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급살수 2
객잔에서 하루를 쉰 다음날, 청도방을 찾았다.
정문의 앞에는 무인들이 웅성웅성 떠들며 자기들끼리 얘기를 하고 있다.
못해도 수백 명은 될 듯하다.
몇 명이나 뽑는지 몰라도 정문 앞에는 무인들의 줄이 가득이다.
소호도 줄이 서있는 곳으로 가서 줄을 섰다.
머릿속으로 어디의 누구라고 말할까 생각 중이다.
지난번 하북성의 원동에서 하가장의 삼남 하일성을 죽인 사실을 기억해내고 차남인 하일청을 사칭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차남 하일청이 종남파의 속가제자로 머물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냈기 때문이다.
하북성의 원동을 가더라도 차남의 얼굴을 확인하기 어렵다.
종남파에서 지금쯤 열심히 무공을 익히고 있을 테니까.
줄이 줄어들어 드디어 소호의 앞까지 왔다.
책상 앞에 앉아 있는 염소수염의 중년인이 지원서를 꺼내어 주면서 적으라고 한다.
어느 곳의 출신, 누구이며, 독문무기는 무엇이며, 무공은 어디에서 배웠는지, 사부가 누구인지, 무공수준은 어느 정도인지를 적는 종이였다.
소호는 간단하게 이름을 하일청이라 적고 출신은 하북성의 원동에 있는 하가장의 차남이라고만 적었다.
독문무기는 검이라고 적었으며 무공을 어디에서 배웠는지 사부가 누구인지는 적지 않았다.
책상에 앉은 사람에게 적은 것을 주었더니 염소수염을 한 중년인이 쓱 읽더니,
“여기 어디에서 무공을 배웠는지 사부가 누구인지를 적지 않았는데 왜 적지 않았소?”
“그냥 가전무공일 뿐이오. 사부는 부친이기에 적지 않았소.”
염소수염은 손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소호를 쳐다보았다.
그러다 어차피 칼받이로 쓰는 무인인데 세세히 알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냥 넘어갔다.
겉으로 보기에 그다지 강해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관문을 넘어야 한다.
정문으로 들어가니 한 사람이 소호를 맞이한다.
소호가 보기에 일류 정도의 실력인 중년의 남자였다.
소호에게 목검을 주면서,
“나와 비무를 하면 된다. 나를 이기면 특급대우를 받을 것이고 지더라도 무공의 실력에 따라 월전 및 수당이 주어진다. 준비 되었나?”
“예. 준비 되었습니다.”
목검을 든 남자가 위에서부터 황소천군(橫掃千軍)의 힘으로 내려치려고 한다.
소호는 가볍게 목검을 피하고 오히려 가슴으로 파고들어 목검으로 어깨를 찔렀다.
진검이었으면 피가 났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남자가 횡으로 목검을 그었다.
소호는 위로 번쩍 뛰어올라 목검을 피하면서 남자의 목검을 저 멀리 쳐내 버렸다.
회리릭 하는 소리와 함께 목검이 날아가서 ‘꽝‘하며 땅에 처박혔다.
목검이 산산이 부서졌다.
남자는 꽤 놀란 얼굴이다.
소호는 자신의 힘을 대부분 숨기고 평소의 삼할 정도의 힘으로 상대를 했는데 상대 남자와 너무 차이가 나서 일찍 승부를 끝 낼 수 있었다.
중년의 남자가 비무를 구경하던 한 남자에게,
“상급이오!”
한다.
비무를 구경하던 남자들 중에 체격이 좋은 젊은 사람이 앞으로 나와서 소호에게 인사를 한다.
“만나서 반갑소이다. 난 현소군이라 하오.”
“난 하일청이외다.”
“합격이 되셨으니 처소를 안내해 주겠습니다. 식당은 언제라도 수련이 끝나면 늦은 시간이라도 식사를 할 수 있소. 그리고 불편한 점이 있으면 담당시비한테 말씀하십시오.”
“고맙소. 언제쯤 출전을 할 예정입니까?”
“무인들이 다 차게 되면 각조에 투입이 되어 출전을 하게 됩니다. 아, 합격한 순간부터 월전은 나가게 되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건 고마운 일이군요. 수련은 어디에서 할 수 있소?”
“각 처소마다 앞마당이 있으니 부족하나마 간단한 수련은 할 수 있을 것이오. 자, 여깁니다. 그럼 쉬십시오.”
단촐한 전각 하나가 배정되었다.
앞마당이 수련하기에 그다지 부족하지 않을 만큼 있었다.
방 하나에 대청이 붙어있는, 진짜 혼자 살기 편하게 되어 있었다.
청도방의 방주 연사문은 무인들이 많이 찾아왔다는 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그들 중에 몇 명이나 쓸만한 자가 왔을지는 모르지만 몇 명만이라도 일류이상의 경지면 족했다.
철가방의 무인들도 그리 뛰어나지 못하다.
철가방의 방주와 호법 그리고 장로들이 좀 뛰어나고 나머지는 다 그저 그렇다.
그래서 그들만 상대해 준다면 철가방을 치는 건 어렵지 않았다.
청도방의 방주는 절정의 무인이었다.
검기를 출수할 수 있는 절정의 무인이 산서성의 태원에는 몇 명 없었다.
다들 고만고만한 실력들이다.
그런데 오늘 일류이상의 고수가 들어왔다고 한다.
그것도 무려 세 명이나.
그중에 한명은 가전무공을 익혔다는데 두 수만에 비무를 하는 청검대 대주의 목검을 날려버렸다고 한다.
청도방의 방주는 오늘 합격한 사람들을 위한 연회를 개최했다.
상석에 청도방의 수뇌부들이 자리를 잡고 그 밑으로 실력에 따라서 자리를 배치했다.
오늘 합격한 자들은 모두 오십이 명이었다.
수많은 경쟁자들을 제치고 합격한 사람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나지를 않았다.
특히 일류이상으로 합격한 세 명은 소호 이외에도 두 명이나 더 있었다.
소호는 청도방주의 옆에서 소군거리며 가장 가까이 있는 총관이라는 사람을 유심히 살폈다.
나이는 50대로 무공은 익히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눈썹과 눈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간 것을 보니 한 성깔 하게 생겼다.
무공은 익히지 않았어도 건강삼아 운기토납법은 매일 하는지 외견상으로 매우 건강해보였다.
그리고 습관처럼 눈썹이 자주 위로 올라갔다 내려온다.
입은 늘 미소를 머금고 있고.
소호는 총관을 보면서 총관으로 분하면 방주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총관이라면 의심을 하지 않을 테니까.
소호는 연회에서 술을 조금만 마시고 자리에 앉은 이들을 살펴보았다.
특별히 강한 기운이 느껴지는 사람은 없었다.
역시나 청도방의 방주가 가장 무공이 강해 보였다.
그는 자신의 무공에 자신이 있다고 생각하는지 기운을 전면으로 방출시켜 자랑질을 해대고 있었다.
소호는 속으로 비웃으며 ‘언제 임무를 할까?’ 생각했다.
좀 더 총관을 살필 필요가 있어 보였다.
개인적으로 친하게 지내게 되면 더할 수 없이 좋고.
그게 아니더라도 오며 가며 꼼꼼하게 살피기로 했다.
총관은 술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였다.
청도방주와 함께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마시는데도 흐트러짐이 안 보인다.
그만큼 술이 세다는 뜻이다.
어지간히 마셔가지고는 쓰러지지 않을 주당이다.
청도방주 역시 주당인 듯하다.
둘이 자주 어울려 술을 마시나보다.
연회자리에서 너무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니 느낌이 온다.
첫날은 그렇게 연회와 함께 끝났다.
소호는 방으로 돌아와서 술기운을 몰아내고 운기조식으로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 날, 식당에 가니 많은 무인들이 삼삼오오 짝을 이뤄 얘기들을 하면서 식사를 했다.
소호 혼자만 앉아서 식사를 하는데 같은 30대 장한이 소호의 곁으로 식판을 가지고 와서 앞에 앉는다.
“같이 먹어도 괜찮죠? 저는 이현성이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하하하···.”
“······ 저는 하일청이라고 하오. 저를 아시오?”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사해는 동도라 하지 않소이까.”
“그렇군. 많이 드시오.”
“어제 비무하는 것을 보았소이다. 실력이 좋던데 어디 출신이시오?”
“그저 가전무공을 조금 할 줄 아는 정도지요.”
“가전무공을 조금 하는 정도가 두 수만에 목검을 날려버릴 실력이면 꽤 유명한 가문인가 봅니다.”
“그렇지도 않소. 그냥 평범한 가문이오.”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친하게 지냅시다. 저도 부족하지만 상급으로 합격을 했으니 하형에게 그리 모자라지는 않을 겁니다.”
소호는 이렇게 친한 척하는 사람이 제일 싫다.
가까이 지내다보면 혹시라도 실수를 하게 될까봐.
그러나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이렇게 웃으면서 다가오는 사람을 물리칠 만큼 생각이 없지 않았다.
좋은 게 좋다고 적당히 거리를 두고 지내는 게 제일 좋다.
너무 매몰차서 사람들에게 시선을 끄는 것도 안 좋다.
그래서 말을 가급적 생략하기로 했다.
이현성은 소호가 말을 하던 하지 않던, 상관없이 자기 얘기만 주구장창 떠들어 댄다.
어찌나 떠드는지 밥알이 밖으로 툭툭 튀어나올 지경이다.
‘아, 이 자식. 더럽게··· 밥풀이 튀었잖아!!!’ 하고 욕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이다.
소호가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쓰는 것을 보았는지 못 보았는지 상관없이 계속 떠드는 바람에 소호는 귀가 다 아플 지경이다.
얼른 밥을 먹고 일어나자,
“어? 벌써 다 먹었소? 나도 빨리 먹어야겠군.”
소호는 이런저런 말을 하지 않은 채, 식판을 들고 설거지통에다 담근 다음 밖으로 나왔다.
‘에잇, 더러운 새끼. 사내자식이 무슨 말이 그렇게 많은지.’ 혼자서 투덜거리며 자신의 거처로 돌아갔다.
소호는 거처에서 수련을 하고 있다가 총관이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총관이 소호의 거처에 올 일이 뭐가 있다고 왔을까 싶으니 궁금했다.
“하무사님. 저는 서정철이라고 합니다. 그냥 서총관이라고 부르면 됩니다. 오늘 오후에 작전회의가 있으니 참석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지내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신지요?”
“아주 편하게 잘 지내고 있습니다. 모처럼 오셨는데 차라도 한잔 드릴까요?”
“아니, 아닙니다. 가봐야지요.”
“그럼 저녁에 술 한 잔 하시는 건 어떻습니까?”
“호오! 하무사님은 술을 잘하시나 봅니다.”
“잘은 못하지만 즐깁니다. 술을 한잔 마시면서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인생 뭐 있나? 한세상 잘 살다 가면 그만이지’ 싶어서 맛있는 안주에 술 한 잔 마시고는 합니다.”
“캬햐! 어찌 생각이 저와 똑같습니까. 저도 혼자서 맛있는 안주를 벗 삼아 술을 한잔씩 마시고는 한답니다. 그럼 오늘 저녁에 같이 마셔볼까요? 껄껄껄···.”
“저야 영광이죠. 청도방의 총관님과 함께 술을 마시면.”
“좋습니다. 오늘은 제가 한잔 사지요. 요 앞에 길룡객잔에서 저녁 식사 후에 보는 것으로 하죠. 어떻습니까?”
“저는 좋습니다. 그럼 이따 저녁에 뵙는 것으로.”
총관은 싱글벙글거리며 나갔다.
오늘 저녁에 총관과 함께 술을 마시면서 소소한 습관 같은 것을 잘 살펴야겠다고 생각했다.
수련을 끝내고 방으로 들어가 운기조식을 하려는데 밖에서 소호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하형, 하형! 안에 있습니까?”
‘아, 놔! 저 자식. 여기까지 찾아왔네. 휴우, 피곤한 놈!’
소호는 인상을 벅벅 쓰며 밖으로 나갔다.
“하형. 혼자 수련하기보다 같이 비무를 하면서 수련을 하면 어떻겠습니까? 혼자서 수련하면 심심하지 않습니까.”
“수련은 혼자서 하는 것이 좋을 때가 있습니다. 지금은 같이 비무를 하다가 다칠 수도 있고··· 곧 싸움이 벌어질 텐데. 그냥 혼자서 수련을 하겠습니다.”
“아이고, 하형. 비무라고 하지만 진검이 아닌 목검으로 하면 되지 않습니까. 저의 부족한 점도 알려주시고.”
“제 무공도 부족한 몸이라 남의 부족한 점을 알려줄 실력이 못 됩니다. 죄송합니다. 그럼 이만.”
“하북성의 원동에 하가장이 있지요. 하가장에는 삼남의 형제들이 있었는데 얼마 전에 삼남이 죽어서 이제 형제만 남았습니다. 그런데 차남이 종남파에서 수련을 하고 있는 줄 아는데 언제 종남파에서 나오셨습니까?”
“······!!!”
소호는 등줄기에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끼지도 못한 채, 이 위기를 어떻게 넘어가야 하는지 머리를 굴리기 바빴다.
천천히 뒤를 돌아 이현성이라는 사람을 빤히 쳐다보았다.
이현성이라는 사람도 소호를 차가운 눈으로 쳐다보았다.
소호는 이현성을 죽여 버릴까 생각중이다.
그러나 잠시 살펴보고 죽이는 게 좋겠다는 생각에,
“어찌 그리도 하가장의 사정을 잘 알 수 있습니까? 하가장과 무슨 관계가 있소?”
“뭐, 특별한 관계는 아니고 예전에 한번 들른 적이 있지요. 모종의 일로 하가장에 들렀을 때 차남의 얼굴은 미처 못 보았는데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그런데 왜 종남에서 나오셨는지···.”
“이형은 남의 가족사나 개인적인 것을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잘도 묻는 구료. 내가 이형에게 내 개인적인 얘기를 해야 할 의무가 있소?”
“하아. 쩝··· 그리 말씀하시니 내가 오히려 무안합니다 그려. 명문 대문파에서 수련을 하던 사람이 산서성 태원이라는 시골 동네에 와서 칼받이를 한다니 이상해서 그렇소. 더구나 차남은 이제 이십대 중 후반의 나이로 알고 있는데 하형은 차남의 나이보다 훨씬 더 먹어 보이오. 대체 당신 누구요?”
소호는 정체가 탄로 났다고 생각해 죽이기로 했다.
그러나 여기서 죽이면 이곳으로 들어올 때 누군가 봤을 수도 있기에 장소를 옮겨야 할 것 같았다.
“내가 누군지 궁금하오?”
“당연히 궁금하지 않겠소?”
“그나저나 이형의 거처도 이곳과 똑같이 생겼소?”
“여기서 옆의 옆이 내 거처요. 구조는 이곳과 똑같고.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소. 왜 거짓말을 하고 들어온 것이오.”
“그럴만한 사정이 있소. 그리고 내가 하가장의 차남은 아니지만 하가장의 사람은 맞소.”
“그래요? 헌데 왜 이 먼 곳까지 온 것이오?”
“이따 저녁 식사 후에 얘기를 합시다. 술 한 잔 마시면서.”
“뭐, 그럽시다. 이따가 다시 오겠소.”
“이번에는 내가 이형의 거처로 가겠소. 술도 한 병 가지고. 그런데 다른 사람한테도 이 얘기를 했소?”
“하형의 말을 들어보고 결정하려고 아직은 말을 하지 않았소만 나를 어찌해보려고 생각하지는 마시오. 이미 하형이 모르는 사람한테 나의 의구심을 얘기해 놓았으니.”
“······.”
소호는 이 자리에서 콱 그냥 죽여 버리고 싶은 것을 꾹 참고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그를 내보냈다.
잠시도 주둥이질을 멈추지 않는 저놈이 누구에게 말을 했는지 모르니 답답한 심정이다.
< 이급살수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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