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트 하트

69화

오렌지색 머리칼의 뮤는 얼굴에서 안경이 덜어졌다. 눈앞에 갑자기 누군가가 나타나 뒤로 넘어지면서 흘린 것이다. 식당에서 그녀의 무기인 화살을 보여줄 수는 없기에 단검을 꺼내들었지만 그녀의 단검술은 일대일 근접전에서의 호신용으로 익힌 것일 뿐이었다.

4명의 남자들은 단검을 주로 사용하는 어쌔신들이었다. 승부의 결과는 불보듯 뻔했다. 여차하면 화살을 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잔득 긴장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리에 쓰러진 채로 고개를 들었다.

“응?”

다우어는 자신의 힘으로 올라온 주제에 짜증나는 짓을 하는 4명의 남자들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오렌지색 머리칼의 여자는 단검의 숙련도가 별로 높아보이지도 않았다.

게다가 지금가지 살아남은 이상 비장의 한 수가 있겠지만 보여줄 마음은 없는 듯 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드는 것은 차갑게 남자의 뺨을 친 것이었다. 그녀를 구해주기로 한 다우어는 곧바로 그녀의 바로 앞에 내려갔다.

뒤에서 그녀는 넘어졌지만 그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초부터 그런 것에는 전혀 관심 없었지만···

“죽고 싶은가··· 너희들···”

“···.”

다우어의 싸늘한 한 마디에 4명의 남자들이 굳어버렸다. 이미 다우어의 정체와 실력을 알고 있는 이상 승산은 없다고 판단한 그들은 즉시 도망쳤다.

“죄··· 죄송합니다!!”

다우어는 보랏빛의 눈동자로 뒤에 넘어진 뮤를 보았다. 뮤의 얼굴은 붉어져 있었다. 구해졌다는 수치심인지는 모르겠지만 더 이상의 볼일은 없었다.

뮤는 심장이 뛰는 것이 느껴졌다. 그것도 아주 거세게! 오렌지색 눈동자 속에 비친 다우어의 모습에 한 눈에 반했다고 느꼈다. 보랏빛 눈동자가 보였다.

‘정말 멋있네··· 나··· 반해버린건가?···’

다우어는 아무런 말없이 뒤로 돌아섰다.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 이름이···”

“···.다우어다···”

다우어는 자신의 이름을 언제부터 이렇게 쉽게 가르쳐주게 되었는지 어이가 없어졌다. 처음만난 여자에게 이름을 말하다니 이전 같았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많이 물러졌군.’

“전 뮤라고 합니다.”

다우어는 그녀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숙소로 들어가 버렸다. 뒤에서는 뮤가 멍한 눈으로 그의 뒷모습을 쫒고 있었다. 그녀의 눈이 이내 불타올랐다.

‘내 것으로 만들겠어.···’

안경을 벗으면 뭔가에 적극적으로 되어버리는 뮤는 다우어를 생각하며 다시 안경을 썼다. 안경을 써야 왠지 냉정해지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눈은 안경을 끼리 않아도 될 정도로 좋았으나 그녀는 냉정을 유지한다는 핑계로 안경을 썼다. 효과가 없을지도 모르겠지만 묘하게 효과가 있었다.

뮤는 날렵하게 일어나서는 옷을 털었다. 그리고는 숙소를 들어가며 착각에 빠졌다.

‘다우어님··· 제가 마음에 들어서 지켜주신거죠··· 저도 당신을 도와드릴게요···’

아주 단단히 착각에 빠져있는 뮤였다.

제논은 다우어의 생각지도 못한 난입에 깜짝 놀랐다. 싸늘한 다우어의 성격에 여자를 구해주었다? 들었다면 믿지 못할 일이다.

‘내가 잠을 덜 잤나보군···.’

제논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숙소로 발걸음을 옮겼다.

*

“오셨군요.”

한 개의 창문만이 존재하는 미하이릭 교장의 방에 그가 나타났다. 짙은 금발에 또렷한 적안을 가진 갓이었다. 갓은 미하이릭 교장이 앉아있는 소파 반대편에 편히 몸을 기대었다.

“아아··· 재밌어 보이는군. 이번 테스트는?”

루비 같은 적안은 모든 것을 알고 있는 듯 했다. 미하이릭 교장은 피식 웃었다.

“허허허··· 정말 흥미로운 사건이 생겼죠. 덕분입니다.”

빙 현자 미하이릭 교장에게 존대를 받는 갓은 익숙하다는 듯 양손에 깍지를 끼고 꼬운 다리위에 올렸다. 1급의 현자인 그보다 높은 0급의 갓 디로인의 적안이 번뜩였다.

“저기 있는 검은 가방에는 자네가 원하던 ‘그것’이 들어있네. 어렵게 구했으니 이 몸을 고생시킨 보상을 확실히 받도록 하지.”

“좋습니다. 원하는 것이 무엇이죠?”

“흐흐흐··· 알고 있지 않는가? 빙현자 미하이릭이여···”

“···.정말로 진심입니까?···”

미하이릭 교장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졌다. 감히 입 밖으로 말할 수 없다는 듯 그는 입술을 파르르 떨었다. 그런 모습이 재밌다는 듯 갓은 말없이 미하이릭 교장을 직시했다.

‘이 남자는 도대체······ 진정 신의 피를 이은자인가···’

미하이릭 교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 남자는 거부할 수 없다. 본능적으로 그를 마주한다면 느낄 수밖에 없는 감정이다. 자신 외에 모든 것을 굴복시키는 카리스마와 위압감! 신의 피를 이었다는 말은 정말 일지도 몰랐다. 그의 적안을 볼때면 그가 신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을 하기도 했다.

“크하하하!!”

갓이 광소를 터트렸다. 미하이릭은 인정했다. 현자인 그 역시도 막을 수 없다. 이 남자는 불사신의 몸을 가진···. 신이었다.

*

“칸님?”

“···.짐은 괜찮다.”

버닉은 저녁식사 시간에 맞춰 칸을 찾았다. 그러나 칸은 별로 식사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었다.

그에게 여유란 있어서도 안 되고 필요로 하지도 않았다. 여유란 사치다. 지금도 앞으로 어떻게 하여야하는가에 대한 계획으로 머릿속은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전 자리를 지키겠습니다.”

“짐을 보좌하려면 페알과 가서 체력을 보충해두어라. 짐은 생각할 것이 있다.”

“···.알겠습니다.”

버닉은 고개를 숙인 후 문 밖으로 나갔다. 밖에는 페알이 굳은 얼굴로 서있었다.

“칸은 안 먹나?”

“그래. 우선 가볍게 먹고 오자.”

“가.볍.게? 후후후···”

페알은 음산하게 웃으며 버닉과 홀로 이동했다. 페알의 입장에서 가볍게란 보통 사람의 식사량 3배에 이른다. 버닉은 그런 페알이 밉지는 않은지 피식 웃었다.

‘속이 울렁거리는구만. 이 녀석은 그런 것도 못 느끼는가보군.’

버닉은 뮤의 화살에 죽었었다. 그러나 눈을 떠보니 세이브 홀 안이었다. 칸이 있는한 탈락하지는 않았을테니 통과한 것이었다. 갑자기 구토가 치밀었다. 겨우 참았지만 죽음이라는 것은 자주 경험할 것이 못되었다.

배를 관통 당했을 때 느껴진 고통이 지금까지 그를 괴롭히는 듯 했다. 기적의 땅이지만 이런 후유증까지는 막을 수 없었기에 버닉은 이를 악물고 참았다.

그런데 페알은 아무런 이상도 없는 듯 했다. 죽음과 늘 가까이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모르겠지만 심장을 관통당해 죽었던 것치고는 지나치게 멀쩡했다. 페알의 그런 한결 같은 모습이 마음에 드는 건지도 몰랐다.

“버닉! 빨리 가자!”

“그래.”

얼음같이 냉정한 버닉은 유일하게 페알 앞에서만 따뜻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다.

‘바보 같은 녀석이지만 없으면 허전한··· 친구인가···?’

버닉은 묘하게 떠오른 생각을 뒤로한 채 페알과 숙소를 벗어났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재밌게 읽으셨으면 재밌어요와 선호작 부탁드립니다.

[희망녀]

읽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