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화_서주병원 설계 도면과 그린섬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48화>
서주병원 설계 도면과 그린섬
* * * * *
주영이 다녀가고 벼리는 펜트하우스로 올라왔다.
재인은 언제 나갔는지 집에 없었다.
재인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어야 했다.
하지만 차라리 없어서 잘 됐다 싶었다.
지금은 어떤 이야기를 하더라도 안 좋은 이야기만 쏟아질 것이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이런 날은 잠시 휴전처럼 시간을 두는 것이 좋을 수 있었다.
‘무엇에 대한 휴전이지? 일방적인 일이지 않은가?’
벼리는 자신이 지속적으로 재인에게 뭔가를 따지고 싶어 한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었다.
분명 재인이 잘못한 일이었다.
하지만 재인과 안 좋은 이야기를 조목조목 할 자신이 없었다.
집에서 멍 때리며 생각에 잠겨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연이였다.
약간 흥분된 목소리였다.
“벼리, 나 사유 씨와 인터뷰하기로 했어. 내가 김 교수 그림 완전 좋아하잖아. 사실 요즘 SNS에서 김 교수 그림이 제일 핫해. 그림 속의 사유 씨는 마치 동화 속의 인물 같아. 그런데 실제 보니 정말 그렇게 아름답더라. 어제 덕분에 좋은 인터뷰 건을 주워서 다행이야. 고맙다.”
연이는 벼리가 괴로운 것도 알지 못하는 것 같았다.
가만 생각하니 어제 그런 일이 있을 때 계속 도현이 벼리를 커버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다행이다. 언니가 좋아하니 나도 좋아.”
“그런데 어제 언제 간 거야? 몸이 안 좋다고 했는데 괜찮아? 있는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 없더라? 오빠도 벼리 찾았어.”
“미안. 어제 좀 안 좋았어.”
“지금은 괜찮아? 혹시 내가 갈까?”
“아냐. 괜찮아. 사유 씨 인터뷰는 언제 잡았어?”
“내일 잡았어. 나 있잖아, 사유 씨 만나면 물어보고 싶은 거 정말 많아. 수수께끼 같은 이야기를 몰고 다니거든. 사유 씨.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아.”
“하하, 그런데 언니, 사유 씨가 언니가 물어보는 대로 대답을 다 해줄까? 대체 언니의 근자감은 뭐야? 누구든 언니 말에 대답을 다 해준대? 나나 민수 오빠처럼? 우리 오누이는 언니가 뭔가 말하면 모두 술술 불잖아. 나도 언니한테는 입이 싸지, 오빠는 더 싸지. 문제야. 그러니 언니한테 이렇게 문제가 있는 거야. 누구든 언니한테 말을 다 한다는 근자감? 그래서 기자를 하나?”
“하하, 입이 싸긴. 우리 아가씨. 뭔가 심통 난 게 있으시구나. 뭐예요? 말해요. 내가 달달한 것 좀 사가지고 가요? 벼리 아가씨 좋아하는 초콜릿은 어때요? 초콜릿을 가장 맛있게 보관할 수 있다는 17도씨로 정확히 포장해서 가겠습니다. 어때요?”
“이제 보니 언니 순 사기다. 어떻게 17도씨를 맞춘다고?”
“내 마음이 정확히 17도씨로 포장해서 가져가겠다 이 말이지. 하여튼 말만 해. 사유 씨와 인터뷰도 잡은 마당에 무엇인들 못 들어주리까? 아니면 영원히 시들지 않는 롤리팝 장미 수제 초콜릿은 어때?”
“난 시들지 않는 장미 같은 거 싫어. 그냥 아이스 초콜릿이나 사다줘. 언니 말대로 시원 달달한 거 먹으면 좋겠다.”
“오케이. 그리고 오빠랑 같이 갈게. 오빠가 그린섬 설계에 대해 뭔가 좀 알아냈나 봐.”
“어떻게 알았대? 궁금하다. 어서 와. 재인 씨는 저녁에나 올 거 같아.”
민수 오빠가 그린섬 설계에 대해 뭔가 알아냈다고 했다.
일단 비밀을 꽁꽁 감추고 있는 빌딩의 설계에 대해 알아야만 했다.
요즘 재인이 대유엔터테인먼트 일로 바빠져서 성 부장은 재인의 모든 일을 나서서 도와주고 있었다.
성 부장이 관여했던 그린섬의 관리와 관련해 작은 일들은 박 여사가 처리했다.
연이와 민수가 집으로 왔다.
다른 곳에서 만나는 일이 조금은 더 부담스러웠다.
펜트하우스가 조용히 만나기엔 좋은 장소였다.
“민수 오빠, 그린섬 설계에 대해 뭔가 알아냈어?”
“겸재 아저씨가 그린섬 설계를 할 당시 초반에 참여했던 건축사 분을 찾았어. 그분은 설계초반에 같이 했었는데 갑자기 외국에 있는 회사로 가게 되어 중간에 그만 두셨다고 했어. 어떻게 우연히 알게 된 분이야. 그분이 그때 당시 초반에 설계했던 것을 저장해 놓은 것이 있었대. 그래서 그 설계도면을 메일로 보내줬어. 이것은 설계의 준비단계에서 작성한 거라서 디테일한 것은 아니래.”
민수는 도면을 출력해서 가져왔다.
그런데 도면 상단에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서주병원 분점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이것은 병원 설계도면이야. 잘못 가져왔나봐.”
“아냐, 그래서 이상한 점이 많은 건물이야. 그린섬은 처음 병원으로 설계된 곳이었어. 그러다가 갑자기 설계가 용도 변경이 되었고, 그 즈음에 겸재 아저씨가 돌아가셨다는 거지.”
“그런데 왜 병원 건물이었을까?”
“서주병원은 정우 아빠가 원장으로 있는 곳이야. 서주병원 분점 설계를 할 당시 정우 아버지는 병원 원장까지는 아니었어. 그러다 갑자기 젊은 나이에 병원장이 되었지. 그리고 서주병원 분점 설계는 중단되었어. 대신 그 건물이 그린섬이란 평범한 건물로 탄생한 거지.”
“뭔지 미스터리하다. 건물 용도가 왜 바뀐 거지?”
“그리고 또 이상한 것은 이 건물이 서주병원 소유였는데 갑자기 대유로 넘어간 거야. 그린섬 빌딩이 있는 곳은 그다지 투자요건이 좋은 곳이 아냐. 병원은 투자요건에 영향이 적으니까 괜찮았지. 그러나 일반 건물으로는 오히려 투자요건이 안 좋은 곳이었어. 사람들 통행이 적은 편이니까. 그런데 자금 여유가 그리 많지 않은 대유가 설계 중간 단계에서 인수 받았다? 이상해.”
“그런데 또 그 건물을 재인에게 줬다?”
“맞아. 김 회장이 재인 씨한테 이 건물을 준 것은 좀 이상하다고 했어. 대유에서 이 건물의 자산 가치를 따지면 재인 씨 몫으로 하기에 너무 컸거든.”
“건물이야 재인에게 줄 수도 있는 거지. 중요한 것은 서주병원 건물이 그린섬 건물로 되었다는 거야. 그 이유를 알아봐야 할 것 같아. 그리고 자, 이제부터 더 놀랄 일이 있어. 건물 도면을 보여줄게.”
민수는 설계도면을 몇 잠 넘겼다.
그것은 층수별로 그려진 3D그림이었다.
설계도면엔 지하 7층까지 있었다.
지난 번 벼리와 연이가 갔을 때 봤던 엘리베이터의 숫자는 의미가 있던 것이었다.
“이거 봐. 지하 7층까지 있어.”
“그런데 이건 뭐지? 무슨 설비가 잔뜩 있는데?”
“이건 냉동 창고 시설이야.”
“냉동? 음, 대형병원은 시체 안치실이 있어. 바로 그런 시설의 냉동 설비야.”
“시체 안치실?”
“그래, 어쩌면 그동안 실종되었던 사람들이 이곳에 있을지도 몰라.”
“설마, 요즘 세상에 시체 처리가 아무리 어렵다고 자기 건물 지하에 냉동 보관하겠어? 말도 안 돼.”
“맞아, 시체를 처리하는 데는 차라리 소각장이 더 나아. 소각장의 경우, 뼈까지 연소시켜서 유전자를 찾아내기도 불가능해. 당연히 시체를 유기한다면 소각장이지. 냉동 창고는 아냐. 언제 발각될지도 모르고. 비용도 만만찮을 테고.”
“돈 걱정 없는 사람이라면? 그리고 냉동창고가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다면?”
모두들 말소리를 줄였다.
자신들도 말을 막 뱉어내고 있는 중이었다.
상황이 놀라워서 생각 없이 쏟아낸 말들이었다.
생각 없이 쏟아낸 말들이 가끔 논리적일 때가 있었다.
이들은 자신들이 생각 없이 쏟아낸 말들이 어쩌면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섬뜩함을 느꼈다
모두들 갑자기 목소리를 줄였다.
서로 몸을 가까이 하고서 조금은 더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진행해야 할 것 같았다.
모두들 조금 더 가깝게 앉았다.
도면을 다시 봤다.
지하 7층까지 그려져 있는 도면이었다.
아마 건물은 지하 건축을 할 때 기존 병원 도면을 썼을 것이다.
이들은 지하의 냉동시설이 필요했을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서로 뱉지 않았다.
하지만 당연한 상상이었다.
이들은 조금 더 알아보기로 했다.
함께 지하로 내려가 보기로 했다.
마침 경비실에 아버지가 계시니 아버지의 도움을 받으면 될 것이었다.
함께 엘리베이터를 탔다.
버튼은 지하 7층까지 있었다.
버튼은 지하 5층까지만 활성화되어 있었다.
“이거 봐. 지하 5층까지만 가게 되어 있어.”
“내가 혹시나 해서 이런 걸 가져와 봤어.”
민수가 무슨 카드를 꺼냈다.
“혹시 맞을지 모르겠어. 전문털이범한테 은밀히 구한 거야.”
“오빠, 이런 일도 해? 이런 불법을?”
“쉿, 조용해. 그냥 일단 오늘은 시도만 해볼 거야. 오늘은 시간상으로 날이 아닌 것 같아. 일단 지하 5층으로 가자.”
모두 지하5층으로 갔다.
전기시설이 거대해서 기계들이 자체적으로 조용히 움직이는 것 같았으나 거대한 것의 움직임은 숨기기 어려웠다.
은밀하게 거대한 소리들이 무겁게 들려왔다.
이들은 지하5층에 내렸다가 다시 엘리베이터를 탔다.
“다른 사람들이 의심할지 모르니까 이 정도 조심성은 있어야지.”
민수가 말했다.
민수는 카드를 꺼내서 엘리베이터 중간에 있는 카드리더기에 댔다.
<삐>
기계음이 들렸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지하 6층과 7층의 버튼이 활성화 되었다.
모두들 놀랐다.
활성화된 버튼의 불빛이 이들을 놀라게 했다.
지하는 존재했다.
이들이 들어가면 안 되는 지하가 존재했다.
존재했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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