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_그린섬 지하의 베르 자르당(2)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73화>
그린섬 지하의 베르 자르당(2)
* * * * *
도현이 지시했다.
“열어 봐.”
성 부장이 시스템 화면을 터치했다.
성 부장의 터치에 유리상자를 덮고 있는 꽃들이 서서히 걷혔다.
꽃들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침대의 아래쪽으로 흘러내리는 것 같았다.
꽃들이 아래로 모두 흘러내리자 그 안에 누워있던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드레스를 입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살아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도현이 치자꽃이라 적힌 곳으로 움직였다.
김 교수가 서둘러 도현의 옆으로 다가갔다.
마치 높은 사람에게 어떤 상황을 브리핑하기 위해 대기하는 사람처럼 보였다.
“회장님, 현재 사유의 부활은 매우 성공적입니다. 성형 수술할 때까지만 해도 회복될 것 같지 않았는데 부활의식 후에 완전히 회복된 얼굴입니다. 모두 회장님 덕분입니다.”
“사유의 상태는 좋아 보여. 좋아. 그럼 윤지 좀 볼까?”
김 교수가 도현을 옆의 칸에 있는 유리상자로 안내했다.
사유가 잠들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면 윤지는 살아있는 것을 빼낸 미이라처럼 보였다.
도현은 감정이 없는 얼굴로 사물을 대하듯 윤지를 바라봤다.
“김 교수, 부활의식에 사용한 제물은 이렇게 되나? 이들도 같이 부활이 되진 않나봐?”
“만약 살아있는 상태에서 부활의 절차를 밟으면 진정 부활이 이루어지지만 부활해야 하는 사람이 목숨을 잃고 그 사람의 부활을 위해 제물로 쓰인 경우라면 대신 목숨을 줘야 해서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럼 벼리도?”
“............”
“음, 베르 자르당으로 살아서 온 자들은 괜찮은 거지?”
“옆으로 가시죠.”
일행은 라일락이 있는 곳으로 갔다.
엉진이 라일락이 쓰여 있는 곳으로 가서 도현의 옆에 섰다.
“열어 봐.”
도현이 성 부장에게 다시 지시했다.
유리관의 꽃들이 아래로 흘러내렸다.
꽃들 사이로 라일라가 나타났다.
라일라는 잠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영진, 어때? 너의 여자에게 영생을 선물한 느낌이?”
“라일라는 사랑을 너무 몰라요. 내가 아닌 여러 사람에게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은 착각이에요. 모두 사탄이 만들어낸 착각이지요. 사랑이란 것이 세상에 하나만 있어야 사랑이지 어떻게 여러 개가 사랑일까요.”
“그렇지, 변하는 것이 사랑일 리가 없어. 영진은 라일라의 영생을 도왔으니 참 잘 한 거야. 그리고 영진은 라일라의 실종 당시 알리바이를 잘 해놔서 문제가 없었는데 다시 귀찮은 일이 생겨서 조금 걱정이야.”
“윤지가 문제입니다. 윤지의 실종이 1층 꽃달의 민 실장과도 연관이 있어서 빨리 노출된 것 같습니다.”
“서둘러서 특별실 부활의식이 끝나면 모두 한동안 파리에서 지내다 오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모두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김 교수가 답했다.
“김 교수, 넌 입이 열 개라도 부족해. 책임져.”
김 교수는 도현의 말에 안절부절못했다.
“나머지도 모두 올려.”
도현의 말에 성 부장이 각각 화면을 터치하자 유리상자를 덮고 있는 꽃들이 모두 흘러내렸다.
유리상자에는 제이, 준희가 누워 있었다.
“그러니까 제이와 준희는 우리의 비밀을 알아서 어쩔 수 없이 이곳에 온 거지?”
“제이는 너무 깊이 우리의 일을 알았던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기 전에 이곳에 데려왔으니 저희에겐 천만 다행입니다.”
“그래도 혹시 벼리 오빠인 민수라든가, 친구들과 연락이 닿았을지도 모르니 조금 더 잘 살펴보도록 해.”
“네.”
“그런데 준희는 우리 일을 어떻게 안 거야?”
“라일라가 준희에게 전화했던 것 같습니다. 영진이 라일라에게 위협을 했던 것을 두고 의심이 있었던 거죠.”
영진은 조금 당황해 했다.
“저, 전 그저 라일라에게 경고를 하려고...”
도현이 영진의 다리를 구둣발로 찼다.
영진은 휘청했다.
“그러니까 과하게 하지 말라고 했잖아. 네가 지금 그 자리에 어떻게 있는 줄 알고 그렇게 경거망동을 하는 거야?”
“도현, 준희는 내가 파리로 보내려고 했었어. 조금만 기다려줬으면 내가 파리로 데려갔을 텐데....”
“정우, 뭐야? 지금 준희가 여기에 누워있는 것이 불만이라는 거야?”
“아, 아니야. 설마 그럴 리가 있어? 잘 했어.”
“뭐? 잘 했어? 네가 나를 평가하는 거야?”
“도현, 내가 너를 어떻게 평가하겠어. 난 너를 걱정하는 거야. 난 널 사랑해.”
정우는 도현을 정말 사랑하는 것처럼 말했다,
정우의 사랑한다는 말에 도현은 답을 하지 않았다.
“도현아, 어머니의 부활이 끝나면 우리 잠시 파리에 다녀오자. 파리 그린섬에서 지낼 때 참 좋았어.”
“정우, 너는 너무 감상적이어서 큰일이야. 그래서 무슨 일을 하겠어? 준희는 어쩔 수 없었잖아. 우리가 여기로 데려오지 않았으면 준희가 어떤 일을 했을지 어떻게 알아? 준희는 아마도 여러 가지를 준비하고 있었을 거야.”
도현은 정우에게 부드럽게 말했다.
도현은 다른 사람보다 정우에게 말할 때 조금 더 조심스럽게 말하는 것 같았다.
정우는 준희가 자신을 사랑했다는 것을 알았다.
준희는 정우를 위해서 어떤 일이든 했을 것이다.
그것이 그린섬 멤버에게 좋았을리는 없었다.
준희는 그린섬의 사람들이 만들고 있는 일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정우가 이 일에서 손을 놓으면 좋겠다고 몇 번을 말렸던 준희였다.
특히 파리에서 한국에 올 때는 정우를 파리에 함께 데려가겠다는 생각으로 따라온 것이었다.
하지만 정우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정우는 도현을 사랑했다.
어린 시절 도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사랑했다.
특히 어린 시절 자신의 아버지가 도현의 새엄마와 도모해서 도현의 생모를 죽게 했다는 사실은 정우로 하여금 도현을 보호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정우의 어린 시절, 아버지에 대한 죄책감에서 비롯된 미안함은 정우의 가슴을 사랑으로 이끌었다.
정우는 도현을 사랑했지만 그것을 숨기기 위해 아주 많은 여자들과 염문을 뿌렸다.
그러나 그 여자들과 잠을 자지는 않았다.
여자들이 밝히기 않은 일이어서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정우를 사랑하는 준희 역시 모르는 일이었다.
정우는 준희를 진정한 친구로 여겼다.
자신이 도현을 사랑한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준희에겐 더 큰 괴로움일 것이었다.
정우는 일부러 카사노바가 되었던 것이다.
그러나 준희는 제이와 라일라가 위험에 빠진 걸 알았고 그린섬 멤버와 관련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몇 번이나 정우에게 파리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하지만 정우는 도현을 떠날 수 없었다.
도현을 보호해야 했다.
어려서부터 도현을 평생 보호하겠다고 다짐했었다.
정우는 준희를 그대로 두면 위험해질 것을 알았다.
특히 그 위험은 도현에게 죄를 짓게 하는 일이었다.
그래서 정우는 준희에게 비행기 티켓을 끊어주며 파리에 보내려고 했었다.
일부러 주방 직원도 빨리 뽑아 준희가 포기하길 바랐었다.
하지만 준희는 그린섬 멤버의 비밀을 어느 순간 알아버리고 말았다.
그러자 성 부장이 이를 도현에게 보고한 것이었다.
지시는 순간에 이루어졌다.
정우는 알지 못한 사이였다.
준희는 납치되었고 베르 자르당에 안치된 여인이 되고 말았다.
“모두 닫아.”
성 부장이 버튼을 누르자 꽃들이 다시 여인들을 덮었다.
물이 차오르듯이 꽃들이 유리관을 채웠다.
그 다음 벽이 내려오기 시작했다.
이제 베르 지르당은 보이지 않았다.
보통의 벽이 사람들의 앞에 있었다.
영진과 정우는 돌아갔다.
도현과 김 교수, 성 부장만 남았다.
“특별실에 가보자.”
셋은 엘리베이터를 다시 탔다.
지하 7층으로 향했다
지하 7층은 6층과는 다른 더 아름다운 실내가 펼쳐졌다.
하나의 정원이 만들어져 있었다.
모두 생화와 살아있는 나무처럼 보이는 정원이었다.
그러나 살아있는 것은 없었다.
모두 조화였다.
“열어 봐.”
성 부장이 다시 작동 버튼을 눌렀다.
새로운 베르 자르당이 있었다.
세 개의 유리상자가 있었다.
성 부장이 다시 단추를 누르자 꽃들이 흘러내리고 세 여인이 나타났다.
모두 각각 도현과 재인, 김 교수의 어머니였다.
세 명의 여인들은 잠들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렇게 살아있는 모습으로 지킬 수 있게 해준 김 교수와 성 부장의 노고에 대해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이러한 시스템을 갖추려고 부단히 노력한 성 부장의 힘이 크죠.”
“시스템이 갖추기 전에 노력한 것들이 사실 힘들었죠. 그리섬이 세워지기 전에는 작은 건물에 냉동창고를 들여 보관해야 했으니 쉽지 않았죠.”
“우린 모두 파리에 있었는데 성 부장이 혼자 애썼지.”
“특히 액상질소를 취급하는 것이 여러 가지로 제약이 있다 보니 산부인과에서 사용하는 난자나 정자를 보관하는 냉동시스템을 새로 도입한 것이 정말 대단한 성과였다고 봅니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을 추진할 수 있게 도현 회장님께서 후원을 차질 없이 해주셨으니 이루어진 것이지요.”
“안정적으로 냉동시설을 갖추기 위해 병원시설을 처음 설계했을 때는 아이디어가 정말 좋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너무 영리해도 문제야. 제이가 영리한 것이 아버지를 닮았던 거겠지? 제이의 아버지가 설계에서 뭔가를 눈치챈 것이 틀림없어.”
“제가 신속하게 없애길 잘 했지. 안 그랬으면 우리의 일이 노출될 뻔했습니다.”
“다행이야. 성 부장이 언제나 신속하게 일처리를 잘 해줘서 고마워.”
“이제 회장님 어머니 영생을 위한 부활의식을 서둘러야 할 것 같습니다.”
“사유의 일이 조용했으면 큰 문제가 없었을 텐데, 사유와 윤지 일이 이렇게 시끄러워질 줄 몰랐어.”
“죄, 죄송합니다.”
“설마 수사가 이 건물에까지 미치진 않겠지요?”
“겨우 미술관 건물이야. 정원일 뿐이고.”
“만약 지하시설을 들키기라도 한다면..”
“걱정하지 마. 그럴 줄 알고 지금 수원 쪽에 건물을 신축했잖아. 새로운 병원을 아예 새로 지었어. 서주병원의 분원이라고 하지만 본원보다 더 크게 시설을 확장해서 지었으니까 우리의 시설을 은폐하기엔 문제없을 거야.”
“역시 도현 회장님은 무엇이든 준비가 완벽하십니다. 이렇게 그린섬을 준비한 것만 해도 놀라운데.”
“이제 그린섬이 노출될 위기가 있으니 어머니의 부활의식이 끝나면 수원의 서주병원 분원으로 모두 옮기면 될 거야. 더 이상 수사도 의미가 없어지겠지?”
“회장님과 함께 있으면 정말 무엇이든 문제가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재인은 회장님의 미션을 완수하고 올까요?”
“만약 완수하지 않으면 벼리는 목숨을 잃을 것이고 어머니 역시 영생을 잃을 텐데 선택의 여지가 있겠어?”
“당연히 말을 들을 겁니다. 제가 지난번 재인이 벼리에게 마음을 뺏기려고 할 때 오토바이로 위협을 한 번 한 적이 있습니다. 회장님의 마을 허투루 듣지는 않을 겁니다.”
“그럼, 내일 밤인가?”
“네, 내일 밤입니다. 오늘, 재인이 벼리를 데리고 오면 제물은 준비될 것입니다.”
“나무는 준비했어?”
“자스민과 구굴나무, 두 그루를 심어두었습니다. 꽃도 준비했습니다.”
“그럼, 난 이만 그룹에 들어가 볼게. 당분간은 윤지의 실종사건으로 조심해야 하니까, 특히 김 교수는 그린섬에 오는 것을 조심하도록 해.”
“저야 작품과 관련해서 미술관에 오는 것이니까요. 언제나 이유가 타당합니다.”
“이번에 사유 관련 전시를 한다고 했지?”
“네, 사유의 부활을 주제로 전시하려고 합니다. 이번에 사유의 부활을 위한 치자꽃 설화나 실제 사유가 죽었다가 살아난 일련의 일들을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그래, 나쁘지 않아. 다음엔 나의 어머니에 대한 작품을 전시해보도록 해.”
“네,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들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왔다.
재인이 벼리를 데려오기로 한 시간이 가까워 오고 있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Commen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