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_아카시아나무가 있었다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58화>
아카시아나무가 있었다
* * * * *
벼리가 간단하게 챙기고 방에서 나오니 재인이 와 있었다.
, 어디 가려고? 몸은 괜찮아?”
“열이 좀 나는 것 같아요. 오빠네 가서 좀 쉬다 올게요.”
“집에서 쉬는 건 어때? 오히려 걱정하지 않을까?”
“연이 언니도 있고. 하루만 쉬다 올게요.”
“데려다 줄까?”
“언니에게 전화할게요. 아마 데리러 올 거예요. 언니의 사무실도 여기서 가까우니 퇴근길에 들르라고 할게요.”
.
“성 부장이 데려다 줘도 되는데, 편할 대로 해.”
벼리는 연이에게 전화했다.
연이가 퇴근길에 들렀다.
“아침에 보고 저녁에 또 보네요. 이러다 벼리 뺏기는 거 아닌가요? 다시 데려가야 할까 봐요.”
“벼리는 저의 영원한 사랑이에요. 데려가다니요, 절대 안 되죠. 전 저의 사랑을 절대 뺏기지 않을 건데요.”
벼리는 둘의 농담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자신은 위기상황에 놓인 게 확실했다.
정신을 차려야 했다.
연이는 눈치 채지 않게 농담으로 얼버무리며 벼리를 데려 갔다.
벼리는 연이 집에 도착하자마자 침대로 쓰러졌다.
연이는 벼리가 쉬도록 두었다.
그리고 벼리는 잠이 들었을까?
꿈속에서도 사랑일 리가 없잖아, 라고 했던 재인의 소리가 반복되었다.
늦은 시간에 민수가 왔다.
민수는 명훈을 데리고 왔다.
민수가 오는 소리를 듣고 벼리는 방에서 나왔다.
“오빠 왔어?”
“명훈 이 녀석 사건 때문에 나가자고 하면 늘 투덜대는데 이번에는 늘 앞장서고 자기가 먼저 나선단 말야. 혹시 벼리를 봐서 그런 거 아냐?”
“하하, 솔직히 말해서 선배님 결혼식 때 보고 완전 반했었죠.”
“정말 흑심이 있었어?”
“무슨 말씀을. 그랬으면 선배님께 벌써 맞아 죽었겠죠. 하하.”
“나도 명훈 오빠 좋아했는데, 뭘. 오빠, 이렇게 도와줘서 고마워. 든든하고 좋아.”
“당연히 도와야지. 한때 사랑했던 동생 일인데.”
“명훈아, 조심하자.”
“하하, 알았어.”
연이가 주방에서 불렀다.
“저녁 먹읍시다. 먹어야 힘나죠.”
“명훈아, 저녁 먹자. 벼리 너도 어서 뭘 좀 먹자. 얼굴이 엉망이다.”
“그 정도야? 내가 그 정도로 무너지는 얼굴은 아닌데? 이 미모가?”
힘이 없는 농담은 농담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농담이란 힘이든 시간이든 여유 속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애쓰지 마. 힘든 이 상황을 굳이 아니라고 숨기지 않아도 돼. 친정이잖아.”
민수의 말에 벼리는 울 것 같았다.
“우리 아가씨 울겠네. 일단 음식을 먹어. 뭐든 음식을 섭취하면 긍정적이 되고 뭐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대잖아.”
“어서 먹자. 오빠도 일단 먹어야겠다. 명훈이도 들자.”
벼리는 식탁에 앉았다.
모두 식탁에 앉았다.
연이가 김치찌개를 식탁에 올려놨다.
“오,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 맛있겠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야. 난 언제나 왜 김치찌개가 최선이지?”
“연이 언니 김치찌개는 맛있어. 고마워.”
“연이가 맨날 김치찌개만 끓이는데 그나마 맛있어서 다행이야. 음식에는 통 소질이 없는데 김치찌개는 잘 끓인단 말야.”
“제가 일찌감치 인정하잖아요. 제 음식솜씨가 아니고 어머님의 김치 솜씨라고. 모두 어머님의 김치가 주재료인 셈이죠.”
“어쨌든 연이 언니 김치찌개 최고.”
“역시 웃으며 먹는 밥이 최고의 힘이야.”
셋은 웃으며 밥을 먹었다.
밥을 먹고 셋은 사건의 프로파일링이 정리된 방으로 갔다.
벼리는 오늘 자신이 죽을 뻔했던 오토바이 사고에 대해 말했다.
하지만 재인과 성부장이 나눈 이야기는 하지 못했다.
재인이 이번 일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될 것 같았다.
민수가 알아낸 아직까지의 사건 경위는 작은 진전이 있었다.
세 명의 실종과 사유의 사고는 연관이 있는 것이 아니었지만 모두 그린섬과 관련이 있었다.
정민은 그린섬 일을 파헤치다 사라졌다.
라일라는 그린섬 멤버인 영진이 좋아했던 여자 친구였다.
준희는 랑데부 셰프로 그린섬 멤버인 정우를좋아했었다.
사유의 죽음은 우연이었지만 죽은 후에 그린섬에서의 수상스런 회합이 있었다.
사유의 죽음 이후에 어떤 일들이 계획되고 있는 조짐이 있었다.
그동안 그린섬에서 있었던 회합은 어떤 규칙성이 있었다.
그믐밤과 관련된 것이었다.
사유의 죽음 이후 다시 그린섬의 회합이 있을 예정이었다.
회합이 있는 날은 어떤 의미가 있었다.
“이 회합의 의미는 무엇일까?”
“그린섬 정원의 나무는 무슨 의미지?”
“비밀통로가 필요한 이유는 뭘까?”
“이상이 오늘 질문의 요점이겠지?”
“플러스가 있어. 왜 갑자기 벼리가 타깃이 된 거지? 그들은 처음부터 벼리를 염두에 두었을까? 벼리가 위험한데 벼리를 그린섬에 두어도 될까?”
벼리에 대한 질문에 대해서는 모두들 잠시 입을 다물었다.
벼리의 문제는 생각보다 더 심각할 수 있었다.
민수와 명훈은 비밀통로에 대한 조사를 위한 장치로 반대편 건물에 CCTV를 설치했는데 비밀통로인 것은 확실하다고 했다.
민수와 명훈이 생각보다 사건에 적극적으로 뛰어든 바람에 진척은 빠른 편이었다.
사건에 진척이 있을수록 왜 재인이 걱정되는지 벼리는 이상했다.
괴로운 마음 가운데 벼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였다.
* * * * *
벼리가 민수의 집에서 잘 때 재인, 김 교수, 성 부장은 재인의 작업실에서 뭔가를 상의하고 있었다.
“교수님, 푸른 그믐에게 바치는 의식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재인이 김 교수에게 말했다.
김 교수는 고개를 끄덕이고 성 부장을 불렀다.
“성 부장님, 의식 준비는 잘 되고 있겠죠?”
“내일 저녁입니다. 제물은 내일까지 준비 예정입니다.”
“재인, 의식에 필요한 나무는 준비했겠지?”
“아카시아나무를 준비했습니다. 나무는 항상 그 영혼을 담고 있어야 해서 제물이 평소 사랑하던 나무입니다. 향기를 가지고 있으며 꽃말은 비밀스런 사랑입니다. 식재할 자리는 치자나무 바로 옆으로 했습니다. 서로 떨어지지 않고 어우러져 행복하도록 할 예정입니다.”
“성부장님, 사유가 평소에 아끼던 아이입니다. 조심히 다뤄주세요. 문제가 없어야 하니까요.”
“걱정하지 마세요. 윤지는 마침 일본에서 행사가 있어 내일 출국 예정입니다. 여러 가지가 우리를 돕는 것 같습니다.”
“윤지의 꽃 다루는 솜씨는 아무도 못 따라가. 아내 사유가 가장 사랑했지. 사유도 자신을 위해 꽃이 필요할 때는 꼭 윤지의 손을 빌렸잖아. 윤지가 꽃을 만지면 꽃들이 더 생생해지고 각각의 꽃들이 더욱 조화롭게 아름답거든. 그런 건 윤지의 꽃에 대한 감각이 뛰어난 때문이라고 말했더니 사유가 말하길, 윤지는 꽃과 교류가 있는 아이라고 했던 것 같아. 난 그런 소리를 제일 싫어하긴 하는데 아내 사유가 좋아하니까 그런가보다, 했지.”
“네, 윤지 씨의 꽃 다루는 솜씨는 누구에게도 견주지 못한다고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우리 그린섬의 꽃집 민 실장도 그런 능력이 있긴 하고요.”
“그래서 사유와 민 실장, 윤지가 잘 어울리곤 했잖아. 그린섬의 민 실장도 사유가 소개시켜 줬고. 재인이 갑자기 꽃집을 열게 되어서 민 실장이 오게 된 거지. 가장 일을 잘 해주는 사람이지. 민 실장.”
“그런데 민 실장이 윤지와 관계가 있어 윤지를 찾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아니, 이번에 윤지가 일본에 한 달 정도의 일정으로 떠나는 것이라서 민 실장이 찾지는 않을 거야. 언제나 긴 출장은 연락하지 않았거든. 윤지가 긴 출장일 때 사유에게도 연락하지 못하게 했거든. 그건 내가 잘 알아. 윤지의 평소 출장 스타일이니까.”
“다행입니다. 푸른그믐제에 잘된 일이죠.”
“다행이야. 윤지가 내일 출국이니까.”
셋은 더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사방은 고요했고 어떤 향기도 소리도 없었다.
셋의 이야기는 그들만 들을 수 있었고 소리는 사라졌다.
어둠으로 소리가 사라지고 있었다.
소리도 움직임도 흡수되는 그런 밤이었다.
* * * * *
다음 날 아침, 벼리는 일찍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벼리가 생각하기에 재인은 분명 위험에 빠졌다.
재인이 의도하지 않았으나 김 교수나 성 부장에 의해 어쩔 수 없이 엮인 일일 수 있었다.
어쩌면 반대로 재인이 주동인물일 수도 있었다.
벼리는 재인을 믿고 싶었다.
그래서 확인해야만 했다.
벼리는 오늘밤 그린섬 지하의 일을 꼭 확인해야 했다.
벼리가 일찍 오자 재인은 올 줄 몰랐다는 표정을 지었다.
반가운 표정은 아니었다.
“괜찮아? 좀 더 쉬다 오지. 하루 더 자고 오지 그랬어.”
“좀 좋아졌어요. 재인 씨도 걱정돼 일찍 왔어요.”
“나를 걱정할 일이 뭐가 있어. 아픈 사람은 벼리 씨잖아. 정말 괜찮아?”
“네, 충분히 잘 쉬고 잘 먹고 왔어요.”
“나는 오늘 늦도록 일이 있을 것 같아. 일찍 자도록 해. 연락 안 닿더라도 걱정하지 말고. 알았지?”
“무슨 일이 그렇게 바빠요?”
“응, 그렇게 됐어. 갑자기 미술관 전시로 급하게 처리할 일이 생겨서 그래. 그리고 영화 제작 역시 바쁘게 진행하고 있어. 벼리 씨도 일찍 자도록 해.”
재인은 작업실로 내려갔다.
재인이 나가자 벼리는 재인의 방으로 갔다.
정원 쪽 커튼을 열었다.
요즘 밤마다 꿈에서 괴로워하는 꽃들을 만났다.
그린섬 정원의 나무들은 어떤지 걱정되었다.
벼리는 정원을 보다 깜짝 놀랐다.
새로운 나무가 있었다.
어떤 나무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새로운 나무가 있었다.
벼리는 놀라 연이에게 바로 문자를 보냈다.
<그린섬 정원에 나무가 하나 새로 심어졌어>
바로 답이 왔다.
<나무가? 어떤 나무? 무슨 일이지?>
<내려가 볼게. 어떤 나무인지 알아보고 문자할게>
벼리는 저녁에 있을 회합과 관련한 나무일 거라 생각했다.
벼리는 회합에 새로운 희생자가 필요한 것은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린섬 정원에 심긴 나무는 반드시 희생자와 관련이 있었다.
아직까지의 사건에 대한 결론이었다.
벼리는 1층으로 내려갔다.
곧바로 그린섬 정원의 담 쪽으로 갔다.
쥐똥나무와 담쟁이가 문을 열어 주었다.
새로운 나무가 있었다.
벼리는 새로운 나무가 심긴 곳으로 갔다.
치자나무 옆으로 심겨진 나무였다.
다른 나무와 다르게 치자나무 옆으로 가까이 심긴 나무였다.
아카시아나무였다.
치자나무 옆에 아카시아나무가 있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Comment '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