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_우주가 내 것이 된 거죠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67화>
우주가 내 것이 된 거죠
* * * * *
“그, 그럼. 벼리 씨 위로가 좀 따뜻하지.”
“역시 그렇지? 벼리 씨가 조금 더 있다 가면 좋겠어요. 저를 위해 조금만 더 머물다 가 주세요. 아버지를 잃은 쓸쓸한 영혼을 좀 달래주세요. 세상 사람들은 제가 우주그룹의 회장이 되었다고 축하한다고 말해요. 사실 그게 축하할 일인가요? 지금 아버지를 잃은 아들인데요. 아무리 나이를 먹었어도 부모의 죽음은 슬픈 게 아닌가요? 그런데 전 아버지가 돌아가신 마당에 오히려 축하한다는 말을 더 많이 듣고 있어요. 전 저절로 불효자가 되었어요. 그런 저를 좀 위로해 주세요. 저도 아버지를 잃은 슬픈 아들이에요.”
도현은 실제로 눈물을 흘렸다.
다른 회원들 모두 도현의 눈물에 당황해 했다.
“도현..”
“회장님...”
도현은 다시 벼리를 바라봤다.
진정 위로가 필요한 눈빛으로 벼리를 바라봤다.
벼리는 재인을 바라봤다.
‘이런 난처한 경우가 있단 말인가.’
재인의 표정이었다.
벼리는 어쩔 수 없었다.
도현을 위로해야 했다.
“도현 씨, 힘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건 병으로 쓰러진 것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잖아요. 도현 씨 잘못도 아니고.”
“당연하죠, 제 잘못이 아니에요. 물론 아니죠. 그런데 떠들기 좋아하는 인간들이 내가 아버지를 죽게 만들었네, 마네, 하며 어지간히 떠들어야 말이죠. 그게 제 잘못인가요?”
도현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다.
물론 밖에서 사람들 여론은 들끓었다.
어린 도현이 그룹을 승계했다는 사실도 그렇고 건강하던 진 회장이 갑자기 쓰러진 것도 그렇고 쓰러지기 전에 도현이 후계에서 제외될 뻔했다는 사실은 소문을 더욱 증폭시키고 있었다.
‘도현에게도 그런 소리가 들어갔겠지? 그러니 이렇게 흥분하며 말을 하는 것이겠지?’
벼리는 이렇게 생각하며 괜한 말을 자신이 꺼냈다며 후회했다.
“도현 씨, 무슨 그런 말을. 이렇게 슬퍼하는 아들을 두고 누가 그런 말을 했겠어요? 다만 회장님 자리를 넘보던 사람들이 질투해서 하는 말일 거예요.”
“벼리 씨는 역시 제 편에 서서 저에게 힘이 되는 말을 해주네요.”
이야기를 하는 사이 바에는 와인과 간단한 술자리가 만들어졌다.
일행은 그쪽으로 자리를 옮겼다.
‘오늘은 의식이 없는 날일까?’
벼리는 이들이 술을 마신 후 늦은 시간에 어떤 의식을 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오늘은 왜 벼리, 자신을 참여시킨 것인지 불안했다.
벼리는 빨리 펜트하우스로 올라가고 싶었다.
재인에게 눈짓을 보냈으나 재인은 답하지 못했다.
도현에게 쩔쩔매는 모습이 보였다.
포도주를 한 잔씩 따랐다.
붉은 빛이 피처럼 보였다.
벼리는 모든 것이 불안했다.
“벼리 씨, 기막힌 내 사연 좀 들어볼래요?”
“사연요?”
“혹시 알고 있어요? 우리 엄마가 친엄마가 아니란 사실?”
벼리는 알고 있었지만 모른 척 대답한다.
이런 사실은 외부인들이 몰라야 하는 출생의 비밀이었다.
“농담이시죠. 어머니와 사이가 좋으시잖아요.”
“하하, 사이가 좋아요? 장 여사랑? 불여우 장 여사랑?”
“아니었어요?”
“그러니까 제 기막힌 사연 좀 들어보세요. 그리고 위로를 주셔야죠.”
“네, 말씀해 보세요.”
“벼리 씨.. 아, 옆에 계신 우리 벗님들도 한 번 들어보세요. 내가 얼마나 불쌍한 인간인지를.”
“.............. ”
모두들 말을 하지 못했다.
도현은 술을 마시지 않았는데 술을 마신 것처럼 흥분한 상태였다.
“저도 사랑하는 어머니가 계셨죠. 아주 아름다우셨어요. 딱 우리 벼리 씨처럼 곱고 예뻤죠.”
도현은 벼리의 얼굴을 두 손으로 쓰다듬으려 했다.
벼리는 놀라서 고개를 돌렸다.
도현은 잠시 겸연쩍어 했다.
도현은 어정쩡한 손을 내리고 다시 이야기를 이어갔다.
“어머니는 벼리 씨처럼 곱고 예뻤죠. 피부가 하얗고 웃는 얼굴이 특히 예뻤는데 저를 보고 언제나 웃으셨어요. 그리고 제 머리를 잘 쓰다듬었죠. 어머니가 제 머리를 쓰다듬을 때는 이렇게, 이렇게 쓰다듬으셨어요.”
도현은 아주 다정한 손짓으로 머리 쓰다듬는 포즈를 취했다.
“이렇게 아주 다정하게 쓰다듬으셨는데, 어느 날 엄마가 사라지셨어요. 어머니는 나를 아주 정성스럽게 키우셨죠. 그렇죠, 정말 사랑스럽게 키우셨는데 어느 날 사라지신 거예요. 그때는 몰랐어요. 다들 어머니가 어디 여행을 가셨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그때부터 지금의 장 여사, 그 장 여사가 아버지 곁에 있었어요. 어머니의 자리에. 나는 어렸지만 알았죠.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 생겼구나.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어머니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 거였어요. 어머니는 병원에서 저를 계속 찾으며 식사를 거부했다고 해요. 그런데도 어머니는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자 그만 목을 매서 돌아가셨죠. 그래요, 돌아가신 거죠.”
“목을 매서..... 어떡해요.”
“그래요, 목을 매서 돌아가셨어요. 내가 일곱 살 때. 학교에 가기도 전이에요. 내가 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지도 못하고 그 겨울에 돌아가셨어요. 정말 추운 날이었어요. 그 겨울 가장 추운 날이었다고 해요. 그 겨울을 지나고 나면 난 학교에 들어갈 참이었죠. 엄마 손 잡고 학교 입학식에 가려고 했는데 엄마는 병원에서 나오지 못하자 그만 죽음을 선택하고 말았어요.”
“마음 아프네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상황인 거냐고요. 나를 그렇게 사랑하셨던 어머니가 정신병이라니요? 폭력성이 있어서 저와 분리시켰다고 했어요. 내 기억에 엄마는 한 번도 나에게 큰소리를 내본 적이 없어요. 언제나 그러셨죠. 내 아가, 내 아가. 내 사랑하는 귀여운 아가. 이렇게 부르셨어요. 그런데 폭력성이 있었다고요? 아, 모르겠어요. 그렇게 어머니가 돌아가셨어요.”
“도현 씨...”
벼리의 손이 저절로 도현의 어깨에 머물렀다.
도현은 눈물을 조금 더 흘렸다.
“그런데 말이죠. 엄마가 돌아가시자마자 장 여사가 엄마의 자리로 떡 하니 들어갔어요. 대 우주그룹의 안방마님이 되신 거죠. 장 여사는 엄마의 비서였는데.”
“친엄마인 줄 알았어요.”
“난 장 여사의 말을 잘 듣지 않으면 나도 죽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어요. 그래서 장 여사가 어머니가 되자마자 아주 말을 잘 듣는 아이가 되었어요. 사람들은 내가 장 여사를 친엄마로 착각하고 자란 줄 알아요. 난 무슨 일이 있으면 장 여사 옆에 딱 붙어 다녔어요. 친엄마처럼. 울 때도 무서울 때도 장 여사 옆에 딱 붙어 따라다녔어요. 정말 친아들로 보였어요. 나도 연기가 길어지자 장 여사가 진짜 엄마인 듯 생각이 들기도 했어요. 하지만, 하지만 절대 아니었죠. 내 엄마를 죽게 한 여자라는 걸 내가 잊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일이 쉽지 않았을 텐데요.”
김 교수가 놀랐다는 듯이 말했다.
“아버지도 깜박 속아 넘어가셨어요. 도현이가 어려서, 혹은 어머니를 잃은 일이 충격이어서 잊어버린 거라고 생각한 거죠. 난 아주 착하게 자랐어요. 장 여사가 동생, 동생은 무슨. 동생이라는 아들딸 둘을 낳았을 때 난 그 아이들이 징그럽게 싫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들은 나한테 어찌나 들러붙던지. 정말 징그러웠어요. 하지만 난 잘 참아냈어요. 아버지도 장 여사도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물론 아이들도 몰랐어요. 그렇게 해서 난 이 집안에서 살아남았어요. 장자의 자리는 흔들리지 않았고 승계도 문제가 없었어요. 하지만 장 여사는 자신의 아들딸이 후계자가 되길 바라고 날 음해했지만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았어요. 이렇게 아버지 뒤를 잇게 되었어요. 이젠 장 여사도 그 누구도 날 건드리지 못해요.”
“고생하셨네요.”
모두들 도현의 이야기에 숙연해졌다.
도현의 사연이 그런 것인 줄 다들 몰랐다는 눈치였다.
하지만 재인은 알았을 것이었다.
도현이 재인을 거둬들이고 같이 어울린 것은 자신과 신세가 같았기 때문이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재인이 아버지로부터 빌딩을 물려받은 것은 도현의 힘이었다.
사실 대유그룹 김 회장은 그 정도의 빌딩을 재인에게 줄 만큼 능력이 있지는 않았다.
물론 그만큼 재인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도 않았다.
모두 도현의 힘이었다.
재인은 그걸 알지 못했었는데 나중에 건물이 모두 올라간 다음에야 그걸 알게 되었다.
도현이 자신에게 빌딩을 주었고 결국 그 건물의 설계에 도현이 관여하였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돈의 출처가 도현이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그 덕분에 재인도 자신의 빌딩을 갖게 된 것이었다.
도현은 아무도 모르게 자신의 영역을 키우고 있었다.
자신의 배경이 되어 줄 그린섬까지 미리 설계한 것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었다.
벼리도 그린섬 빌딩이 재인의 아버지가 물려준 것으로만 알았지 도현의 힘으로 생겨난 것임을 알지 못했다.
누구도 알지 못했을 일이었다.
“자, 이제 우주그룹이 내 것이 되었어요. 우주가 내 것이 된 거죠.”
“감축 드립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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