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_누구 맘대로 상견례를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13화>
누구 맘대로 상견례를
* * * * *
주영은 파리에서 돌아온 후 도현과 함께 집에 들어갔다.
집에는 진 회장과 장 여사, 오빠인 주현이 있었다.
진 회장과 장 여사. 주현은 파리에 있어야 할 주영이 도현과 함께 나타나자 기겁했다.
“엄마...”
“너, 너...”
“아빠...”
주영은 엄마, 아빠에게 달려가 안겼다.
진 회장은 주영을 혼내려고 했으나 품으로 파고드는 귀여운 딸을 뭐라고 할 수는 없었다.
“어허, 이 녀석.... 허허...”
“당신은 그게 문제예요. 주영이가 지금 여기 왜 있냐고요,”
“주영이, 너 무슨 사고 친 거야?”
도현이 어머니를 껴안으며 말했다.
“어머니, 주영이 오니까 반가우시죠? 어머니 보고 싶어서 왔대요.”
“그 말을 믿니? 이유를 대려면 좀 그럴싸하게 대라. 주영이 쟤가 날 보고 싶어 할 리는 없고. 그래, 왜 왔대니?”
“나, 결혼하려고!”
주영의 결혼 소리에 모두들 한참 할 말을 잊었다.
"결혼?"
"응, 결혼!"
“뭐?”
“뭐라고?”
“주영아... 그, 그건 좀...”
“엄마, 아빠. 저 결혼할래요.”
“갑자기?”
“누구랑?”
“무슨 뜬금없는 소릴”
“재인 오빠랑 결혼할래요.”
“도현이 친구 재인? 대유그룹 아들?”
“...........”
“네가 무슨 평강공주니? 어렸을 때 결혼하겠다고 한 것을 진짜로 무슨 결혼? 말도 안 돼.”
“주영아, 제정신야? 난데없이 결혼?”
“왜? 옛날부터 재인 오빠랑 결혼한다고 했잖아.”
“도현아, 주영이 좀 말려봐. 결혼이라니?”
모두들 주영의 결혼선언에 할 말을 잃었다.
갑자기 한국에 온 이유는 혼낼 거리도 되지 못했다.
“어머니, 재인이랑 결혼시키는 건 어때요? 재인이 좋은 청년이에요. 제가 오랫동안 친하게 지내는데 친구 중에서 제일 괜찮은 친구예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말아라. 우리가 재인을 모르니? 재인이 착하긴 하지.”
“착하면 되죠.”
“착하면 되다니? 우리집안에 그 집안은 너무 기운다.”
“어머니, 우리 집안에 맞추려면 맞는 집안이 얼마나 되겠어요?”
“그만 해라.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장 여사는 더 이상 말을 꺼내지 못하게 했다.
주영은 도현의 팔에 매달렸다.
“오빠.... 응? 엄마 좀....”
주현이 소리 질렀다.
“말이 되니? 재인이랑 결혼? 재인은 혼외자식이라고. 우리집안에서는 안 돼.”
“오빠도 고리타분하긴. 왜 꼰대 같은 말을 해?”
“꼰대라니, 너 걱정해서 하는 소리지.”
“오빠는 뭘 알지도 못하면서. 내가 뭔가 한다니까 또 맘에 안 드는 거지? 그냥 무조건 맘에 안 드는 거 아냐?”
난데없는 주영의 결혼 소식에 장 여사는 소파에 주저앉았다.
“도현이는 서재로 와라. 당신은 좀 진정하고 있어. 주현은 엄마 좀 달래드려라.”
도현은 진 회장을 따라 서재로 갔다.
“어떻게 된 일이냐?”
“주영이 어렸을 때부터 재인이를 워낙 좋아했잖아요.”
“어려서 좋아했다고 결혼하는 건 아닐 테고.”
“재인이, 좋은 신랑감이에요.”
“재인이는 주영이를 좋아하고?”
“어려서부터 주영이를 아꼈잖아요. 그래서 주영이가 좋아하는 것이고.”
“하지만 대유에서 재인이는 입지가 좀 작지 않아?”
“저희 그룹의 사위가 되면 입지가 좋아질 거예요. 그건 문제가 아닌 것 같아요.”
“그럼 무엇이 문제인데?”
“어머니가 걱정이죠. 어머니가 주영이를 워낙 예뻐하시잖아요.”
“그거야 네가 거들면 될 것이고.”
“제가 말씀 잘 드려야죠.”
“그럼 주영이를 혼인시켜도 되는 거냐?”
“전 둘이 결혼하면 주영이가 행복할 것 같아요. 전 주영이가 좋은 일은 다 시켜주고 싶어요.”
“네가 동생을 아끼니까 내 마음이 좋다. 그래, 넌 그룹 일은 언제쯤 시작할 거냐?”
“전 아직 재목이 아니에요. 그리고 아버지가 이렇게 건재하신데 제가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그리고 주현이도 잘 하고 있잖아요. 주현이가 잘 하고 있으니 우선은 주현이를 밀어주는 것이 좋을 거예요.”
“너도 빨리 그룹에 들어와야 할 텐데.”
“회장님, 전 아직 조금 더 자유인이고 싶어요.”
도현은 진 회장과 이야기를 마치고 머리를 싸매고 있는 장 여사에게 갔다.
“어머니..”
“도현아, 이를 어쩌면 좋으냐, 응? 결혼이라니? 설마 아니겠지? 아직 나이도 어리고. 뭘 모르니까 그러는 거야.”
“어머니, 속상하세요?”
도현은 장 여사를 꼬옥, 껴안았다.
“뭐니? 정말 결혼할 생각이래? 아니겠지? 그냥 한국에 온 거 혼나기 싫으니까 그러는 거지? 주영이는 그러고도 남을 거야.”
“재인이 믿을 만해요. 어머니도 파리에서 몇 번 봐서 아시잖아요.”
“그거야 네 친구니까 편히 본 거지. 우리 집안이 대유 아들과 말이 되니? 더군다나 적자도 아닌..... 아니, 뭐 하여튼 주영이와 안 돼.”
“어머니, 주영이가 파리에 왜 간 줄 아세요? 주영이가 외국을 싫어하면서도 파리에 간 것은 순전히 재인이가 있어서 간 거였어요.”
“주영이가 널 좋아해서 파리에 간 거지.”
“물론 저 때문에 왔는데, 그러다가 재인을 좋아하게 되었나 봐요.”
“하여튼 안 된다.”
“어머니, 주영이가 행복하면 좋잖아요. 대유가 작다고 해도 우주그룹의 중요한 부분을 주영이 맡으면 되죠. 그걸 재인이 같이 하면 되고요.”
“주영이가 맡을 사업?”
“네, 어머니, 재인이는 그림을 전공해서 예술적 감각이 있으니 엔터테인먼트 계열을 주영에게 맡기면 좋지 않겠어요? 주영이는 사업에 관심도 없으니까요.”
“하긴 주영이는 사업이라곤 전혀 관심이 없으니.”
“그렇죠, 어머니? 관심이 아무리 없어도 우주그룹 딸인데 그룹 일에 참여해야죠. 그러려면 대신 일해 줄 사위도 필요하지 않을까요?”
“철없는 주영인 그렇고, 넌 언제 그룹에 들어오니? 회장님 기다리신다. 그리고 결혼은? 연애는 안 해?”
“어머니, 전 아직 어머니를 사랑하잖아요. 그리고 조금 더 놀아야 해요. 그룹 일은 주현이 잘 하고 있잖아요. 그리고.. ”
“결혼은? 연애는?”
“좋아하는 여자 생기면 제일 먼저 어머니에게 소개해 드릴게요.”
“좋아하는 여자 있어?”
“어머니....”
“있어?”
“아직은 아니에요. 일단, 주영은 결혼시키면 어때요?”
“알았어. 네 말을 들어보니 괜찮을 것도 같고.”
“대유에 정혼 이야기를 꺼내보세요. 우주그룹 체면이 맘에 걸리면 송 여사 있죠? 대신 이야기를 꺼내달라고 하면 좋아할 거예요.”
“네가 마음 써주니 고맙다. 그런데 이게 잘 하는 일일까? 철없는 주영이를 어떻게 믿고?”
“제가 있잖아요.”
도현은 장 여사를 다시 껴안았다.
주영은 재인의 집에서 돌아올 때 도현에게 단단히 부탁했었다.
이렇게 정혼의 전략은 도현의 집에서 먼저 시작되었다.
대기업에서 대유그룹에 혼담 이야기가 건너갔다는 찌라시는 재계를 대번에 흔들었다.
10대 기업인 우주에서 100대 기업의 끝에 있는 대유의 존재감 없는 혼외자식에게 혼담이 갔다는 것은 주목 받을 만한 찌라시였다.
무엇보다 재인의 집에서 고 여사 일행의 놀라움이 컸다.
“글세, 우주에서 혼담이 들어왔어요. 말이 돼요? 그 대단한 우주에서 왜 우리 대유에?”
“뭐, 안될 것도 없지. 파리에서 같이 공부했다잖아.”
“아무리 그래도 우주에서 대유에 혼담이 오다니. 요즘 전화가 난리 났어요.”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어?”
“어떻게 하다뇨? 우린 당연히 수락이죠.”
“재인에게 물어봤어?”
“그쪽에서 재인에게 이미 말 했겠죠. 재인에게 말도 안 하고 혼담 이야기를 꺼냈겠어요?”
“그렇겠지?”
“상견례 날짜까지 왔어요.”
“벌써? 그런 거 원래 천천히 하지 않나?”
“재인이가 맘에 드나 봐요.”
재인과 주영의 상견례 날짜가 집안끼리 잡혔다.
재인은 모르고 있었다.
도현은 말하지 않았다.
주영도 재인의 집안에서 말했을 거라 생각했다.
상견례 날이 되었다.
고 여사는 재인에게 호텔우주 연회장으로 오라는 연락을 했다.
호텔우주는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으며 우주그룹 계열사였다.
글로벌 관광서비스업체로 면세사업부, 호텔사업부, 리조트사업부, 항공사업부 등 4개 사업부가 있었다.
이들은 면세점, 호텔, 테마파크, 리조트, 항공, 골프장 사업 등을 하고 있었다.
거대 규모의 호텔우주는 우주그룹의 둘째 아들 주현이 대표로 있었다.
주현은 아직 나이가 어리지만 경영능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재인은 도현을 만날 때 호텔우주에서 자주 만났다.
호텔우주에 갈 때, 재인은 주현의 사무실에 같이 들르곤 했다.
주현의 사무실은 호텔 맨꼭대기층에 있었다.
도현이 호텔에 가면 직원들은 모두 긴장하는 것 같았다.
도현은 둔해서 그런 것을 모르는 눈치였다.
“도현, 왜 너만 뜨면 다들 긴장각일까?”
“아니야. 그냥 예의를 갖추는 거지. 호텔 대표의 형님이니까?”
“형님이라고 이럴까? 아무래도 너, 모르는 곳에서 압력 넣는 거 아냐?”
“너도 알잖아. 난 그룹 일에 관여 안 하는 거. 그냥 주현이 형을 챙기니까 직원들이 알아서 긴장하는 것이겠지. 난 뭐. 무슨 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냥 그 정도?”
“난 그냥 백수야. 아무 것도 아닌? 그룹 사람이라고 미리 그러는 것일 뿐. 아마도?”
도현은 늘 아무 것도 아니라고 말했다.
“난 정말 아무 것도 아냐. 너무 아무 것도 아닌 백수?”
재인을 만나서도 늘 아무런 존재감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중요한 결정을 할 때는 늘 도현의 의견으로 결정되곤 했다.
도현은 무슨 일을 하든 자신의 의견을 관철시켰다.
재인은 호텔우주의 연회장으로 갔다.
작은 행사가 있을 때 쓰는 곳이었다.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와 있었다.
“오빠.....”
주영이 핑크빛 드레스를 입고 재인을 불렀다.
“오빠, 왜 이제 왔어.”
“너도 왔어? 무슨 일 있어?”
“무슨 일이라니? 이야기 안 들었어?”
“무슨 이야기?”
“오늘 오빠랑 나랑 상견례 있는 날이잖아.”
“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니?”
“오빠야말로 농담 아냐?”
“당사자가 모르는 상견례가 말이 되니? 설마.”
도현이 걸어오고 있었다.
“재인, 어서 와. 기다리고 있었어.”
“도현, 무슨 일이야?”
“왜?”
“상견례라니?”
“몰랐어? 너희 집에서 말 안 했어?”
재인은 기막힐 노릇이었다.
자신이 집안에서 아무리 존재감이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이건 아니다 싶었다.
재인은 당장 뛰쳐나가려고 했다.
도현이 붙잡았다.
“집에서 전달을 잘 못했나 봐.”
“갈 거야.”
“간다고?”
도현은 순간 재인의 곁에 바짝 붙어 귓속말을 했다.
“재인, 이건 그룹 차원의 일이야. 개인적으로 행동하면 안 돼. 너희 아버지에게 치명적 일이 생길 거야. 그 정도는 알고 있지?”
“도현, 아무리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하지만 재인은 아버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유는 우주에서 입김 한 번 크게 불면 그냥 쓰러질 회사였다.
주영은 눈물을 쏟아냈다.
도현은 주영의 눈물을 닦아줬다.
“울지 마. 오빠가 알아서 할게.”
“............”
“주영아, 오빠가 이야기 잘 할게. 기다리고 있어. 재인이랑 같이 들어갈게.”
도현은 주영의 등을 토닥이고 연회장 안으로 들여보냈다.
“재인아, 어쩔 수 없으니 연회장 들어가자.”
“말도 안 돼. 누구 맘대로 상견례?”
“재인아, 생각해봐. 이걸 우리가 맘대로 정했겠어? 다 너희 집안과 상의해서 결정한 일이야. 너희 집에서 좋다고 말했고.”
“나는 모르는 일이야.”
“너희 집안에서 말을 안 한 것이겠지. 너희 집안과의 문제야.”
“주영과 상견례 이야기를 해본 적 없어.”
“주영이도 여자야. 여자가 어떻게 먼저 말을 꺼내? 네가 말을 꺼내길 기다리고 있었겠지.”
“하여튼 안 돼.”
재인은 다시 나가려고 했다.
“재인, 네가 가면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고는 있는 거지?”
도현은 아주 작은 소리로 말했다.
은근하였지만 재인은 꼼짝할 수 없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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