더니 손안에서 몇 번 회전시켜 다른 곳으로 튕겨냈다. 그리고 터진 화염구.
이것도 합기의 수법이다. 상대방의 기운을 흡수하고 이용하는 건 단순히 그 육체의 힘만에 적용되는 게 아니다. 이러한 주문의 힘도 동일한 힘.
애초에 그런 주문의 힘이나 육체적인 공격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게 이상하다.
모두 다 같은 힘이 아닌가? 그런 힘이 각각 주문의 힘을 빌리냐, 뼈와 살을 가진 인간의 육체를 빌려서 발현되느냐가 다를 뿐이다.
결국 모두 같은 이치. 이 정도의 이치를 깨닫지 못하면 애초에 합기를 쓰지도 못한다. 그리고 이 안내양이 무슨 실전경험이 턱없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도박장에서 일하면서 온갖 먹튀를 다 만나보았다.
정당하게 게임에서 이겨 칩을 따간 루드 일행도 쫓는데, 그런 사기꾼들이나 지고도 돈을 내놓지 않는 자들을 쫓지 않을 리가 없다.
그러니 익숙한 전투. 그 중에는 마법사들도 다수 있었다. 자신의 머리만 믿고 나댄 마법사들의 최후. 오히려 육체의 고통에는 약해서 고문 몇 번하니 가진 돈은 물론 자기 목숨까지 맡겨버렸다. 그러한 자들이 아까 그 도박장의 노예들. 자신이 모조리 잡아놓은 노예들이다.
화염구는 물론 거기에 이크의 주문의 힘을 더한 것까지 통하지 않자 인큐버스가 나섰다.
예의 그 위험한 기술 명을 외치며 전투하는 인큐버스.
“썬더~! 브레이크!!”
콰쾅!!
벼락이 내려친다. 원래 벼락을 불러일으켜 그대로 내려치는 그레이트 마징가의 기술. 그러나 인큐버스는 자신의 꼬리에 벼락을 담아 그대로 검처럼 사용했다.
검으로도 사용가능하고 채찍으로도 사용가능하고 밧줄처럼도 사용가능한 몽마의 꼬리.
이런 건 서큐버스인 비치도 가능할 텐데 왜인지 그녀는 벼락은커녕 검이나 밧줄 같은 느낌으로도 사용하지 않는다. 기술이 딸리는 건가? 아니면 그녀의 취향?
본래는 불가능할 자신의 꼬리를 무기로 사용하는 이 마계생물들.
하지만 그 힘은 상당하다. 어쩌면 이 꼬리도 도마뱀처럼 다시 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챙, 챙, 챙채쟁!!!
벼락을 머금은 꼬리를 인큐버스가 검처럼 휘둘렀다. 그리고 그에 맞서 마나 검으로 상대하는 안내양. 이크와 플로드 역시 놀고 있지 않았다. 이번엔 따로 화염구와 힐로 상대하는 두 사람.
정면에서는 인큐버스, 양 옆에서는 이크와 플로드의 주문이 날아든다. 절체절명의 상황.
그런데 안내양은 피하지도 않고 검을 다시 옆구리에 집어넣더니 양 손을 펼쳤다.
부와아아앙!!!
손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며 주변을 끌어당긴다.
“어? 어?!”
제일 가까이 있던 인큐버스가 당황했다. 뭔가 이상하다. 그렇게 눈치챈 순간! 인큐버스는 소리질렀다.
“주문을 거둬!!”
“?!”
“?!”
너무 갑작스러운 말이라 이크와 플로드는 이해하지 못했다. 또다시 울려퍼지는 외침.
“주문을 거둬!!!”
그러나 이미 늦었다. 지나간 단 한 번의 기회. 심지어 너무 순식간이라 인큐버스 자신도 그 꼬리에 깃든 벼락의 힘을 해제하지 못했다. 그로인해 일어난 대참사.
콰앙!
“으아악!!!”
세 사람이 모두 비명을 지르며 튕겨나갔다. 이 수법은 흡기다. 합기에 이은 흡기. 그 정체는 단순히 기운을 빨아들여 다시 재가공한 것이다.
상대방의 주문을 역이용한 공격. 그 원리는 합기와 전혀 다르지 않고 아까 전에 이크와 플로드의 합체주문을 파훼한 것도 이 기술이다.
하지만 이번의 것은 전혀 다르다. 같은 흡기지만 이번에 안내양은 세 사람의 힘을 모두 빨아들인 뒤 아까처럼 빈 땅에 던진 것이 아니라 세 사람에게 되쏘았다.
인큐버스의 벼락, 이크의 힐, 플로드의 화염구. 그 전기와 불, 회복의 힘이 동시에 담겨있다.
그런데 이크의 힐은 과잉회복이라 맞으면 세포를 괴사시킨다. 그로인한 충격.
“크으윽!!!”
이크가 입에서 거품을 물었다. 자신의 주문에 자신이 당하는 충격. 이건 단순히 육체적인 충격을 넘어서 자기 주문에 당했다는 정신적인 충격까지 동반된다. 그리고 이건 다른 두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안내양이 날려 보낸 건 각자에게 각자가 쏜 주문을 도로 날려 보낸 것이 아니라, 세 기운을 섞은 것이었다.
먼저 안내양은 가장 가까이 있던 인큐버스의 꼬리에 담긴 벼락의 힘을 흡수한 후, 이후 양옆에서 날아온 불과 회복의 힘을 빨아들였다.
그리고 손안에서 태극을 그리며 회전시키는 힘.
휘리릭!
그러자 힘이 융합되었다. 태극의 원리에 의해 벼락과 불, 치유의 힘이 섞인다. 게다가 자신의 마나를 덧붙여 증폭까지 시킨 안내양!
결국 4인분의 공격이 한꺼번에 나갔다. 실로 무시무시한 합체기. 이런 건 노리고 해도 못 만들 것이다. 실제로 이크와 플로드의 마나 상성은 잘 맞아서 잠깐 합체기를 썼지만, 이것에 인큐버스의 벼락이나 다른 자들의 기술을 담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그런데 그런 걸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다니 이 여자, 정말 괴물인가? 대체 이런 실력을 가지고 왜 그런 도박장의 일개 하수인 역할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니면 무슨 사연이라도 있는 것인가? 이 정도 힘을 가진 안내양도 도망치지 못할 깊고 음습한 힘이?
도박장의 어둠은 깊고도 험하다. 범접해보지 않은 사람은 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둠. 그 어둠은 끝이 없다. 그것이 돈과 폭력에 빠진 자들의 어둠. 인간의 어둠이다.
그런데 일행이 모두 쓰러진 가운데 누군가 일어났다. 바로 루드다.
제일 처음에 장님 검사와 맞서 싸워 사력을 다하고 결국 동귀어진한 루드. 그런데 루드가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먼저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로 인해 반대로 빨리 회복한 루드. 완전히 회복한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일어날 힘은 얻었다.
그렇게 루드는 일어나자마자 이크를 불렀다.
“이크!!”
희미해져 가는 의식 속에서 이크가 눈을 떴다. 가뜩이나 연약한 이크는 제일 그 타격이 큰 상태. 그런데 루드가 말했다.
“나에게 힐을 쏴!!”
“?!”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만약 힐을 쓴다면 일행 중 가장 강력한 바이올렛에게 써야할 상황. 만약 여기서 잘못 쓰면 일행은 모두 죽는다. 그 정도로 위험한 사태. 그런데 그런 걸 모를 리가 없는 루드가 자신에게 힐을 쏘라고 한다. 이크가 망설이고 있는데 루드가 다시 한 번 재촉했다.
“이크!! 날 믿고 힐을 쏴!!”
이크는 결심했다. 루드를 믿고 힐을 쓰기로. 저 루드는 좀도둑인데다 발정난 성추행병자이지만 할 때는 확실히 한다. 그래서 믿고 힐을 써줬다.
“힐!!!”
마지막 최후의 힘을 담은 힐을 날리고 이크는 쓰러졌다. 너무 기운을 많이 쓰고 상처가 심해서 이대로 자신도 영영 눈을 뜨지 못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믿고 날리는 힐.
콰앙!!!
힐에 맞았는데 마치 뭔가가 박살나는 듯한 소리가 난다. 그 정도로 강력한 이크의 힐. 그 위력이 너무 지나쳐 맞은 사람의 세포를 괴사시키고 때로는 기절시키거나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하지만 지금 루드는 온 체력이 완전히 바닥난 상태. 그런 상태에서 맞으면 이크의 힐만 한 것도 없다. 루드의 몸에 힘이 돌아온다. 저놈의 몸에 생기가 돌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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