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화_내 남자와 누군가 가까이 지냈다면
사람이 태어나면 하늘에는 별이 하나 태어나고 땅에는 꽃이 하나 피어난다. 그 별과 꽃의 이야기를 듣는 소녀는 어느 날 슬픈 비밀을 알게 된다.
<50화>
내 남자와 누군가 가까이 지냈다면
* * * * *
벼리는 그린섬 멤버가 전체 다 모이는 장소에 참석은 처음이었다.
김 교수 가족은 다른 멤버에 비해 한국에 늦게 들어왔다.
오랜만에 그린섬 멤버가 모이는 것이라고 했다.
재인, 도현, 영진, 정우, 김 교수 내외, 윤지가 모였다.
모두들 반가움에 오랜만의 회포를 풀었다.
연이와 민수가 왔다.
민수는 친구를 데리고 왔다.
같은 서에 근무하는 이 형사였다.
이 형사는 민수의 학교 친구 이명훈이라고 자기소개를 했다.
경찰이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명훈은 사유의 팬이라고 사정사정해서 함께 왔다고 했다.
김 교수가 그린 사유의 모든 그림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계속 상기된 얼굴이었다.
연이가 너무 000티내지 말라고 말려야 할 정도였다.
모두들 명훈을 보며 사유의 인기가 그 정도냐고 놀라워했다.
“저희 유저들 세상에서 사유는 여신이에요. 모두 사유를 꿈속의 연인으로 사랑해요.”
사유는 빙긋이 웃었다.
“선생님, 전 내려갈게요. 행사 준비로 민 실장님과 일이 좀 있어요.”
“그래, 편히 일 보고 있어. 끝나고 같이 들어가자.”
윤지가 일어서자 명훈도 일어섰다.
“저는 저의 뮤즈이신 사유 님을 봤으니 이제 여한이 없겠네요. 불청객인 저는 이만 내려가겠습니다. 민수, 나 내려가도 되지?”
“응, 꽃달에 가 있어. 끝나고 같이 가자.”
“윤지 씨, 저랑 같이 내려가도 되죠?”
민수는 살짝 귓속말을 했다.
“너, 혹시 윤지 씨 맘에 들어 이렇게 서둘러 내려가는 거 아니지?”
“하하,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
“사유 님이 뮤즈라며?”
“사유 님은 나의 영원한 뮤즈고, 윤지 씨는 현실각 이상형이네.”
“못 말려. 명훈 씨, 다시 봐야겠어.”
연이가 명훈을 뭐라 했으나 명훈은 유쾌하게 윤지를 따라 내려갔다.
모두들 한바탕 웃었다.
평소 진지하고 조용하던 그린섬 회합의 분위기는 아니었다.
외부 사람들이 많이 있었으니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벼리와 연이, 민수는 그린섬 회합에서 잠시 새롭게 더해진 인물이었다.
갑자기 연이와 민수가 초청된 상황이었다.
연이는 원래 밝은 성격이어서 어떤 분위기도 개의치 않았다.
어디서든 밝았고 어디서든 밝을 수 있는 지점을 찾아냈다.
어려서부터 연이는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아주 잘 찾았다.
벼리네 집에서도 자신의 집처럼 편히 지낼 수 있었던 까닭이다.
기자생활을 하는데 연이의 이런 성격은 매우 도움이 됐다.
다른 사람이라면 따내지 못할 인터뷰라도 연이는 아주 잘 따냈다.
문화부 기자로는 감성적인 연이의 성격이 도움이 됐다.
김 교수와 사유와의 인터뷰도 지난 번 영화제작 발표회 때 잠깐의 만남으로 성사시킨 것이었다.
김 교수가 한국으로 오고 다들 인터뷰를 따내려고 했는데 아무도 성사시키지 못한 때였다.
연이는 김 교수와 사유의 옆자리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연이는 더 없이 좋아했다.
벼리는 재인의 옆에 앉았다.
벼리의 옆에는 연이와 민수가 앉았다.
맞은편으로 도현과 김 교수, 사유가 앉았다.
도현은 벼리 맞은편에 앉았다.
도현은 벼리가 맛있는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챙겨줬다.
“벼리 씨, 이거 먹어봐요. 이게 여기 랑데부에서 자랑하는 메뉴에요.”
“유명해요?”
“이건 랑데부 에피타이저로 유명한 음식이에요. 에스까르고라고 해요. 소라랑 비슷하게 생겼죠? 식용 달팽이 요리에요. 식용 달팽이에 파슬리, 소금, 버터 등을 넣어 구웠는데 맛은 소라랑 비슷한데 버터와 마늘이 들어가 있어 고소해요. 냄새도 맛있게 생겼죠? 먹을 때 집게로 껍데기를 잡고 꼬챙이나 포크로 꺼내 먹거든요. 자, 내가 꺼내줄게요.”
도현은 벼리에게 친절히 음식을 챙겨줬다.
“그리고 여기서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있어요. 푸아그라라고.”
“알아요, 푸라그라. 푸아는 간, 그라는 기름진이란 뜻으로 거위간 요리잖아요.”
“맞아요. 랑데부 푸아그라는 여기 식당에서 가장 비싼 음식이에요. 맛도 좋아요.”
도현은 벼리에게 세세한 음식 이야기를 하며 다정했다.
벼리는 재인과 아직 영화제작 리셉션장에서의 일에 대해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못했다.
벼리는 재인과 풀어지지 않은 감정이 쌓여 있는 상태였다.
재인과의 어색함에 도현이 챙겨주는 이런저런 친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재인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주영이 왔다.
“오빠”
모두들 주영의 등장에 당황해했다.
주영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떻게 왔어?”
“응, 정우 오빠가 오빠 여기 있다고 말해 줬어.”
“정우, 너...”
“아, 아니. 어디 있냐고 물어봐서.”
‘와, 예전의 멤버들이 다 모였네. 파리에서 우리 참 좋았는데, 그립다. 그렇죠? 교수님.“
“주영, 어서 와. 가끔 우리 주영이가 폭탄이었지만 그래도 좋았었지.”
“난 재인 오빠 옆에 앉아도 되지?”
“주영아!”
도현이가 눈짓을 했다.
“응, 괜찮아. 앉아.”
재인이 의자를 빼주었다.
마침 재인의 옆자리에 앉았던 정우가 잠시 일어난 상태였다.
주영은 재인의 곁으로 갔다.
털썩 재인의 옆자리로 앉았다.
결국 재인의 옆에 벼리와 주영이 둘이 앉게 되었다.
“오빠, 영화 이야기가 급한 게 있어서 왔어. 앉아도 되지?”
“당연하지.”
재인은 주영에게 친절했다.
벼리는 당황했다.
재인이 자신에게 이러면 안 되는 상황이었다.
연이는 김 교수, 사유와 이야기하느라 벼리의 이런 분위기를 잘 알지 못했다.
결국 연이와 김 교수, 사유는 자리를 옮겼다.
민수는 이 형사가 꽃달에 내려갔으니 가보겠다고 내려갔다.
“주영아, 영화 이야기는 다음에 해. 여기는 벼리 씨도 있고.”
“오빠, 벼리 씨가 재인 오빠랑 일로 이야기하는 거 언제든지 괜찮다고 했어. 그렇죠, 벼리 씨?”
“일 이야기라면 언제나 해도 괜찮아요. 당연하죠.”
“봐요, 오빠. 벼리 씨가 괜찮대잖아.”
“그런데...”
“네?”
“그런데 공적인 일이라면 재인 오빠라고 부르지 말아요. 김재인 대표라고 부르면 서로 호칭이 맞지 않을까요? 호칭 정리를 깔끔히 해야 일하는 것처럼 보일 거 같아요.”
“하하, 맞다. 김재인 대표님. 이렇게 부를게요.”
“김재인 대표님, 영화 이야기 좀 해도 될까요?”
주영은 일부러 사람들에게 들으라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주영은 주위를 둘러보더니 한 마디 했다.
“정말 오랜만에 그린섬 식구들을 만났네. 파리 그린섬에서는 늘 언니들이 있었는데 없으니 아쉽다. 언니들도 한국에 왔다고 하던데 왜 초대 안했어?”
“응?”
“제이 언니, 라일라 언니, 준희 언니 말야. 언제나 같이 만났었잖아. 나, 한국에 와서 언니들 아직 아무도 못 봤어.”
벼리는 주영이 실종된 세 인물에 이야기를 꺼내자 긴장됐다.
주영은 실종된 이들에 대해 모르는 것 같았다.
“영진 오빠, 라일라 언니 연락 안 돼? 나랑 만나기로 했는데 약속 장소도 안 나왔어. 라일라 언니랑 할 이야기가 있었거든.”
“나도 라일라 연락이 없어서 답답해하던 참이야.”
옆에서 정우가 거들었다.
“라일라는 새로운 남자친구가 생겨서 어딘가 여행을 떠났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그래? 라일라 언니는 남자를 바꿔도 언제나 영진 오빠랑 연락은 했었잖아. 어딜 간 거지?”
“어딘가 갔겠지. 이러다 훅, 갑자기 나타나겠지. 원래 그런 거 좋아하잖아.”
정우가 대답했다.
농담 잘하는 영진은 별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준희 언니 말야. 라일라 언니 물어봤더니 알아봐준다고 하더니 준희 언니는 파리에 갔다면서? 다들 왜 그래. 한국에서 만나 좀 놀아보려고 했더니. 나만 빼고 언니들끼리 뭐 하는 거 아닌가?”
“파리 유명한 호텔에서 준희는 스카우트 제의 있었잖아. 아마 그쪽 알아보고 있었던 것 같아.”
“우리 없는 사람 이야기 그만 하자. 너 영화 이야기한다며?”
도현이 이야기를 잘랐다.
“아, 맞다. 영화. 재인 오빠, 아니, 김재인 대표님, 이번 영화 해외 로케이션 어떻게 생각해요? 아무래도 좀 서둘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아름답고도 고전적 성곽을 표현하려면 고대도시를 찾아가서 촬영해야 하지 않을까요?”
재인의 대답 전에 벼리가 답을 했다.
“와, 해외 로케이션 있어요? 멋지겠어요.”
“맞아요. 블록버스터 영화로 제작할 예정이거든요. 벼리 씨도 영화제작을 보면 우리 우주에서 투자한 것이 정말 대단한 것이구나, 느낄 거예요.”
“우주가 아니면 그렇게 큰 규모의 영화 제작은 힘들 거예요. 참 고마운 일이에요.”
“벼리 씨가 알아주니 다행이네요.”
“그런데 주영 씨, 파리 그린섬에서 있었던 재미난 이야기 좀 해줘요. 제이랑 라일라, 준희랑 모두 엄청 재밌었다면서요?”
“하하, 혹시 벼리 씨 제이나 라일라, 준희 중에서 재인 오빠랑 썸씽 있는 친구 있는지 궁금해서 그래요? 질투? 그런 거예요?”
“아, 아니에요.”
벼리는 실종사건과 관련해서 어떻게든 물어볼 참이었다.
주영이 질투로 이야기를 진행시켰다.
오히려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내 남자와 누군가 가까이 지냈다면 꼭 알아봐야 할 일이죠.”
“벼리 씨 정말 재인 씨 좋아하는 거였어요? 재인 씨와 가까이 지낸 여자를 알고 싶어요? 그럼 저를 알아보셔야죠. 결혼할 뻔한?”
“주영아, 그만 해. 벼리 씨 불편해.”
“그런데 도현 오빠, 오빠는 재인 오빠가 있는데 왜 오빠가 벼리 씨를 챙겨? 나한테 뭐라고 하지 말고 오빠나 잘 해.”
주영의 말에 이번엔 재인이 당황했다.
“주영아, 아냐, 도현은 벼리 씨에게 여기 음식을 예전부터 소개해주겠다고 했었어. 도현 오빠가 원래 미식가잖아. 정우랑 같이 있을 때 도현이 음식에 대해 이야기를 해준다고 약속했거든. 도현이가 음식 이야기하는 거 좋아하잖아. 새로운 음식이 나오면 설명해주는 것은 항상 도현이었어.”
“뭐 도현 오빠가 그런 세심함이 있지만 그래도 내가 보기에 도현 오빠는 벼리 언니한테 너무 친절해.”
“별 걸 다 트집이다.”
오늘은 말이 없었던 영진이었다.
영진히 한 마디 했다.
“주영아, 혹시 너 질투하는 거야? 도현이가 언제나 주영바보였잖아. 그런데 도현이가 누군가 다른 여자 챙겨주는 것은 처음이니까 질투할 만하다. 주영아, 질투야?”
“아, 그런가? 맞다. 그럴 수 있겠어. 난 아직까지 오빠가 나 이외의 여자한테 친절한 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어. 오죽하면 도현 오빠가 게이인가 생각했잖아. 정말 도현 오빠가 여자한테 친절한 거 처음이야.”
“주영이 너 점점 더 버릇없다. 그만 해라.”
“아냐, 오빠. 나 정말 질투하나봐. 근데 오빠, 벼리 씨 좋아해? 왜? 재인 오빠 와이프야. 안 돼. 우리 도현 오빠가 뭐가 부족해서 벼리 씨? 안 돼. 다른 여자로 해.”
“하하, 주영이 진짜 질투하는 거 같아. 주영아, 너희 오빠야. 친오빠라고. 사랑하면 안 된다. 그리고 너, 재인이 있잖아.”
영진은 재인이 이야기를 꺼내다 아차 싶었다.
“영진 씨, 재인 씨에 대해 그렇게 말씀하시면 안 되죠. 제 남편이에요.”
“알아요, 벼리 씨 남편인 거. 그래서 내가 영화 이야기하고 있는 거잖아요. 연애가 아니에요. 걱정 마세요. 그리고 벼리 씨, 우리 오빠 안 돼요. 대 우주그룹의 후계자라고요.”
벼리는 어이가 없었다.
이건 무슨 오버인지 싶었지만 그래도 주영과 실종된 세 인물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 했다.
주영과는 이야기를 이어가야 했다.
“주영아, 너 이런 식으로 이야기 할 거면 앞으로 랑데부 오지 마.”
“아이, 무서워. 난 도현이 오빠가 제일 편하고 제일 좋은데 가끔 무서워.”
“랑데부 오지 않을 거면...”
“아, 알았어. 농담 그만 할게. 농담이었어. 조심할게. 나 여기 좋아하잖아. 내 마음의 휴식공간이잖아. 여기 그린섬 오빠들. 나 언제나 그린섬에서 오빠들이 최고로 좋았거든. 언니들도. 난 그린섬에만 가면 항상 행복했어. 오빠들 보니 정말 좋아. 언니들도 보고 싶다.”
내 남자와 가까이 지냈다는 주영은 실종된 이들을 잘 알고 있었다.
오늘은 이야기를 조금 더 해봐야 한다.
내 남자와 가까이 지낸 이들을 알아야 내 남자를 조금 더 알 수 있을 것이었다.
그린섬 멤버들은 모두 수수께끼였다.
그린섬 빌딩도 수수께끼의 한가운데서 계속 스무고개만 하고 있었다.
아직 알 수 있는 것은 없었다.
그린섬 빌딩 지하에 가보겠다는 민수 오빠와 이 형사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지 긴장되었다.
벼리는 도현의 친절이 조금 더 필요했다.
재인과의 불편한 일들은 조금 더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내 남자와 누군가 가까이 지냈다면 그 사람은 내 남자에게 좋은 사람이었을까 혹은 나쁜 사람이었을까 궁금했다.
소멸하고 싶지 않은 자와 소멸이 되고 싶은 자의 이야기
Comment ' 8