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비무랑 4
소호는 혈교의 무리들을 제치고 신교의 안으로 들어갔다.
정문에서 안쪽으로 들어서자 신교의 교주 천우경과 혈비무랑이 싸우고 있었다.
그 와중에 신교와 혈교도 어울려 서로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었다.
소호는 혈교의 무리들 중에 혈마존이나 장로급들을 살폈다.
신교에서도 장로들과 각단의 대주들과 대원들이 나와 혈교와 맞붙어 싸우고 있었다.
소호는 혈비무랑과 싸우고 있는 할아버지 천우경이 걱정스러워 지붕에 올라 그들의 싸움을 쳐다보았다.
싸움은 막상막하였다.
그동안 혈비무랑의 무공이 더 높아진 것 같았다.
예의 괴기스런 웃음소리와 함께 손가락을 할아버지에게 겨누며 피를 날렸다.
저 피는 그냥 피가 아니다.
한 방울의 피조차도 암기로 쓰인다.
할아버지는 피를 맞지 않기 위해 신경을 쓰며 암흑뇌룡검법을 펼쳤다.
언제부터 싸움이 시작되었는지는 모르지만 벌써부터 암흑뇌룡검을 혈비무랑에게 퍼붓고 있었다.
그러나 혈비무랑에게 암흑뇌룡검이 통하지 않는 것 같다.
온 몸으로 할아버지의 검강을 막아내는 것을 보니.
그 무시무시한 암흑뇌룡검을 맞고도 멀쩡하다니.
살이 쇠로 만들었는지 정통으로 맞고도 약간 비틀할 뿐 아무렇지도 않다.
참으로 대단하다.
반면에 혈비무랑은 입으로 손으로 피를 화살처럼 있는 대로 쏟아내고 있었다.
할아버지도 검막을 펼쳐 혈비무랑의 피를 막아내지만 피가 검막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새로운 검막을 펼쳐내어도 자꾸만 흘러내리게 만들었다.
소호가 보기에 혈비무랑은 전에 만났던 서연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호가 혈비무랑에게 전음을 보내었다.
[서연아! 나 소호야. 날 좀 봐봐.]
혈비무랑이 흠칫하며 전음을 쏘아 보낸 소호를 쳐다본다.
전보다 훨씬 더 붉어진 눈자위가 치렁치렁한 머리카락 사이로 번져서 흘러나온다.
할아버지는 갑자기 혈비무랑이 반격을 안 하고 어딘가를 쳐다보자 같이 고개를 돌렸다.
소호는 할아버지의 눈과 마주쳤지만 이내 혈비무랑을 쳐다보며 계속 전음을 보냈다.
[서연아, 서연아! 네 이름은 기억하니?]
혈비무랑은 익숙한 이름에 머리를 흔들며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그때, 북소리가 들렸다.
신교에서 혈교로 옮겨간 독사혈과 한군영이 대법을 펼친다.
“둥둥둥 두두두둥둥!”
혈비무랑은 북소리에 얼른 고개를 쳐들고 소호에게 핏줄기를 날려 보낸다.
그리고 예의 소름이 돋는 웃음소리를 지른다.
“오홋홋홋홋!!! 깔깔깔깔!!!”
아마도 독사혈과 한군영이 혈비무랑을 조정하는 것 같다.
소호는 그들을 먼저 처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소호가 독사혈과 한군영이 있는 곳으로 날아갔다.
그들의 앞과 옆, 그리고 뒤에는 혈교의 무리들이 빼곡이 둘러쌓고 있었다.
소호는 태극무적검법의 폭뢰검을 쏘아내었다.
독사혈과 한군영의 앞을 가로막았던 혈교의 무리들이 한꺼번에 쓰러진다.
“크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악!!!!”
연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더니 그들을 막고 있던 혈교의 무리들이 계속 몸이 파열되며 피와 살이 여기저기로 날아갔다.
그러자 독사혈과 한군영은 더욱 힘을 내어 북을 쳤다.
“두두두둥둥둥!!! 두둥 두둥 두두두둥둥둥둥!!!!”
북소리에 맞춰 혈비무랑의 핏줄기는 더 힘차게 쏘아졌다.
소호는 독사혈과 한군영을 죽이랴, 혈비무랑의 공격을 막으랴 정신이 없었다.
그러자 할아버지 천우경이 혈비무랑이 아닌 독사혈과 한군영을 향해 암흑뇌룡검의 뇌룡검을 쏘아냈다.
뇌룡검은 독사혈과 한군영에게 정확히 쏘아져 그들을 한줌의 피떡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러고도 성이 안 차는지 나머지 혈교의 무리들을 향하여 마룡검을 쏘아 보냈다.
마룡검에 정통으로 맞은 무리들이 한꺼번에 폭살되었다.
소호는 기회는 이때다 싶어 혈비무랑에게 전음을 보냈다.
[서연아, 서연아! 나를 기억하면 따라와라.]
소호는 전음을 보낸 다음 신형을 쏘아 하늘로 날아갔다.
혈비무랑은 소호가 날아가는 쪽을 보면서 같이 따라갔다.
교주 천우경은 혈비무랑이 갑자기 하늘로 날아가자 쫒아서 따라갔다.
맨 앞에는 소호가 그리고 다음은 혈비무랑이 그 뒤를 이어 신교의 교주가 하늘을 날아서 멀리멀리 사라져갔다.
신교와 혈교는 싸우던 중이라 잘 몰랐다가 그들이 한참을 날아간 다음에야 알게 되어 소리를 질렀다.
“혈비무랑님이 하늘로 날아가셨다! 지난번처럼 이번에도 또 사라졌다!”
혈교의 무리들이 웅성웅성 거리며 혈비무랑이 사라진 방향을 쳐다보았다.
신교도 교주와 의동생인 소호가 혈비무랑을 데리고 사라지자 그들이 사라진 쪽을 바라보며 일순간 싸움이 소강상태로 접어 들었다.
소호가 먼저 절벽가에 도착하여 혈비무랑을 기다렸다.
이어서 혈비무랑이 절벽가에 도착하여 하늘에서 둥둥 떠있는 상태로 소호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연아! 나를 기억하니?”
“······!”
혈비무랑은 아무런 말이 없이 소호를 바라보기만 했다.
눈가의 붉은 기운이 조금 옅어진 것 같았다.
뒤이어 도착한 할아버지가 소호를 불렀다.
“소호야! 위험하게 왜 여기로 불러들인 것이냐?”
“할아버지, 잠깐만요.”
혈비무랑은 소호와 할아버지를 번갈아가며 쳐다보다 다시 눈자위가 짙게 붉어진다.
그리고 인상을 있는 대로 쓰면서 소리를 질렀다.
“오홋홋홋홋!!! 캬아아아악!!!”
온 몸으로 피를 퍼부어 내보낸다.
소나기가 쏟아지듯 피의 빗줄기가 소호에게까지 떨어진다.
기막을 펼쳐 피를 피했지만 강한 힘으로 쏘아내는 핏줄기를 막아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소호는 다시 한 번 큰 소리로 불렀다.
“서연아! 나 소호야. 서연아! 나를 봐봐.”
혈비무랑은 서연이라고 부르자 행동이 느려지며 눈가의 붉은 기운이 차츰 옅어진다.
“소호··· 오라···버니?”
“그래, 나 소호야! 이제 정신이 드니?”
“소호··· 오라···버니··· 오라버니!”
“잊어버리지 않았구나. 잘했어. 우리 서연이 정신을 차려보렴. 나를 기억하는 한 너는 혈비무랑이 아니고 서연이야!”
“서···연!”
“그래, 넌 서연이야. 이리 가까이 와봐.”
혈비무랑은 뭔가를 기억해내려는지 인상을 쓰며 머리를 흔들었다.
혼란스러워 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뒤에 서있는 할아버지를 쳐다보고는,
“캬캬캬아아아아악!!!!”
할아버지에게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온 몸을 자유자재로 돌며 하늘에서 사방팔방으로 핏줄기를 뿜어낸다.
소호는 안타까웠다.
소호는 할아버지에게 전음을 보냈다.
[할아버지! 제가 혈비무랑을 유인할 테니 잠시만 모습을 보이지 말아주세요. 저를 믿고 잠시 숨어 계세요.]
할아버지 천우경은 소호의 전음을 듣고 하늘에서 신교쪽으로 방향을 돌려 날아갔다.
혈비무랑이 따라가려는 것을 소호가 불렀다.
“서연아! 서연아!!!!”
혈비무랑은 다시 흠칫하며 신형을 멈추었다.
그리고 소호를 쏘아보았다.
치렁치렁하게 풀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혈비무랑의 눈이 보였다.
여전히 눈자위가 붉었지만 할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은 것으로 보아 서연이라는 이름을 조금 기억하는 것 같았다.
소호는 계속 서연이를 부르면서 절벽으로 뛰어 내렸다.
뛰어내리면서도 혈비무랑이 안 따라오면 어쩌나 걱정이 되었지만 모험을 하기로 했다.
소호는 절벽에서 떨어지며 위를 쳐다보았다.
혈비무랑이 소호를 멀거니 쳐다보고 있었다.
따라오지 않을 셈인가 보다.
마지막으로,
“서연아! 서연아!!!”
하고 부르며 구름 속으로 들어갔다.
떨어지면서도 서연이 안 오면 다시 절벽가로 올라가야 한다.
‘아씨, 다시 올라가기 힘든데··· 시간도 오래 걸리고··· 제발 따라와라! 서연아.’
드디어 땅이 보이기 시작했다.
절벽의 중간지대이다.
여기라면 혈비무랑의 기억을 선명하게 떠올리게 할 수 있을 것 같아 떨어졌는데 오지 않는다면 소호 혼자 바보짓을 한 것이다.
떨어지는 몸의 충격을 완화시켜줄 소나무가 보였다.
소나무를 잡으며 속도를 줄였다.
속도가 확 줄어들어서 몸을 회전시키며 땅에 착지했다.
그리고 위를 쳐다보았다.
혈비무랑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려도 내려오는 모습이 안 보이자 실망한 소호는 비도를 꺼내어 다시 올라가려고 했다.
비도를 절벽에 꽂으려는 찰라, 촤라락 거리며 옷자락 소리가 들린다.
저 멀리서 소나무를 잡고 속력을 줄이는 서연의 모습이 보인다.
소호는 비도를 품속으로 얼른 집어넣고 서연을 기다렸다.
서연도 몸을 회전시키며 바닥에 착지했다.
눈가의 붉은 기운이 눈에 띄게 옅어졌다.
서연은 자신이 딛고 있는 땅을 여기저기 훑어보며 이마를 찡그린다.
뭔가를 기억하려고 하는데 생각이 안 나서 화가 나는 표정이다.
그런 서연을 보며 소호가 말을 걸었다.
“서연아! 이곳은 너랑 나랑 함께 있었던 곳이야. 잘 기억해봐. 천천히 기억을 떠올려봐.”
“······!!!”
다 떠오르지는 않지만 뭔가를 기억했나보다.
눈가의 붉은 기운이 점점 사라지면서 소호를 바라본다.
갑자기 주르륵 눈물을 흘린다.
“소호··· 오라버니!”
“그래, 나야.”
“오라버니··· 나 힘들어··· 날 죽여줘!”
“······!!!”
“난··· 이제 서연이가··· 아니야. 괴물이 되었어.”
“아냐, 서연아! 너를 상하게 만든 그놈들이 나쁜 놈들이지 너는 서연이가 맞아.”
“아냐! 난··· 죽지도 못하고··· 평생··· 다른 사람의··· 명령을 들으며 살아야 하는··· 괴물일 뿐이야. 그러니 날··· 죽여줘.”
“서연아··· 너를 이렇게 만든 놈들을 내가 다 죽였어. 그러니까 그놈들의 명령을 들을 필요가 없어.”
“그들은 죽었을지 몰라도 나는··· 나는··· 괴물이 되었어.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그러니 오라버니가 죽여줘. 제발 부탁이야!”
“서연아, 내가··· 내가 너를 어떻게 죽일 수가 있니.”
“내 몸에 수백 명의 아이들이 담겨있어. 그 아이들의 육신과 혼백이 나를 지배하고 있어. 밤마다 아니 늘 아이들이 울면서 죽여 달라고 애원을 해.”
“그게 무슨 말이야? 아이들의 원혼이 너를 괴롭힌다는 뜻이야?”
“응. 관속에 들어가도 평안을 얻을 수가 없어. 아이들의 육신과 혼백이 이미 골수에까지 침투해서 잠시도 편안하지가 않아. 오로지 피를 내뿜으면서 사람들을 죽일 때만 편안해.”
“서연아······. 너를 어찌하면 좋을지 모르겠구나.”
“하아··· 피가 끓기 시작하고 있어. 아주 잠시 기억이 돌아왔지만 난 다시 괴물이 될 거야. 그러니까 괴물이 되면 오라버니도 기억을 못하고 죽이려고 할 거야. 괴물이 되기 전에 빨리 죽여줘. 내가··· 괴물이 되면··· 헉헉··· 오라버니도 나를 죽일 수 없어. 크흑··· 어서 빨리 죽여줘··· 끄으으으윽.”
소호가 어찌할 줄을 몰라서 안타까운 눈으로 서연을 바라보기만 하자 서연의 눈가가 점점 붉어져온다.
눈에서 붉은 광채가 나면서 주위가 더욱 붉게 짙어진다.
그러나 눈에는 눈물이 가득 담겨있다.
담겨진 눈물이 차올라 주르륵 뺨으로 흘러내린다.
“캬캬캬캬캬캬!!! 으아아아아아악!!! 오홋홋홋홋홋!!!”
서연의 손톱이 츠츠측 하며 길게 뽑혀져 나온다.
길어진 손톱에서 핏물이 뿜어져 소호에게로 향한다.
검을 뽑아 핏물을 튕겼다.
서연의 양쪽 손톱이 길게 나오더니 더욱 많은 양의 핏물이 쏟아져 나온다.
이제는 서연이를 불러도 소용이 없을 것 같다.
그래도 혹시 몰라 이름을 불러보았다.
“서연아! 서연아!!!”
“크르르르르륵! 캬캬캬캬! 깔깔깔깔!!!”
역시나 이름을 불러도 못 알아듣는다.
그렇다고 어떻게 서연이··· 너를 죽일 수 있겠니.
더구나 만병불침이라는데 죽일 수나 있을까?
서연이가 너무 불쌍해서 소호의 눈에 습기가 차오른다.
제대로 살아보지도 못하고 세월만 몇 백년이 흘러버린 서연이가 너무 가여워서 참을 수가 없다.
머리로 생각을 하면서도 몸은 핏물을 피하기 바쁘다.
이제는 하늘에서 빗줄기가 쏟아지듯 화살이 쏘아져오듯 핏물이 퍼부어진다.
검을 이리저리 휘돌리며 핏물을 막아보지만 몇 방울씩 소호의 옷에 묻는다.
소호의 옷이 타고 급기야는 살이 탄다.
그나마 독을 머금지는 않았나보다.
그 와중에도 독이 날아가는 것을 막으려고 했나보다.
검으로 서연의 손톱을 자르려고 품으로 파고 들었다.
검으로 손톱을 잘랐는데 자르기는커녕 ‘쨍’하는 쇳소리가 들린다.
만병불침이라고 하더니 몸에 검이 안 들어간다.
검을 휘둘러 팔을 찔러봤지만 역시나 안 잘라진다.
소호는 눈물을 흘리며 목을 베어보았다.
‘땅’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이 튕겨져 나온다.
그나마 천마검이니까 튕겨져 나왔지 일반검이었으면 부러졌을 것이다.
어느 곳을 찔러도 몸으로 검이 안 들어간다.
분명 약점이 있을 텐데 못 찾겠다.
< 혈비무랑 4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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