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이런일이.1
호강의 말대로 두시진을 이동하니 마을이 있다는 호수에 도착했다. 이곳으로 오는 동안 그들의 우려와는 달리 기형수와 홍인들은 만나지 않았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주변에 기감을 넓혀 살폈으나 그들의 기척은 감지되지 않았다.
" 이쪽입니다. "
호강은 저 멀리 나루터로 가지 않고 수풀을 헤치고 초망(草莽)으로 들어갔다.
" 저 나루터는 홍인들의 눈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만들어 놓은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저쪽 길로 다니지 않아요. "
정면으로 보이는 길을 놔두고 나무와 나무가 다닥다닥 붙어 있는 곳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길이 없음은 물론이요, 나무 뿌리가 밖으로 튀어나와 몸을 바닥에 붙여야 겨우 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일행은 호강의 안내에 따라 몸을 엎드려 수풀 사이로 들어갔다. 일각이나 무릎걸음으로 기어가니 맨 꽁지에서 따라오던 민충이 육두문자를 뱉어낸다. 그렇게 개구멍의 끝에 도착하니 바로 코앞에 호수가 보였다.
호강이 엉성하게 잘라진 나무통 하나를 들어 호수에 걸치고, 품에서 흰 천을 꺼내 흔들었다. 그러자 섬에서 나룻배 한척이 조용히 다가온다. 그 모습이 너무 은밀하고 조용해 저들이 얼마나 홍인들을 조심스러워 하는지 알 수 있었다.
노를 저어 나온 자가 일행을 보고 놀랬지만 호강이 고개를 끄덕이자 곧 가까이 배를 댄다. 작은 목선에 모두 올라타자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출렁거렸다. 그렇게 일행은 모두 그리 멀지 않은 섬으로 들어갔다. 고작 일각도 되지 않아 도착했으니.
호강의 안내에 따라 마을로 들어섰다. 주위를 둘러보니 나무로 엉성하게 지어진 작은 초옥들이 곳곳에 보인다. 사방에서 풍기는 야릿한 향은 그들이 말한 천녹초의 향이라고 했다. 드문 드문 짐승의 우리가 보였고, 작은 산짐승들이 천녹초를 섞어 만든 먹이를 먹고 있었다.
" 냄새 한번 고약하구먼. "
기노인이 코를 막고 주변을 둘러보았다.
" 이쪽으로 오십시오. 어르신의 거처가 저 쪽에 있습니다. "
호강이 그들을 안내한 곳은 마을 동편에 위치한 작은 초가였다. 흰 수염을 길게 기른 초로의 노인이 나와 그들을 맞이했다.
" 호강아. 돌아왔구나. "
" 네. 어른신. 저분들께서 기형수와 홍인들로부터 저희를 구명해 주셨습니다. "
" 호강아- 호강아- 무사히 돌아왔구나. 흐흐흑. "
" 네 어머니. "
노부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호강을 끌어 안았다.
"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대협. "
노부인이 허리를 깊게 숙이며 인사를 했다. 자신을 윤부인이라 소개한 그녀는 호강의 어머니였다.
" 아닙니다 부인. 우리도 호강이 덕에 이곳에 오게 됐으니 서로 도운 것입니다. "
명진이 일행을 대신해 인사를 받았다.
" 그래. 윤부인께서 너를 많이 기다리셨다. 이분들은 내가 안내할 테니 너는 그만 어머니를 모시고 돌아가 보거라. "
" 네 어르신."
포권을 취해 예를 올린 호강은 어머니와 초옥으로 돌아갔다.
" 이리 오시게들. "
노인을 따라 초옥 안으로 들어갔다. 인자한 인상의 노인은 자신을 무견이라고 소개했다.
" 아니. 그럼 십년 전에 홀연히 사라지셨다는 천명신의 무견이시오? "
기목성이 기함을 하며 쳐다본다.
" 허허. 아직도 노부의 별호를 기억하는 사람이 있구먼. 그렇네. 한때는 천명신의라 불렸던 적이 있었지. "
무견이 탁자로 안내해 차를 따라 주었다.
" 자 마셔보게. 천녹초를 연하게 달인 차일세. 조금씩 마시다 보면 금방 익숙해 질 것이네. "
허나 아무도 그 차에 손을 대지 않았다. 냄새도 그렇지만 아무리 봐도 보통 차는 아닌 것 같았다.
" 천녹초를 먹지 않으면 마을 사람들이 모두 죽는다고 들었는데 사실입니까? "
나천우가 엉성하게 만들어진 의자에 앉아 무견을 쳐다보았다.
" 그렇다네. 자네들이 무슨 사정으로 여기까지 왔는지 모르겠으나 빨리 익숙해 지는 것이 편할 것이네. "
" 그럼 정말 이곳이 천만지옥이란 말이오? "
기목성이 미간을 좁히며 물었다.
" 천만지옥이 맞네. 오면서 기형수와 홍인을 만나지 않았는가? "
" 왜 천녹초를 복용해야 합니까? "
나천우가 차를 들어 냄새를 맡더니 다시 내려 놓았다. 마을로 들어와 본 사람들 모두가 녹안이었다. 분명 천녹초와 관계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 휴- 자네들도 여기서 살아가려면 천녹초를 먹어야 할 걸세. "
무견이 무거운 한숨을 내쉬었다.
" 기형수와 관계가 있겠군요. "
그의 말에 무견이 놀랍다는 듯이 쳐다본다.
" 어찌 알았는가? "
" 기형수의 피에 천녹초의 향이 배어 있더군요. 헌데 기형수는 녹안인을 사냥하고 있었으니. 그럼 천녹초가 기형수로부터 몸을 지키기 위한 것은 아닐 텐데. 그것을 꼭 복용해야 하는 이유가 있는 겁니까? "
" 자네들은 아직 믿기 힘들겠지만, 만약 천녹초가 없었다면 지금쯤 나도 기형수가 되어 있었을 거네. "
" 네? "
" 무견신의 그 말이 사실이오? "
" 그게 말이 되는 소리요! "
모두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쳐다본다.
"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
" 이미 느꼈는지도 모르겠지만, 이곳에는 이상한 기운이 돌고 있다네. 주변에 먹을 것이 넘쳐 나지만 그것들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되네. 나도 내 눈으로 보지 않았으면 믿기 어려웠을 게야. "
무견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두루마리 하나를 꺼내 보였다. 아주 오래전에 만들어진 듯, 많이 낡아 여기저기 구멍이 뚫여 있었다.
" 읽어 보게. 나도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다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이 힘들었겠지. "
무견은 천녹초차를 마시며 밖을 내다 보았다.
나천우가 펼친 두루마리에는 조잡하게 그려진 그림과 띄엄 띄엄 적힌 글자들이 보였다. 그림은 기형수, 홍인 그리고 사람이었다. 사람들의 눈은 풀을 으깨어 붙여 놓았는데 녹안인을 뜻하는 것 같았다.
나는 반천의적단의 단주 고호종이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자가 있다면 급히 천녹초를 먹으라. 그렇지 않다면 곧 기형수로 변할 것이니. 천녹초는 북쪽 숲 끝에 위치한 절벽 바위에서 자란다. 내가 몇 번이나 그것을 산 아래로 옮겨 심으려고 했으나 실패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그 곳을 떠나면 천녹초는 죽어 버렸다. 만약 내 말을 믿지 않고 천녹초를 복용하지 않을 시에는 기형수가 될 것인 즉. 지금 당장 내 말을 따르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와 함께 이곳에 들어온 형제들은 모두 백명이었다. 우리는 천의맹에게 빼앗긴 무공서를 되찾기 위해 뭉친 사람들이었지. 그들이 훔쳐간 무공서를 탈환하고 주인에게 돌려주고자 의적이 되었으나 저들의 간교한 함정에 빠져 결국 이곳에 들어오게 되었다.
그들은 우리의 무공서를 원했지만 나와 형제들 모두는 입을 다물었다. 만약 무공서를 내어 놓았어도 이곳에 떨어졌을 것이니 난 후회하지 않는다. 나와 내 형제들은 이곳을 빠져 나가고자 여러가지 방법을 모색했으나, 누구 하나 진식에 밝은 자가 없어 결국 포기하고 이곳에 터를 잡았다.
그렇게 한달이 채 지나기도 전 우리는 기형수를 만났다.
그 짐승들은 우리를 먹이로 생각하고 공격했다. 많은 형제들이 싸웠지만 그들은 강했다. 도검불침의 몸으로 무인처럼 무기도 사용한다. 우리는 그들을 피해 호숫가로 도망쳤다. 다행히 그들은 호수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다. 무슨 이유에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짐승들은 물을 좋아하지 않는 듯 보였다.
난 사람들을 모두 이끌고 호수 중앙에 있는 섬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나무를 잘라 집을 짓고 마을을 만들었지. 하지만 그 여유도 일년이 지나자 공포로 바뀌기 시작했다.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기형수로 변한 것이다. 내 눈으로 보았지만 믿을 수가 없었다.
처음 그 증상이 나타난 것은 나의 오른팔이었던 홍석이었다. 그는 평소에도 고기를 좋아해 사냥을 자주 했었지. 덩치도 크고 실력도 괜찮은 녀석이 어느날 잠이 들어 일어나질 않았다. 열도 없고 반점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일주야 동안 잠이 들어 있었다.
드디어 홍석이 깨어났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내가 알던 홍석이 아니었다. 짐승의 몸에 사람의 얼굴을 가진 흉측한 괴수, 기형수가 되어 깨어난 것이다.
마을은 곧 아수라장이 되었고 살아 남은 자들은 북쪽 숲으로 도망쳤다. 우리는 고민끝에 모두 죽기로 했다. 살아있으면 인간을 잡아먹는 괴수로 변할 것인 즉, 모두 동의하고 결의를 다졌다.
그곳에서 독초를 발견했고 우리 모두는 그것을 복용했다.
천신의 마지막 안배였을까. 우리의 기형수로 변하지 않았다. 아니 서서히 변하고 있었지만 그 속도가 늦어졌다. 결국 우리는 천녹초를 가지고 마을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기형수로 변한 형제들은 이미 그곳에 없었다. 부서진 집을 고치고 연구를 시작했다. 왜 우리가 기형수로 변해야 하는지. 그것을 알아내야만 이 더러운 저주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우리가 이곳에 와서 먹은 것은 짐승들과 나물, 그리고 과일이었다. 어떤 자는 짐승만 먹었고 어떤 자는 과실만 먹었다. 하지만 그 변화는 멈추지 않았다. 몸의 일부분만 변하는 자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녹초를 복용한 후 전체적인 탈태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결국 이곳에 사는 짐승을 먹어 변하는 것이란 결론이 나왔다. 확실한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가 여기 와서 한 것이라고 먹고 자고 싸는 것 밖에 없었다.
새로운 자들이 천만지옥으로 들어왔다. 우리는 그들에게 천녹초를 복용 시켰다. 그들은 짐승을 사냥해 먹었지만 일년이 지나도 변화는 오지 않았다.
천녹초를 복용하지 않은 자들은 기형수가 되었다. 우리는 그들이 잠들었을 때 모두 죽였다. 탈태가 완전히 이루어지면 그들의 몸은 검기로도 자를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허나 천녹초를 복용한 후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의 눈이 녹안으로 변한 것이다. 그리고 무공을 잃었다.
천녹초를 복용하고 일년이 지나자 내공의 일할이 사라지기 시작했다. 되찾으려 노력해 보았으나 돌아오지 않았다.
그것에 반기를 든 자들이 생겼났다. 그들은 무공을 잃고 싶어하지 않은 자들로 무리를 지어 마을을 떠났다. 그들은 사람을 사냥해 먹기 시작했다. 인육을 시작한 그들의 피부는 붉게 변했지만 기형수로 탈태 하지도, 무공을 잃지도 않았다.
점점 내공을 잃어가는 우리는 그들과 대적할 힘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만이 유일하게 기형수와 싸울 수 있었으니, 인육을 먹는 것을 알았지만 어떻게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우리는 머리를 맞대고 진식을 구축하기 시작했다. 다행히 새로 들어온 자들 중 진식에 해박한 자들이 있었기에 우리는 섬 주위에 진식을 만들어 마을을 보호했다. 그 길만이 기형수와 홍인으로부터 목숨을 지킬 수 있었으니.
그 후로도 천만지옥에는 많은 사람들이 떨어져 내렸다. 죄를 짓지 않아도 천의맹의 횡포에 무공을 빼앗기고 이곳으로 던져진 자들이었다. 그 중에는 여인과 어린 여아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마을로 인도하려 했다. 하지만 많은 수는 홍인과 기형수에게 사냥 당했다.
천녹초를 복용하고 서서히 무공을 잃어가던 우리들은 후에 들어온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전했고 선택을 하게 했다. 그 중 삼할은 홍인이 되고자 밖으로 나갔고, 나머지는 마을에 남아 녹안인이 되었다.
무공이 몇 갑자이던 일년에 없어지는 내공은 자신이 보유한 것의 일할. 마을 주민 모두에게 똑같이 일어난 일이니 내 말을 믿어야 한다.
만약 후인들이 이 더러운 저주에서 벗어날 방법을 알아낸다면 꼭 기록을 남겨 후에 들어 올 인간을 지키라.
이곳은 저주받은 땅. 하늘이 만행(蠻行)을 저지른 땅. 천만지옥이다.
두루마리를 다 읽은 나천우가 명진에게 그것을 넘겼다. 한참을 뚫어지게 쳐다본 명진이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이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 아니 그럼 이곳의 짐승을 먹으면 기형수로 변하는 겁니까? 탈태를 하지 않으려면 천녹초를 먹어야 하고, 천녹초를 먹으면 무공을 잃게 되다니. 아니 이런 말도 안되는 일이! "
" 사실이네. "
무견이 침중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신도 처음에는 믿기 어려웠으니.
" 그럼 인육을 먹는 자들이 홍인이란 말씀이군요. "
나천우의 눈빛이 침중하게 가라앉았다.
" 그렇다네. 그들은 천녹초를 복용한 사람을 먹어 피부가 붉게 변한 것이라 생각하네. "
" 왜 홍인들을 다 죽이지 않았습니까? "
" 내가 이곳에 들어왔을 때 삼갑자 반의 내공이 있었다네. 일년이 자나니 이십년의 내공이 사라졌지. 아무리 운기행공을 해도 돌아오지 않았다네. 그 후로 일년에 이십년씩 사라졌네. 홍인들을 상대하기엔 너무 역부족이었지. "
" 천녹초의 부작용입니까? "
- 작가의말
초망(草莽)-풀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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