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준비와 기회가 만날 때.1
퍼펑- 펑! 펑!
" 허.허헉. "
윤손은 비지땀을 흘리며 바위산 아래에 장풍을 쏘아대고 있었다. 자신이 태어나서 이렇게 힘들게 노동을 해 본 적이 언제였던가. 그것도 파도 파도 나오지 않는 지하수를 찾아야 하니.
흙먼지가 가라앉자 주위의 풍경이 보였다. 바닥에는 커다란 구멍이 군데군데 뚫려 있었고 민충의 혈왕귀미들이 구덩이로 내려가는 것이 보였다.
" 정말 여기가 확실한 겁니까? 허.허헉. "
대뜸 소리를 질러본다. 새벽같이 일어나 하루종일 바위산에서 땅을 파고, 저녁이 되면 홍인들과 기형수를 잡으러 뛰어다녀야 하니. 아무리 힘이 넘친다고 하더라도 계속되는 노동에 삭신이 노근노근 안 쑤시는 데가 없었다.
한번 작은 주군에게 밉보인 것이 이런 피해를 가져올 줄이야. 그렇다고 이미 그의 고귀한 신분을 알았으니 명령을 안 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입을 꾹 다물고 있자니 심력의 소모가 만만치 않다.
" 소교... "
" 쯧- "
나천우가 눈살을 찌푸리자 윤손이 급히 말을 바꾼다.
" 공자님. 언제까지 이렇게 해야 하는 겁니까? "
" 내가 됐다고 할 때까지. "
" 공자님! "
" 뭐해! 빨리 빨리 움직여. "
팔짱을 끼고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곳 저곳 손가락질을 한다. 가르킨 곳을 파란 소리였다. 그의 눈빛에는 교육을 제대로 시키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담겨 있었다.
" 그럼 그렇게 가만히 계시지 마시고 한팔 거들어 주셔야지, 왜 혼자만 놀고 계십니까? "
그래도 용기를 내어 발악을 해 본다. 작은 주군은 주군이고 일단 자신부터 살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함구령을 내리셨으니 부복하고 예를 차려 수하로 인정받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모른척 할 수도 없으니, 겨우 눈치를 살피며 존칭을 쓰고 있었던 것인데.
작은 주군은 그걸 알면서도 계속 모른척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하루빨리 흩어진 신교의 세력을 모아 천의맹을 칠 계획을 세워도 모자랄 판국인데 언제까지 저러고 계실 것인지.
" 내가 지금 노는 것으로 보여? 난 생각할게 많아. 정신적인 노동이 육체적인 노동보다 더 힘든 법이다. 그리고 애완수는 장풍에 특화되어 있다며. 힘 놔뒀다 뭐해. 여기서 나가기 싫어? "
" 아니 누가 나가기 싫어서 이럽니까! 언제까지 이렇게 무작위로 땅을 파고 동굴을 쑤셔 대야 하는지 답답해서 그러지요! 그리고, 왜 저만 이 넓은 곳을 다 파야 합니까! "
" 잔말 말고 파라면 파! "
나천우의 미간이 좁혀지려고 한다.
" 으으윽. "
알 수 없는 신경전을 벌이는 나천우와 윤손의 곁으로 명진이 슬그머니 다가왔다. 얼굴이 벌게진 윤손이 구원을 바라는 눈길로 그를 쳐다본다.
명진도 새벽 댓바람부터 계속 동굴 바닥에 장풍을 쏘아대고 있었으니 윤손의 마음이 십분 이해가 되었다. 허나 주인의 성정을 잘 아는지라 이럴 때는 그저 고개를 숙이고 나 죽었소라고 하는게 제일 낫다는 그 나름대로의 방비책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윤손에게 한마디 조언을 해 주려 다가갔는데 주인이 강력한 눈빛으로 자신을 쏘아본다. 여기서 입을 열면 너도 저 꼴을 당할 것이다라는 뜻을 강하게 담고 있었으니. 그저 한숨을 쉬며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나천우는 돌아서는 명진을 흐뭇하게 쳐다보더니 윤손에게 이곳 저곳 가르키며 계속 땅을 뚫으라 명령을 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절로 한숨이 나온다.
" 명진. 뭐해 저쪽도 계속 파! "
" 네! "
주인의 명령대로 땅을 파느라 장풍을 얼마나 쏘아댔는지 자신이 익힌 신악장풍권을 대성하게 되었다. 동굴에서 지하수를 찾다 무공을 대성하게 되었다면 사람들이 웃을 일이었지만 사실이었다. 그만큼 엉덩이 붙일 새도 없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회색빛 천녹초가 피어 있던 동굴에서 가져온 종령석유를 복용해 내공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으니. 한 방울에 2년이지만 그래도 한달 가까이 열심히 마셔댔으니 이제 어느덧 3갑자에 다다르고 있었다. 그나마 그 내공이라도 있어 버틸 수 있는 것이리라.
한쪽에서는 기목성이 Y자 모양의 버드나무 생가지와 ㄱ자 쇠막대를 들고 여기 저기 걸어다니며 요상한 행동을 하고 있었다.
쇠막대는 홍인에게서 얻은 장검을 삼매진화의 응용으로 녹여 막대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물길을 찾는 도구라고 했다. 얼마나 용을 쓰고 녹여 댔던지 드디어 삼매진화의 새로운 이치를 깨닫게 되었다.
" 헉.헉. 기영감님. 그 버들가지가 정말 효과는 있는 겁니까? "
기목성이 가르킨 방향으로 연신 장풍을 쏘아대던 명진이 물었다.
" 모든 것에는 자연의 기운이 깃들어 있는 법이네. 수맥도 마찬가지고. 이 버드나무 가지는 지하에 흐르는 물길에 반응을 한다네. 이렇게 평행 상태로 있다 수맥의 기운으로 균형이 깨지면 흔들리게 되는 것이지. 그것은 그곳 아래에 물이 흐르거나 광물질이 있거나 커다란 동공(洞空) 등이 있기 때문이라네. "
" 광물질이나 동공은 잘 모르겠지만, 그런데 왜 아직 지하수를 찾지 못하는 겁니까? 이러다 나가기도 전에 지쳐서 죽겠습니다. "
" 기다려 보게나. 그게 그렇게 쉬웠으면 세상에 가뭄이 왜 들겠나.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네. 험험. "
기목성은 쇠막대와 나뭇가지를 들고 여기 저기 옮겨다녔다.
" 그러지 마시고 좀 정확하게 짚어 주십시오. "
" 엄살은 여전하구먼. 그래도 자네 주인이 방향을 잘 잡았으니 곧 여기서 나갈 수 있을 게야. 좀 더 힘을 내어 보시게. "
" 휴- 알겠습니다. "
퍼어엉. 펑펑-
양손을 앞으로 뻗고 내기를 끌어올리니 사방으로 폭음 소리가 들렸다. 녹초산에서 돌아와 삼주야가 넘게 땅만 파고 있으니, 그의 실력은 하루가 다르게 고절한 경지에 올라서고 있었다. 그렇게 몇시진은 바람같이 흘렀고, 그늘에서 쉬고 있던 나천우가 명진을 불렀다.
" 명진. "
" 네. "
" 물길은? "
" 물길은 고사하고 정말 저 밑에 물이 흐르는지도 잘 모르겠습니다. "
" 너무 한 곳만 파지 말고. 기노인이 알려준 위치에서 범위를 넓혀서 작업해. "
" 네. 그런데 정말 이 동쪽 바위산 아래에 지하수가 흐를까요? "
" 지금 이곳은 진법의 변형으로 사방 하루거리이상 나아가지 못해. 우리가 중앙섬에 있는 마을에서 하루를 왔으니 이곳이 진법의 끝이야. 이 안에서는 바위산을 만나면 길이 끊어진다고 했잖아. 이 바위산 전체가 대기의 기운을 비트는 진법이라면 올라가 봐야 소용 없어. "
" 그렇긴 하지요. 바위산을 타고 올라가도 길이 없다고 했으니. 휴- 그런데 이곳에 지하수가 흐른다는 것은 어떻게 아셨습니까? "
" 큰 호수라고는 중앙에 있는 호수가 전부야. 그런데 이곳 나무들은 너무 잘 자라고 있어. 아무리 비가 온다고 해도 이 정도 수림을 유지하려면 많은 물이 필요하지. 분명 이곳에 수맥이 흐르고 있을 거다. "
" 정말 그랬으면 좋겠습니다. 벌써 삼주야나 파고 있는데 우물 하나 찾지 못하고 있으니. 이제 조만간 오도미 육포도 떨어질 겁니다. 그런데 왜 하필 동쪽 바위산 아래입니까? "
" 우리는 백목곡 동쪽 협곡으로 나가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이곳에서 북서쪽으로 방향을 잡아야 하고. "
" 그럼 이곳이 북서쪽으로 연결된 바위산이란 말씀입니까? "
" 그래. 지금은 다른 쪽 지하수를 찾아 볼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다. 무조건 여기서 찾아야 해. 그러니 힘들더라도 잘 찾아봐. "
" 네. 그런데 북서쪽으로 가야 한다면서 왜 동쪽 바위산에서 작업을 하십니까. 서쪽이면 저 반대편 아닙니까? "
" 저 쪽이 서쪽이라는 것은 어떻게 알지? "
" 그거야 해가 동쪽에서 뜨고 서쪽으로 지니깐 그런거 아닙니까? "
" 해가 뜨고 지는 것을 정확히 목격했어? "
"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냥 제 느낌에... "
명진이 가만 생각해 보니 정확히 본 것은 아닌 것 같았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하늘을 봤지만 그것이 정확한 방향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었다.
" 해로 방향을 잡는 것은 어려워. 구름에 가리기도 하고, 잠시라도 때를 놓치면 어느새 하늘 한 편에 자리잡고 있지. 그래서 길을 찾을 때는 해를 보고 방향을 가늠하지 않는다. "
" 그럼 어떻게 방향을 찾습니까? "
"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잡는 거야. 별자리는 항상 똑같은 자리에 머물러 있어. 계절마다 나타나는 별들이 다르니 해보다 더 정확하게 방향을 알 수 있지. "
" 네. 그런데 언제 천문학까지 공부를 하셨습니까. 대단하십니다. "
" 돌아가면 사기(史記/역사서)를 줄테니 읽어봐. "
" 아- 괜찮습니다. 보나마나 제 팔뚝보다 더 두꺼운 서책일 텐데. 정중하게 사양하겠습니다. "
" 사기를 다 읽을 필요는 없어. 그 중 천관서만 보면 될 테니. "
" 그래도 사양하겠습니다. "
" 그럼 소주천문도(蘇州天文圖)를 봐. 사기보다는 어렵지 않을 거야. "
" 아니 주인. 이곳까지 와서도 그 서책 타령이십니까. 소주천문도인지 대주천문도인지 제가 본다고 뭘 알겠습니까. 그냥 주인이 보시고 필요할 때 알려주시는 것이 더 낫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
이쯤되면 서책을 읽는 것 대신 다른 것을 요구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무런 말이 없자 의아한 듯 그를 쳐다보았다.
' 사기라... '
사기의 사상은 하늘의 도(道)라는 것은 옳은 것인가, 그른 것인가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하늘의 도리, 즉 세상에서 이루어져야만 하는 올바른 길이라는 것이 정말 존재하기는 하는 것인가를 묻고 있다. 문득 사기가 질문하는 내용의 답을 천만지옥에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무인의 본능이다. 그러니 그 기반이 되는 내공을 지키고자 함은 당연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육을 취해야 하니 태연히 살인을 자행한다. 녹안인은 약자이기에 희생당한 것이고, 홍인이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생존을 위한 것, 살아남기 위한 인간의 본능이란 말인가? '
개운치 않은 마음에 물끄러미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 결국 무인의 본성은 짐승과 다를 게 없다는 말입니까? '
힘이 지배하는 강호. 약자의 희생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이다. 그들의 희생을 희생이라 여기지 않고 대의를 위한 수단이라 말하고 있다.
그러고보니 자신도 그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원하는 것을 취하고자 타인을 배려한 적이 없었으니. 무공서를 훔쳐 익힌 일만 해도 그렇다. 그것 또한 필요에 의해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닌가. 자신도 천생 강호의 때가 묻은 무인이라 생각하니 한숨이 절로 나온다.
천만지옥에 떨어진 사람들. 저들 또한 아버님이 내세운 대의에 희생된 자들이다. 그에게 대의는 강해지는 것이니, 그로 인한 희생은 눈여겨 보지도 않았겠지. 허나 그 희생이, 약한자의 서글픈 삶이 지금 자신의 눈앞에 보이고 있으니. 왠지 기분이 씁쓸하다.
어느덧 해가 고개를 숙이자 어둠이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 무슨 생각을 그리 하십니까? "
" 명진, 옳고 그름의 차이는 무엇이라고 생각해? "
" 그렇게 어려운 것을 물어보시면... 글쎄요. 옳고 그른 것은 잘 모르겠지만 자신의 삶에 충실하는 것이 옳은게 아닐까요? "
" 그럼 무인이 강해지고자 하는 것은 그들의 최선일까? "
" 무인이니 강해지고 싶은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지요. 그럴려면 더 높은 무공이 필요하니. 항상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 하는거 아니겠습니까. 그러니 무인이 무공에 욕심을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아닙니까? "
" 욕심은 인간이 가진 본능이다. 먹고자 하는 것, 자고자 하는 것, 강해지고자 하는 것. 하늘의 말처럼 본능에 충실하며 살아가고 있어. 허니 그것을 탓할 순 없다. 하지만 타인을 짓밟고 그것을 얻으려고 하는 것은 인간의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야. 강해지고자 하는 본능에 충실했다고 다 용서받을 수 있는 것은 아니란 말이지. "
" 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그럼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먹으면 용서받을 수 없다는 소리십니까? "
" 명진. 난 사람이기에 지켜야 할 것이 있다고 믿는다. 그것이 짐승과 사람이 다른 이유일 테니. 강해지고자 하는 마음을 탓하는게 아니다. 그것을 이루기 위한 수단과 방법에서 도의(道義)를 지켜야 한다는 소리야. "
" 그럼 길을 찾으면 녹안인들은 어떡하실 생각이십니까? "
" 녹안인? 그걸 왜 나한테 물어! "
답답한 마음에 인상이 절로 구겨진다.
" 아.아니 전 그냥 도의를 찾으시길래... 쩝- "
" 쯧- 생각중이다. "
말은 그렇게 하였으나 신경이 쓰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무공을 잃은 그들로써는 깊은 물길 속에서 몇 호흡도 참아내지 못할 것인데. 그리고 길이를 알 수 없는 지하수를 통해 밖으로 나갈 때까지 견딜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녹안인들은 이곳을 나가면 치료는 가능할까. 그러나 천녹초를 구하지 못한다면 그들이 어떻게 변화할지 알 수가 없으니.
나천우의 미간이 좁혀졌다. 이곳을 나갈 것이라 무견에게 말을 했고 그는 마을 주민들에게 그것을 알렸다. 무공을 잃었으니 선택은 그들이 해야 한다. 목숨을 걸고 지하수를 통해 밖으로 나가던지, 아니면 이곳에 남아 여생을 보내야 하는데.
' 결국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것인가? '
심난한 장고에 잠겨있는 나천우의 한편에서는 윤손과 기목성이 눈빛을 빛내며 은밀히 전음을 주고 받고 있었다.
- 소교주가 아닐 수도 있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 기억을 잃었다고 하시더군.
- 그럼 구천인환멸세공을 완성할 수 없다는 말인가?
- 영천신룡을 품은 것은 사실이나 그것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아직 장담하지 못하네.
- 소교주가 아니라면 어찌 영천신룡을 품을 수 있겠나. 자네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게야?
- 소교주든 아드님이든 상관없네. 나현도를 없애기 위해서는 하루빨리 흩어진 신교의 세력을 다시 모아야 해. 그러기 위해서는 구심점이 필요하네. 천우총으로 가 그것을 시작해야 할 걸세.
- 그럼 일천흑귀를 찾아야 대제님의 친 혈육을 확실히 알 수 있다는 말이로군.
- 그렇네. 공자님이 소교주님이라 생각은 하지만, 너무 무르시네. 나현도의 손아귀에서 13년을 사셨으니 천의맹과 연이 너무 깊어. 그러니 결단을 못 내리시는 게지. 일단 천우총으로 데려가야 해. 그곳에서 옛것을 보시면 혹 기억을 찾을 수도 있지 않겠나. 분명 대제님의 뜻도 그곳에 남겨져 있을 걸세. 그리고 고육천도 천우총을 알고 있으니 그곳에 가면 그의 행방도 알 수 있을 테고.
- 저 녀석이 순순히 따라오겠는가?
- 껄껄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야지.
장고에 잠겨있던 그의 곁으로 기목성이 다가왔다.
" 소교주님. "
" 그리 부르지 말라고 했을 텐데. "
" 이곳을 나가면 어디로 가실 생각이십니까? "
역시 능구렁이처럼 자신을 떠 본다. 분위기를 먼저 살피는 것이 노련한 책략가의 모습이다.
" 생각중이야. "
" 소신이 천우정예총(天宇情譽塚)으로 모시겠습니다. "
" 내가 갈 길은 내가 정한다. "
그 대답을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기목성은 차분한 음성으로 다시 말을 이었다.
" 그 곳에 가면 다섯 아드님이 왜 같은 이름을 사용하셨는지 알 수 있지 않겠습니까? "
기노인의 그 한마디에 미간이 좁혀진다. 늙은 여우가 반달눈을 해 가지고 슬금슬금 비위를 맞추길래 뭔가 노림수가 있겠거니 했는데. 천우총이라니. 그곳은 대제의 아들이 죽어 묻혀 있다는 곳이 아닌가. 분명 자신을 엮으려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그것을 거부할 수 없게 만드니.
"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
' 훗. 내 신경을 자극하시겠다? 신마현은 4명의 양자와 소교주에게 같은 이름을 사용하게 했다. 분명 구천인환멸세공과 관련이 있는 것 같은데... 흠. '
" 천우총이라? 이름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군. "
생각과는 다르게 그의 표정은 무덤덤하기만 했다.
" 대제님께서 아드님을 많이 아끼셨으니 분명 그곳에 무언가 안배를 해 놓으신게 아닐까 하는게 소신의 생각입니다. "
" 천우총은 어디에 있지? "
" 감숙성에 있습니다. 소신이 안내하겠습니다. "
기목성이 승리의 미소를 짓는다.
" 생각해 보지. "
" 네. 그럼 이곳을 나가는 대로 준비하겠습니다. "
" 생각해 본다고 했지 간다고 한건 아니다. "
" 네 소교주님. "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고는 천연덕스럽게 돌아서서 윤손에게로 걸어갔다. 그 뒷모습을 바라보는 나천우의 눈빛이 기묘하게 빛났다.
' 천우총으로 데려가겠다? 흠... 분명 숨겨진 의도가 있을 텐데. '
하지만 부딪히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아낼 수가 없다. 그곳에서 구천인환멸세공에 대한 실마리를 찾는다면 그것도 나쁘지 않으니.
Comment ' 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