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핫딜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너를 살려줄게

웹소설 > 일반연재 > 로맨스, 현대판타지

완결

핫딜
작품등록일 :
2020.05.11 10:00
최근연재일 :
2020.06.19 15:15
연재수 :
82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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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8,532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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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50,400

작성
20.05.20 1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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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8쪽

23화_랜디의 경고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DUMMY

<23화>

랜디의 경고


* * * * *



벼리는 정신없이 결혼식을 끝내고 펜트하우스에 입성했다.


펜트하우스는 벼리가 생활하는데 불편함이 없도록 여러 가지가 잘 갖춰져 있었다.


성 부장은 재인과 관련된 일들을 빈틈없이 도와주는 것 같았다.


박 여사는 살림이라는 것이 완전히 전문영역이라는 것을 느끼게 했다.

벼리가 불편하지 않도록 조용히 모든 것을 준비했다.

박 여사의 준비에 놀랄 지경이었다.


재인과 벼리는 계약결혼이었지만 결혼으로 보여야 하는 관계였다.


재인은 벼리가 꽃달에 갈 때 동행해주곤 했다.

벼리는 재인이 그림 작업실에 갈 때 가끔 들르곤 했다.


둘 다 상대의 생활에 관심이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했다.


벼리는 블루문 가든에 어떤 비밀과 신비로움이 숨겨져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펜트하우스에서 지내는 동안 블루문 가든에 자주 들르려고 했다.


하지만 낮에는 이런저런 일들이 많았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어떤 일들이 꼬리를 물고 벼리를 바쁘게 했다.

좀처럼 블루문 가든에 갈 수 없었다.


“벼리, 밤에는 정원에 안 가는 것이 좋겠어."

"낮에는 좀 여유가 없어요. 밤에 가고 싶은데....."

"안 돼. 위험해. 정원에 조명도 없어서.....”

“달빛이 밝은 날은 가도 되지 않을까요?


“아냐, 위험하니까 낮에만 가는 걸로 하자!”


재인은 가끔 단호하게 말했다.

단호한 말은 거역할 수 없는 압력을 포함하고 있었다.


블루문 가든 출입은 낮 시간만 허용되었다.

벼리는 블루문 가든에 가는 시간은 낮시간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펜트하우스 바로 아래층에 있는 재인의 작업실은 재인의 개인 공간이었다.

재인의 친구들 모임을 갖는 회합 장소이기도 했다.


처음에 재인은 벼리가 작업실에 들르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재인, 벼리 씨는 왜 안 내려와?"

"일이 좀 있어."


도현이 벼리 씨가 내려왔으면 하면서 말을 꺼냈다.


"지금 신부를 숨기는 거야? 아까워서? 우리가 어떻게 할까봐?"

"아니야. 여기 오는 거 불편할 것 같아서. 너희들도."


도현의 말에 재인은 어떻게든 벼리를 데려오고 싶지 않았었다.


"오, 노... 우.... 절대 아니야. 우린 1도 불편하지 않아."

"나도 안 불편해. 정우야, 넌 어때?"

"나도 물론 안 불편하지."


영진과 정우 모두 도현이의 말을 거들었다.


"나중에 내려오라고 할게."

"재인, 너 그러면 우리가 올라간다."

"아, 우리에게 올라오라는 말이었어? 우리 지금 올라갈까?"


이렇게 해서 벼리는 재인의 친구들이 모일 때 가끔 작업실에 들르게 되었다.


재인의 친구들 회합이 있는 날이었다.


박 여사가 모든 것을 미리 준비했을 것이었다.

어떻게 그렇게 모든 일들을 완벽하게 준비하는지 벼리로서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박 여사가 있어서 벼리가 딱히 할 일은 없었다.

그래도 확인하고 싶은 생각에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도현이 와 있었다.


도현은 재인의 가장 가까운 친구였다.

친구이면서 형제였다.

형제보다 더 가까운 소울 메이트였다.


도현과 재인은 어렸을 때부터 함께 지냈다.

파리 유학 때도 함께 지냈다.


재인은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던 파리 유학이었다.

고 여사 일행이 재인의 능력을 핑계로 서둘러 보낸 유학이었다.


도현은 자신이 가진 너무 커다란 짐이 싫어서 도망친 유학이었다.

거대기업의 후계자로 자라는 것이 무거워 떠난 유학이었다.

한국 교육이 옭죄는 억압감을 견딜 수 없어 도망친 것이었다.


둘의 유학은 성질이 달랐다.

하지만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을 보내며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다.


재인이 한국에 올 때 도현도 한국에 함께 왔다.

도현은 좀 더 자유분방한 생활을 하고 싶었으나 재인 없는 쓸쓸함을 견딜 수 없었다고 했다.


도현은 늘 재인을 따라 다녔다.

도현은 자신에게 방탕하고 망가지려고 하는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재인이 없이는 안 돼. 재인이 없으면 아마 난 나쁜 놈 중의 나쁜 놈이 되어 있을 거야. 재인 옆에 있으니까 착한 거지."


사람들은 도현의 말에 감탄했다.

친구를 굳이 칭찬하지 않아도 되는 위치였다.


언제나 재인을 칭찬하고 자신을 내리는 재벌2세의 마음 씀씀이는 칭찬 받아 마땅했다.


"뭘,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닌데 도현이, 네가 있어서 이렇게 잘 사는 것 같아. 모두 도현이 덕이야."

"야야, 무슨 말이야. 순전히 내가 네 덕 보고 산다니까."


처음부터 가진 것이 너무 많았고 가진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는 도현이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이미 만들어진 성을 망가뜨리는 일일 수 있었다.

모든 게 너무 완벽하게 갖춰져 있는 삶이었다.


"재인이 없었으면 나, 아마 마약을 했을지 몰라."

"마약? 네가? 너처럼 성실한 얘가?"


"나를 모르는구나. 내 유전자는 멘탈이 형편없다니까."

"설마...."


"하여튼 난 재인이 있어서 이렇게 제대로 살고 있다, 그 말이야."


"기승전... 재인이구나. 언제나 매번 마지막은 재인 덕이야, 뭐 이런 말이잖아."

"오, 맞았어. 기승전. 재인. 맞다. 하하하."


도현은 재인과 친구였지만 재인을 형처럼 따랐다.

재인이 형처럼 어른스럽다고 했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서열을 정할 때 조금이라도 우위를 차지하려고 형님 자리는 끝까지 양보하지 않는 수컷의 본능이 있었다.


도현은 이미 서열의 정점에 있었다.

그러나 재인과의 관계에서는 재인의 판단을 따르는 동생이길 원했다.


자신은 나중에 항상 무언가를 결정해야 하는 사람이었다.

개인적 관계에서만은 결정의 책임을 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재인아, 이건 어때?"

"재인아, 이거 할까? 하지 말까?"

"재인아, 우리 뭐 먹을까?"


이렇게 먹는 것까지 재인한테 물어보기를 좋아했다.

친구들은 도현이 재인에게 지나치게 의존한다고 놀려댔다.


"도현이는 아마 전생에 재인이 아들이었어. 저거 봐. 재인이를 졸졸졸. 마마보이가 아니라 재인보이야. 재인보이."

"하하, 재인보이, 적절한데? 도현이 별명으로 쓸까?"

"재인의 재, 보이의 이? 재이? 재이라고 부를까?"

"딱 좋다. 제2의 재인이니까 재이라고 부르자."


친구들은 도현이 지나치게 재인에게 의지한다고 재이라고 놀리기도 했다.

그런데 도현은 친구들이 재이라고 부를 때 별로 기분 나빠하지 않았다.


"놀려먹는 재미가 없어."

"맞아. 기분 나빠 해야 재밌는데, 재미가 없어."


결국 재이라는 별명은 금세 사라지고 말았다.


하지만 여전히 도현은 재인보이였다.

그렇게 파리에서 한국으로 왔다.


도현은 우주그룹의 2세로 그룹의 후계자 1순위였다.

도현이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재계에서는 도현에 대한 기사를 쏟아냈다.


하지만 도현은 그런 데에는 관심 없이 도망 다녔다.


가족들은 도현이 자유롭게 살도록 놔두었다.

닦달하지 않아도 주변의 환경은 충분히 도현이를 그룹의 일에 밀어 넣고 있었다.


도현은 우주 그룹에서의 입지가 상당했다.

경영은 참여하지 않았지만 할아버지로부터 증여받은 그룹의 지분이 이미 상당했다.


그룹이 중요한 일을 결정할 때는 영향력이 있을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도현은 밖으로 나오지 않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늘에 숨어서 나타나는 것을 싫어했다.


우주 그룹 차원에서 도현이 그림 공부를 한 것은 경영공부를 한 것만큼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었다.

그룹 승계에서 문화적인 자질은 선진 그룹으로의 우위를 지키는데 도움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도현은 어떤 노력을 하지 않아도 하나의 유희만으로도 그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평가를 받는 부류였던 것이다.

그림 공부도 그중의 하나였다.


수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모든 것들이 쓸데없는 것들이 되고 다른 사람을 위협하는 칼날이 된다고 하는 재인의 집과는 대비적이었다.


도현은 그런 재인의 사정을 아랑곳하지 않고 재인과 가장 좋은 사이를 유지했다.




벼리가 작업실에 가자 도현이 주인인 것처럼 반겼다.


친구들이 자유스럽게 드나드는 공간이라고 생각은 했었다.

그러나 재인이 없는 공간에 누군가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벼리는 도현이 약간 불편했다.

벼리에게 지나치게 친절한 것이 그 이유였다.


“도현 씨, 와 있었네요.”

“사랑스러운 제수 씨, 어서 오세요.”


도현은 다정하게 인사를 건네며 손을 내밀었다.

악수를 청하는 것이었다.

벼리도 손을 내밀었다.

도현은 벼리의 손을 잡고 잠시 머물렀다.


벼리는 당황스러웠다.

악수를 위해 잡은 손이었는데 도현의 손은 너무 다정했다.

벼리는 손을 서둘러 거두었다.


“그 호칭 좀 바꾸면 안 될까요? 사랑스러운 제수씨란 말은 좀......”

“하하, 사랑스러운 것은 사실인데 어쩌죠?”


도현은 결코 물러나지 않았다.


“도현 씨에겐 어떻게 못하겠어요.”

“역시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제수씨.”


벼리는 작업실을 둘러 봤다.


“그런데 재인 씨와 같이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재인 이 녀석은 어디 간 거죠? 사실 저도 어제 연락하고 아직 보지 못했답니다.”


“아침에 일이 있다고 본가에 갔어요.”

“재인은 가끔 내 레이더에서 사라질 때가 있어요. 소식 안 닿을 때면 정말 갑갑해요. 벼리 씨는 안 그래요?”

“맞아요. 저도 많이 갑갑해요.”


“그런 재인이랑 사는 벼리 씨가 고생인 거죠.”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차 버려요. 그리고 저한테 오시면 어때요? 저야 최고로 다정한 남자죠.”


도현은 춤추는 신사가 여인에게 춤을 청하는 듯 포즈를 취했다.


“정말 친구 맞아요?”


도현은 좀 전의 포즈를 거두었다.


“하하, 친구니까 친구가 죄 짓는 것을 못 보는 거죠.”


둘이 웃는데 재인이 들어왔다.


재인은 둘의 다정한 모습을 보고 얼굴이 살짝 굳어졌다.

하지만 바로 얼굴을 펴고 경쾌한 모습이 되었다.


“재인, 어디 갔었어? 내가 어제 내내 전화했었잖아. 어디 있는지 당장 찾아가려다 내가 참았어.”


“이런 구속쟁이, 나를 그렇게 구속하면 안 된다고 몇 번을 말해야 해.”

“하하, 미안해.”


“보고 싶은 내 마음이 정처를 몰라 괴로워하는 것이 보이지 않아? 제발 내 마음을 좀 헤아려 줘.”


도현은 장난스럽게 재인에게 구애하는 포즈를 취했다.


“부르주아 계급의 여유로움이라니. 난 바빠. 너와 같이 모든 것이 저절로 되는 처지가 아니라고.”


“저절로 되다니?

"저절로지."


"내 이런 귀여운 애교를 저절로로 본단 말야? 제발 나의 이 귀여운 애교를 그냥 넘기기 말아줘.”


도현은 재인의 곁으로 바짝 다가갔다.


“아이, 징그러. 언제 속 차릴 거야?

“하하, 내가 속 차리면 그땐 해가 그만 뜨고 싶을 거야. 아마 달도 그만 뜨고 싶을지 몰라.”


재인과 도현은 어린 시절 놀이가 아직 안 끝난 사이 같아 보였다.

둘은 그들만의 유희를 오랫동안 즐기고 있었다.

벼리가 보기에 그랬다.


“무슨 일이야?”


재인은 한참의 놀이 후에 도현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도 잊어 버렸어.”

“싱겁기는.”

“아, 생각났어.”


도현은 조금 진지한 자세가 되었다.


“이번에 재벌 자제들 모임이 있는데 모두 자넬 궁금해 해.

"나를? 나를 어떻게 알고?"

"내가 재인 이야기를 엄청 했거든."

"뭐 하러... 괜찮은데."

"이번 주 금요일에 시간 좀 내면 어때?"

“내가 그런 자리에 어울릴 리가 없잖아. 모두 적통들 모임일 텐데. 내가 들어가면 조롱의 대상이 될 걸.”


재인은 조금 어두운 목소리가 되었다.


“허어, 잘난 재인 씨께서 왜 그러실까 몰라. 그 사람들 속물이라고 본인이 더 거부하고 있는 거 아닌가? 마음의 장벽을 깨 부셔야지.”


“높은 철옹성을 내 어찌 부술 수 있을까?”


“재인, 편견을 버려. 자네가 쌓아둔 성이야. 아무도 멋진 재인에게 담을 쌓지 않았어.”


"하하하."


도현의 말에 재인이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내가 도현이 자네 때문에 웃어. 알았어, 알았어. 한 번 가보긴 할게. 편견을 버려! 그 말을 들어야지.”


“좋아. 장족의 발전이야. 너도 한국에 왔으니 한국에서 새로운 그룹들과도 어울려야지."


"노력해 볼게."


"예술세계가 좋다고는 하지만 조금은 더 열린 마인드가 자넬 행복하게 해줄 거야.”


“난 지금도 충분히 행복해. 나만의 세계에서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것만도 감사해.”


벼리는 둘의 이야기가 길어지자 나가려고 했다.


“참, 우리 벼리 씨가 있는데 너무 우리만 이야기했어요. 미안.”


재인은 벼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벼리 씨, 먼저 올라가. 나도 곧 올라갈게.”

"벼리 씨, 있다 모임에 오세요. 친구들도 봐야죠.”


"오늘은 도현 씨 봤으니 그냥 다음에 올게요."

"아, 저만 보고 싶은 거였어요?“


"네가 자꾸 그러니까 벼리 씨가 어려워하잖아."

"미안. 난 벼리 씨가 좋아서."


"그럼 전 올라갈게요. 친구 분들 아직은 조금 불편해요."

"불편하긴요, 제가 모두 다 커버하겠습니다. 벼리 씨가 불편하지 않게 제가 챙길게요.”


“누가 보면 벼리 씨가 네 와이프인 줄 알겠다.”

“하하, 나도 헷갈려. 너와 벼리 씨를 항상 같이 보니까.”


“이런 몹쓸 사람.”

“미안해. 하여튼 다음 모임은 같이 만나는 걸로 알고 있을게. 이번 주 금요일이야. 잊지 마.”

“알았어.”


“벼리 씨, 배고픈데 저녁은 주시겠죠?”

“이런, 뻔뻔스런.”


“배고픈 데 장사가 어디 있겠어? 배고파.”

“알았어, 알았어. 자, 가자.”


재인은 도현을 데리고 그들의 펜트하우스로 갔다.


박 여사는 손끝이 야문 사람이었다.

벼리가 올라가자 금세 저녁식사 준비에 돌입했다.


벼리는 아직 집안일을 어찌 할 줄 몰라 서성이기만 했다.

박 여사는 벼리가 아무 것을 하지 않아도 되게끔 집안일을 마무리했다.


박 여사는 재인에게 엄마처럼 다정한 사람이었다.

성 부장은 재인의 아버지 역할을 했고 박 여사는 재인의 엄마 역할을 했다.


성 부장은 재인이 유학 가 있는 동안에도 재인을 돌봤었다.

박 여사는 성 부장이 재인을 위해서 구한 사람이었다.


성 부장과 박 여사는 재인과 벼리가 계약결혼인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러니 둘이 각 방 쓰는 것을 들키면 안 되었다.


박 여사는 펜트하우스에 같이 머물지 않았다.

같은 건물이긴 했지만 성 부장과 박 여사는 펜트하우스 아래층에 거주했다.


물론 둘이 같이 동거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둘은 재인을 중심으로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도현은 저녁을 먹고 집으로 돌아갔다.

도현은 자기네 집 밥보다 박 여사가 해준 밥이 더 맛있다고 자신도 이곳에 살면 안 되냐고 사정을 하곤 했다.


물론 농담이었겠지만 벼리가 듣기에 도현의 말은 이상하게도 진심인 것처럼 느껴져서 속으로 놀라곤 했다.


도현이 돌아가고 박 여사도 내려가고 재인과 단 둘이 있게 되었다.

벼리는 재인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보고 싶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랜디는 말했었다.


"재인에게 너무 많은 걸 물어보지 마. 재인의 친구들을 조심해야 할 거야."


또 중요한 경고의 말이 있었다.


"벼리, 꽃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벼리는 안전해. 하지만 꽃이 없는 곳은 조심해야 해."


사실 벼리는 재인의 작업장에 처음 들렀을 때 살아 있는 것들이 없어서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화분을 하나 가져다 놓았었다.

으아리꽃이었다.


으아리가 실내용은 아니었지만 마침 꽃을 피워서 큰 꽃송이가 어울려 가져다 놓았었다.


그런데 다음에 작업실에 갔을 때는 꽃이 어디론가 치워져 있었다.

박 여사에게 살짝 물었다.


"여사님, 제가 으아리꽃 가져다 놓은 거 어디다 치우셨어요?"

"벼리 씨, 대표님은 집에 꽃이 있는 걸 정말 싫어하세요. 향기에 알러지가 있으시대요. 그래서 집에 있는 모든 것에 향기 없는 것들만 써요.“


"제 욕실은 아니었는데?“


"대표님이 벼리 씨를 위해 특별히 배려한 거예요. 벼리 씨가 사용하는 것 외에는 어떤 것도 향기가 있는 것은 싫어하세요."


그랬다.

펜트하우스도 재인의 작업실도 살아있는 꽃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림 속 꽃은 여기저기에 많았다.

재인의 작업실만 하더라도 꽃의 그림이 적지 않았다.


삼국유사에는 꽃의 향기와 관련한 일화가 있었다.

선덕여왕은 총기 있는 공주였는데, 당나라에서 온 모란 그림에 나비가 없는 것을 보고 향기가 없지 않겠느냐고 말을 했다.

실제 모란은 향기가 없는 꽃이었다.


꽃에 향기가 없는 것을 알아차린 경우였다.


언젠가 벼리는 엄마와 함께 장미정원에 간 적이 있었다.

벼리는 잊었는데 엄마는 벼리가 어릴 때 했던 말이 너무 신기했다고 가끔 회상하는 이야기였다.


“엄마, 어린왕자의 장미는 어디 있을까?”

“어린왕자의 장미라는 게 있어? 어떤 꽃인데?”


“엄마, 어린왕자의 장미는 우선 꽃송이가 클 거예요. 잘난 체 쟁이니까요.”

“그래? 꽃송이가 크구나.”


“그리고 자기만 주목받아야 하니까 한 줄기에 꽃을 한 송이만 피워야 해요."


"여왕처럼 도도하게 한 송이만.”


“또 가시가 있어야 해요. 그것도 아주 큰 가시. 왜냐하면 어린왕자 말고 누군가 다가오지 못 하게 자신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그리고 그 장미는 향기가 없어요.”

“벼리야, 다 좋은데.. 왜 향기가 없어? 꽃이라면 향기가 있어야지.”


“엄마, 장미는 어린왕자의 사랑을 몰라요. 그리고 이기적이에요. 사랑을 모르는 꽃은 항기가 없어요.”


벼리의 엄마는 이 말을 듣고 정말 놀랐다고 했다.

사랑을 몰라서 향기가 없는 꽃이라니 아이의 생각은 어른인 엄마를 놀라게 했다고 한다.


갑자기 벼리가 어떤 꽃을 향해 뛰어가서 엄마를 불렀다.


“엄마, 어린왕자의 장미예요.”


과연 그 장미는 기다란 줄기에 한 송이 커다란 꽃을 피운 꽃이었다.

날카롭고 큰 가시가 있었다.

향기가 없었다.

사랑을 모른다는 어린왕자의 장미였다.


벼리가 향기 없는 꽃들에 대해 기억하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재인의 집에는 향기가 없었다.

어려서부터 향기 속에서 살아온 벼리였다.


그런데 재인의 집은 향기가 금지된 곳이었다.

향기가 금지되니 살아있는 꽃들은 당연히 집에서 살 수 없었다.

재인의 집과 작업실은 사람 이외의 살아있는 것들은 아무 것도 없었다.


벼리는 랜디의 말이 마음에 걸렸다.


"꽃이 있는 곳이라면 벼리는 어디든 안전해. 하지만 꽃이 없는 곳은 조심해야 해."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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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 72화_그린섬 지하의 베르 자르당(1) +4 20.06.14 682 47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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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6 55화_만약 죽는다면 꽃으로 태어날 거예요 +12 20.06.05 1,083 57 17쪽
55 54화_사유는 내 곁에 살아 있어 +11 20.06.05 1,119 57 13쪽
54 53화_새로운 나무 한 그루 +12 20.06.04 1,139 57 13쪽
53 52화_원더랜드가 원더랜드가 아닐 때 +10 20.06.04 1,160 58 11쪽
52 51화_실종의 종착지는 그린섬이었다 +7 20.06.03 1,167 59 15쪽
51 50화_내 남자와 누군가 가까이 지냈다면 +8 20.06.03 1,206 63 13쪽
50 49화_슬픈 나무가 되고 싶지 않아 +12 20.06.02 1,211 61 10쪽
49 48화_서주병원 설계 도면과 그린섬 +10 20.06.02 1,265 65 9쪽
48 47화_들키고 싶지 않은 욕망 +4 20.06.01 1,271 65 8쪽
47 46화_내 남자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면 +9 20.06.01 1,290 62 13쪽
46 45화_랜디의 선물 +6 20.05.31 1,303 58 15쪽
45 44화_불행한 예감은 틀리지 않아 +6 20.05.31 1,330 63 10쪽
44 43화_나를 지켜줄 거지 +4 20.05.30 1,323 61 11쪽
43 42화_충분히 의심스러운 +6 20.05.30 1,361 67 9쪽
42 41화_플로리스트 사유 +5 20.05.29 1,354 62 13쪽
41 40화_새끼 쥐와 무서운 고양이 +14 20.05.29 1,380 63 12쪽
40 39화_그린섬 아이들은 숨막혀 +8 20.05.28 1,380 62 12쪽
39 38화_망망대해 홀로 놓여 있는 아이 +10 20.05.28 1,416 65 11쪽
38 37화_울지 마라. 울면 안 돼 +5 20.05.27 1,427 58 12쪽
37 36화_그린섬 클럽의 아이들과 트루먼 쇼 +6 20.05.27 1,460 58 15쪽
36 35화_눈처럼 하얀 수국꽃을 주세요 +6 20.05.26 1,463 60 12쪽
35 34화_그린섬 지하는 비밀통로가 있다 +4 20.05.26 1,493 61 15쪽
34 33화_라일라와 준희, 제이 +4 20.05.25 1,505 57 14쪽
33 32화_랑데부 셰프 +8 20.05.25 1,567 62 12쪽
32 31화_핵인싸의 갑작스런 잠적 +12 20.05.24 1,523 61 13쪽
31 30화_그린섬의 비밀 공간 +14 20.05.24 1,544 63 12쪽
30 29화_첫사랑은 라일락 여린 빛깔 +12 20.05.23 1,534 61 12쪽
29 28화_때죽나무 꽃이 정원에 피다 +6 20.05.23 1,543 62 14쪽
28 27화_사랑처럼 자랑스러운 것이 있을까 +10 20.05.22 1,521 64 14쪽
27 26화_가지 말아요, 오늘밤은 +10 20.05.22 1,543 62 15쪽
26 25화_제주도 푸른 숲 사이 +10 20.05.21 1,537 63 12쪽
25 24화_연못에 잠긴 그믐달 +10 20.05.21 1,569 65 15쪽
» 23화_랜디의 경고 +14 20.05.20 1,593 65 18쪽
23 22화_정민의 실종 +12 20.05.20 1,641 66 11쪽
22 21화_우연은 없다 +12 20.05.19 1,627 64 15쪽
21 20화_자스민, 아름다운 여인 +8 20.05.19 1,669 66 15쪽
20 19화_그린섬 설계의 비밀 +13 20.05.18 1,698 69 12쪽
19 18화_가상 연애 모드에서 현실 결혼 모드 +11 20.05.18 1,689 65 14쪽
18 17화_나랑 진짜 연애할래요 +8 20.05.17 1,697 62 13쪽
17 16화_연애계약서 양식 +12 20.05.17 1,730 68 12쪽
16 15화_결혼할 사람 따로 있어 +10 20.05.16 1,726 71 9쪽
15 14화_우리 계약연애하자 +4 20.05.16 1,740 72 10쪽
14 13화_누구 맘대로 상견례를 +9 20.05.15 1,737 75 12쪽
13 12화_향기의 세계를 잃어버린 아이 +6 20.05.15 1,750 75 9쪽
12 11화_재인의 섬, 그린섬 +6 20.05.14 1,743 75 10쪽
11 10화_수상한 비밀정원 +20 20.05.14 1,767 75 12쪽
10 9화_그냥 사랑이라고 하자 +5 20.05.13 1,835 89 11쪽
9 8화_우연과 운명은 한 끗 차이(2) +12 20.05.13 1,797 85 9쪽
8 7화_우연과 운명은 한 끗 차이(1) +11 20.05.12 1,863 91 12쪽
7 6화_그린섬 아지트 멤버 +8 20.05.12 1,854 95 15쪽
6 5화_초록 머리 나무 아저씨 +18 20.05.11 1,975 108 13쪽
5 4화_제 마음은 털리지 않을 거예요 +12 20.05.11 1,953 109 13쪽
4 3화_이번 학기 폭망인가 +13 20.05.11 2,011 110 11쪽
3 2화_모태솔로 인생에 수상한 두 남자 +14 20.05.11 2,080 119 13쪽
2 1화_꽃의 향기를 듣는 소녀 +19 20.05.11 2,354 132 12쪽
1 프롤로그_푸른 장미를 얻는다면 +15 20.05.11 3,035 187 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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