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의 대륙 전쟁기 제 385화: 아들들의 전쟁 (116)
건국한 이래 승리를 거듭해 오던 플로젠 왕국으로서는 또 한번의 큰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가 갑작스럽게 심각한 국가적 위기를 맞이한 상황이었다.
플로젠의 5만 병력은 크세포르 국왕의 장남인 피레우스 태자의 지휘하에 황급히 동쪽의 키르토크 방면으로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수와 동시에 피레우스 태자는 페살리스 성을 공격하고 있던 케르비오의 3만 병력에게 전령을 보내서 크세포스 국왕을 구출해 달라고 요청했다.
페살리스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코사스 요새에서 네필린의 3만 병력에 포위되어 있는 크세포스를 구출해서 케르비오 영토로 일시 대피시켰다가 나중에 안전하게 키르토크로 보내달라는 내용의 부탁이었다.
그런데 이 결정적인 순간에 케르비오의 3만 병력은 코사스 요새를 적극적으로 지원하지 않고 남쪽의 자기네 영토로 그냥 철수해 버렸다.
이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추측과 가설이 난무했다.
카스트레아 측이 미리 밀사를 보내서 네필린 공화국의 수십만 대군이 대대적인 공세를 시작했으니 현명하게 판단하라고 다소 과장해서 협박했다는 소문.
케르비오 족의 수장 케이잘은 어떻게 해서든 크세포스를 구출하고 싶었지만 형세가 너무 위급해서 전멸을 면하기 위해 불가피하게 철수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설명.
사실 콜로노스를 점령한 이후부터 케이잘은 크세포스 국왕이 자신들과 맺은 협정을 지킬 뜻이 없다고 의심하면서 기회가 생겼다 하면 플로젠을 배신할 작정이었다는 음모론 등
어쨌든 케르비오 족의 지원을 기다리면서 코사스 요새에서 필사적으로 항전하던 크세포스 국왕과 3천 명의 근위병은 아예 탈출할 기회조차 놓쳐버리고 완전히 포위된 채 그야말로 악전고투를 벌였다.
크세포스의 용맹과 최정예 근위병들의 분전 때문에 네필린의 정예 병력 3만 명은 무려 6일 동안이나 공격하고도 코사스 요새를 쉽게 함락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케르비오 족이 급하게 남쪽으로 철수하면서 여유가 생긴 덕분에, 페살리스를 지키던 카스트레아 병력까지 전부 코사스로 달려와 코사스 공방전에 가세하는 바람에 결정적으로 전세가 기울어 버렸다.
거기다 코사스 요새가 비록 든든한 요새라고 해도, 짧은 시간 동안 여러 차례 주인이 바뀌는 과정에서 방어 시설이 많이 부서지고 약점이 노출된 반면, 그에 대한 보완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상태였다.
네필린과 카스트레아 측이 공격을 포기하지 않는 한, 함락은 결국 시간 문제였다.
마침내 격전이 벌어진 지 8일만에 코사스 요새는 함락되었고, 3천명의 플로젠 근위병은 모두 전사했다.
국왕인 크세포스는 온몸에 전부 부상을 입고 손발을 거의 움직이지 못할 때까지 적병 수백 명을 죽이면서 항전하다가, 일전에 콜로노스에서 간신히 탈출한 카스트레아 병사 수십 명이 악착 같이 팔다리를 붙잡고 늘어지는 바람에 끝내 포로가 되고 말았다.
이후 콜로노스에서 가족을 다 잃고 분노한 그 생존자들은 포로로 잡은 크세포스의 목을 베고 시신을 난도질하여 원한을 풀었다.
이 전투에서 플로젠 왕국은 창업 군주인 크세포스 국왕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일련의 급박한 후퇴 과정에서 정예병 5만 명 가운데 무려 2만 이상이 전사하는 등, 건국 이래 가장 심각한 패배를 맛보고 말았다.
네필린 공화국은 승리한 여세를 몰아 원래 카스트레아 왕국 제 6총독부 관할지였던 땅을 절반 이상 점령하기까지 했다.
큰 위기에 몰린 플로젠 왕국을 구한 것은 크세포스 국왕의 장남으로 페레이즈의 백부인 피레우스였다.
당시 젊고 용맹했던 피레우스 태자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플로젠 왕국의 국왕으로 즉위한 다음, 그의 동생인 프리드로 왕자, 나중에 그의 여동생 피넬리아와 결혼하여 매부가 되는 기사 프란베르의 도움을 받아 대대적인 반격을 준비했다.
살아남은 3만 병력을 중심으로 총 9만 대군을 편성하여 실시된 피레우스의 반격은 철저하면서도 과감했고 또한 아주 강력했다.
피레우스 국왕은 뛰어난 용맹으로 기세 등등한 네필린의 15만 대군의 공세를 저지하고 앞서 상실했던 영토 가운데 일부를 되찾았으며, 아버지의 복수를 위해 다시 한번 대대적으로 칼리도르 성을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다만, 칼리도르 재공격에 대해서는 프리드로와 프란베르 모두 신중해야 한다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피레우스 국왕으로서는 비극적으로 전사한 아버지의 복수를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포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복수심에 불타는 플로젠의 재공격 앞에서, 카스트레아 측은 더 이상 자체적으로는 칼리도르를 지킬 수 없음을 인정했다.
카스트레아 왕국은 제 6총독부를 자발적으로 완전히 폐지했으며, 동맹의 대가라는 명목으로 칼리도르와 페살리스를 전부 네필린 공화국에게 넘겨주는 결단을 내렸다.
원래 그 두 성에 배치되어 있던 카스트레아 병사들은 네필린 영토를 통해 북쪽의 본국으로 안전하게 귀환하게 되었다.
네필린 공화국은 칼리도르의 이름을 할리도르, 페살리스의 이름은 헤살리스로 변경했다.
이 두 성은 다시 네필린 식으로 이름을 바꾼 호사스 요새와 함께 여러 해 동안 네필린의 지배를 받았으며, 불과 얼마 전에야 페레이즈 태자가 앞장 서서 네필린 군 수만 명을 몰살시키고 점령한 바 있었다.
플로젠 왕실의 오랜 숙원을 푼 페레이즈는 그 전공으로 상급 기사 작위를 받았으며, 자신이 점령하여 이름을 원래대로 변경한 칼리도르의 성주가 되기도 했다.
물론 피레우스 역시 네필린으로 넘어간 직후부터 칼리도르 성을 어떻게든 빼앗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으며, 실제로 약간의 공격을 가하기도 했었다.
하지만 거듭된 격전으로 인해 병사들이 워낙 지쳐 있었을 뿐만 아니라, 창업 군주의 죽음으로 인해 국내 사정 또한 많이 불안했기 때문에, 주변의 만류에 따라 공략을 포기하고 훗날 조카가 정복할 때까지 내버려두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런 와중에서도 피레우스를 포함하여 플로젠 왕국 내 모든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인식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결정적인 순간에 동맹을 배신한 케르비오 족의 수장 케이잘만큼은 절대로 살려둘 수 없다.’는 생각이었다.
칼리도르 공략을 포기한 이상, 피레우스 국왕은 신임 국왕으로서 플로젠의 지배층 사이에 자신의 권위를 세우기 위해서라도 최소한 케이잘만큼은 꼭 죽여야만 했다.
피레우스는 아버지의 복수를 하기 위해 치밀하게 함정을 판 다음, 과거의 오해를 풀고 앞으로 양국이 나아갈 바를 일을 의논하자면서 지극히 우호적인 태도로 케이잘을 콜로노스 성의 유적지에 초대했다.
양국이 힘을 합쳐 점령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는 콜로노스 성에서 만나서 지난 날의 오해를 다 풀자는 피레우스의 제안을 받자, 케이잘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회담에 응했다.
콜로노스가 케르비오 영토 내에 있다는 것도 케이잘을 다소 방심하게 만든 이유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피레우스는 그것까지 다 계산하여 회담 장소를 콜로노스로 정했던 터였다.
피레우스와 케이잘의 회담은 당연하다면 당연하게도 한바탕 끔찍한 학살로 끝났다.
피레우스는 프리드로와 프란베르는 물론, 그때 막 성인식을 치른 지 얼마 되지 않은 막내 여동생 피넬리아까지 포함하여 고르고 고른 최정예 기사와 근위병 300명을 거느리고 콜로노스 성의 유적지에 마련된 회담장에 나타났다.
케이잘은 동생과 둘째 아들 등이 포함된 1천명의 호위병을 거느리고 회담에 참석했다.
회담이 시작된 얼마 후, 피레우스 일행은 방심하고 있던 케이잘과 호위병을 기습 공격하여 모조리 죽여버렸다.
케이잘 측 병력이 상대편 보다 3배 이상 많았지만, 마음을 놓고 있다가 기습을 받은데다가 전투력에서 아예 상대가 되지 않아서 속수무책으로 몰살 당했다.
특히나 그때까지 아직 그다지 세상에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던 플로젠의 막내 공주 피넬리아는 이날 기습 공격에서, 케이잘의 동생과 둘째 아들, 조카를 비롯한 측근 호위병 수십 명을 혼자서 베어 죽이는 놀라운 용맹을 과시했다.
거기다 그녀는 아버지의 원수인 케이잘을 직접 생포하기까지 하여 단숨에 플로젠 최고의 여기사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피레우스는 여동생에 의해 포로가 되어 끌려온 케이잘을 마구 꾸짖고 심하게 모욕한 다음 커다란 도끼창으로 머리를 베어 죽여 버렸다.
이후 그는 부하들에게 명령하여 케이잘의 시신을 토막 낸 다음 불태워 버렸으며, 머리만 전리품으로 가지고 재빨리 철수했다.
케이잘의 장남인 카라미르가 급보를 받고 달려왔을 때에는 이미 피레우스 일행이 플로젠 영토로 돌아간 뒤였다.
이후 케이잘이 다스리던 페단 부족은 플로젠 왕국과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카라미르는 당장 플로젠에 복수하고 싶었지만,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과 일가친척의 몰살로 인해 권력 기반이 크게 흔들린 상태였다.
그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페단 부족의 부족장이 되고, 반항하는 다른 부족들을 제압한 다음, 본격적으로 케르비오 국왕을 자처하면서 플로젠에 맞서 싸우기 위해서는 이후 상당히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와 같은 복잡하고 비극적인 과거가 있었기 때문에, 플로젠과 케르비오 양국이 해묵은 원한을 풀고 화해한다는 건 페레이즈 태자가 생각하는 것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플로젠 측에서는 케르비오가 배신한 탓에 창업 군주가 죽었다는 원한을 잊지 않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으며, 반대로, 케르비오 특히나 북부 평야지대 사람들은 플로젠이 비열한 기습으로 자신들의 수장을 죽인 일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비록 케이잘, 카라미르, 크세포스, 피레우스, 피넬리아 등 과거의 관계자들이 많이 죽어 없어지긴 했지만, 양국간에는 여전히 앙금이 강하게 남아 있는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플로젠과 케르비오가 형제의 나라가 되어 함께 네필린과 카스트레아를 정벌하면 어떨까 하는 페레이즈 태자의 발상은 어떻게 보면 지극히 비현실적인 망상일 뿐이었다.
물론 페레이즈 태자는 케르비오가 딱히 일부러 배신한 게 아니라 불가피하게 할아버지를 구원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페레이즈 개인적으로는 다른 왕실 구성원들 보다 상대적으로 케르비오에 우호적인 인식을 지닌 편이었다.
하지만 그도 엄연히 플로젠 왕실의 일원이자 현 시점에서는 유일한 합법적인 왕위 계승자로서, 개인적인 시각과는 별개로 왕실의 공식적인 입장, 다시 말해, ‘케르비오의 비열한 배신으로 창업 군주가 비참하게 죽었다.’는 인식까지 함부로 부정하고 나설 수는 없었다.
카를로만 또한 그의 부족의 공식적인 입장인 ‘할아버지는 정말 당시 형세가 너무나 위급해서 크세포스 국왕을 도와주고 싶어도 도와줄 수가 없었을 뿐인데, 플로젠 놈들이 회담을 핑계로 비겁한 함정을 파서 할아버지를 잔인하게 죽였다.’라는 견해를 마음대로 부정할 수 없는 처지였다.
이러한 두 가지 대립되는 입장은, 페레이즈와 카를로만이 서로를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든, 이들 둘을 공적으로 결코 동지가 될 수 없게 만드는 아주 심각한 장애물이었다.
페레이즈와 카를로만은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아 지난 날의 비극적인 역사와 각자 자신이 놓여 있는 공적인 입장을 다시 한번 되돌아보았다.
한참 동안 침묵이 이어진 다음, 카를로만이 무겁게 다시 입을 열었다.
“태자 전하, 유감스럽게도, 플로젠과 케르비오가 서로 형제의 나라가 되자는 전하의 발상은 지금 당장으로서는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다고 봅니다.
저 역시 태자 전하께서 다른 플로젠 지배층과는 달리 케르비오 왕국에 대해 그나마 우호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우리가 먼저 배신하여 전하의 할아버지를 일부러 죽게 만든 게 아니라는 사실도 충분히 짐작하고 있으리라고 믿습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가간의 일이며, 전하가 개인적으로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점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페레이즈가 씁쓸한 표정으로 카를로만에게 물었다.
“그렇다면 자네는 우리 두 나라가 영원히 다시 친해질 수가 없다고 보는가?
서로 힘을 합쳐 카스트레아의 폭정에 맞서서 함께 피를 흘리면서 싸웠던 지난 날의 역사는, 그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과거의 일일 뿐이라고 생각하는가?”
카를로만은 여기서 문득 술잔을 비우고 나서 진지하면서도 단호하게 말했다.
“우리 두 나라가 다시금 손을 잡을 수 있을지 어떨지는 전적으로 향후 플로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봅니다.
태자 전하께서는 현재 플로젠의 유일한 왕위 계승자이시니 언젠가 국왕이 되시겠지요?
전하께서 왕위에 오르신 연후에, 여러 해 전에 코사스 요새에서 벌어진 불행한 사건이 결코 케르비오 왕국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을 플로젠의 지배층에게 널리 알리십시오.
그리고 과거에 회담을 핑계로 비열한 함정을 파서 제 할아버지를 잔인하게 살해한 일을 공개적으로 사과하신 다음, 지금 귀국 궁전 어딘가에 전리품으로 전시되어 있을 할아버지의 해골을 정중하게 반환해 주십시오.
뿐만 아니라, 과거에 체결한 협정을 준수하여 케르비오 왕국의 건국을 정식으로 인정하고, 지난 날에 약속했던 영토인 칼리도르, 키르토크, 피에드린을 할양함과 동시에 평등한 이웃 나라로 대우할 것도 약속하셔야 합니다.
그런 전제 조건들이 모두 충족된 이후에야, 우리 두 나라는 비로소 협상 탁자에 마주 앉아서 지난 날 함께 피를 흘리며 카스트레아와 싸웠던 과거로 돌아가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논의할 수가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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