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_만약 죽는다면 꽃으로 태어날 거예요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55화>
만약 죽는다면 꽃으로 태어날 거예요
* * * * *
벼리는 꽃달에서 꽃들과 한참 머물렀다.
꽃들이 벼리에게 향기를 뿜었다.
“랜디가 벼리에게 꽃의 힘을 많이 줘야 한다고 했어.”
“벼리가 힘을 내야 꽃들이 행복할 거라고 했어.”
“벼리, 힘을 내줘.”
꽃들이 마구마구 향기를 뿜었다.
랜디가 뿜어주는 숲의 향기까지는 아니어도 벼리는 온몸이 다시 생생해지고 있었다.
그린섬 정원에 가봐야 했다.
정원에 치자나무가 심겨져 있으면 그동안의 실종사건은 나무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무는 사망과 관련이 있었다.
쥐똥나무와 담쟁이가 문을 열어 주었다.
조금은 수다스럽던 쥐똥나무가 하얀 꽃을 가득 피우고 벼리에게 향기를 흩뿌려 주었다.
“힘내. 꽃들에게 용기를 주는 벼리야, 꽃들의 향기를 받고 힘내.”
쥐똥나무가 몸을 흔들자 5월의 꽃향기가 가득했다.
정원에 들어섰다.
여전히 정원은 고요를 몰고 왔다.
정적을 품고 있는 정원은 고립된 섬처럼 고독해 보였다.
두려움의 성에 갇힌 것 같았다.
구골나무는 말이 없었다.
슬픈나무란 구골나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언제나 온몸에 슬픈 눈물방울을 달고 있었다.
때죽나무, 라일락, 수국이 옆으로 있었다.
나무들 역시 고요했다.
새로이 심겨진 나무가 있었다.
나무는 틀림없이 치자나무였다.
한 그루의 치자나무가 있으면 골목 하나쯤은 향기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했다.
치자는 초봄이나 여름에 굵은 가지를 잘라서 나무 모양을 다듬어 주기만 하면 또 다른 작은 가지가 나와서 저절로 예쁜 모양의 수형을 잡는 나무다.
치자나무는 예쁘고 단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단아한 모습이 사유를 닮아서 벼리는 마음이 아팠다.
조선시대 강희안의 『양화소록』이라는 책에 치자나무 특징을 네 가지로 정리한 기록이 있었다.
첫째, 꽃색이 희고 기름지다.
둘째, 꽃향기가 맑고 풍부하다.
셋째, 겨울에도 잎이 푸르다.
넷째, 열매를 물들이거나 한약재로 쓴다.
치자는 이렇게 쓸모도 많고 아름다운 나무였다.
벼리의 할머니는 추석 때면 주황색 열매를 찧어 노란 물을 우려내서 녹두 빈대떡을 예쁘게 물들이시곤 했었다.
그런데 이곳에서 치자나무는 슬픈 나무로 서 있었다.
벼리는 치자나무에게 말을 걸었다.
“넌 어떻게 이곳에 오게 되었니?
나무는 새롭게 식재해서 그런지 기운이 없었다.
창백한 여인처럼 보였다.
나무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곳의 나무들은 말을 아꼈다.
그만큼 사연이 있는 나무일 수 있었다.
벼리의 의심은 깊어졌다.
재인은 벼리의 의심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냉담했다.
재인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어떤 설명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벼리가 멀어지길 바라는 사람이었다.
벼리는 연이에게 연락하려고 전화를 들었다.
순간 전화벨이 울렸다.
연이였다.
‘연이 언니는 내 마음이 답답한 줄 아는 거지?’
전화를 하려던 차였다.
연이가 벼리의 마음을 알고 전화했다.
“어디야?”
“그린섬 정원이야.”
“역시 치자나무?”
“응, 치자나무가 맞았어.”
“민수 오빠가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대. 집으로 들러.”
“재인 씨는 장례식장에서 여유가 없을 거야. 문자 남기고 집에 들를게.”
벼리는 재인에게 문자를 보냈다.
《엄마가 좀 아프시대요. 오빠가 잠깐 들르라고 해서 집에 들렀다 올게요. 장례식장에서 애쓰겠어요》
핸드폰을 손에 들고 있었는지 답이 바로 왔다.
《잘 다녀와. 어머님 몸 안 좋으신데 같이 못 가서 미안해. 난 여기에서 밤샘할 것 같아. 내일 일찍 들르든지 할게. 혹시 박 여사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해. 도와 줄 거야.》
《괜찮아요. 혼자 잘 다녀올 수 있어요. 신경써줘서 고마워요.》
벼리는 연이의 집으로 갔다.
민수, 명훈도 기다리고 있었다.
모두 사건 현황판이 있는 방으로 갔다.
커튼은 내려져 있었다.
“당분간 여기가 가장 안전한 장소일 것 같아. 여기서 사건정리를 하기로 했어.”
현황판에는 새로운 사진이 붙어 있었다.
성 부장 사진이었다.
겸재 아저씨 사진도 있었다.
“서겸재. 서정민의 아버지. 그린섬 최초 설계자. 음주교통사고 사망. 이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이지?”
“정민의 천재성을 인정해서 성진그룹이 정민의 유학을 후원했어. 이때 겸재 아저씨는 우주그룹 자회사의 빌딩 설계를 맡아서 일을 진행하고 있었어. 딸의 천재성을 잘 키워준다는 데 기뻐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 있겠어? 그런데 이때 정민의 유학을 진행하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아?”
“누구였는데?”
“성 부장. 재인의 일을 최측근에서 도와주고 있는 성 부장이었어.
민수가 가져 온 정민에 관한 정보는 놀라웠다.
“정민이 유학을 간 후 겸재 아저씨는 그린섬 설계를 맡았어. 재인은 그린섬의 설계부터 관여가 있었고 그때 이미 겸재 아저씨와 자주 연락하던 사이였어. 그리고 그 당시 정민의 파리 생활과 관련해 계속 겸재 아저씨와 연락을 주고받았던 사람이 성 부장이었어.”
“성 부장이 왜요? 정민의 유학 후원은 성진그룹이었는데 대유그룹의 성 부장이 무슨 역할을 한 거죠?”
“성 부장이 성진그룹을 연결한 것 같아. 성진그룹은 그냥 겉으로 드러난 후원기업이었어. 실제로는 누군가가 성 부장을 통해 후원한 것 같아.”
“설계 당시 그린섬은 겸재 아저씨에게 무리한 부탁을 했던 것 같아. 그런데 정민은 파리에 있었고, 어쩌면 아저씨한테는 정민이 볼모로 잡혀 있어서 꼼짝 못하는 구조가 되어 있었어. 겸재 아저씨는 이때 정민을 한국으로 데려오려고 했어.”
“그린섬 지하가 지어질 때 그린섬 건물주와 겸재와 다툼이 있었어. 이때 당시는 서주병원 건물이었지. 설계와 다른 뭔가를 요구했다고 해. 그때는 성부장이 건축의 모든 것을 진행하던 때였어.”
“서주병원인데 왜 성 부장이 관여한 거지?”
“결국 처음부터 그린섬 빌딩으로 만들 거였는데, 절차상 서주병원의 단계를 거친 것 같아. 가령 지하의 냉동시설의 허가를 위해서?”
“결국 성 부장이 처음부터 관여한 것이네.”
“응, 겸재 아저씨는 정상적인 설계가 아니면 공사를 진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겠지. 하지만 공사는 성 부장이 원하는 대로 진행되고 있었어. 그래서 겸재 아저씨와 공사 때문에 갈등이 컸지. 그런데 파리에 있는 정민이 있어서 어쩔 수 없이 진행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있었을 거야.”
“겸재 아저씨는 뭔가 미심쩍은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직감하고 정민에게 뭔가 연락을 취했던 것이 틀림없어. 겸재 아저씨가 사망하고 정민이 파리의 일을 빨리 정리하고 한국에 돌아왔기 때문이야.”
“그런데 어떤 연유인지 정민은 한국에 돌아온 후, 재인과 처음 본 사람처럼 행동했어. 재인도 물론 그러했지. 파리에 오기 전 둘은 암묵적 이야기가 있었던 것 같아. 정민이 한국에 돌아오는 걸 재인은 원치 않았어. 몇 번 말렸다는 이야기를 정민의 파리 친구에게 들었어. 그런데 더 이상한 것은 정민이 한국으로 오는 과정에서 도와준 사람이 재인이라고 하니 이건 또 이상한 일이지.”
벼리와 연이는 정민의 비밀을 알고 모두 깜짝 놀랐다.
이게 사실이라면 정민의 실종은 재인과 불가분의 관계가 있었다.
정민은 서둘러 한국으로 돌아왔고 어찌 되었든 그린섬의 비밀을 밝히고자 했었다.
벼리는 펜트하우스로 돌아왔다.
아무도 없었다.
벼리는 재인의 작업실로 향했다.
작업실에 재인이 와 있었다.
장례식에 있을 시간이었는데 재인이 작업실에 와 있어서 벼리는 놀랐다.
재인은 성 부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성 부장님, 김 교수님 치자꽃은 잘 정리되었죠?”
“물론입니다. 수술 자국도 잘 처리해서 완벽합니다. 안치실도 맞아들일 준비가 완벽합니다. 정원에 나무도 자리를 잡았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날짜가 오늘이지?”
“네, 오늘 발인입니다.”
“장지로 갈 것은 준비했고?”
“당일 운구차에 실어지면 그때 정리가 될 겁니다.”
“차질 없이 잘 하도록 해. 김 교수에게도 안심하시라고 하고.”
“오늘밤, 의식의 시간은 특별히 좀 더 늦은 시간이 되겠습니다.”
“응, 준비하고 있어. 김 교수에게 큰 선물이 될 테니 다행이야.”
벼리는 둘이 무슨 대화를 나누는지 알 수 없었다.
분명 김 교수 와이프 장례와 관련된 일인 것은 확실했다.
벼리는 살짝 그 자리를 빠져 나왔다.
두려움에 온몸이 떨렸다.
분명 오늘 밤 어떤 의식이 있을 거라고 했다.
언제나처럼 늦은 시간에 있는 재인의 회합일 것이었다.
벼리는 저녁시간이 되면 둘의 이야기가 무슨 의미인지를 알 것 같았다.
언제나 회합은 재인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오늘은 그믐이 아니었다.
대신 김 교수 아내의 발인이 있는 날이었다.
이들에게 누군가의 죽음은 어떤 의미일까를 생각했다.
도무지 알 수 없는 비밀이었다.
벼리는 민수에게 전화했다.
“오빠, 오늘 밤 김 교수 와이프의 발인날이야. 그런데 밤에 무슨 회합이 있대.”
벼리에게 정원 출입은 낮에만 허용되었다.
다른 날도 물론 밤에 출입이 힘들었지만 오늘은 특히 출입이 힘들 것이었다.
그런데 밤에 그린섬에선 무슨 일인가 일어날 것이었다.
민수는 벼리에게 올 형편이 안 되었다.
대신 연이가 펜트하우스에 왔다.
“미안해요. 여기 펜트하우스에서 하룻밤 잤는데 어찌나 또 그립던지 또 왔네요. 괜찮죠? 하룻밤만 더 신세 질게요.”
“그, 그럼요.”
“사실은 민수 오빠랑 싸웠거든요. 가출했어요. 가출했는데 갈 데가 없어서 여기로 왔어요. 이해해 줘요.”
재인은 껄끄러워 했으나 딱히 거절할 명분이 없었다.
밤이 되었다.
재인은 김 교수 발인하는데 갔다가 저녁에 왔다.
성 부장과 함께 무언지 분주했다.
벼리와 연이는 영화를 틀어놓고 오랜만에 여유를 즐기는 것처럼 보였다.
영화의 볼륨이 컸다.
공포영화였다.
“이 순간 왜 하필 공포영화야?”
벼리가 투덜거렸다.
“어차피 지금 시간에 로맨틱 영화를 본다고 집중이 되겠어? 만약 코미디 영화라면 지금 상황에서 웃음이 나오겠어? 웃음이 나오겠냐고, 그냥 무서운 게 나아. 지금 상황이랑 딱 맞잖아.”
“그래도 지금 상황은 아닌 거 같은데.”
“이열치열이라고 어차피 무섭고 긴장되는 지금 상황에는 공포영화가 제격이야. 무서우면 눈 감고 있어.”
“연이 언니는 하여튼 무늬만 여자야. 틀림없어.”
공포영화를 틀어놓고 벼리 놀리는 재미로 소리를 더 지르던 연이는 아니나 다를까 계속 소리를 질러댔다.
그리고 놀라는 벼리를 놀리며 깔깔거렸다.
둘의 행동은 재인이 보기에 전혀 이상함이 없었다.
재인은 연이에게 벼리를 그만 놀리라며 말하고 자신의 작업실로 내려갔다.
늦을 거라고 벼리 잘 돌봐주라는 당부까지 했다.
연이는 벼리의 집에서 자기가 벼리를 돌봐야 하냐며 이런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있냐며 투덜거렸다.
물론 모두 웃으면서 농담처럼 흘린 말들이었다.
도현은 회합하기 전 가끔 재인의 집으로 올라왔다.
멤버 중에서 도현만 유일하게 올라왔었다.
재인은 그런 도현에게 무법자라고 했지만 도현은 개의치 않고 자주 들락거렸다.
그리고 벼리에게 자주 애정표현을 하곤 했다.
“벼리 씨, 재인보다 돈도 더 많고 더 잘 생겼고 공부도 더 잘 한 저는 어때요? 까칠한 재인은 당장 차버려요.”
농담이었기에 벼리는 그냥 웃곤 했었다.
도현은 재인의 집에 자주 왔고 농담이었지만 벼리에게 많은 이야기를 했다.
“벼리 씨, 재인이 얼마나 어리숙한지 알아요? 얼마나 모자란지 알아요?”
도현이 이런 말을 할 때 재인은 부정하지 않고 웃기만 했었다.
재인은 다른 사람의 말에 약간 예민하게 반응했는데 도현의 말에는 뭐든지 웃기만 했다.
도현을 대하는 재인의 반응은 마치 무엇이든 믿어도 되는 사람의 말인 것처럼 여유와 신뢰가 느껴졌다.
도현은 재인의 집에 들러 재인의 작업실로 내려갔다.
평소 도현이 재인의 작업실을 가는 방식이었다.
<딩동>
벼리와 연이 둘이 있는데 도현이 펜트하우스에 왔다.
“안녕, 벼리 씨. 연이 씨도 있었네요.”
“도현 씨 오셨네요. 전 잠깐 화장실에 좀 갈게요. 잠시 있다 봐요.”
연이는 화장실에 갔다.
“도현 씨, 오랜만이에요. 김 교수님 사모님 장례식으로 고생하셨지요?”
“좀 그렇지요. 재인이가 더 애썼지요.”
“애쓰셨어요.”
“저 오랜만이죠? 내가 보고 싶었죠? 그럴까봐 제가 왔죠. 벼리 씨가 절 안 찾으니 제가 왔죠.”
“도, 도현 씨...”
도현은 평소에도 갑자기 훅, 들어오는 것이 익숙했다.
“벼리 씨, 설마 나를 잊은 건 아니죠?”
도현은 여전했다.
벼리는 도현의 여전함에 오히려 약간의 안도감이 느껴졌다.
벼리는 불안했다.
재인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았다.
“같이 내려갈까요? 오늘은 김 교수가 온다고 해요. 김 교수가 큰일을 겪어서 위로하려고 모이기로 했거든요.”
“그런 모임이라면 저도 같이 위로를 주고 싶은데 재인 씨는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모임이 있다고 혼자 내려갔어요.”
“그러니까 재인이 매력이 없는 거죠. 빨리 재인을 버리고 내게로 오라니까요.”
“이럴 줄 알았어. 이 엉터리 도현.”
재인이 들어왔다.
“하하, 호랑이도 제 말 하면 온다더니, 그래. 불안한 거지?”
“벼리 씨, 절대 도현이 말 들으면 안 돼요. 알았죠?”
“나처럼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된다고."
"도현, 벼리는 나를 믿어서 그대를 그냥 믿어주는 거야."
"아니야. 몰랐어? 벼리 씨가 나를 얼마나 믿고 있는데. 내가 있어서 재인을 믿어주는 거라고.”
그 순간 재인의 표정이 살짝 굳었다.
그 표정을 금세 거두긴 했지만 벼리는 재인의 표정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쓸데없는 소리 그만 하고 내려가자.”
“벼리 씨, 같이 내려가요. 오늘은 진하게 한 잔 하는 날이니까.”
“절대 안 되지. 네 놈이 있는 곳에 우리 벼리 씨가 가당키나 하니.”
재인의 말에 벼리는 우물거렸다.
“그럼요, 자, 어서 가실까요?”
도현은 서둘러 벼리의 어깨를 밀며 아래로 내려갔다.
벼리도 회합이 궁금해서 마지못해 내려가는 척하며 도현을 따라 갔다.
연이는 잠시 혼자 있어도 될 것이었다.
재인의 작업실에 김 교수, 도현, 사은, 영진, 정우 등 그린섬 멤버들이 와 있었다.
이들은 가끔 재인의 작업실에서 밤새 술을 마시며 모임을 했었다.
재인은 평소 술을 잘 마시지 않으면서도 회합 다음 날은 술 냄새를 풍기며 들어오곤 했었다.
오늘 밤도 술을 마실 거였다.
그런데 오늘 모임에 김 교수가 온 것은 의외였다.
김 교수는 오늘 아내 발인이었다.
김 교수를 위로하기 위한 모임일 거라 생각했다.
평소 김 교수는 회합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한국에 온 지 오래되지 않아서이긴 했지만 일반 모임에는 참석하지 않았었다.
벼리도 가끔 이들의 모임에 인사를 했기 때문에 그 정도는 알고 있었다.
이들의 회합은 그린섬 재인의 작업실에서 이루어졌다.
보름달이 뜨고 정확히 10일 후였다.
벼리는 모임 이름을 다크나이트로 바꿔야 한다고 말하곤 했다.
“모임 이름을 다크나이트로 바꾸면 어때요? 모임 시간이 너무 칙칙해요. 어둡고.”
“벼리 씨, 우리들처럼 신원이 확실한 사람이 어딨어요? 말도 안 돼요. 다크나이트라니요. 우리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사람들이 어디 있다고?”
그들은 모두 확실한 직업이 있었다.
모두 재벌 2세이거나, 3세로 주목을 받는 자들이었다.
사실 이런 조건으로 따지면 그들처럼 반짝반짝 빛나고 확실한 신분은 찾기 어려웠다.
이들이 회합이 있는 날은 박 여사가 세팅을 해놓았다.
차 종류와 간단한 안주, 술이 준비됐다.
언제나 작은 파티처럼 꾸며졌다.
박 여사가 총괄을 하지만 성부장이 어떤 식으로 세팅을 하라는 주문을 하면 박 여사가 출장요리사를 시켜 준비했다.
벼리가 내려갔을 때 사람들은 술을 하고 있었었다.
예전부터 다소 딱딱한 분위기가 많았던 모임인데 오늘은 조금 더 조용했다.
김 교수가 있으니 그럴 터였다.
오늘 재인의 작업실에는 김 교수의 작품이 몇 개 걸려 있었다.
아내인 사유가 치자나무꽃에 둘러싸여 몽환적 표정을 짓고 있는 그림이었다.
아내인 사유가 가장 아꼈던 그림이라고 했다.
그런데 그림 속의 사유의 표정을 두고 사람들은 아마도 사유가 약을 했을 거라는 둥 공격성 평을 많이 내렸던 작품이었다.
이러한 평을 두고 사유는 그림에 대한 관심일 거라 생각한다고 인터뷰를 남기기도 하였다.
그리고 치자꽃 이야기도 남겼었다.
“치자꽃 향기 속에 있으면 저절로 몽환적이 되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모양이에요. 5월에 남쪽의 숲으로 가서 치자꽃 아래에 서 보세요. 그 꽃 속에 있으면 누구든지 그런 표정이 될 거예요.”
사람들은 사유의 인터뷰를 보고 너도나도 치자꽃 나무가 있는 남쪽으로 남쪽으로 여행을 갔다.
그리고 실내용으로 키운다고 치자나무를 사기도 했다.
한동안 치자나무가 관심을 받았던 때가 있었다.
사유가 평소 한 인터뷰가 있었다.
‘저는 만약 죽는다면 꽃으로 태어날 거예요.“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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