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_절 구해야죠, 남편인데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69화>
절 구해야죠, 남편인데
* * * * *
“감축 드립니다.”
모든 사람들이 한꺼번에 감축의 소리를 외쳤다.
김 교수가 포도주 잔을 들어 건배를 제의했다.
“모두 잔을 듭시다. 진 회장님의 우주를 위하여!”
“위하여!”
모두들 잔을 부딪쳤다.
잔이 부딪치는 소리와 사람들의 외침은 도현의 힘을 다시금 느끼게 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저의 영원한 첫 번째 동지입니다.”
“위하여! 모두 잔을 비워 주세요.”
김 교수가 한 번 더 외쳤다.
“자, 이제 한 가지 소망만이 남은 셈이죠. 바로 내 어머니. 사랑하는 어머니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는 것이죠. 어머니를 영생의 힘으로 깨어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저의 숙명적 과제죠.”
“위하여!”
김 교수는 다시 위하여를 외쳤다.
다른 사람들이 그 소리를 일제히 따라했다.
“위하여!”
그 소리는 큰 주술의 힘을 불러 모으는 것 같았다.
벼리는 무서웠다.
‘이건 무슨 소릴까? 죽은 사람을 다시 영생의 길로 깨어나게 해? 어떻게? 이 사람들이?’
벼리는 더 이상 이곳에 있고 싶지 않았다. 속이 울렁거렸다.
재인을 비롯해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제정신이 아닌 것 같았다.
이 순간은 제정신이 아닌 사람들이었다.
까닭은 알 수 없었지만 모두 어떤 주술에 걸린 사람들이었다.
벼리는 일어나 재인의 곁으로 가서 살짝 귓속말을 했다.
“재인 씨, 난 그만 올라갈게요.”
“어? 그래?”
재인은 좀 불편한 얼굴이 되었다.
난감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벼리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자리에서 일어섰다.
도현 가까이 갔다.
“도현.. 아니 진 회장님.. 벼리 씨가 몸살기가 있다고 하니 그만 올라가라고 할까요?”
도현은 재인의 말을 듣고 얼굴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벼리를 향해 물었다.
“왜요? 몸이 안 좋아요?”
“네, 좀 안 좋아요. 이만 올라가도 될까요? 어지럽고 머리도 아파요. 열도 나고. 제가 요즘 자꾸 컨디션이 안 좋아요. 죄송해요.”
“안 되죠. 제가 여기 지금. 벼리 씨를 보러 온 거잖아요.”
“네? 저를요? 왜요?”
“몰랐어요? 제가 벼리 씨를 특별히 생각하는 거? 벼리 씨는 제게 너무 특별하시죠.”
“농담이겠지만 고마워요. 그럼 전 이만 올라갈게요. 몸이 좀 안 좋아요. 나중에 또 뵈어요.”
도현는 안 좋은 표정을 짓더니 재인을 향해 위압적 목소리로 말했다.
“재인, 이게 무슨 경우야? 내가 아직이라는데 벼리 씨가 올라간다는 건 뭐지?”
재인은 난감해 하며 진땀을 흘리는 듯 땀을 닦으며 답을 했다.
“그, 그게. 몸이 아침부터 안 좋다고 했거든요. 무엇보다 벼리 씨가 몸이 좋아야 하잖아요. 몸이 안 좋으면 해야 할 일을 진행하는데 차질도 있을 테고.”
재인의 차질이라는 말 때문이었는지 도현은 태도를 바꾸었다.
“아, 그런가? 알았어. 그럼 다음 기회를 봐야지. 벼리 씨, 몸 관리 잘 하셔야죠. 벼리 씨는 특별한 분이니 특별히 관리하셔야 합니다. 어서 올라가서 쉬세요.”
“네, 이만 올라갈게요.”
벼리는 자신의 방까지 어떻게 올라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 머리가 하얘졌다.
‘왜 도현 씨는 날 특별히 생각하지? 또 왜 내 건강이 저들의 일에 관계가 있다는 거지? 내가 왜? 내가 필요해? 무엇으로?’
도현은 예전의 도현이 아니었다.
‘이제 절대로 저들의 회합에는 내려가지 않아야지. 내려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그 자리는 분명 벼리에게 위협적이었다.
왜 자신을 끌어들이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왜 도현에게 특별한 사람이지?’
“도현의 어머니가 영생의 길로 간다는 것은 무슨 말이지? 영생?‘
도무지 알 수 없는 일들이 갑자기 벌어지고 있었다.
집에 올라오자마자 바로 톡이 쏟아졌다.
전화벨도 울렸다.
연이였다.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왜 이제 전화를 받아? 깜짝 놀라서 그린섬에 쫒아갈 뻔했잖아. 전화를 몇 번이나 했는데.”
“전화? 전화가 오지 않았는데? 내가 톡을 보냈는데도 답이 없어서 오히려 내가 걱정했단 말야.”
“전화 확인해봐. 내가 몇 번이나 전화했는지.”
벼리는 핸드폰을 확인했다.
톡이 수도 없이 와 있고 전화도 여러 번 와 있었다.
하지만 아까 재인의 작업실에선 전화벨이 울리지 않았다.
톡도, 문자도 오지 않았다.
.
분명 재인 씨 전화는 되는 것 같았다.
벼리의 전화만 안 울린 것은 이상했다.
앞으로도 벼리의 전화는 얼마든지 불통의 위기에 빠질 수 있었다.
다시 소름이 돋았다.
“벼리야, 지금 안 좋은 거 아냐? 내가 갈까?”
“아냐, 괜찮다. 먼저 잘게. 자고 싶어. 내일 일찍 연락할게. 내일 만나자.”
“응, 지금 실종사건도 뭔가 진전이 좀 있나 봐. 내일쯤 들러. 오빠가 할 말이 있대.‘
“그렇게 할게. 내일 들러서 나도 할 말이 있어. 오늘 엄청난 일이 있었거든. 일단, 난 좀 잘게. 넘 피곤해.”
벼리는 복잡한 심사를 달래다 어느 순간 잠이 들었다.
밤새 꿈에서 도현의 목소리가 벼리를 괴롭혔다.
어느 순간은 침대에 묶여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있었다.
그 옆으로 프랑켄슈타인의 얼굴을 한 여자의 모습도 있었다.
정민과 라일라, 준희, 윤지의 모습도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모두 일어나 벼리에게 도와달라고 소리쳤다.
공포스러운 순간이었다.
벼리는 그 공포의 순간에 슬픔으로 조금 더 괴로웠다.
밤새 슬픈 가슴이었다.
그런데 벼리는 꿈에서 움직일 수 없었다.
온힘을 다해 움직이려고 하는데 움직일 수 없었다.
무엇인가가 자신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고 있었다.
가위 눌리는 꿈으로 몸에 힘을 얼마나 줬는지 깨어날 때 자신도 모르게 소리를 지른 것 같았다.
“아악!”
재인이 쫓아왔다.
“무슨 일이야?”
벼리는 재인을 보자 자신도 모르게 품에 안기고 말았다.
그리고 얼마간 한참을 울었다.
“무슨 꿈을 꿔서 그래?”
“엉엉, 꿈에서 누군가 절 묶어 놨어요. 움직일 수 없었어요. 그런데 재인 씨도 없었어요.”
벼리는 울면서 재인의 가슴을 때렸다.
“어디 갔었어요? 내가 무서운데 왜 옆에 없었어요? 절 구해야죠. 남편인데. 계약남편이라도 남편인데, 아내를 구해야죠.”
“꿈속의 일로 남편을 이렇게 혼내도 되는 거야?”
“꿈속의 일도 책임져야죠. 꿈에서도 지켜줘야죠. 꿈이 얼마나 무서운데.”
벼리는 공포와 슬픔으로 한참을 재인의 품에서 울었다.
재인은 벼리의 무서움과 슬픔이 가라앉도록 다독이며 품으로 안아줬다.
할 수 있는 모든 따뜻함으로 벼리를 다독이고 안아줬다.
“미안해 못 지켜줘서. 다음엔 지켜줄게. 꿈속의 일도 지켜줄게. 벼리를 꼭 지켜줄게. 미안...”
“흑흑..”
벼리는 재인의 품에서 한참 울었다.
그제서야 벼리의 공포와 슬픔은 진정이 되었다.
“어젯밤 도현의 일로 속상했구나. 미안해. 어제는 도현이랑 장난이 좀 심했어. 도현이 미안했대.”
“도현 씨 갔어요?”
“응, 벼리 씨 올라가고 다들 바로 갔어.”
“어제 도현 씨는 왜 그런 거예요?”
“아, 어제 벼리 씨를 좀 놀리려고 그랬대. 미안하다고 전해 달랬어. 진심으로 사과한다고.”
“그냥 놀린 거였어요? 그렇게 안 보였어요. 어찌나 무섭던지.”
“농담이야. 나도 벼리 씨가 놀라서 나까지 좀 긴장했어. 거기서 농담이라는 말을 할 수도 없고. 하여튼 미안해. 놀라게 해서.”
“다행이에요. 농담이라니. 어젠 많이 놀랐어요.”
재인은 주방 쪽으로 가서 커피를 가지고 왔다.
침대에 앉아 있는 벼리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마셔. 좀 진정될 거야. 내가 벼리 씨 주려고 일찍 내린 커피야.”
“고마워요. 하여튼 다음에는 아래층에 내려가지 않을래요.”
“그럴 것까지 뭐 있나? 농담이래, 농담. 벼리 씨, 저녁에 약속 있어? 우리 바다에 놀러 가자.”
“갑자기 바다는 왜요?”
“벼리 씨를 좀 달래주려는 내 마음?”
“갑자기요?”
“이렇게 갑자기 가야 바다지. 바다란 갑자기 가도 너른 가슴이 있다. 이런 말도 있잖아.”
“몸이 좀 안 좋은 것 같은데...”
“그래서 내가 바다에 가자고 하는 거잖아. 어제 스트레스 너무 많이 받아서 컨디션이 안 좋은 거야. 바다를 보며 금방 좋아질 거야. 바다잖아. 모든 걸 품어주는.”
사실 벼리는 바다보다도 강이나 숲을 더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재인이 바다에 가자고 하자 좋을 것도 같았다.
재인과 단둘이 이야기할 시간이 필요했다.
“알았어요. 그런데 혹시 연이 언니 네랑 같이 가도 돼요?”
“이런, 벼리 씨는 연이 언니랑 사는 사람 같아. 이만 젖을 좀 떼세요. 난 둘이 가고 싶은데? 내가 지금 벼리 씨랑 데이트하고 싶어서 데이트 신청하는 거잖아.”
“미안해요. 바다에 간다고 하니 좋아서 그랬어요. 조금만 기다려요. 곧 챙길게요.”
“응, 난 차에 있을게.”
재인은 농담이었다고 말했다.
벼리를 달래주려고 바다에 가자고 했다.
데이트 신청이라고 했다.
재인은 진정으로 벼리를 달래주려는 것일까 걱정이 되었다.
어젯밤의 상황은 모든 것들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하지만 바다에 가자고 말하는 재인의 표정은 더없이 천진난만하였다.
벼리는 자신이 재인을 의심하고 있으면서도 다시 또 천진한 얼굴을 마주하자 의심이라는 것이 사랑 앞에서 얼마나 의미가 없는지를 알 것 같았다.
사랑 앞에서 의심은 의미가 없었다.
어쩔 수 없었다.
일단 둘만 가는 길이었다.
바다에 가서 재인과 이야기를 좀 해야 했다.
벼리는 재인과 함께 제부도로 향했다.
화성으로 가서 제부도에 들어가서 물길이 닫혔다 다시 열리는 오후에 나오면 될 것이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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