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문을 당하다
소호는 검은색 일색의 복면인들을 보며 고문에 대비했다.
그들 중에 한명이 소호에게 말을 걸었다.
“네놈이 15호냐?”
“······.”
“발뺌해도 소용없다. 네가 말하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도 말하지 않을 거라고 믿지 마라. 다시 묻겠다. 네가 이급살수 15호냐?
“이미 알고 있으면서 뭘 물어보느냐?”
“그럼 너 때문에 본교가 얼마나 많은 피해를 보았는지도 알겠구나. 너를 도와준 자가 있었더냐?”
“없었다. 오로지 나 혼자 행동한 것이다.”
그때였다. 옆에 창고인지 앞의 창고 어딘가에서 비명이 들렸다.
‘으아아아악! 크아아아아악! 다 말하겠소. 살려주시오. 살려···.’ 하는 비명성이 소름끼치게 들려왔다.
비명소리는 오장육부가 다 끊어지는 듯한 소리다.
얼마나 심한 고문을 받으면 저런 소리가 날까.
훈련원에서 고문에 대한 훈련도 받았었다.
그러나 훈련원에서 받은 고문과는 질적으로 다른가보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하고 있는 중에 뭐라고 하면서 답을 요구했다.
소호가 무슨 소리인지를 듣지 못해서 남자를 쳐다보았다.
온 몸을 꽁꽁 싸매어 오로지 눈만 보이는 남자는 눈매가 몹시 날카로웠다.
“15호 왜 대답을 안 하지?”
“무슨 말을 하라는 말이오?”
“이곳의 천주는 이름이 무엇이냐?”
“내가 그것을 어찌 알겠소. 멀리서 얼굴만 두어 번 본 것이 다인데.”
“그럼 장로원에는 몇 명이나 있느냐?”
“그것도 모르겠소. 장로원으로는 들어가 본 적이 없어서.”
“특급살수는 몇 명이나 있느냐?”
“나 살기도 바쁜데 특급살수가 몇 명인지를 어찌 안단 말이오. 차라리 이급살수가 몇 명인지를 묻는 것이 어떻겠소?”
“이놈이 순순히 대답을 안 하는 것을 보니 좀 다독일 필요가 있겠구나. 어이, 안되겠다. 손을 쓰도록 해라.”
소호는 이제부터 고문을 하겠구나 싶으니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복면인들 중에 한 남자가 나와서 소호의 몸 이곳저곳을 눌렀다.
어디를 어떻게 누른 건지 온 사지가 뒤틀리는 듯 아팠다.
소호는 악착같이 참았다.
그러나 고통은 점점 심해져 와서 참을 수 있는 경지를 넘었다.
“으악! 아아아아악! 크흑··· 크흐흐흐흑.”
소호는 비명을 안 지르려고 했지만 안지를 수가 없었다.
예전에 암천의 조사님인 살수왕의 동굴에서 영물이라고 하는 백사의 내단을 먹었을 때도 엄청난 고통에 기절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의 고통에 몇 배가 가중되었다.
이게 말로만 듣던 분골착근(分骨錯筋)이라는 수법인가보다.
훈련원 때 들었던 기억이 난다.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것 같다고 했다.
소호는 비명을 지르다 기절을 했다.
기절한 소호에게 물통의 물을 머리에서부터 부었다.
“어푸, 어푸··· 헉헉··· 커흐흐흐흑.”
“다시 묻겠다. 암천의 천주는 누구이냐?”
“모른다.”
“그럼 장로원에는 몇 명이나 있느냐?”
“그것도··· 모른다.”
“도대체 네 놈이 아는 것은 무엇이냐”
“모른···다.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다시 시작해라.”
다시 사지가 찢어지는 고통이 찾아왔다.
팔, 다리가 생으로 찢어지는 것 같다.
그것도 부족해서 오장육부가 다 밖으로 삐져나왔나보다.
배가 너무 아파서 비명을 지르다 다시 기절을 했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서서히 눈을 떴다.
복면인들이 보이지 않고 혼자 의자에 묶여있다.
아직도 온 몸이 아파서 벌벌 떨린다.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을까? 이 고통은 참을 수 있는 정도를 지났는데 어떻게 견디고 계실까?’
소호는 눈물이 났다.
눈물을 흘리려고 하는 게 아닌데 절로 눈물이 흘러내린다.
어쩌다 마교놈들한테 붙잡혔는지 알 수가 없다.
저놈들한테 고문을 당하느니 차라리 죽는 게 낫다.
어금니 맨 안쪽을 혀로 밀어보았다.
적에게 잡혔을 경우 독을 터트려 죽는 방법이 있다.
헉? 어금니 맨 안쪽의 독단이 없다.
놈들이 빼버렸나 보다.
아! 어쩌지.
혼자서 좌절을 하는 동안 복면인들이 다시 들어왔다.
그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온 몸이 벌벌 떨린다.
“이봐, 15호. 자네가 말하지 않아도 다 알 수 있어. 다른 사람들이 이미 다 불었다. 네놈 혼자만 말하지 않는다고 우리가 모를 줄 알았나?”
“그렇게··· 잘 알면서··· 헉헉··· 나한테 묻는··· 이유가 뭐냐? 차라리··· 죽여라.”
“죽이는 것은 어렵지 않다. 네놈에게 편한 죽음을 줄 것 같으냐? 이번에도 잘 버티나 보자. 네놈에게 우리 신교에서 만든 약을 먹이겠다. 그 약을 먹으면 네놈은 한 달 전에 먹은 똥물까지 다 말할 것이다. 약을 먹여라.”
복면인 중에 한 놈이 나와서 약을 소호의 입에다 넣었다.
안 먹으려고 했지만 소호의 의지와 상관없이 입속으로 약이 넘어갔다.
약은 목구멍을 넘어가 뱃속으로 사라졌다.
점점 앞이 뿌옇게 보이고 머릿속이 텅 비는 것 같다.
소호는 있는 힘을 다하여 약에 대항하려고 했다.
그러나 의지와 달리 생각이라는 자체가 안 들었다.
“15호. 다시 묻겠다. 암천의 천주는 이름이 뭐지?”
“···할···아버···지. 할아···버지. 제가··· 약기운으로··· 제 의지와··· 상관없는 말을··· 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할아버지라니. 무슨 할아버지?”
“··· 할아버지··· 할아버지···.”
“암천의 장로원에는 몇 명이나 있느냐?”
“······ 할···아버지. 할···아···버···지.”
“네가 신교에 잠입했을 당시 너를 도운이가 누구냐?”
“······ 제··· 의지와··· 상관없는··· 말을··· 하지··· 않게 해··· 주세요.”
“할아버지가 누구냐?”
“··· 내··· 마음속에··· 계시는··· 분.”
“크흠··· 다시 묻지. 네 이름은 무엇이냐? 어릴 때 이름말이다.”
“······ 크흑··· 할아버지··· 할아···버지.”
“네 이름이 뭐냔 말이다?”
“할··· 아··· 버··· 지··· 하알···버··· 지.”
“약을 더 먹여라.”
“존명!”
소호에게 약이 한 알 더 목으로 넘어갔다.
이제는 누가 소호인지도 모른다.
그냥 무의식이 대답을 한다.
“할아버지가 누구냐?”
“······ 하알··· 버··· 지. 내··· 마음속··· 에··· 있는··· 분.”
“그러니까 네 마음속의 할아버지가 누구냐?”
“내··· 마음속에··· 있는··· 분.”
“약을 하나 더 먹여라.”
“여기서 더 먹으면 뇌에 이상이 생길 수 있습니다.”
“뇌에 이상이 생기면 대답을 못하는 건가?”
“정확한 답변을 듣기가 어렵습니다. 무의식에서 하는 말이라 자신도 무엇을 말하는지 모릅니다.”
“하여간 하나 더 먹여라.”
“존명!”
소호에게 약이 한 알 더 들어갔다.
침을 질질 흘리며 눈동자는 이미 진즉에 돌아갔다.
흰자만 가득한 눈에서 눈물인지 땀인지 물기가 흘러내린다.
입에서는 연신 침을 흘리고 온 몸을 바들바들 떨고 있다.
“15호. 네가 15호냐?”
“나···는··· 누구지? 모···르··· 겠··· 다.”
“이놈, 이거 엄청난 독종이구나. 여기서 더 약을 쓰면 죽게 되나?” “아마도 뇌에서 과부하가 되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지독한 놈! 약은 그만두고 깨어나면 분골착근이나 계속해.”
“존명!”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지만 감각이 조금씩 돌아온다.
손끝이 살짝 움직였다.
이번에는 발가락도 움직였다.
조금씩이지만 감각이 느껴진다.
아직 죽지 않았나보다.
그냥 죽여주면 좋겠는데.
소호는 많은 삶을 살은 건 아니지만 지금까지의 삶에 후회는 없었다.
어려서는 할아버지가 사랑을 해주셨고 커서는 아버지가 아낌없는 사랑을 베풀어주셨기 때문에 여기서 죽어도 미련은 없다.
다만 아버지가 걱정될 뿐이다.
소호는 나직이 할아버지를 불렀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대답이 없다.
소호는 지금 이 순간 할아버지가 너무나 보고 싶었다.
하다못해 목소리만이라도 듣고 싶었다.
다시 한 번 불러보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목소리가··· 듣고··· 싶어요.”
그러나 할아버지의 음성이 안 들린다.
감각은 느껴지는데 혹시 죽은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할아버지도 고문을 같이 받으셨나? 왜 대답을 안 하시지? 이제는 내 몸에서 떠나셨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아까 약을 먹였는데 내가 뭐라고 떠들었는지 모르겠다.
혹시 내가 아는 사실들을 다 말해버린 건 아닌지···.
그래봐야 자신이 암천에 대해서 아는 건 거의 없다.
지금까지 해왔던 임무를 물어보았다면 대답을 했을까? 기억이 안 난다.
그렇게 혼자서 생각을 끊임없이 하는 동안 몸의 감각이 다 돌아왔다.
하지만 아직도 몽롱하니 안개 속에 있는 것 같다.
철문이 열리는 소리가 나면서 예의 복면인들이 나타났다.
우두머리인 놈이 소리친다.
목소리가 너무 크게 들려서 시끄러워 죽겠다.
“이놈에게 분골착근을 실시해라.”
“존명!”
한 복면인이 소호에게 다가와 혈도를 누른다.
아프다. 너무 아파서 차라리 죽었으면 싶다.
아프다고 소리를 지르고 싶은데 목소리가 안 나온다.
목에서는 비명을 있는 대로 지르고 있는데 소리가 안 나온다.
“이놈 왜 비명도 안 질러? 약의 효과가 아직 덜 깬 거 아냐?”
“그럴 수도 있습니다. 물을 부어보겠습니다.”
소호에게 물통의 물이 쏴와와아 하며 머리부터 부어진다.
좀 살 것 같다.
물을 더 부어줬으면 좋겠다.
물 좀 더 줘!
다시 몸의 여기저기를 누른다.
아프다.
정말, 정말, 정말 아프다.
그런데 힘이 없어서 목소리가 안 나온다.
“이놈은 왜 비명을 안 지르지?”
“글쎄요. 약을 너무 많이 먹였나봅니다.”
“그럼 지금 약기운에 취해서 아픈 줄도 모르는 거 아냐?”
“거기까지는 저도···.”
“한번만 더 해보고 끝낸다.”
다시 복면인이 소호의 몸을 누른다.
“아···아······아아악··· 아프다···.”
“아픔을 느끼는데? 그런데도 말을 하지 않는 것이군. 좋아, 이제 끝내!”
복면인들이 다 나가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린다.
마지막에 이제 끝내라는 소리를 들었는데 그것이 무슨 뜻일까?
죽인다는 말인가?
그래, 더 이상 고통스럽지 않게 죽여줘.
아, 복면인들이 다 나간 게 아니구나.
한 놈이 남아있다.
칼을 높이 들고 묻는다.
“마지막으로 궁금하거나 하고 싶은 말 없나?”
“······ 제 아버지는··· 어떻게··· 되셨나요?”
“네 아버지는 살아계신다.”
“아! 다··· 행이다··· 어서 죽여··· 주세요.”
소호는 묻고 싶은 말 물어보고 대답을 듣고 기절을 했다.
꿈을 꾸었다.
아주 무서운 꿈이었다.
온 몸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것처럼 아픈 꿈을 꾸었다.
꿈이 깨려나보다.
아프지 않은 것을 보니.
살며시 눈을 떴다.
뿌연 시야 때문에 이곳이 어디인지 모르겠다.
아직도 꿈속인지 아니면 죽은 것인지.
눈동자를 움직여 보았다.
뿌연 시야가 조금씩 선명해진다.
깔끔한 방 침대에 누워있다.
손을 움직여보았다.
발가락도 움직여보았다.
다 움직인다.
몸이 아프지 않다.
근육통처럼 약간의 통증은 있지만 죽을 것만 같은 고통은 사라졌다.
비단 이불이 덮여져 있다.
태어나서 비단 이불은 처음으로 덮어본다.
여기는 또 어디일까?
그때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아버지가 들어오신다.
“소호야, 소호야! 이제 정신이 드느냐? 아버지다. 우리 소호 장하다, 장해! 흐흐흐흑··· 소호야, 고생 많았다.”
“아버지. 우리 지금 살아있는 거예요?”
“그럼. 살아있고 말고. 너는 특급살수가 되는 시험을 통과했다. 잘 참았어. 고생 많았지? 장하다, 장해!”
“마교도들이 쳐들어온 게 아니었어요?”
“아니다. 특급살수가 되는 마지막 시험이었다. 너는 잘 통과를 했고.”
“고문이 너무 아파서 죽고 싶었는데 그게 시험이었어요?”
“어쩔 수 없다. 특급살수가 되려면 마지막 시험은 누구나 다 통과를 해야 한단다. 아버지도 다 겪었던 시험이야.”
“그럼. 제가 이제부터 특급살수가 된 거예요?”
그때 문이 열리며 여러 사람들이 들어왔다.
천주님과 장로님들 그리고 군사님, 훈련 교관님, 미영누나, 시무아저씨, 정보각의 정보원들···
다들 침대에 누워있는 소호를 향해 박수를 쳐준다.
천주님이 대표로 말씀을 하신다.
“우리 암천 사상 18세의 최연소 특급살수에다, 최단기간에 특급살수로 올라선 15호. 고생했다. 충분히 특급살수의 자격이 있다. 앞으로 우리 암천을 위해 많이 도와다오.”
“정말··· 제가 특급살수··· 가 된 거예요?”
“그렇단다. 이제부터 15호가 아니고 이호다. 사숙부가 일호이고 너는 두 번째 특급살수니까 이호다. 이호. 기분이 어떤가?”
“······ 아! 정말··· 말로 설명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좋습니다.”
“그래, 나도 기분이 너무 좋다. 오늘 하루 푹 쉬면 후유증은 없을 거야. 약을 먹였다고 했지만 사실은 영약을 먹인 것이다. 비몽사몽간에 정신을 못 차리면서 잠을 자는 약이지.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정신력이나 충성심이 부족하면 특급살수로 올라설 수가 없단다. 그런 면에서 이호는 너무나 시험을 잘 통과했다. 이호! 오늘은 푹 쉬고 내일 보자.”
“네. 천주님. 오신 모든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소호는 시험을 통과했다는 말에 눈물이 나려고 한다.
살수는 눈물이 없어야 하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고 하는지··· 이러면 특습살수의 자질이 부족한 거다.
아버지가 한숨 자라고 하면서 방을 나가셨다.
혼자서 눈을 감으니 눈물이 옆으로 주르륵 흐른다.
소호는 할아버지를 찾았다.
[할아버지, 할아버지. 저 이제 특급살수가 되었어요.]
[그래, 안다. 잘 통과를 하더구나. 할애비를 어찌나 불러대던지 하마터면 대답을 할 뻔 했구나. 허허허···.]
[저 잘했죠? 고문을 당할 때 할아버지 목소리가 너무나 듣고 싶었어요. 할아버지 음성을 들으면 안 아플 것 같아서.]
[녀석. 할애비는 언제나 소호의 가슴에 있다고 했잖아. 다 듣고 있었다. 장하다, 장해! 이왕에 살수로 나섰으면 특급살수가 되어야지.]
< 고문을 당하다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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