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해빙궁 2
소호가 동굴에서 무사히 나오자 사람들은 환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
궁주가 가까이 다가와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었다.
소호는 동굴에서 있었던 일을 다 얘기해주었다.
궁주는 눈물을 글썽이며 ‘그 어린 것이 지금까지 살아있었다니‘하며 서러운 울음을 터트렸다.
북해빙궁의 규율이라서 어쩔 수 없이 어린 것을 동굴에 넣었는데 그 아이가 전설에 나오는 빙정을 얻을 아이인가보다.
아무도 가까이 접근을 못할 만큼 차갑다는 빙정을 아이는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았으니까.
내일은 음식을 좀 많이 싸달라고 했다.
아이가 음식을 아주 맛있게 잘 먹었다고 하니 궁주는 그거라도 할 수 있는 일이 있어서 좋은지 음식을 푸짐하게 준비하겠다고 한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싸준 음식을 들고 다시 동굴로 갔다.
오늘은 독을 내뿜지 않았다.
뿌연 연기가 가득찬 건 변함없지만 독은 없었다.
“아이야, 아이야! 어디 있니?”
[어이, 인간. 더 이상 아이야를 흔들지 마라.]
“어? 이무기. 너 말할 줄 아는구나. 그런데 왜 어제는 말하지 않았어?”
[시끄럽고 그냥 가라. 우리는 지금까지 조용하게 잘 지내고 있었어. 네가 오기 전까지는. 우리를 방해하지 말고 가라.]
“이무기. 너야말로 아이야를 붙잡지 마. 아이야는 이곳보다 밖에서 사는 것을 원해. 아이야는 어디로 간 거야?”
[사냥을 나갔다. 돌아오기 전에 그냥 갔으면 좋겠다.]
“안 가겠다면 어떻게 할 건데?”
[너를 죽일 수밖에.]
“뭐? 나를 죽인다고? 나를 죽여가면서까지 아이야를 붙잡고 있는 이유가 뭐야?”
[자꾸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가라. 아이야가 올 시간이 됐어. 아이야 앞에서 너를 죽이고 싶지 않아.]
“너 이제보니 아이야한테 뭔가 필요한 것이 있는 모양이구나. 아이야를 보호하려는 것보다 이용하려는 거지?”
[그건 네가 알바 아니고 어서 가라. 두 번 말하게 하지 말고.]
“못가! 아이야를 데리고 가야해.”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이무기가 똬리를 틀었던 거대한 몸통을 풀고 입을 쩍 벌리며 소호에게 다가왔다.
소호는 허공으로 몸을 띄워 이무기의 얼굴과 마주했다.
이무기는 침을 질질 흘리며 예의 그 붉은 안광을 쏘아댔다.
소호가 검을 빼어 이무기에게 겨누며 검강을 쏘았다.
이무기의 미간에 쏜 검강이 ‘팟파파파박’하며 불꽃이 튀었다.
아무런 상처도 주지 않았다.
이무기의 몸은 두꺼운 뭔가에 쌓여 있어 어지간한 것으로는 상처도 안 나나보다.
다시 한 번 검강을 쏘았다.
이번에는 머리 쪽으로.
역시나 불꽃만 튀기며 이무기는 멀쩡했다.
갑자기 이무기의 움직임이 빨라졌다.
쉭쉭쉭··· 쐐애애액··· 쿵쿵.
독을 뿜어가며 입으로 소호를 삼키려고 한다.
소호는 이무기의 약점이 어딘가에 있을 것이라고 생각해 이곳저곳을 찔러본다.
그렇게 이무기와 한판을 하고 있는데 아이야가 돌아오는 소리가 난다.
갑자기 이무기가 조용해졌다.
아이야한테 싸우는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뜻인 것 같다.
“이무기, 뭐야? 싸웠어? 동굴에 웬 독이 이렇게 많아?”
“······!”
소호가 손을 휘둘러 독을 몰아냈는데도 남아있는 독이 있었나보다.
그런데 아이야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했다.
“형은 오늘도 왔네? 진짜로 올 줄은 몰랐는데.”
“아이야, 너는 독에 중독되지 않아?”
“응. 괜찮아.”
“아이야, 오늘도 맛있는 거 많이 싸왔어. 먹을래?”
“응. 지금 배고파. 먹을래.”
소호는 입구에 놓아둔 음식들을 탁자에 올려놓았다.
탁자에 가득히 음식을 차려놓으니까 얼음으로 된 젓가락으로 하나씩 집어 먹는다.
음식을 하나 집어서 이무기한테 주었지만 이무기는 먹지 않았다.
음식을 넉넉히 싸왔기 때문에 먹다가 남았다.
“아이야, 남은 음식은 이따가 또 배고프면 먹어.”
“응.”
“사냥 나갔었다며? 뭐 잡았어?”
“칫, 늑대를 잡았는데 놓쳤어. 늑대무리들이 달려드는 바람에. 에잇, 아까워.”
“늑대고기 대신에 다른 음식을 먹었으니까 됐지 뭐.”
“그래도 거의 다 잡았는데.”
“그런데 이무기가 너한테 잘해주니?”
“어? 그게 무슨 말이야?”
“이무기가 늘 너한테 친절하냐고?”
“음······ 가끔 심통을 부릴 때도 있지만 내가 원하는 것은 다 해줘.”
“형이 생각할 때 이무기가 아무래도 너한테 뭔가 원하는 게 있는 것 같아. 그게 뭘까?”
[인간, 너 자꾸 아이야랑 이간질 시킬래? 너 정말 죽여줄까?]
“죽일 수 있으면 죽여봐. 네 눈에 내가 굉장히 멍청해 보이나보다. 아까는 아이야가 언제 올지 몰라 최선을 다하지 않았는데 한번 제대로 붙어볼까?”
[인간, 넌 죽어야겠다. 어지간하면 아이야 앞에서 너를 죽이지 않으려고 했는데···.]
“무슨 소리야? 여기에서 죽은 사람도 많다던데. 새삼스럽게 지금까지 사람을 한 번도 안 죽인 척하네? 네 목적이 뭔지 알겠다. 너 빙정을 원하는 거지? 빙정을 그냥은 못 삼키니까 아이야를 매개체로 해서 삼키려는 거지. 맞지?”
“형. 그게 무슨 소리야? 이무기가 빙정을 원한다고? 이무기! 빙정을 원해? 그럼 줄게.”
“아이야, 빙정을 그냥은 못 삼켜. 네가 희석을 해줘야 해.”
“희석을 해야 된다고? 어떻게?”
“글쎄. 나도 잘은 모르지만 네가 빙정을 먹으면 안에서 녹을 테고 그러면 너를 잡아먹지 않을까? 그리고 용으로 승천을 하려고 하는 것이고. 어때? 이무기. 내말이 맞아?”
“크르르르릉··· 쿠와와와왕··· 캬아아악.“
이무기가 소호에게 꼬리로 한방 날린다.
소호는 얼른 몸을 띄워 이무기의 턱을 검으로 찔렀다.
아··· 검이 안 들어간다.
그렇다면 저 붉은 눈을 찔러야겠다.
소호가 마음을 먹고 검을 높이 드는데 아이야가 비명을 지른다.
“그마아아아아아안!!!! 이무기. 왜 그러는 거야? 너 정말 나한테 필요한 것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말해. 줄 테니까.”
[아이야, 그··· 그런 게 아냐. 저 인간이··· 너랑 나를 이간질 시키려는 거야. 내가 아이야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잖아.]
“그런데 왜 싸워? 정말 빙정을 먹은 나를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야?”
[아이야, 저 인간이 와서 너랑 내가 말다툼을 하잖아. 저 인간 놈 가라고 해. 난 아이야랑 같이 있으면 돼. 다른 인간은 필요 없어.]
“아니, 난 저 형이 좋아. 맛있는 음식도 가져오고 말도 시키고··· 물론 이무기 너도 좋지만.”
“아이야, 이무기는 용이 되려고 해. 어제 물어봤을 때 999년을 살았다고 하더라. 이제 일 년도 안 남았어. 용으로 승천하려면. 그런데 용으로 승천하려면 저 빙정이 필요할 거야. 하지만 직접 삼키지를 못하지. 너무 차가워서 목으로 넘어가는 순간 내장이 다 얼어붙으니까. 그래서 희석할 매개체가 필요한 거야. 네가 어릴 때 들어와서 빙정에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알고 너를 키운 거야. 이제 얼마 안 있으면 빙정을 네게 먹으라고 할 거야. 그리고 빙정이 완전히 녹은 상태의 너를 잡아먹고 용이 되려고 할 걸? 이무기. 머리를 참 잘 썼어. 아이야가 어리니까 말도 잘 듣고 말이야. 이 시커먼 속을 가진 놈아!”
“이무기. 저 형이 말하는 게 사실이야? 네가 나를 잡아먹으려고 했어? 정말로··· 날 죽이려고··· 했어?”
아이야는 눈물을 글썽이며 이무기를 쳐다본다.
이무기는 아이야를 쳐다보았다 소호를 쳐다보았다, 눈이 왔다갔다 정신이 없다.
이무기가 아무리 시커먼 속을 지녔어도 사람의 머리를 따라오지는 못한다.
아이야는 아직 어리고 순진해서 먹혔을지 몰라도 소호에게는 어림 반 푼 어치도 없다.
소호가 어른 주먹만한 빙정을 아이야에게 먹어보라고 하자 아이야가 입으로 빨면서 깨물면서 먹었다.
이무기는 심통이 났는지 소호에게 달려든다.
소호가 천장으로 올라가 백회혈이 있는 곳을 검으로 내려 꽂았다.
“쿠아아아앙!”
이무기도 백회혈이 약한 가 보다.
아프다고 소리 지르는 것을 보니.
그러나 백회혈이 약점은 아니다.
역시 붉은 눈이 약점인 것 같다.
소호가 검으로 이무기의 눈을 향해 검강을 쭉 뻗어냈다.
한자도 넘게 뽑아낸 검강이 이무기의 눈에 닿았다.
이무기는 기겁을 하며 눈을 감았다.
감은 눈과 상관없이 계속 이무기의 눈을 노렸다.
이무기는 그 큰 몸을 벽에다 부딪히며 동굴을 부술 듯이 난리를 피워댔다.
아이야가 이무기의 난동에 벽쪽으로 날아가 부딪혔다.
소호가 얼른 아이야를 잡았다.
벽으로 뚫고 들어가려는 아이야를 잡아 한 구석에 앉혔다.
이무기는 실눈을 뜬 채, 고래고래 괴성을 질러가며 소호를 죽이려고 한다.
소호가 십성의 공력을 담아 이무기의 눈을 찔렀다.
“타앗! 이래도 멀쩡한지 어디 보자.”
이무기의 눈만 계속 공격을 하자 눈을 못 뜨는 이무기는 동굴을 무너뜨릴 듯이 발광을 한다.
역시나 소호의 생각이 맞았다.
이무기는 용이 되기 위해 아이야를 키운 게 맞다.
아이야가 빙정에 아무런 해를 입지 않은 것을 보고 어릴 때부터 키운 것이다.
아이야의 마음이 얼마나 아플까.
어미한테 버림을 받고 이무기한테 배신당하고.
이무기를 공격하는 틈틈이 아이야를 쳐다보았다.
아이야는 울면서 통곡을 하고 있다.
이무기는 아이야가 울던 말든 발광을 떨기 바쁘고.
소호는 이제 마지막 공격을 남겨 두었다.
태극무적검을 천마검으로 펼치려고 한다.
태극무적검 제 사초식 폭뢰검!
“츠츠츠츳 쾅쾅쾅!!!”
이무기의 몸통이 찢어졌다.
이번에는 제 육초식 천왕검!
“쿠쿠쿠르르릉 팡파바바박 쾅쾅!!!!”
드디어 이무기의 얼굴이 터졌다.
눈을 제대로 다쳤는지 양쪽 눈에서 피가 흘러내린다.
이무기가 더 요동을 치니까 동굴의 벽에서 얼음과 돌들이 떨어진다.
소호는 아이야를 번쩍 안아서 들고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떨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도 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 아이야를 안고 밖으로 나가자 궁주가 얼른 다가와 아이야를 안는다.
아이야는 그때까지 울고 있었다.
궁주가 아이야를 품에 안고 동굴에서 떨어져 궁 쪽으로 달려간다.
소호는 이무기가 힘이 다할 때까지 기다렸다.
한참을 발광하던 이무기가 힘이 다했는지 쌕쌕거리며 거친 숨을 쉬었다.
소호가 다시 동굴로 들어가 이무기를 보았다.
몸통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고 얼굴은 반이나 박살이 나서 떨어져 나갔다.
이무기의 몸통에서 빛이 난다.
소호는 이무기의 몸통으로 다가가서 빛이 나는 게 뭔지 바라보았다.
어른 주먹만한 구슬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소호는 저게 이무기의 내단인가보다고 생각했다.
내단을 꺼내어 피를 닦아 자세히 보니 영롱한 구슬이었다.
소호는 내단을 주머니에 넣고 이무기의 눈을 바라보았다.
눈이 감겨있어 어떻게 되었는지 잘 모르겠다.
그러나 계속 붉은 피가 흘러내린다.
검으로 눈을 찔러보았다.
아직 살아있는지 움찔거린다.
만약을 위해 검으로 다시 한 번 눈을 힘차게 찔렀다.
“카아아아아악 캭캭캭!!!”
마지막 발악을 하듯 괴성을 지르더니 털썩하고 쓰러진다.
숨소리가 안 들린다.
이제 진짜로 죽었나보다.
소호는 오랜만에 전력을 다해보았다.
내공을 십성으로 쓸 일이 그동안 없었다.
오늘 이무기에게 십성 공력을 썼다.
그래도 움직일 힘은 남아 있었다.
소호가 궁으로 들어가자 궁은 궁대로 난리가 났다.
아이야가 새파래진 얼굴로 덜덜 떨면서 온 몸이 차갑다고 한다.
아마 빙정을 먹어서 그런가 싶다.
소호가 아이야를 앉히고 등뒤로 가서 진기를 유도했다.
아이야의 단전에 빙정이 가득 들어차있다.
아직 녹이지를 못해서 그런 것 같다.
모두들 나가라고 하고 아이야와 함께 빙정을 녹이기로 했다.
“아이야, 형이 유도하는 대로 따라와. 절대 입을 열지 말고. 알았으면 고개를 끄덕여.”
아이야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직 정신을 잃은 건 아닌가보다.
소호가 태극조화심공의 심법으로 양단화의 따뜻한 진기를 유도하자 단전에 있던 빙정이 따라 나온다.
온 몸을 구석구석 휘돌게 한 후 온 세맥과 혈도를 몇 번씩 돌게 했다.
빙정이 조금씩 녹기 시작했다.
기경팔맥을 다시 돌게 하며 빙정을 녹이도록 했다.
그리고 이왕에 손을 댔으니 임독맥을 뚫어주려고 빙정의 진기를 백회혈로 유도했다.
손의 감각으로 머리에서 ‘쿵쿵’ 거리며 임독맥을 뚫고 있다.
아이야는 입을 꼭 다물고 참고 있다.
몇 번의 ‘쿵쿵’ 소리가 들리더니 ‘쿠왕’하는 큰 소리가 진동으로 느껴진다.
드디어 임독맥을 뚫었다.
아이야는 기절을 했는지 몸이 옆으로 쓰러진다.
소호가 아이야의 몸을 잡아 침대에 뉘였다.
이불을 덮어주고 방을 나왔다.
빙정을 다 녹인 건 아니지만 아이야가 북해빙궁의 무공을 익히면서 심법을 운영하면 남은 빙정은 녹아서 내공으로 체화될 것이다.
소호는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이무기와 씨름을 했지 빙정을 녹인다고 남은 내공을 다 써버려서 손발이 벌벌 떨릴 지경이다.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다.
방에서 나오자 궁주는 어떻게 되었냐는 물음을 눈으로 했다.
빙정을 반 이상 녹였고 임독맥을 뚫었다고 하자 눈물을 주르륵 흘리며 감사하다고 한다.
소호가 잠시 쉬었으면 한다고 했더니 손님이 묵는 전각으로 안내해 방에서 운기조식을 하며 빠져나간 내공을 채웠다.
< 북해빙궁 2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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