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정은 늘 어려운 법이지.3
" 천이영산이 뉘 집 밥그릇만 한 줄 아느냐. 신교에서 살았던 7살 사내아이의 행방을 노부가 어찌 안단 말이냐? "
" 13년 전 맹주가 데려간 아이다. 잘 생각하고 말해! "
나천우의 동공이 점점 어두워졌다. 불안한 예감이 가슴에서 소용돌이 친다. 끓어오르는 답답함을 멈출 수가 없었다.
" 네가 누구인지 먼저 밝히고, 찾고자 하는 이유라도 말을 해 보거라. "
" 묻는 말에나 대답해! "
" 정 궁금하다면 나현도에게 직접 물어봐야지. 왜 나에게 닦달이냐? 천의맹으로 끌려 간 사내아이가 어디 한둘인 줄 아느냐? 버르장머리 하고는. 쯧- "
윤손의 얼굴은 점점 붉어지고 있었다. 좋게 말을 하려고 해도 자꾸 살기를 뿜어대니.
" 천의맹에 끌려 간 신교 사람들 중 7살 사내아이가 있었는가? "
" 끌려간 사내아이가 한둘이 아니거늘. 흠... "
윤손이 잠시 장고에 잠겼다. 분명 자신의 기억에 같이 잡혀온 아이들이 여럿 있었다. 허나 그 아이들이 사내인지, 나이가 몇인지 다 기억하지 못한다.
" 잘 생각해 봐! 분명 13년 전 천이영산에서 천의맹으로 간 사내아이다! 그가 누군지, 어디서 살던 자인지, 왜 거기서 살았는지, 말해! 당장 말하라고! "
나천우의 폭발적인 성토에 동굴이 울리기 시작했다. 윤손을 만나면 답답한 마음이 풀릴 것이라 믿었는데. 오히려 혼돈만 생겼다. 느낌이 좋지 않다. 활화산처럼 솟구치는 천불을 참을 수가 없다.
' 젠장. '
자신도 끌려 온 자가 아닐까 의심스러웠다. 모든 정황이 그렇게 말해주고 있다. 하지만 자신은 나씨 성을 가지고 있지 않는가.
윤손의 말대로 나현도가 목적이 있어 끌고 온 것이라면 감옥에 갇혀 있거나 노비로 살았어야 했다. 하지만 자신은 소공자로 승용각에서 살았다. 비록 엄하게 대하기는 했으나 무엇 하나 부족함 없이 살아왔거늘.
만난지 며칠도 안된 저자의 말에 의존해 섣부른 판단은 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의 직감이 계속 머리를 두드려 댄다.
아버님과 형님은 영천신룡의 힘을 얻고자 했다. 어쩌면 그 때문에 자신을 사육했는지도 모른다. 허나 백도강의 말로는 밖에서 데려온 자식이라 하지 않았는가. 자신의 힘을 얻고자 했다고 친부가 아니라 확정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모든 것이 분명해 지려면 왜 자신에게 영천신룡이 새겨져 있는지 그것을 밝혀내야 한다. 그래야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알 수 있을 테니.
" 나현도가 자신이 끌고 간 사내아이의 부모라도 찾아주라 하더냐? 정신차리거라 이놈아. "
" 그 입 함부로 놀리지 마라. "
나천우가 살기 띤 목소리로 소리쳤다. 신분을 밝히지 않았으니 윤손은 쉽게 입을 열지 않았다. 그렇다고 처음 본 자에게 자신의 사정을 하나하나 고하고 도움받을 생각 따위는 없었다.
" 천만지옥까지 찾아 온 이유가 고작 7살 사내아이의 행적이라니... 쯧쯧쯧- "
그는 자신을 통해 무엇인가를 알아내려 한다. 그가 누구인지도 모르는데 신교의 비밀을 말해 줄 수는 없다. 천이영산에서 끌려간 사내아이의 과거를 뒤져 숨겨진 무공서를 찾으려 하다니. 자신이 아는 한 이 강호에 그런 짓을 할 사람은 나현도 밖에 없었다.
" 나현도에게 어떤 정보를 가져다 준다고 해도 결국 네 놈은 죽는다. 천만지옥까지 들어와 알아 볼 정도라면 분명 그 뒤에는 엄청난 무공서가 숨겨져 있을 것이다. 그런 정보를 아는 자를 살려 둘 것 같으냐? "
" 무공서? 나현도가 무공서를 찾고 있었나? 천이영산을 공격하고 가져간 무공서가 뭐였지? "
그의 눈빛이 태풍에 흔들리는 꽃잎처럼 요동치고 있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벌떡거린다.
" 바보같은 놈. 꼴을 보아하니 나현도가 훔치려는 무공서의 뒤를 캐러 온 모양이군. "
" 닥쳐! "
휘리리릭-
나천우의 신형에서 뻗어나온 귀사살이 윤손의 목을 휘어 감았다.
" 크아아악- "
윤손은 두 손으로 목을 부여잡았다. 어느새 휘감긴 귀사살에 그의 동공이 열리기 시작했다. 이런 엄청난 힘이라니. 탈태가 끝난 상태라 몸이 약해졌다고는 하나 내공까지 없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그 힘을 감당해 내지 못하고 버둥거리고 있으니.
" 크-어억. "
" 말해! 말하라고! 맹주가 강탈해간 무공이 뭐였냐 말이다! 어서 말해! "
나천우의 텅 빈 가슴에서 불꽃이 솟아 올랐다. 아니기를 바랬다. 그것이 아니기를, 무공을 담아오기 위해 자신을 데려온 것이 아니라 그렇게 진심으로 간절히 바랬다.
그저 이름 없는 촌부(村婦)의 여인에게 씨를 뿌려, 후에 그 사실을 알고 자신을 거둔 것이라 그리 믿고 싶었다. 어미의 출신이 미천하여 그리 냉대했다 생각했거늘.
영천신룡을 원한다고 했어도 원망하지 않았다. 아니 원한다면 그냥 주고 싶었다. 자신의 이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도 모르는 이 빌어먹을 무공을. 왜 가지고 있어야 하는지도 모르는 이 기운을. 다 내어주고 아들로 인정 받으며 살고 싶었다. 그저 그렇게라도 부정을 이어가고 싶었는데. 서러운 마음은 눈물이 되어 흘러 내린다.
분노. 가슴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서글픈 마음은 광염(狂炎)이 되어 온 몸을 태웠다.
갇혀 살아야 했던 13년, 상승무공을 허락하지 않았던 아버지, 영약을 대하 듯 쳐다보던 형님. 그 모든 것이 기억에 남아있다. 아프다고 진실을 거부할 순 없다. 이제 그만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은 나현도의 친자가 아닌 것이다. 그러나 미친 듯이 타오르는 이 가슴의 화염은 끌 수가 없었다.
" 크.아아악. "
윤손이 목에 감긴 귀사살을 움켜 잡고 괴성을 질러댔다. 끌어당기는 힘이 거세질수록 그의 표정은 하얗게 질려 갔다.
" 자네 이게 무슨 짓인가? "
" 그만 하거라! "
그 모습에 기겁을 한 기목성과 민충이 달려들어 귀사살을 움켜 잡았다. 나천우와 귀사살 하나를 사이에 둔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 젠장- 말하라고. 말하란 말이다- 말해! "
" 이러다 윤손이 죽겠구나. 어서 놓치 못하겠느냐? "
" 뭔 힘이 이리 쎄단 말인가. 자네 왜 이러나? 그만 진정하시게! "
민충과 기목성은 안간힘을 쓰며 귀사살을 잡아 당기고 있었다. 만약 손을 놓는다면 윤손의 목은 한순간에 잘려 나갈 것이다.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지날수록 귀사살은 더 팽팽해진다. 순식간에 온 몸에서 땀이 비 오듯 떨어져 내렸다. 힘으로 나천우를 당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 주공! 그만하십시오. "
옆에서 지켜보던 명진이 안절부절못하며 나천우에게 다가갔다.
" 움직이지마. 이 놈 모가지 비틀어버리기 전에. "
" 우리도 사정이 있어 그런 것이니 이야기를 더 들어보게. "
기목성이 좋은 말로 그를 달래본다.
" 자네 왜 이러나! 그만 하게! "
" 크-아악. "
결국 윤손은 귀사살을 양손으로 붙잡고 비명을 토해냈다.
" 주공! "
명진이 보다 못해 귀사살을 움켜 잡았다.
" 아.아악. "
하지만 묵빛으로 빛나던 귀사살을 잡는 순간 이장이나 튕겨져 나갔다. 영천신기를 머금은 혈기의 기운을 감당해 내지 못한 것이다.
" 자네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주겠네. 만약 이곳을 나가게 된다면 사내아이의 행방은 우리가 알아보도록 함세. 그러니 제발 그만하게. 애써 살려 놓은 자를 죽이려고 하는가! "
기목성이 간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본다. 지금 그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없다면 분명 피를 볼 것이다.
" 주공! "
명진이 급히 뛰어와 부복하며 고개를 숙인다. 바닥에 붉은 선혈이 떨어져 내린다. 귀사살에 튕겨나간 충격으로 각혈을 하는 것이리라. 그것을 본 나천우의 동공이 흔들렸다.
그렇게 몇 호흡이 바람같이 지나갔다.
나천우의 손에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과거는 윤손의 책임이 아니다. 사정을 다 밝히지 않았으니 세세한 정보를 알아내지 못했을 뿐. 분노를 달래고자 저 자를 죽인들 뭐가 달라지겠는가. 그렇게 마음을 가라앉혔다.
스르르륵-
윤손의 목을 감았던 귀사살이 느슨해졌다.
" 켈룩- 켈룩 - 우엑. "
죽다 살아난 윤손이 배을 움켜 잡고 선혈을 토해 냈다.
" 자네 괜찮은가? "
" 무슨 놈의 기운이 이리 강하단 말인가. 켈룩- "
" 당분간 저 녀석의 기분을 건드리지 않는게 좋을 것이네. 보기엔 이쁘장하게 생겼어도 한 성깔하니. 누굴 닮았는지 원- "
찌릿-
나천우가 기목성을 노려보았다.
" 아닐세. 아니야. 혼잣말이네. "
" 천만지옥까지 떨어진 놈이 왜 그리 나현도를 감싸고 도는 것인가? "
나현도 욕을 할 때마다 살벌한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봤으니 하는 소리였다.
" 제 스스로 여기 들어온 것이라 말하지 않았는가. 만천신대에게 쫓기기는 했으나 여기 밀어 넣은 것은 아니네. 자네가 나현도에게 이용당해 이곳에 들어왔다고 하니 빈정이 상한 게지. "
" 만천신대에게 쫓겨? 흠. 그럼 천의맹 끄나풀은 아닌 모양이구먼. 진즉 말을 할 것이지. 휴- "
- 목성. 아무래도 느낌이 이상하네. 저 자의 이름이 뭔가?
윤손이 진중한 눈빛으로 기목성을 바라보았다.
- 내 나중에 이야기 해 줌세.
그의 목소리에는 깊은 한숨이 배어 있었다.
" 어서 그 사슬을 마저 풀지 못하느냐! "
민충이 다가와 인상을 구긴다. 아직도 윤손의 목에는 귀사살이 감겨 있었다.
" 입이 가벼운 애완수는 목에 사슬을 매어 길들이는 것이다. 당분간 이게 좋겠군. "
스르르르- 챙-
나천우가 귀사살을 조율해 윤손의 목에 딱 맞게 감았다.
" 이.이게 무슨 짓인가? "
윤손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자신은 흑천신교에서도 대제의 명만 따르는 사천사귀 중 하나인 이천흑귀였다. 강한 파괴력을 가진 장과 권으로 모든 것을 멸한다 하여 대멸사신(大滅査神)이란 별호를 가지고 있었거늘. 허나 지금 이 꼴이 무엇이란 말인가. 목에 사슬을 차고 백구 취급을 받고 있으니.
" 자네가 참게. 내가 잘 말해 볼 테니. "
기목성이 그를 말리고 나섰다. 여기서 더 그의 신경을 건드리면 정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른다.
' 저 녀석이 아드님이라면 소교주님께 곱게 데려가야 하는데. 만약 소교주님이라면... 에휴- 저 성질을 어찌 달랜단 말인가. 휴- '
순간 기목성의 눈빛이 섬광으로 빛나더니 촌각도 안되어 사라졌다.
" 목성이 자네! 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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